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째, 獨立運動의 獨立精神은 自主, 自由, 平等, 平和의 정신으로 우리 민족이 만들 어낸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2. 둘째, 독립운동은 모든 인간이 공감 하고 호응하는 普遍的 精神, 普遍的 價値普遍
的 眞理를 말하고 있다.
☼3 셋째, 독립정신의 核心思想은 平和와 平等의 價値를 추구하며 상대를 존중하고
수용하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4. 獨立精神의 核心은 개인으로써는 弘益人間이 되어야 하고. 전체로써는
神性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理化世界가 된다. 이것이 최고의 秘結이다.
☛역사(歷史)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 역사는 국학이다.
☛역사는 지혜의 삶이다.
☛ 왜냐하면 고대 조상들이 살아온 발자취를 생생히 기록하고 있으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교훈(敎訓)이며 진리(眞理)이기 때문이다.
☛역사(歷史)가 살아 숨 쉴 때 우리도 함께 살아 숨 쉬는 것이다, 한民族史가 바로 될 때 조국은 영광의 그날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잊고 산다면 살아있는 목석과 같다.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만 오늘과 내일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律坤)
☛역사란 과거와 현대의 대화이다.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의 대화이다. 라는 것은 누구에게든 널리 회자되어온, 역사에 대한 열쇠의 유명한 정의이다.
제1차 학술토론회 좌장 제언
만주항일독립전쟁사 정립에 관한 연구
-백야 김좌진 장군 사후 음해를 중심으로-
최한규
역사(歷史)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 歷史는 國學이다. 弘益理化 精神은 우리 民族精神의 원류이다. 이를 계승한 것이 민족 독립 정신이었다. 이는 독립정신으로 국가와 人類平和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獨立精神의 核心思想은 東學思想 이었다. 東學思想은 檀君의 弘益理化의 思想的 根據에서 비롯된다. 獨立精神의 核心은 개인으로써는 弘益人間이 되어야 한다. 전체로써는 神性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理化世界가 된다. 이것이 최고의 비결이다.
獨立運動은 민족의 독립운동이었다. 우리는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긴 뒤 수많은 민초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들은 나라 안과 밖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져 국가를 찾기 위해 싸웠다.
나라를 되찾기 위한 3·1 운동,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해외로 간도와 연해주 등지로 옮겨갔다. 그리고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 부대를 조직하고 민족 교육 운동을 펼쳐 민족의 힘을 길렀다. 독립운동은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 등 여기에 조선의 백성들이 독립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 김좌진 장군은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 이는 氷山의 一角이다.
우리는 늘 기역 해야 한다. 역사(歷史)가 살아 숨 쉴 때 우리도 함께 살아 숨 쉬는 것이다, 한民族史가 바로 설 때 조국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잊고 산다면 살아있는 목석과 같을 것이다.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만 오늘과 내일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대의 대화이다.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와 대화이다. 잘못된 역사의 오류를 역사가들이 이를 바로 잡는데 연구를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獨立精神의 核心思想은 東學이 토대가 되었다. 동학의 위대성은 사람이 하느님 이라고 하는 사상이다. 어느 노교수 말씀이 동학보다 심오한 사상은 없다고 말한다. 동학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주체성과 만민평등사상을 토대로 삼는다. 따라서 東學은 海東의 學이다.
이를 토대로 첫째, 독립운동의 독립정신은 自主, 自由, 平等, 平和의 정신으로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둘째, 독립운동은 모든 인간이 공감 하고 호응하는 보편적 정신, 보편적 가치를 말하고 있다. 셋째, 독립정신의 핵심사상은 평화와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며 상대를 존중하고 수용하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독립 선언문의 명문장 중 일부이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 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조선인의 독립국, 조선인의 자주민, 인류평등의 대의, 민존 자존의 정권, 이를 우리 후손들은 백골(白骨)에 새겨야할 것이다.
본 학술토론회를 통해서 왜 국가가 패망 했을까. 그 이유를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하고 말해야 한다. 조선왕조는 518년 만에 패망하고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이유는 정치가 개판 이였다. 조선조는 민초들에게는 나라가 아니었다. 양반 8%정도만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었고, 民들은 소 개 닭 말처럼 사고팔았다. 民들에게는 치욕적인 역사였다.
민주주의 기본 원칙은 기회의 균등이다. 그러나 조선의 민초들은 600년 동안 종이나, 노비, 머슴으로 살았다. 민초들은 600년 동안 기회가 없었다. 숨죽이고 살았다.
국가철학의 부재, 나라의 분열 과정(당파싸움, 이념 갈등), 국가의 관습과 전통, 젊은이들의 노동 기회 부재, 마지막 요인은애국심의 소멸이다. 그리고 패망한다.
독일은 2차 대전 후 독일은 지구상의 국가들 중 현실적으로 가장 성숙한 국가이다. 독일은 68혁명세대가 정치적 민주화, 교육민주화, 사회적 민주화, 경제적 민주화, 문화적 민주화를 이루었다. 이는 독일의 86세대가 이룬 것이다.
한국의 586세대는 독일의 68혁명세대보다 더 용감하게 군부독재와 맞서 싸웠다. 그리고 민주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민주화 외에는 이룬 것이 없다.
독일의 빌리브란트 수상은 대통령 후보시절선거구호를Democratizewagen“민주주의를 감행(도전)하자” 그리고 당선되고 민주화를 완성 시켰다.
한국은 언론·재벌 기득권의 그들만의 세상이다. 검찰, 재벌, 언론, 정치, 의료제국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상층부의 시스템이 우리 국민들을 식민지(植民地)화 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相生의 國家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 되지 않는다.
獨立精神의 核心思想은 개인으로써는 弘益人間이 되어야 한다. 전체로써는 神性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理化世界가 된다. 이것이 최고의 비결이다.
弘益人間 精神으로 獨立精神을 發源시키고, 이를 통해 새로운 국가 즉 弘益理化 世界를 만들고자하는 구체적인 활동 및 연구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독립운동사, 독립운동가의 잘못되고 폄하되고 왜곡된 기록을 바로 잡는 것 또한 후학들의 해야 할 일이다. 백야 김좌진장군 사후 음해가 사실이라면이는 큰 사건이다. 음해의 설계자가 누구인지, 근거는 있는지,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위한 구체적인 연구, 역사적 의학적 과학적 행정적 사실관계의 증명이 반드시 필요 할 것이다. 그래야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한 발제자 전재진선생의 답변이 필요합니다.
누구도 관심 없는 부분을 연구한 전재진 발제자님께 심심한 감사를 표(表)합니다.
오늘 세미나는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통해 구현(具現)되었던 독립정신을 계승발전하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 할 것이다. 그리고 독립정신을 국민정신운동, 국가통합, 사회통합, 남북통일의 토대(土臺)로 이어진다면 조선 문명이 재 발원(發源)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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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아들 ‘친자’ 논란
황동환 기자
승인 2021.10.1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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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운동사연구회, 15일 충남보훈관서 학술토론회 전재진 사무총장 ‘백야 김좌진 장군 사후음해’ 주제발표 역사 왜곡 주장에… 김을동 반발 “유전자 검사 해보자”
광복회 충남지부 대한독립운동사연구회가 지난 15일 개최한 제1차 만주항일독립전쟁사 정립에 관한 학술토론회에 참석한 김을동 전 국회의원이 아버지 김두한에 대한 친자 문제가 제기되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진=황동환 기자
광복회 충남지부 대한독립운동사연구회(대표 유병성·이하 연구회)가 지난 15일 충남보훈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 제1차 학술토론회에서 백야 김좌진 장군 사후 음해로 그 가족 및 후손 관련 역사가 왜곡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구회는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에서 무장항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주축이 된 역사 연구단체다. 연구회 김성태 수석연구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연구회 전재진 사무총장이 준비한 ‘백야 김좌진 장군 사후음해 고찰’이라는 108쪽짜리 책자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최한규 한국인문사회학회 회장이 좌장을 맡고,
△전일옥 단국대 공공정책학과 부교수 △김상균 백석대학교 교수 △이강민 (사)국학원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김용수 대전기업평가원장‧중국산동성연태시정부 주한국대표자 고문 △김미경 고려대학교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외에 독립운동가들의 후손, 광복회 회원, 김을동 전 국회의원, 양복모 김좌진장군학술문화사업회 사무총장 등 50여명이 참석한 이날 토론회에서 전재진 사무총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홍성군이 발간한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김좌진 장군을 다룬 다수의 책들이 왜곡된 사실을 담고 있다”며 “이는 일제가 독립전쟁의 의미를 변형‧축소‧축약 등 왜곡하면서 전쟁이 아닌 게릴라전으로 기억하게끔 만든 게 1차 원인이고, 청산리전투 패배 후 10년 동안 김좌진을 추적했지만 체포하지 못한 일본이 4명의 가짜 부인을 조작해 김좌진 염문설을 퍼뜨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와 충남도, 홍성군 그리고 학자들은 이를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김좌진 장군의 역사가 바로 정립되지 않으면 만주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도 바로 세울 수 없다”고 보탰다.
김을동 전 국회의원이 6살 때 찍은 사진이라며 제시한 가족사진에 대한 김장춘 씨의 반박을 정리한 자료. '제1차 만주항일독립전쟁사 정립에 관한 학술토론회' 자료집 62쪽에서 발췌.
'제1차 만주항일독립전쟁사 정립에 관한 학술토론회' 료집 67쪽에서 발췌.
장군의 증손자라 밝힌 김장춘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가 후손 행세”
논란의 발단은 충남 보령에 김좌진 장군과 합장된 부인의 묘가 오숙근 여사의 묘가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발제 자료에서 본인을 김좌진 장군의 증손자라고 한 중국 길림성 거주 김장춘 씨는 “오숙근 할머니는 한국에 가지 못하고 두 아들과 손자와 만주에 머무르다 돌아가셨다”며 “김좌진의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가짜들이 진짜 행세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재진 사무총장은 중국에서 김장춘 씨 등을 인터뷰한 내용을 제시하며 △김좌진 장군 유해 홍성군 밀장 △오숙근 여사 1958년 사망, 김좌진 장군 유해와 보령으로 이전 합장 △김을동 나이 6세 때 촬영된 가족사진 등 오숙근 여사와 관련해 지금까지 알려진 사망 장소‧연도 등이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전 사무총장은 김장춘 씨의 증언을 빌려 “오숙근 여사는 장남 김창렬이 토지개혁심판대에서 맞아죽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사망한 게 1947년이고, 현재 보청현에 모셔져 있다”며 “1950년 김을동 전 국회의원이 6살 때 촬영된 사진에 어머니(이재희), 이소사(김좌진 모친)와 오숙근(김좌진 본부인) 여사가 등장하는 것은 성립될 수 없고, 1958년 오숙근 사망 및 김좌진 유해 합장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정부와 학계가 나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 왼쪽 가계도는 홍성군이 발행한 '백야 김좌진 장군 전기'에 기술된 자료를 바탕으로 전재진 사무총장이 재구성한 것이고, 오른쪽 가계도는 김장춘氏가 진술한 가계도다. 국내 자료에는 김좌진 장군-오숙근 여사 사이에서 출생한 두 아들(김창렬과 김창규)의 기록이 없다. 전 사무총장은 오숙근 외 4명의 부인들에 관한 국내 자료는 확인할 수 없는 내용으로 기록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1차 만주항일독립전쟁사 정립에 관한 학술토론회' 자료집 87‧107쪽에서 발췌
유전자 검사로 논란 종식될까?
첫 토론자로 나선 전일옥 단국대 부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송일국 씨를 장군의 외손자로 알고 있었는데, 전재진 사무총장 발표대로 김장춘 씨가 김좌진 장군의 중손자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미경 고려대학교 교수는 △김두한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기 때문에 일제가 요주의 인물로 감시했던 점 △안동김씨가 김두한을 김좌진 장군의 아들임을 인정했다는 기록 등을 들며 “만일 김두한이 가짜라면 그래서 김을동, 송일국이 김좌진 장군의 후손이 아니라면 과연 정치권이나 언론, 학계에서 가만히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전재진 연구자의 발표자료는 수집된 자료의 나열 위주인데, 가설로 역사를 또 바꾸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김을동 전 국회의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언론에서도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임을 보도한 바 있다. 우리 가족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 대한 법적 책임도 져야 할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김미경 교수는 논란 종식을 위한 ‘유전자 검사’를 제안했고, 김 전 의원 역시 찬성했다. 유전자 대조 검사는 김장춘 씨도 요구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김두한과 김철한(나혜국의 아들-김좌진의 5부인 중 1명)이 김좌진의 배다른 아들로 증명된다면 김좌진의 둘째아들 김창규의 유전자를 내놓겠다”며 대리인 ‘김좌진장군역사정립회’를 통해 지난해 5월 홍성군에 제출한 바 있다.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냐에 대한 논란은 오래됐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대한민국사’ 1권에서 “안동김씨 역시 김두한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지만, 일가로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면서 “확증도 없이 김두한이 장군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전한 바 있다.
한 교수가 이 글을 발표한 때는 2002년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현재 중국에서 본인이 장군의 증손자라고 밝힌 김장춘 씨는 “홍성군에서 발행한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 전기’에 기록‧명시한 장군의 가계도는 완전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