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중신학의 비판
1. 민중신학의 형성과 민중개념
1) 민중신학의 형성과정
민중신학은 1970년대의 한국 그리스도인의 정치 사회적 전기, 즉 자유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을 정치 사회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민중신학은 서남동 박사
가 처음으로 "민중을 위한 민중의 교회"를 그의 글, "예수, 교회사, 한국교회"에
서 그리고 "민중신학"의 용어를 "민중의 신학"이란 글에서 각각 주창했다. 1979
년까지는 민중신학이 지하운동에 불과하였으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직전인 1979
년 10월 22일에서 24일에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의 후원을 받아 민중에 관한 신학
적 성찰을 위한 모임이 서울에서 열림으로 그 포문을 열게 되었다.
2) 민중개념
(1) 구약의 "암 하아레츠"
김정준 박사는 구약의 '암 하아레츠'는 일반적으로 "땅의 백성", 또는 "평
민"이며 신약의'오클로스'처럼 가난하고, 소외되고 천대받은 백성이란 의미는 없
으며 '딸라스 하아레츠'(왕하 24:14;25:12, 렘40:7)가 "그 땅에 버림받은 사람"
이라고 보았다.
구약성경은 민중신학이 말하는 민중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한국
적 민중을 성격화 시키려고 성경의 일부를 이용하려 드는데 문제점이 있다. 미리
전제된 민중의 개념에다 성경의 자료를 부합시켜 보려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
이다.
(2) 신약의 "오클로스"
'오클로스'를 신학적 개념의 "민중"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신학자들이다.
안병무 박사는 마가복음서에서 사용된 '오클로스'에서 "민중"을 찾는다. 그는
'오클로스'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첫째, 이 민중은 예수가 가는 곳마
다 언제나 그를 찾아 모이는 "무조건적 추종자들"이다. 둘째, '오클로스'는 제자
들과 다르다. 셋째, '오클로스'는 예수님을 그들의 원수로 간주하여 대적하며 비
난하는 예루살렘의 지도층과 대조를 이룬다. 넷째, '오클로스'는 단지 그들이 소
외당하고 착취당하고, 그리고 권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존재론적으로 군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다섯째, 예수님은 '오클로스'편에 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미
래를 약속해주셨다.
안병무 박사는 '암 하아레츠'와 '오클로스'를 관련지음에 있어서 루돌프 마이
어의 입장을 받아들인 바있다. 마이어는 '오클로스'에 대한 자료가 마가복음서에
서만 국한될 이유가 없음을 시사했다. 다시말해서 '오클로스'는 정치 사회 종교
적으로 소외당한 낮은 계층의 갈릴리 사람들만을 가리키지 않으며, 예수님이 그
들을 회개나 신앙없이 무조건적으로 항상 영접하신 것이 아닌 것이다.
(3) 해방신학의 "가난한 자들"
남미의 해방신학이 말하는 가난한 자들이란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요 억
눌린 자들이다.
메시아적 구원은 죄와 불행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성경적으로 균형잡힌 견해를 리델보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에 의하면 가난한자들
이란 사회적으로 눌린 자들이요, 불의의 세력에 의해 고통당하고 자신의 이
익과 세력만을 생각하는 자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에게 충실하며 구원을 오직 하나님의 왕국으로부터 기대하는 자들 이다.
(4) 민중신학의 민중
김성재씨는 그의 "민중교육 방법론 연구"에서 민중 이해에 대한 세 가지
입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a. 사회과학적 입장 :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정치권력에 대해서 저항하고
기존 세력에 대항하는 정치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b. 역사적 입장 : 권력자에 대한 맹목적인 예속 상태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
신의 존재, 주체적 자주적 존재로 각성하고 행동하고, 생존을 위해 반항하는 사
회적 세력을 송건호씨는 민중으로, 안병직씨는 역사를 이끌고 가는 하나의 주체
로서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단계의 대중, 김용복씨는 민중을 역사의 실체로 간
주한다.
c. 기독교적 입장 : 안병무 박사는 민중은 기존의 종교적 세력이나 정치적
권력에 반대하는 입장에 선 자들이다. 서남동 박사는 민중을 자기 역사와 운명의
주체이면서도 역사적, 현실적 구조악에 의해 지배권력으로부터 소외 억압되어 천
민 죄인이 된 사람들로 구정한다.
민중신학의 이 같은 민중 이해에 의하면 정치적으로 눌린 자, 경제적으로 착취
당한자, 문화적으로 소외당한 생산 노동자들과 사회 혁명가들이 민중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의 민중은 남미의 가난하고 눌린 프롤레타리아와 그들의 의식
화를 주도하는 사회주의 혁명가들과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2. 민중신학의 이론적 배경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신학이 순전한 한국적 신학이라고 주장하나, 사실, 민중신
학은 독일, 일본, 남미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동학사상으로 채색한 사
회복음인 것이다.
1) 독일신학
민중신학은 헤겔, 본훼퍼, 몰트만, 그리고 타이센에게 각각 영향을 받았다.
민중시인으로 불리우는 김지하씨에 의해 강력하게 주장되는 바 민중신학의 주요
주제인 신과 혁명의 통일은 역사를 신의 자기 발전 과정으로 보는 헤겔의 중심사
상에 근거하고 있다.
2) 남미신학
남미의 해방신학이 처음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72년 문동환 박사에 의해서이
다. 문동환박사는 예수님을 이해하기를, 우리에게 회개, 다시 말해서 가난하고
눌린자들에게 이웃 사랑을 베풀기를 명하는 해방자로 보았다.
3) 일본신학
한국의 민중신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일본 신학자는 겐조 다가와와 사
사구 아라이이다.
아라이에 따르면 문학과 사회학의 관점에서 예수님을 둘러 싼 사람들은 소위
그 당시의 죄인들, 예컨데 문둥이, 지체 불구자, 창녀, 그리고 세리들이었다. 이
는 곧 예수님이 민중과 더불어 사신 것을 의미한다. 그는 결론 짓기를 예수님은
자기의 메시아권을 한번도 주장하신 일이 없으며 다만 땅의 백성인 죄인들의 편
에 서서 그들이 인간으로 살 수 있기를 희망하셨다고 했다. 유다의 지도층에 의
해 민중에게 가해진 압박과 차별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은 율법과 예루살렘 성전
에 대한 비판으로 발전하고, 마침내는 로마제국이 성전 국가 체제의 유대 지도층
을 지지해준다 하여 그 로마제국까지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고 주장한
다. 이와 같이 하여 예수님은 로마당국으로 부터 오해를 받아 정치적인 죽음을
초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는 결코 죄 용서의 관점에서 생각
될 수가 없다고 한다.
4) 동학사상
민중신학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전거로 삼고 있는 '동학'은 천주교에서 붙인
'서학'에 대하여 구분시키기 위함이고 민족적 요소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동학은 1860년대에 최제우가 유교, 불교, 도교, 로마 카토릭교의 여러 교훈들
을 혼합하여 만든 일종의 종교운동으로서 인내천이 그 중심사상이다. 이 동학사
상은 전봉준의 농민반란에 의해 혁명운동으로 성격되었는데, 민중신학과 관련하
여 특별히 함석헌 선생과 김지하씨에게서 그 사상을 찾을 수 있다.
5) 맑스주의
맑스주의와 관련하여 민중신학의 중요한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민중신학은 사회 윤리만을 강조하고 개인윤리를 소홀히 한다. 이 신학은 개인의
종교적인 죄를 부인하고, 사회적 구조악을 죄, 또는 사단과 동일시 한다. 둘째
로, 민중신학은 한편으로는 헤겔, 본훼퍼, 블로흐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
학혁명이나 여타의 다른 정치 사회적인 혁명적 사건들에 근거하고 있는 인본주의
적 혁명 신학으로 자처하고 있다. 셋째로, 민중신학은 사실상 인본주의이다. 그
래서 무신론적 맑스주의와 제휴하며 공존할 수가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가난
하고 눌린 민중, 특별히 도시 근로자들과 시골 농민들을 위하여 정치, 경제, 사
회적인 구조악을 혁명적으로 개혁할 때에만 한 풀이가 가능하다고 민주신학이 주
장하는 까닭에 이 신학은 맑스주의적인 사회운동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짙어지는
것이다.
3. 민중신학의 전거적 사건
민중신학의 파라다임적 전거는 역사적 전거와 성경적 전거로 대별된다. 역사적
전거는 한국역사와 교회역사로, 그리고 교회 역사는 서구의 교회사와 한국교회사
로 구분된다.
1) 성경적 전거
(1) 구약의 전거
민중신학이 주로 사용하는 구약의 전거로는 출애굽 사건과 언약법전, 그리
고 몇몇 예언자들이다. 민중신학은 기독교회가 2000년동안 출애굽사건을 순전히
종교적 개념의 관점에서만 이해함으로 해서 그것의 역사적 핵심을 놓쳤으며 그리
하여 현실을 개혁하는 혁명적 세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되고 대신에
현재 상태나 체제를 유지시키는 지배자의 이데올로기 구실만을 행하게 되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출애급에 대한 이 같은 종류의 정치 경제 사회적 해석은 전혀 비성경적
이다. 출애급은 분명코 구속의 한 전형인 것이다.(출2:24,25;3:12;6:6,7)
언약법전은 외관상으로 보면 가난한 자들에게 그들의 독자적인 정치적 경제적
지위를 되찾아주는 사회정의를 다루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법전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간의 종교적 언약의 법전임을 알아야 한다.
아모스와 미가서의 경우, 민중신학은 사회정의의 주제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
신학은 죄의 사회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개인적 측면을 소홀히 한다. 그러나 실상
은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은 개인의 종교적인 죄를 책망하여 설교하고, 그리고나서 사회적인 죄를 다루
고 있다.
(2) 신약의 전거
민중신학은 누가복음서 4:18-21의 말씀이 어떠한 종류의 해방운동이든 간
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말씀은, 민중신학에
따르면 낡은 압제적인 구조로부터의 해방만을 선포할 뿐 종교적 의미를 전혀 갖
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사야서에서 인용된 이 구절의 말씀
은 눈멀고 귀먹은 백성위에 임한 하나님의 징계로서의 바벨론 포로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신학의 성경적 전거는 이미 전제되어 있는 민중의 정치 경제 사회적 틀을
따라 인위적으로 선별되었다. 그런 까닭에 성경의 다른 주요한 주제들, 예컨데
죄, 회개, 신앙, 대속의 희생, 이스라엘과 유다의 징계, 바벨론 포로, 칭의, 성
화, 교회 행정 등의 교리들은 그것들이 민중을 위한 사회정의와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제외되어 버린 것이다.
2) 역사적 전거
(1) 서양 교회사의 전거
서구의 교회역사의 경우, 서남동 박사는 요아킴 플로리스와 토마스 뮨쳐
둘만을 전거로 들었다.
(2) 한국 역사의 전거
안병무 박사와 서남동 박사는 다 같이 동학혁명, 3.1운동, 그리고 4.19혁
명을 민중신학의 주요한 역사적 전거로 간주한다.
4. 민중신학의 신학
1) 하나님
민중신학은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이 하나님은 초월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민중의 고난 속에서 자기를 나타내는 하나님이다. 민중신학
이 초월적 하나님을 거부하고, 역사의 밑바닥에 계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은
초월적 하나님을 지금까지의 기독교 신학이 권력형적 하나님으로 다루워왔다고
본 까닭이다. 민중신학이 십자가, 부활, 천년왕국 등을 상징적인 표현으로 사용
하고 있음을 감안할때, 하나님도 역사의 자기 발전이나 역사의 심판을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2) 예수 그리스도
민중신학은 예수님을 허위허식의 폭로자로 본다. 지배자들이 자기네들의 기
득이권을 보존하고강화시키기 위하여 현실태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단순화시키
거나 채색해 놓은 그 허위허식에 정면 도전하다가 예수님이 정치범으로 몰려 십
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보는 것이다.
3) 성령
성령은 그리스도의 후계자요, 그의 변형이시며, 인간성 안에 내재하는 본질
적 하나님이요, 사회참여를 명령하며 요구하는 영이시다. 성령은 십자가의 죽음
의 고난을 당하는 사랑, 우리 인간과 사회와 역사를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하는
그 사랑의 실재, 사랑 그 자체로서, 우리와 세계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현존, 권
능, 사랑이다. 다시 말해서, 민중의 고난 속에 동참하는 사회적 경험이 성령이
다. 민중신학은 성령을 사회적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4) 교회
민중신학은 이방사람과 유대인 사이에 막힌 담을 그리스도가 그의 피로 헐으
시고 둘이 하나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거할 집을 이루어 나갈 수
있게 한 것으로 해석하여, 교회와 세상의 구별을 배제한다. 즉, 제도적 교회를
배격하고, "그리스도 안"이라고 하는 제 3의 장소를 제안한다. 그래서 제도적 기
독교회를 초월한 전 인류가 하나로 만나는 하나님의 집을 강조한다.
5) 구원
(1) 죄
양심의 고통,어떤 컴플렉스, 이즈러진 마음, 공연한 불안, 남을 향한 증오
심 등을 통틀어 죄라고 하기도 하나, 근본적으로는 나로 하여금 정신적 육체적으
로 병들게 하고 나를 속박하여 나에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의
구조적인 힘, 곧 구조악을 죄로 규정한다.
(2) 회개
민중신학은 회개를 모른다. 구조악만을 탓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윤리적
개념으로서의 회개를 말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전향하는 것이 민중신학의 회개
이다.
(3) 믿음
민중신학이 말하는 믿음은 현실 속에서 살려는 의지의 결단이요, 모순 속
에서 좌절하지 않는 것이며, 오고 있는 미래에로 자기를 개방하여 현재를 사는
것, 즉 미래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 안에서 살아 있다고 하는 희망을 갖
는 것이 믿음이다. 다시 말해서, 역사의 자기발전과 심판을 믿고 좌절하지 않는
의지의 결단이 민중신학의 믿음이다.
(4) 구원
민중신학은 죄와 구조악을 동일시하는 까닭에 기존사회의 변혁에서 구원을
찾는다. 한 마디로, 사회개혁이 구원이다. 오늘을 지배하는 구조악의 철폐를 위
한 싸움 속에서 구원을 찾는다.
5. 민중신학의 실제적 주제
1) 출발점
민중신학은 민중의 현재 상황, 즉 정치 경제적인 구조악에서 출발한다. 민중
신학은 이 구조악이 민중과 상반되는 그 성격상 절대주의적이고 독재적인 정치적
메시아니즘에 의해 야기된 것으로 주장한다.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의 공통적인 출발점은 대외 의존관계에 의해 야기된 구조
악이다. 이 구조악을 성경에서 말하는 죄로 이 두 신학은 간주한다.
2) 목표
파라다임적 전거인 출애급 사건은 애굽의 노예상태로부터 벗어나 약속된 땅
으로 향해가는 여행이다. 해방신학에 따르면 이 같은 새로운 사회가 곧 바로 하
나님의 나라이다.
해방신학은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적으로 현존하고, 활동하며, 확실하게 실현되
고 있다는 점, 즉 그것의 현재성은 강조하나, 하나님 나라의 타계성을 무시한다.
민중신학의 목표 또한 해방신학의 경우와 같다.
성경적으로 해방의 목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우리가 해방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자유인으로 살게 되는데 있
다. 자유인은 그리스도가 화목제물되신 것을 힘입어 죄와 율법의 지배 아래 더
이상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해방된 것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
랑하고 섬기기 위함이다. 이 사랑과 섬김은 해방의 복음이 요구하고 권장하는 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셋째로, 우리가 해방된 것은 영광을 얻기
위함이다.
이 같은 성경적 목표는 민중신학이 주장하는 바 현실에만 국한된 정치적 경제
적 민주사회 건설과는 거리가 있다.
3) 방법
안병무 박사는 칼을 빼는 것과 칼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엄연히 서로 다르다
고 주장하여, 민중이 억압적 상황에서 자기 보호를 목적으로 칼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서남동 박사와 김용복 박사와 같은 민중 신학자들은 공공연하게 부분적
폭력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민중신학은 한국의 전통적 탈춤에 나타난 민중
의 체험에 근거하여 한풀이를 의미하는 단을 주장한다. 그러나 한풀이의 실제적
방법은 양반층에 대한 보복행위와 폭력에 의존한 부와 권력의 재분배이다.
성경은 해방의 수단에 관하여 예수님의 경우, 그는 정치적 혁명으로부터 출발
하지 않으셨다. 그는 로마의 지배에 동조하였던 유대인들 편에 서지도 않으셨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사랑으로 충만하고 원수들까지도 사랑하며 이해관계를 따
지지 말고 자기들이 가진 물질들을 나눠가지는 생활 방식으로 살 것을 가르치셨
다.
6. 민중신학에 대한 평가
민중신학의 치명적인 문제들로는, 첫째, 그것이 성경의 텍스트에서 출발하지
않고, 사회적 역사적인 파라다임적 전거들에서 출발한 점이다. 둘째로, 민중신학
은 한국의 전통적인 탈춤, 몇몇 불교 사상, 동학 사상 등을 그것의 기본틀로 삼
아 기독교를 샤마니즘적이고 혼합주이적으로 해석하여 한국적 신학을 형성하려는
데 문제점이 있다. 셋째로, 보혈의 신학이 제거된 까닭에 개인적인 회개나 신앙
이 또한 제거되고, 결과적으로 개인윤리 내지는 개인의 도덕적인 죄에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 민중신학의 약점이다.
한가지 부언하는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해석한
하나님의 계시인 바울의 서신들이 갖는 절대성과 권위가 그 서신들을 인간적으로
해석하여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려하는 민중신학의 권위보다 훨씬 높
으며, 우선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도적 해석과
권위를 능가할 수 없다.
결 론
교회가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일과 더불어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보이는 일에
균형을 이루어야 할 의무가 있는 까닭에, 가난하고 눌린 자들의 대의를 짊어 지
는 것은 우리의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책임에 속한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성
경은 책임한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무조건적으로 모든 민중의 대의를 다 짊어
지는 것이 아니다. 우선 먼저 성경은 세속정부의 책임을 말한다. 세속정부는 가
난하고 눌린 자들의 대의를 옹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며, 악한 억압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야 할 책임이 있다.
첫댓글 제 친구 중에 몇명이 70년 대말 당시 함석헌옹의 추종자였습니다..당시는, 좀 나가는 학생들이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를 들고 다녔고 그 내용(민중신학)을 모르면 지성인이 아니라는 평판을 받는 분위기였습니다..전 그런데 관심이 없어서 내용을 잘 몰랐습니다만 학생운동하는 친구들은 함석헌옹을 그들의 정신적 지주로 받들고 있었습니다.
민중신학은 말 그대로 신학입니다..학문인 것이지요..믿음보다는 연구(학문적인 결과물)를 앞세우고 있습니다..민중신학, 해방신학, 예수세미나, 문화로 접근하는 기독교 신앙 등 이름은 다양하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의 관심사이며 그들의 행태(관심사)로 판단하고 싶습니다.
믿음없는 신학과 믿음없는 실천이란 위선 아니면 만용으로 끝날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회개혁을 구원이라고 해놨네요..>>
아,,그래서...이제서야...예수세미나 단체가..무서운 말들을 마구 떠들어 대는것이 이해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