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현세자
병자호란으로 청에게 치욕스러운 삼배고두례까지 했던 인조(당시...이마를 바닥에 너무 심하게 찍어... 이마에서 피가 날 정도였음)는 볼모로 청나라에 아들 소현세자를 보내야했다.
이후 몇년만에 조선에 다시 돌아온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를 알현하는 자리에서...청나라에서 본인이 접했던 첨단 문물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널어놓자......인조는 너무 화가 났다.
(아비가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치욕을 당했음 알면서...그런 인조 앞에서 청에 우호적인 아들이 밉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분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소현세자에 벼루를 던졌고...그 벼루가 소현세자 이마에 맞아 피가 철철 흘렀다.
그러고 나서 소현세자가 자리에 몸져 누운지 3일 만에 사망한다.
일반적으론 학질에 걸려 병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실은 아버지 인조에 의해 독살된 것이다.
조선시대 어의는 왕이나 왕자 등이 죽게 되면...국문을 받고 귀양을 가는게 관례화된 코스였다.(허준도 이런 연유로 귀양을 갔었음)
그러나...당시 소현세자의 병환을 돌보며 탕약을 올렸던 어의는 국문은 커녕...오히려 인조로부터 격려의 말까지 들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함.
2. 의병활동
구한말과 일제치하에서의 의병활동 당시에도 반상을 따지며....양반 출신 의병장이 평민 출신 의병장이 감히 양반에게
대든다는 이유로 처형시키는 등....스스로 투쟁의 힘을 약화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영정조 시대 극에 달했던....붕당이....일제치하에서까지... 임시정부내 노론 계열이냐 소론 계열이냐를 따지며 계파간 소모적 갈등이 상존함에...임시정부 운영 및 독립활동에 적잖은 장해요소로 작용하였다.
3. 안중근 의사
당시...이등박문 저격에 참여한 "단지동맹"(안중근 의사도 당시 찍은 지장을 보면, 약지가 잘려 있음) 동맹원은 안중근 의사 한명 만이 아니었다.
당시 활동하던 각종 독립운동 단체들의 하나같은 애로사항은 정보력이 매우 열악했다는 것이다.
저격 당일에도...이등박문이 어느 기차역에서 내리는지 정확히 몰랐기에...하차 가능성이 있는 8개 역에...역마다 단지동맹원들이 각각 배치되었었고, 마침 8개 역중 안중근 의사가 배치되었던 하얼빈 역에 이등박문이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안중근 의사는 이등박문의 얼굴을 몰랐기에...차림새 등으로 보아 이등박문으로 생각되는 자에게 달려가며
먼저 쏘았고....혹시나 하여 이등박문의 양편에 있던 자들도 저격하였다.
(그날 이등박문이 다른 역에서 하차하였다면, 그 역을 지키던 다른 동맹원이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4. 이준 열사
일반적으로...이준 열사는 고종의 특명으로..헤이그 특사로 갔다가 회의장소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그에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특사 임무를 실패한 뒤....국내로 귀국하려 했으나...현지에서 일종의 풍토병인 열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병사하였다.
5. 윤봉길 의사
고향을 떠나 홍커우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던 윤봉길 의사가...홍커우 공원에서 던진 폭탄은 도시락 폭탄이 아니라...물통폭탄이었다.
당시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 행사에 참석하고싶은 자들은 도시락과 물 그리고 일장기를 지참하라고 행사예고가 있었기에...도시락과 물통 형태의 폭탄을 만들어 갔던 것이고.....
입구에서 일본순사들이 참가자들의 소지품을 검사하는 과정에서....윤봉길 의사에게도 도시락을 열어보라 하였고...윤봉길 의사는 도시락 가운데 빨간 반찬을 동그랗게 박아 넣어 일장기를 상징하는 도시락을 보여주고 통과하였다.
(요즘 연인들 사이에 많이 하는 도시락꾸미기의 원조가 아닐런지^^;)
요즘이야 워낙 기술이 발달해서 쉽게 만들수 있지만....당시엔....위장폭탄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데다....그 성능 또한 믿을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비용으로 도시락폭탄과 물통폭탄 두 개를 준비해 갔던 것이고....첫번째로 던진 물통폭탄이 다행히 제대로 터져줘서 거사를 완수....체포 당시엔
남아있던 도시락폭탄만 압수당했기에...아직도....도시락폭탄을 던졌던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떠나며....'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 즉 '장부는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비장한 문구를 남겼던 윤 의사는......끝내 자신의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당시 거사 직전....고향의 어린 두 아들에게 남겼던 편지를 읽노라면....다시 한 번 순국열사들께 머리가 숙여진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兵丁)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어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첫댓글 거사 직전 김구선생님의 시계가 없었던가 너무 낡았던가 해서 본인의 시계를 드렸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자기는 거사를 끝내면 필요없게된다면서... 게시판에 언니의 열혈활동이 눈에 띄는군... 쩝..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