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9월: 로버트 우드가 N 광선의 정체를 밝히다.

1895년 X 광선이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슷한 발견을 하려는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아주 많은 연구의 홍수가 이루어 졌다. 그래서 1903년 새로운 형태의 방사선에 대한 보고서는 많은 흥분을 야기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1904년 9월 그것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졌다.
새로운 형태의 방사선을 발견했다는 첫 번째 주장은 프랑스 낭시 대학교의 물리학자인 르네 프로스퍼 블롱들로(Rene Prosper Blondlot) 에 의해 제기됐다. 그 당시 그는 저명한 과학자이며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었으며, X 선의 편광을 이용한 실험을 하던 중 다른 종류의 방사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발견했다. 1903년 봄, 블롱들로는 이 새로운 광선에 대한 첫 논문을 Proceedings of the French Academy (the Comptes Rendus)에 출판하였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낭시에서 이름을 따와서 그 새 광선을 N 선 (N-ray)이라고 이름 지었다. X 선이 독일 사람인 뢴트겐 (Wilhelm Conrad Roentgen)에 의해 발견되었기 때문에 N 선의 발견은 프랑스의 국가적 자존심이 되었다.
발견되기 어렵다고 주장되는 이 광선을 찾기 위해 블롱들로는 여러 종류의 기구를 사용했다. 그의 첫 실험에서 그는 이 광선이 투과하면서 만드는 작은 전기 스파크의 미묘한 밝기 변화를 통해 그 광선을 찾아냈다. 나중에는 N 선이 주사되면 약간 더 밝게 빛날 것으로 생각되는 형광 코팅을 입힌 스크린을 사용했다. 그는 또 이 새 광선이 빛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의 편광, 회절, 굴절 등을 발견했다.
블롱들로의 첫 번째 발표이후 불과 몇 달 동안 많은 과학자들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수는 프랑스 과학자들)은 그 광선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수 백편의 논문이 이 토픽에 관해 출판되었고 블롱들로 또한 26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곧이어 N 선의 여러 성질들이 "발견"됐다. 예를 들면, 그 광선은 나무와 금속을 통과하지만 물은 통과하지 못했다. 그것은 또 태양, 가스버너, 금속에서부터 생성되었지만 나무에서는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브릭에 저장될 수 있었다.
다른 과학자들은 이 수수께끼의 광선을 이용할 방법을 제안했다. 예를 들면, 낭시 대학교의 의학 물리 교수인 Augustin Charpentier는 그 광선이 토끼와 개구리 그리고 인간의 뇌, 근육, 신경에서도 나온다고 보고했다. 그는 X 선과 마찬가지로 N 선 또한 내부 장기를 보기위한 의학 이미징에 유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N 선의 다른 연구자인 장 베끄렐 (방사능을 발견한 앙리 베끄렐의 아들) 은 N 선이 전선을 타고 운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과학자들은 자기들이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을 정말로 믿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다른 많은 과학자들은 그 결과를 재연하는데 실패했다. 사실 이들은 N 선에 관해 아무런 확증도 발견하지 못했다. 블롱들로와 N 선을 믿는 학자들은 그 광선을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은 (가시 영역의 한계 근처에서 발견되리라 주장되는) N 선의 효과를 검출하는데 필요한 민감한 시력을 갖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물리학계는 이 문제로 분열됐다. 자신의 실험실에서 N 선을 검출하는데 실패한 과학자 중에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로버트 우드 (Robert Wood)가 있었다. 그는 광학과 전자기학의 연구를 했으며 다양한 관심과 농담을 즐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1904년 여름, 우드는 상황을 정리하려는 희망으로 블롱들로의 실험에 참관하기 위해 프랑스로 보내졌다.
블롱들로와 그의 조수들은 우드를 위해 몇 가지 시범을 마련했다. 가장 갈 알려진 시연으로 블롱들로는 N 선이 어떻게 알루미늄 프리즘을 통해 스펙트럼으로 갈라지는가를 보였다. 그는 형광 띠를 따라가면서 몇 개의 점에 나타나는 밝기의 미묘한 증가를 관측하여 스펙트럼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드는 N 선 스펙트럼의 어떠한 증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실험은 암실에서 이루어져야했다. 이는 우드가 트릭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블롱들로와 그의 조수들 몰래 우드는 장치에서 가장 중요한 프리즘을 빼냈다. 그리고 블롱들로에게 N 선 스펙트럼의 관측을 반복해달라고 부탁했다. 프리즘이 제거된 사실을 모르고 블롱들로는 프리즘이 있을 때 보았다고 주장했던 패턴과 똑 같은 패턴을 보았다고 계속 주장했다.
몇 개의 비슷한 실험을 한 후, 우드는 블롱들로와 그의 지지자들이 그 현상을 형상화했다고 완전히 확신했다.
1904년 9월 22일, 우드는 블롱들로의 연구실을 방문한 것과 N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결과를 설명한 편지를 Nature 에 보냈다. "세 시간이상 여러 실험을 참관한 후 나는 그 광선의 존재를 나타내는 단 하나의 관찰도 보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던 과학자들은 어떻게든 속았다는 확신이 들었다."라고 그의 Nature 논문에서 밝혔다. 비록 우드가 그 논문에서 블롱들로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모든 독자들은 그 논문이 말하는 실험이 누구의 실험인지 다 알 수 있었다.
우드의 보고서는 1904년 9월 29일 출판됐다. 몇 달 안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N 선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됐다. 이 문제는 일단락 지어졌다. 하지만 블롱들로는 그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포기한 후에도 수년간 N 선 연구를 계속했다.
많은 명망 있는 과학자들을 우롱한 N 선의 이야기는 그 이후로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고 여기는 자기 착각 혹은 자기 기만의 예로 쓰이고 있다.
APS (미국 물리학회), APS News 2007년 8월호
첫댓글 =_=이걸보면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걸 느꼈음
우아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