● 제목 : 5월의 초록 사태 [산태골, 왼골]
● 어디 : 삼정마을 - 산태골 – 총각샘 – 주능선 – 토끼봉 – 왼골 - 삼정마을
● 언제 : 2012년 5월 19일(토) 08:35 ~ 17:55 (9시간 20분)
● 누가 : 산신세 형님 부부, 경천, 나 (4명)
● 끄르면서 ●
구례 토지마을을 지나
간전 방향으로 향하는 섬진강 다리를 건넌다.
우리, 산벗의 길
꽃잎 띄운 강물이고 싶다
● 산행기 ●
두 달 만에 만난 형님 부부와
모처럼 지리산 자락으로 내달린다.
비안개에 젖어 무수히 피어나는 연초록 잎사귀들
연하디 연한 저 빛깔의 무리에 섞이려고 나는
오늘도 산벗들과 智異山에 동화된다
이 환장할 봄날에
꿈결같이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산태골과 왼골, 절터골 주변에 몸을 기대니
살포시 가 닿는 달콤한 입술 같은
새 이파리들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산태골의 입구를 찾아 계곡 탐험에 오르자
섬의 바위들이 파도를 부르듯
산의 기운들이 물결에
산꾼들을 일으켜 세우느라
쉴 틈이 없다.
물이 울퉁불퉁한 바위를 넘는 소리
물이 나무의 뿌리를 매만지는 소리
물이 햇살에 안기는 소리
물이 길을 찾아가는 소리
산꾼들의 스틱이 돌맹이에 부딪히는 소리마저
씻겨 내려간다.
사태의 흔적을 안은 계곡을 탈출하니
뒤에서 올라오던 산꾼(?) 둘이서 휑하니 쳐다보다가
분주한 걸음으로 올라선다.
2주 전 절터골에서 볼 수 없었던 이파리들이
무성해져 나무의 가슴을 꽉 붙들고 있다.
마악 실눈을 뜬 금빛의 별들처럼
그 동안 초록 봄비가 내렸을까
새로 잎이 나는 나무며 다래와 함박꽃 꽃망울들이
운동회 날 뜀박질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같다
모든 잎사귀의 뺨을
어루만지고 싶다
산행을 접은 채,
‘이끼’ 폭포의 자태를 맘껏 뽐내는 그 앞에서
넋을 빼앗긴다.
고도 1075m에서 계곡을 버리고 왼쪽의 산길로 접어 들기 전에
잠시 휴식을 취한다.
희미한 산길을 표지기에 의지하며
갸우뚱 거릴 적마다
오월의 숲에서 초록의 함성 떼로 내지르며
일어서는 저 푸르른 물결에
내 한 몸 안기고 싶다
산길을 찾아 오를 때마다 새싹 돋듯
내 몸에 희망의 닻이 돋는다
주능선을 불과 30여분 앞 둔 곳의 커다란 암릉구간에
무서운 바위의 ‘이별’소식이 들린 듯 싶다.
저토록 큰 바윗덩어리가 균열되어 굴러 내려올 때
천둥이 치는 커다란 굉음이 사방을 놀라게 했을까?
나뭇가지의 찢어진 자태를 고려해 볼 때
최근에 바위가 해빙기에 균열되어 떨어져 나간 흔적인 듯 싶다.
올 장마가 시작되면 나머지 바위덩어리조차 굴러
꿈틀 기세가 역력하다.
지리99 산꾼 여러분,
당분간 산사태골의 상부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바위 균열의 엄청난 비통(?)함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접근을 멀리 하심이 좋을 듯 싶습니다.
산사태 지역을 네 발로 기어 올라
마지막 암릉구간
주능을 향한 수직 상승의 길은
‘초탈(超脫)한 정신’의 상승과도 통한다.
총각샘 뒤곁의 너럭바위에 올라 주능의 산너울을 품어 봅니다.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산자락들이 저 멀리서 말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 총각샘을 확인하고
주능선에 살며시 발을 내딛는다.
종주 길에 오른 산꾼들과 마주친다.
주능선에 별이 박히는 날
길을 헤매는 산꾼이고 싶은 충동질이 생긴다
주능선에 내린 초록 봄비는
산나물을 쑤욱쑤욱 자라게 했을까
“나물천국이네!”라고 읊조린다
화살촉 같은 날카로운 혓바닥을 숨긴
초록 순을 틔운 새싹들이여
연분홍 자태를 뽐내는 철쭉들은 마치 장마당에 모여
북적대는 장꾼들 같다
초록의 불길이
불타는 기쁨을 지리산 구석 구석을 향해
뒤덮을 것이기에
나는 그대를 위한 행선지를 아껴 두련다
토끼봉을 올라서니 이방인이 덜썩 주저 앉아 있다.
독일인이란다. 연하천에서 하루를 묵을 예정이고
천왕봉은 너무 멀어 힘들어 한다.
왼골로 내려서는 산길에는 흔한 표지기 하나
나풀대지 않는다.
가슴과 가슴 속으로 이어지는 실낱 같은 산길
길 찾기에 대한 의욕을 우리가 잃어버릴까 걱정이다
앞장서는 경천 친구는 GPS로 확인하며 내려선다.
얼마쯤 내려서니 빨간 희망의 끈이 나풀거린다.
‘거제 뽓대’
날 저물면 산그늘 찾아오듯
2012년 제9회 지리99 산정무한(山情無限)을 향해
뜨거워지는 내 마음
식히려니 정말 힘이 듭니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고 했던가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 여미면서 ●
‘세속’ 보다는 ‘산속’에 들어앉아
마음의 한 언저리라도
연두의 싹이 돋아나길 바랐는데……
숟가락 앞에서 밥은 비로소 밥이 되듯
나는 智異山 앞에서 진정한 산꾼다워지고 싶네
첫댓글 산의 신선다운 현웅이의 맛갈스런 글과 사진 풍경이 마음을 울렁거리면서
동요를 일으켜, 지리산 속에 자리 잡게 합니다.
항상 예술가다운 경지에 도달한 현웅이를 존경하네...
산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걸 표현해내는 현웅이의 글 솜씨는 가히 이백이 그를 따를 수가 있을까..???
누구는 산에가서 삼겹살 꼬 먹을라고 갔는데 저리도 신선처럼 산을 쏘다녔으니 차원이 다르다는것을 실감한다.
난 산에갔다왔다 오늘, 삼겹살 꼬 먹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