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지금 여기’ 대조사회로서의 교회 | |||||||||||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한 성찰-6] | |||||||||||
| |||||||||||
교회는 세상 한 가운데 고도(孤島)로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분명히 세상 안에 실재한다. 물론 여러 분야(정치, 경제, 문화, 교육...)와 구별되며 교회 그 고유한 사명과 특성을 갖고 있다. 교회는 세상 한 가운데 고도(孤島)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 백성이 세상 한 복판에서 구체적인 생활환경에 놓여 있으며,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선의의 모든 이와 기꺼이 협력하고 대화함으로써 인류구원의 사명을 완수하려 한다. 그리스도 교회는 인간을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이웃과 관계,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을 이해한다. 그리스도교는 세상을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무대이며, 사랑과 정의, 자유와 평화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의 실현되어야 할 현장으로 가르친다. 때문에 투표를 하든, 상거래를 하든, 교육을 하든, 교회 생활에 참여하든, 그 모든 활동은 그리스도인의 이 인간관, 세계관, 그리고 가치관을 실현하는 구체 행위들이다. 신앙과 생활은 분리될 수 없으며, 세상일에 무관심할 수 없는 이유다. 교회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항상 세상과 구별되는 대조사회 무엇보다도 우려할 만한 현상은 이 같은 비판과 더불어 빠짐없이 나오는 걱정(?)은 ‘쓸데없는’ 개입으로 교회공동체를 분열시킨다는 해석이다.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공동체이므로 불편부당해야 하며 교회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 역시 같은 태도를 보인다. 신약성서는 예수의 제자공동체 역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당대의 유다이즘과 로마 제국과의 차별되어야 함을 가르친다. 교회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항상 세상과 구별되는 대조사회여야 한다. 세상을 넘어서는 교회란 초월적 실재로서의 교회(종말론적 실재로서의 교회)이긴 하지만 동시에 지금 여기의 ‘대조사회로서의 교회’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사랑과 정의의 열매로서의 평화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결정적으로 드러낸 사건은 십자가 죽음이다. 철저한 자기 비움과 버림의 절정으로서의 십자가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완전한 실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불의에 대한 정의의 승리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폭력에 맞서는 비폭력 평화주의의 완전한 실현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신앙은 고통스러운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며, 이 초대는 당연히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불편함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십자가 죽음을 외면하고 영광의 부활에만 시선을 둔)신앙생활은 여러 가지 여가 활동 가운데 하나 정도로 전락한다. 박동호 신부(서울 신정동본당,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
첫댓글 십자가 죽음을 외면하고 영광의 부활에만 시선을 둔 신앙생활은 여러가지 여가 활동 가운데 하나 정도로 전락한다......
마음에 와닸는 말씀이네요...
절대루....동의 합니다....
신앙과 생활은 분리 될수 없으며......세상 일에 무관심 할수 없는 이유다....,.
고로 빈자회가 있음이다......관심.......그것이야말로 가장큰 실천이다...
자양동 성당 빈자회 회원 여러분들의 용기있는 관심에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