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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제천 국제음악영화제 / 108분>
=== 프로덕션 노트 === (내지 해설)
클라라 : 마르티나 게덱(Martina Gedeck)
슈만 : 파스칼 그레고리(Pascal Greggory)
브람스 : 말릭 지디(Malik Zidi)
감독 : 헬마 샌더스-브람스(Helma Sanders-Brahms)
각본 : 헬마 샌더스-브람스(Helma Sanders-Brahms)
연주 : 다뉴브교향악단(Danubia Symphony Orchecstra)
슈만과 브람스가 사랑한 뮤즈, 클라라...이제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낭만주의가 유행하던 19세기 독일,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는 아버지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6년 간의 법적 공방을 거쳐 음악가 슈만과 결혼한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재능 있는 청년 브람스가 자신의 악보를 들고 슈만과 클라라를 찾아온다. 브람스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본 슈만은 그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고 음악적 교감을 나눈다. 하지만 곧 브람스가 클라라를 사랑하게 됐음을 눈치채게 되는데…
슈만 탄생 200주년 기념...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명곡들이 펼쳐진다
2010년 클래식 음악계는 슈만을 주목했다. 슈만이 탄생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연뿐만 아니라 기념 음반, 특집 방송 등을 통해 슈만의 음악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슈만 탄생 200주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 <클라라>는 슈만을 포함하여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 슈만의 아내이자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그리고 그가 후계자로 언급했던 천재 브람스와의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대중들이 좀 더 드라마틱한 슈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한다. 또한 <클라라>는 슈만의 <라인 교향곡>,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등 낭만주의 클래식을 대표하는 명곡들이 탄생하는 순간들을 포착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스크린을 통해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즐거움까지 선물할 것이다.
슈만과 브람스, 그리고 그들이 사랑한 뮤즈 클라라
클래식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가 시작된다.
클래식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슈만과 브람스, 그리고 클라라.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6년 간의 법적 공방을 거친 끝에 결혼에 성공한 슈만과 클라라의 이야기나 평생을 독신으로 보내며 클라라에 대한 연정의 마음을 감추지 않았던 브람스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에 제작부터 화제를 모은 <클라라>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던 세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 이별에 이르는 과정을 한 편의 시처럼 함축적인 영상속에 담아내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또한 클라라를 위해 수많은 명곡들을 남긴 작곡가 슈만과 브람스, 그리고 그 곡들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연주했던 피아니스트 클라라의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영원히 기억될 순수한 사랑과 배려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슈만의 아내, 브람스의 연정을 넘어...예술가로서의 그녀 자신, 클라라를 만난다.
클라라는 슈만과 결혼하기 위해 아버지와 6년간의 법적 소송을 거쳐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또한 열네 살이나 어린 브람스가 그녀를 사랑해 평생 동안 독신으로 살았던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그녀는 우리에게 클래식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슈만이나 브람스를 이해할 때 필요한 하나의 키워드로서 기억되어 왔다.
그러나 헬마 샌더스 브람스 감독의 <클라라>는 우리의 기억 속 클라라를 온전히 그녀 자신의 몫으로 돌려놓는다. 영화 속에서 클라라는 슈만과 브람스의 후광에 머무르지 않고 당당히 자신을 드러낸다. 누구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컸던 그녀는 남편을 대신해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재능 있는 청년의 연주를 듣기 위해 남루한 부둣가를 찾는다.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까지 돌보면서도 피아니스트로서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클라라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녀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헬마 샌더스 브람스 감독은 사회적 인식과 환경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과 달리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 위대한 여인 클라라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단순히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클라라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적이면서도 우아한 영화를 탄생시켰다.
배우들의 완벽한 호흡이 빚어낸 앙상블...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 같은 영화를 만들어내다.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 그것도 슈만이나 브람스, 클라라 같은 유명인을 연기하는 일은 웬만한 배우들에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야기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도 하거니와 그를 표현해내는 배우의 연기에도 많은 관심이 몰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티나 게덱, 파스칼 그레고리, 말릭 지디는 완벽한 호흡으로 훌륭한 앙상블을 이뤄내며 관객들을 만족시켰다.
영화를 연출한 헬마 샌더스 브람스 감독은 배우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열어두었다. 일반적인 연출 지시사항 없이, 배우들이 직접 감정을 결정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연출 방식은 배우들이 좀 더 풍성한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세 배우는 연기가 아닌 실제처럼 그 인물에 몰입할 수 있었다. 많은 부분이 상징으로 숨어있는 영화 <클라라>에서 관객들은 세 인물의 교차되는 눈빛과 함축적인 대사, 그리고 절제된 행동을 통해 슈만이나 브람스, 클라라의 관계를 읽어낼 수 있다. 또한 이에 걸맞는 영상과 음악은 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 같은 영화를 만들어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세기의 여성 ‘클라라’로 변신한 <타인의 삶>의 그녀, 마르티나 게덱
생애 최고의 연기로 명성을 입증한다
2007년 아카데미 수상작 <타인의 삶>에서 비밀 경찰의 감시 속에 활동하는 동독의 여배우로 출연하여 우아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마르티나 게덱이 새로운 작품으로 우리 곁을 찾아온다. 그녀가 택한 작품은 독일 최초의 여성 예술가라 할 수 있는 실존 인물 클라라의 드라마틱한 삶과 사랑, 열정을 그린 영화 <클라라>. <타인의 삶>에 이어 다시 예술가 역을 맡아 화제를 모은 마르티나 게덱은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여인 클라라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독일 최고 여배우로서의 명성을 입증한다. 또한 특유의 존재감 있는 연기로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서 슈만과 브람스와 교감했던 여인 클라라의 당당한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또 한 번 짙은 인상을 남길 예정이다.
Special Tip 10
1.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슈만은 네 번째 손가락의 힘을 기르기 위해 무리한 연습을 하다 손가락을 다치고 작곡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2. 글쓰기에도 재능이 있었던 슈만은 직접 ‘음악신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는 여러 신인을 발굴해 소개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쇼팽과 브람스이다. 슈만은 잡지에서 브람스에 대해 "시대의 정신에 최고의 표현을 부여한 사람"이라고 격찬했다.
3. 클라라의 아버지는 음악가로서 장래가 불투명했던 슈만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러나 슈만과 클라라는 아버지와 6년의 법적 공방을 불사하면서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4. 슈만은 클라라를 위해 수많은 연주곡을 선물했다. 그 중에서도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는 그녀를 향한 슈만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
5. 클라라와의 사랑은 슈만에게 무한한 영감을 선물했다. 일례로 클라라와 결혼한 1840년 슈만은 무려 140여 편의 가곡을 써내려갔다. 이를 일컬어 슈만의 ‘가곡의 해’라고 한다.
6.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은 슈만을 끊임없이 괴롭혔고 그는 환청 때문에 라인 강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결국 정신병원으로 입원했지만 2년 뒤 슈만은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었다.
7. 슈만이 입원한 뒤 브람스는 그를 대신하여 클라라의 가족들을 돌봤다. 그리고 절망에 빠진 클라라에게 <피아노 3중주 1번>, <슈만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을 선물했다.
8. 클라라는 브람스에게 언제나 자신이 슈만의 아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고 자신이 줄 수 있는 건 오직 ‘모성적 우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9. 평생 독신으로 살며 클라라의 지원군이 되어주었던 브람스는 클라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내가 평생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이라며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10.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 세 사람의 이야기는 클래식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로 유명하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으며 클라라는 독일 지폐 100마르크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세상의 수많은 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말로 당신을 부르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그대’라는 한 마디 단순한 말보다 더 아름다운 걸 찾을 수 없군요.
사랑하는 그대여…”
- 슈만이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 中 -
“사랑스런 클라라, 나는 결혼 반지를 라인강에 장례시켰소. 당신도 그렇게 하시오.
두 사람의 반지는 그렇게 하여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것이오.”
- 슈만이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 中 -
“그대는 나로 하여금 성스러운 시간 속에 고요히 숨쉬게 하며
잠시 동안의 수면 속에서도 그대는 나를 꿈속에 잠기게 하오.
나의 사랑이 밤보다 깊고 천년보다 더 길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지”
- 슈만이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 中 -
“버림 받은 초라한 사나이로 하여금 당신에게 이 말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가 늘 한결 같은 존경심을 갖고 당신을 생각하고 있으며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당신께 모든 좋은 일, 멋진 일, 아름다운 일들이 있기를 온 마음을 바쳐 기원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 中 -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
- 클라라의 죽음을 애도하며 브람스가 남긴 말 中 -
=== 감독과의 대화 ===
헬마 샌더스-브람스(Helma Sanders-Brahms)
독일의 유명 여성 감독 중 한 사람인 헬마 샌더스-브람스는 픽션, TV, 다큐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해 왔다. 그녀가 선보이는 이야기의 폭은 정치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까지 굉장히 다양하다. 그중 1980년작인
Q : ‘클라라’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A : 클라라는 독일이 처음으로 배출한 세계적 스타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십대의 나이에 순회 공연을 떠났고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프란츠 리스트와 무대에 섰다. 후일에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두 거장이 되는 슈만과 브람스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킨 점은 그녀가 아픈 남편과 여러 아이들을 키우며 동시에 가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젊었을 때는 남편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감췄고 후에는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쉬지 않고 공연을 열어야 했던 여인 클라라가 느꼈을 수많은 갈등들을 또 한 명의 여성 예술가로서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클라라는 예술가로서 마침내 자신의 자립을 결정지었고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나는 그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Q : 브람스의 후손이라는 점이 이 프로젝트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A :<클라라> 프로젝트를 기획한 지 12년이 흘렀다. 내가 브람스의 후손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의 음악들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브람스에게 슈만은 중요한 인물이었다. 두 사람이 있어야만 이해가 더욱 쉽다고 할까… 둘은 상반되는 기질을 가졌지만 동시에 낭만주의 음악을 했고 브람스는 슈만의 영향을 받아 그의 음악을 발전시켜 나갔다. 나는 이 영화가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Q : 음악 영화를 만들면서 유의한 점이 있다면?
A : 음악은 영화와 비슷하다. 음악 또한 영화와 같이 특정한 길이를 지닌 예술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상영되듯, 음악도 연주되고 그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관객들은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다. 나는 영화속 음악을 관객들이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될 수 있는 한 음악 그 자체만을 들려주는데 집중했다.
Q : 마르티나 게덱 등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A : 마르티나 게덱은 클라라처럼 다양한 면을 지녔다. 아름답고 재능있고 섹시하고 게다가 집중력까지 굉장하다. 기록에는 클라라가 무대 위에서 존재감이 남달랐다는 문구가 있는데 마르티나 게덱이라면 능히 그런 면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르티나 게덱은 클라라에 완전히 몰입했다. 피아노 연주를 위해 하루 종일 성실하게 연습했고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는 멋진 연주를 보여주었다. 다른 배우들과의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배우들이 최대한 자신의 뜻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현장을 자유롭게 운영했는데 모두 연기가 아닌 실제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처럼 즐거운 현장은 아마 다시 없을 것이다.
=== 참고 자료 === <2012년 11월 1일자 발행 네이버캐스트 / 진회숙 글>
영화 속 클래식
헬마 잔더스 브람스 감독
클라라
가을이다. 가을이 되면 음악이 듣고 싶어진다. 이 가을에 누구의 음악을 들을까. 문득 브람스가 떠오른다. 지금 보다 젊었을 때는 가을에 차이콥스키 음악을 들었는데 지금은 브람스다. 그의 음악은 스산한 가을바람 같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 그의 삶의 모토는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Frei aber einsam”였다. 외로움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기꺼이 외로움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자유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은 삶이란 없다. 브람스도 그랬다. 그는 평생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를 짝사랑하면서 살았다. 독신이기 때문에 자유로웠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한 발짝 건너서 바라보아야만 했다는 점에서 외로웠다.
브람스의 후손으로 알려진 헬마 잔더스 브람스 감독의 영화 [클라라]는 이런 브람스의 고독을 보여준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그리고 요하네스 브람스. 이 세 거장의 로맨스는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러브 스토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슈만은 본래 클라라의 아버지인 비크 교수의 제자였다. 비크는 재능있는 제자를 좋아했지만 그가 자신의 딸과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불같이 화를 냈다. 왜냐하면 당시 그의 딸 클라라는 슈만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피아노의 신동으로 널리 이름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라라의 아버지는 딸을 앞세워 유럽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으며 덕분에 돈도 제법 벌었다. 그런데 장래가 불투명한 슈만이라는 애송이가 딸의 장래와 자신의 돈벌이를 망치려고 하니 화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슈만과 클라라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비크 교수가 결혼을 반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길고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결론이 나기까지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다행히도 소송은 클라라와 슈만의 승리로 끝났다. 6년이라는 긴 법적 공방을 거친 끝에 결혼에 성공한 슈만과 클라라 부부는 짧은 결혼 생활 동안 자녀를 무려 9명이나 낳는 놀라운 생산력을 과시했다.
클라라는 슈만의 아내이자 후원자, 예술적 동반자였다. 그녀는 남편의 작품을 직접 연주해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에 열과 성을 쏟았다. 수입이 변변치 않은 남편을 도와 연주와 살림을 병행하며 9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키웠던 현명한 아내이자 훌륭한 어머니였다. 이렇게 힘들게 살았지만 남편 슈만에 대한 클라라의 신뢰와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는 슈만을 남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위대한 예술가로 사랑하고 존경했다.
영화는 클라라와 슈만이 기차를 타고 연주 여행을 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다음 행선지는 함부르크. 함부르크에서 클라라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입추의 여지없이 관객들로 깍 들어차 있는 연주 홀 한구석에서 한 젊은이가 클라라가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바로 브람스다. 그는 슈만과 클라라가 함부르크에 온다는 말을 듣고, 자기 악보를 들고 슈만을 찾아왔다. 유명 작곡가인 슈만의 인정을 받으면 작곡가로 성공하는 길이 열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주회가 끝나고 브람스는 슈만 부부에게 자기 악보를 보여준다. 슈만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클라라는 그가 선술집에서 왈츠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범상치 않은 젊은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1850년, 슈만은 뒤셀도르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슈만의 가족은 라인 강변에 있는 마을로 이사를 했다. 아름답고 넓은 집과 멋진 피아노, 훌륭한 작업실 그리고 집안일을 도와줄 하인과 요리사까지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생활이었다. 모처럼 만에 안정을 얻은 슈만은 이곳에서 교향곡 3번 [라인]의 작곡을 시작했다. 작곡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일은 삐꺽거렸다. 슈만은 작곡은 잘했지만 오케스트라를 훈련시키는 지휘자로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에서는 슈만이 [라인 교향곡]의 1악장을 연습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슈만이 지휘대에 올랐으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작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한다. 결국 클라라가 대신 지휘봉을 잡고 단원들을 연습시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만에 대한 단원들의 반감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바로 그 무렵, 브람스가 슈만의 집을 찾아온다. 그는 직접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2번의 악보를 가지고 왔는데,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클라라는 작곡가로서 브람스의 천재성에 감동을 받는다. 슈만 역시 브람스의 음악에 매료된다. 이때 브람스와 슈만이 클라라가 보는 앞에서 그녀가 어린 시절에 작곡한 [로망스]를 연주하는데, 슈만, 클라라, 브람스 세 사람 사이에 구축된 인간적인 애정과 신뢰감, 서로의 예술에 대해 공감이 얼마나 돈독했는가를 알게 해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날 클라라는 브람스에게 자기 집에서 지낼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브람스는 이렇게 말한다.
“제 좌우명을 아세요?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저는 자유로워야 해요. 새처럼.”
그 후로 브람스는 슈만 부부와 한 가족처럼 지낸다. 아이들에게는 잠자리에서 자장가를 불러주는 다정한 삼촌, 클라라에게는 언제라도 달려와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다정한 친구이자 연인, 슈만에게는 음악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는 예술의 동지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람스는 슈만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 있었다.
1853년 2월, 슈만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때로는 천사의 소리로, 때로는 악마의 소리로 변해 그를 괴롭혔다. 환청이었다. 끊임없이 환청에 시달리던 슈만은 이것을 잊기 위해 아편을 먹기 시작했다. 클라라가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편이 없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정신이 반쯤 나간 슈만이 클라라를 때리고, 나중에 오케스트라 단원들 앞에서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가 된 것이다.
1854년 2월 17일, 슈만은 천사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 소리를 주제로 변주곡을 작곡한 후 집을 나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비 내리는 거리를 걸어 라인 강으로 갔다. 그리고 강물에 미련 없이 몸을 던졌다. 어부가 그를 구조했지만 그때 이미 정신의 톱니바퀴는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그로부터 9일 후인 2월 26일, 슈만은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집을 떠나는 날, 슈만은 눈물로 자신을 배웅하는 클라라에게 말한다. 브람스에게 오게 하라고.
슈만이 정신병원으로 가고 난 후, 클라라는 혼자 아기를 낳는다. 그때 브람스가 클라라를 찾아온다. 그리고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낳은 클라라와 아빠를 보내고 쓸쓸해하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 준다.
슈만은 정신병원에서 의사의 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엉터리 수술이었고, 이로 인해 병세가 더 악화된다. 그렇게 2년을 폐인처럼 살았다. 슈만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 브람스는 클라라와 함께 정신병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형편없이 초췌해진 남편을 보고 클라라는 오열한다. 클라라는 슈만을 품에 안고, 슈만은 그녀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46살, 세상을 마감하기에는 너무나 이른 나이였다.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 브람스는 클라라와 슈만의 아이들을 돌보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사랑하는 여인이자 음악의 동반자였다. 브람스는 자주 새로운 작품의 악보를 클라라에게 보여주었다. 클라라는 브람스의 작품에 찬사를 보냈으며, 브람스는 그녀의 격려에 큰 힘을 얻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음악과 함께 늙어갔다. 브람스의 삶에서 클라라의 존재는 그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위대한 예술혼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1896년 5월, 클라라가 세상을 떠났다. 클라라가 죽은 후 브람스의 건강도 갑자기 나빠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이 채 안 된 1897년 4월, 브람스 역시 그녀의 뒤를 따랐다. 클라라보다 14살이나 어린 그였지만, 그의 음악적 나이는 클라라와 동갑이었던 것이다. 클라라의 죽음으로 음악가로서 브람스의 삶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결혼과 같은 세속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자답게’ 지켜주었던 진짜 사나이 브람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고 있으면 이런 브람스의 면모가 그대로 느껴진다. 브람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는 브람스가 내면에 베토벤 못지않은 열정, 쇼팽 못지않은 로망스, 차이콥스키 못지않은 비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너무 진지하고 내면적이어서 쉽게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매우 지적으로 처리했다. 그냥 감정에 휘말리는 일 없이 모든 음에 음악적인 필요성,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저 효과만을 위해 무의미한 음을 남발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으며, 감정의 표피를 건드리기 위해 달콤한 멜로디를 쓰지도 않았다.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낭만적인 제목같은 것도 붙이지 않고 오로지 음악 그 자체에 승부를 걸었다.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 협주곡이 대개 화려한 도입을 자랑하지만 이 곡은 그렇지 않다. 오케스트라는 힘차게 시작하지만 피아노는 그렇지 않다. 피아노 협주곡은 대개 오케스트라가 먼저 제1주제를 제시하고, 이어서 피아노가 그 주제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브람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는 힘차게 들어오지만 피아노는 요란하지 않게, 들어오는 둥 마는 둥 조금은 수줍게 그렇게 살짝 들어온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마치 클라라를 대하는 브람스의 모습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브람스가 내면의 열정이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조심스럽게 뜸을 들인 다음 마침내 피아노 역시 오케스트라가 제시했던 그 주제를 힘차게 연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언제 그렇게 수줍게 얘기했느냐는 식으로 열정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분출한다.
세상에 여러 종류의 음악이 있지만 각각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시기는 따로 있는 것 같다. 브람스를 좋아하는 시기는 인생을 사계절로 치자면 가을에 해당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인생의 가을을 맞은 사람은 나이 듦이 가져다준 안온함 저 편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을 느낀다. 그 바람을 맞으며 이 가을에 나는 누군가에게 묻는다. 브람스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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