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운에세이] 5월의 스케치 II
14일 오후부터 시작된 팔공산 숲속 평산 아카데미에서의 스승의 날 행사는 밤을 넘기고 15일 정오 지나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40여 년만의 꿈 같던 만남도 한순간,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아픔을 안고 그들과 나는 다시 돌아서야 하는 아쉬운 작별을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과의 만남이 그동안 쌓였던 내 가슴속 응어리를 눈녹듯 풀어주었고 그로인해 마음이 정화(淨化)되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내게 가져다준 건 분명하다. 만남은 좋다. 그러나 별리(別離) 또한 아프기는 하지만 이런 긍정적 측면도 있는가 보다.
그들과 헤어지고 나서 그날 오후에는 오랫동안 벼르고 별렀던 남도(南道) 여행길에 나홀로 나섰다. 한동안 잠잠하던 내 특유의 방랑끼가 봄이 되자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다시 발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5월은 여행 하기에 연중 가장 좋은 달이다. 물실호기(勿失好機)다. 적은 나이가 아닌 만큼 내 컨디션이 옛날 같지가 않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 이팔청춘이다. 활동이 옛날처럼은 아니어도 좋다. 전성기의 80%면 어떻고 50%면 어떠랴. 지금의 내 힘에 맞게 활동하면 되는 것이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했거늘.
어떤 물건을 두고 살까말까 망설일 때는 사지를 말 것이고, 여행을 갈까말까 주저할 때는 일단 떠나놓고 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서두르면 망친다(Haste makes
waste,)란 말이 있지만, 그보다는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더 큰 장벽은 주저함이요 망설임일 것이다.
여행이야 물론 즐거운 것이지만 반면에 불편과 고생이 수반되는 것은 필연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지 않았던가. 무사안일(無事安逸)을 원할 바에야 아예 여행은 생각지를 말아야 할 것이다. 그날도 준비가 허술했던 것은 사실이다. 말뿐이지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여행길에 올랐던 적은 과거에도 거의 없었다. 나는 원래 허점(虛點)이 많은 사람이다. 어쩌면 그게 평소 내 삶의 진면목인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찬찬히 떠나라는 아내의 권유를 묵살하고 오후 어중간한 시간인데도 기어이 떠났다.
이번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네댓새 동안의 짧은 여행이라 여러 곳을 다닐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최대한 발품을 판 만큼의 소득은 있었다. 달리는 말 위에서는 산천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옛말이 주마간산(走馬看山)이다. 하물며 차를 타고 달리는 요즘 세상에서 어찌 산천경개(山川景槪)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으랴. 두 발로 걷는 여행만이 그게 옳게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주차간산(走車看山)은 더욱 안 될 터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도 일단 걸을 수 있는 곳은 최대한 걷기로 했다. 나는 근자에 남쪽 땅끝마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도보로 하는 국토종단을 마음 먹기도 해보았다만.
첫째 날은 삼천포항과 남해 창선을 연결하는 5개로 된 연륙교(連陸橋)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량이라는 삼천포대교를 건넜고, 창선에서는 수령 500년이 넘는다는 천연기념물 왕후박나무도 보았다. 다음은 한려해상 국립공원 중 유일한 산악공원이라는 남해 금산(錦山: 681m)을 올랐다. 상주해수욕장 쪽에서 가파른 길 등산을 하면서 아름다운 남해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황홀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아, 행복하여라! 이처럼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내 조국이라니!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경치가 어디 또 있던가, 나폴리가? 장가계, 원가계가? 그랜드 캐년이? 나이아가라가? 세인트로렌스 강의 천섬(Thousand Islands)이? 와이키키 해변이? 아니다, 정녕코 아니다. 그들도 우리 한려수도 해상공원만은 못하다!
금산은 20년쯤 전에 한번 가 본 적이 있으나, 보리암 일대의 달라지고 발전된 모습은 몰라볼 정도로 옛날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그때 가졌던 별로라는 인상이 이번 여행으로 말끔히 씻기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한번 다시 가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이다. 선입견(先入見)이란 게 이럴 땐 문제가 된다 하겠다.
다음 날은 오래도록 염원하던 전남 보성의 차밭을 보기로 했다. 규모가 가장 크다는 '대한다원'이란 데를 찾아갔다. 이른 아침이라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차밭을 둘러보는 나의 실망은 의외로 컸다. 기대가 커서 그런 게 아니었다. 지난 겨울의 극심한 한파로 전체 차밭의 40% 가량이 심한 냉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동안 사진이나 영상매체 등을 통해 자주 보아왔던 그림같은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고, 내 눈앞에 전개된 실제 광경은 참으로 안쓰러워 보였다. 옛날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까.
오후에는 순천쪽으로 되돌아와서 순천, 보성, 화순 3개 시.군에 걸쳐 있는 다목적댐, 주암댐과 그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한국수자원공사가 물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주목적으로 설치한 훌륭한 전시관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각종 안내판이며 설명문에 대여섯 군데 한글 표기가 잘 못된 것이 눈에 띄었다. 영어철자 잘못된 것은 용인을 못하면서 바르지 못한 우리말 표기가 버젓이 이런 상태로 내눈에까지 뜨이다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 직원 아가씨를 불러 자세히 일러는 두었는데 결과 처리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다.
진정 가보고 싶은 곳은 맨 마지막까지 남겨두라는 말이 있던데, 이번 여행에서도 한번 꼭 가보고 싶었던 진도(珍島)까지는 결국 가지 못하고 여정을 바꾸어 보성에서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구례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18일은 지리산을 등반할 계획을 세웠다. 요즘은 산행철이라 화엄사 쪽으로 해서 성삼재까지 새벽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버스가 있어 그것을 이용했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출발해서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1.732m)까지 왕복하기로 작정했다. 천천히 걸으면 왕복 7시간 이상이 걸릴 거란다. 요즘은 낮이 가장 긴 철이라 그렇게 하고도 당일 대구까지는 어떻게든 돌아갈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출입이 제한 되고 있는 노고단(老姑壇) 입구를 지나 임걸령 샘에서 차디찬 생명수로 목을 축이고, 진달래가 한창인 목표지점 반야봉을 드디어 올랐다. 옛날에 가 본 산인데도 그때 기억은 전혀 없다. 날씨도 더없이 말고 온화하다. 정상에서 둘러본 사방의 경치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나는 아직 지리산 종주를 해보지 못했다. 한다한다 하면서 지금까지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단념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생의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기어이 해보고야 말리라.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 리 없으리라.
지금의 나는 산행시 젊은 사람들처럼 빨리는 걷지 못한다. 그들이 한 시간 걸리면 비록 내가 두 시간이 걸려도 개의(介意)치 않는다. 그래도 결국 목표지점까지 아직 갈 수는 있다. 지금의 나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인생을 살아야 할 나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나이 든 사람들 대부분이 호소하는 무릎관절통이 내겐 아직은 없다. 그런데 걱정 없는 사람은 없다. 나도 과체중이라 산행에서는 그것이 문제가 된다. 몸무게를 줄인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준비부족으로 인한 어려움과 아내의 걱정하는 전화 등으로 해서 지리산 등반을 마지막으로 예정을 하루 앞당겨 이번 여행의 막을 내려야 했다. '젊어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그럼 나의 이번 경우 같은 '늙어고생'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다. 타성에 젖어 무사하게 지나보내던 나의 일상(日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일깨워주고 경각심과 동시에 감사함을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19일 목요일은 영어과 대학동기들의 월례모임인 삼목회(三木會)가 있는 날이다. 멀리 산다는 핑계로 나는 매월 참석은 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나가는 몇개 모임 중에서 이 모임이 가장 '점잖은(?)' 모임이라는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모처럼 멀리 부산까지 열차여행을 하면서 친구들과 담소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지금은 다 모여도 여남은밖에 안 된다. 그들은 모두가 건강하고 활동적이다. 노년사고(老年四苦) 중 하나가 고독고(孤獨苦)다. 건강하고 건전한 벗들이 있어 나도 행복하다.
다음 날 20일은 퇴임교수들의 모임에 나가 대학당국으로부터 발전된 학교현황을 듣고 보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학교행사가 끝나고 스쿨버스로 경주 보문에 가서 총장님이 대접하는 훌륭한 점심식사를 하고 민속촌 양동마을까지 둘러보는 여유도 가졌다. 퇴임교수들을 이렇게까지 배려하는 대학 당국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자랑하고 싶다. 명예교수도 교수라는 소속감마저 들게 한다. 다른 대학에도 이런 미풍(美風)이 있는지 모르겠다.
엎친 데 덮친다는 말을 좋은 일에 적용해도 되는가. 그날 저녁에는 또 경주 사돈이 우리 내외와 친구 화백을 초대해서 동석으로 대봉동 청운맨션 근처 '전주식당'이라는 데서 별미인 홍어회를 곁들인 저녁식사가 있었다. 식사 후 나는 곧장 상경길을 서둘러야 했다. 어린 손자, 갓난 손녀, 며누리, 집사람 그리고 나 다섯 사람이 인천 송도에 무사히 도착한 시간이 밤 12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일 주일 만의 귀경이다. 도중 문경새재 휴게소에서 용인 휴게소까지는 며누리가 운전대를 잡았다. 백지장도 맞 들면 낫다는데 이 일은 백지장 드는 일이 아니다. 조금만 거들어줘도 이렇게 수월해지는 것을.
운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둘째 며누리는 시아버지인 내가 가르쳐 면허증을 받았다. 지난해 시험을 보는 당일날도 일찍 나가 정해진 시험 코스를 몇번이나 연습하기도 했다. 지금은 실력이 나보다는 단연 낫다. 지금까지 나를 통해 면허를 취득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더니 모두가 나보다는 더 잘한다. 내 직업이 그래서인지 운전을 가르치는 데도 내 나름대로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있다. 내가 아니면 운전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지금까지도 나의 하찮은 도움에 감사하는 아름다운 마음씨의 사람들도 있다.
5월 행사가 아직 끝이 아니다. 어제 29일 일요일은 다시 온 가족, 큰아들 내외와 큰 손자. 작은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 둘, 그리고 우리 내외 모두 아홉 사람이 영종도 삼목 선착장에서 자동차를 배에다 싣고 서해 신도(信島) 경유 장봉동(長峰島)까지 약 30분 소요, 8.1km의 뱃길을 왕복하는 낭만적인 바다 여행도 즐겼다.
배를 타기에 앞서 인천대교를 지나 인천공항 맨 서쪽 끝 도로 방파제에 차를 세우고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기 직전의 광경을 가장 가까이에서 구경하는 스릴도 맛볼 수 있었다. 이런 구경에는 어른도 아이나 다름이 없나보다. 우리 말고도 그런 구경꾼들이 상당 수 있었다.
항해도중 갑판에서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선상을 나르는 갈매기 떼의 선회하는 모습은 꼬마 손자들을 즐겁게 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광경이었다. 강화도가 가까이 눈앞에 있고 황해도 바닷가 산들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해안 바위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준비해간 귀한 떡이며 음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한참 놀다가 다시 귀로에 올랐다. 귀한 떡이라 함은 앞의 이야기에서 옛제자로부터 택배로 선물 받았다는 특별한 것을 말한다.
내일부터는 또 각자가 저마다 삶의 터전으로 직장으로 학교로 어린이 집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나와 집사람에게는 내일도 모레도 또 그 다음 날도 ‘하바드 생활’의 연속만 있을 뿐이다. 개 팔자가 부럽지 않다. 오래 살다 보면 이런 때도 오게 되어 있나 보다. 다사다행(多事多幸 ?)했던 오월의 작별이 아쉬운 순간이다. 사람은 잘 나갈 때가 항상 가장 위험한 때라 한다. 감진고래(甘盡苦來)라 해도 되는지 그 말의 의미도 명심은 하고 있다.
2011. 05. 31.
인천 송도에서 / 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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