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2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금속활자 인쇄기술은 고려시대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창안되었다. 1232년(고종 19) 강화도로 옮긴 개경의 서적점(書籍店)에서 찍은 금속활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다시 새겨낸 것이 전하고 국가전례서인 《상정예문(詳定禮文)》을 금속활자로 찍은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이전에도 금속활자 인쇄술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1377년에는 청주 운천동(雲泉洞)의 흥덕사(興德寺)에서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등의 불교서적을 금속활자로 찍어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중앙관서를 중심으로 금속활자의 주조방법과 조판법이 더욱 발전했는데, 1403년(태종 3)에 주조한 계미자(癸未字)를 시작으로 하여 1420년(세종 2)의 경자자(庚子字)를 거쳐 1434년(세종 16) 초조갑인자(初造甲寅字)를 제작할 무렵 조선시대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절정에 다다르고 이후 다양한 활자들이 제작되었다.
한국의 금속활자는 주조(鑄造) 기법으로 제작된다. 제작 과정은 크게 글자본 만들기, 원형 만들기, 주조, 마무리작업의 네 과정으로 나뉘며 주조기법에 따라 밀랍주조기법과 모래주조기법으로 나뉜다. 밀랍주조기법은 주로 초기에 쓰였으며, 활자 하나하나를 밀랍으로 만들기 때문에 같은 글자라도 활자마다 모양과 크기가 달라서 조판 상태가 가지런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모래주조기법은 조선시대의 초주갑인자 이후 보편화된 방법이다. 먼저 황양목(黃楊木)으로 어미자를 만든 후 주물틀에 갯벌흙을 다져 넣은 다음 어미자와 가지쇠를 박고 또 하나의 주물틀을 그 위에 결합한 뒤 주물사를 넣고 다져 암틀과 수틀을 만든다. 가지쇠는 나중에 쇳물이 흘러들어갈 홈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주물틀이 완성되면 위 틀을 분리하여 어미자와 가지쇠를 들어내고 다시 결합하여 위쪽에 난 구멍에 쇳물을 부어서 활자를 주조한다. 이 기법은 각 활자의 크기와 모양이 가지런하므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근대에는 위의 두 가지 전통기법을 토대로 현대화된 장비를 활용하여 제작한다. 금속활자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오국진(吳國鎭)은 최근 잊혀졌던 인쇄술을 찾아 전통기법의 발굴·복원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