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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홍수 이 후,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인류가 퍼져 살게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노아의 이 세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창9:18-19)
홍수 이후 인류의 시조들로 노아의 세 아들의 후손들은 지구 전체로 급속히 퍼져 나갔고 정착했던 것이다. 이러한 번성과 충만은 하나님의 은혜와 홍수 후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홍수 이 후 포도농사를 짓던 노아가 술에 취해 알몸으로 잠을 잘 때,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의 수치를 모욕한 일로 발단된 노아의 예언이 인류의 향방을 결정하게 된다.
노아는 세 아들들에 대해 축복과 저주의 예언을 하는데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는 저주를 예언한다. 그 중에 셈과 야벳의 축복은 다음과 같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의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9:26-27)
'셈의 하나님 여호와'는 셈의 후예들은 종교적이고 영적인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세 아들 중 셈은 특히 영적으로 두드러진 아들이었기에 이러한 축복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셈은 다른 아들들에 대해 영적으로 민감한 아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는 야벳의 후손이 널리 퍼지고 확장될 것이라는 번영의 축복이다. 그리고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사'는 야벳의 후손들이 종교적으로는 셈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을 말한다.
실제로 이 예언대로 셈의 계열에서 이스라엘이 선민으로 택함을 받았고, 셈족은 여호와 신앙을 받아 이어갔으며, 그들의 후손 중 '여자의 후손'에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셨다. 그리고 야벳의 후손들은 셈의 장막을 떠나 살아갔지만, 결국에는 셈의 장막에 들어오게 되는데 유럽의 기독교 문화와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지금의 모든 종교가 셈의 후손을 통해 발생되었다.
대홍수 이 후, 지구상에 생존해 있던 사람들은 노아의 가족 8명이었으니 지금의 인류는 노아의 가족과 그 후손으로부터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에대해 성경은 인류가 지구 곳곳에 편만하게 된 것이 노아의 세 아들에서 비롯되었음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나님이라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창10:1-5)
이것은 세 아들 중 야벳의 후손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던 지역의 기록이다.
고멜은 카시프해 연안에, 마곡은 고카서스 지방에 살던 스키티안족을 가리킨다.
마대는 카스피해 남서쪽의 메데족을 가리키고, 야완은 소아시아 서부 지역에 거주하였다.
두발과 메섹은 소아시아 동부 흑해 연안 지역에 거주하였다.훗날 러시아족을 형성했을 것이로 본다.
디라스는 정확한 족속을 추적하기가 어렵지만, 트라키아인의 조상 혹은 에게해안에 살던 펠라스기안족, 타우르스 부근에 살던 아시아족속의 조상으로 본다.
아스그나스는 게르만족속의 조상으로, 리밧은 켈트족 혹은 고울족으로, 도갈마는 아르메니아 족속으로 보며, 그들의 거주지는 오늘날 터키 지방으로 추정한다.
엘리사는 헬라계의 해양 민족으로 펠레폰네소스에 살던 엘리스 족속을, 달시스는 스페인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며, 성경의 다시스로 본다.
깃딤은 지중해 연안 지역의 거주하던 해변 백성을, 도다님은 이오니안 족속과 연관된 북부 그리스 족속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종족상 야벳의 후손들은 오늘날 유럽인의 주종을 이루는 인도 유럽계 또는 아리안족을 형성함으로써 노아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야벳족속은 영토, 인구, 문화, 문명에 관계되는데, 유럽의 문화, 과학, 헬라의 언어와 철학, 로마의 법정신은 야벳의 후손에 의해 세워진다. 인도 유럽계를 형성한 야벳의 후손들은 또 다시 언어, 종족, 지리학적으로 분류되어 온 땅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창10:6)
이렇게 하여 인류가 온 땅으로 퍼져 나갔고 지중해 연안에 정착한 야벳의 후손 야완으로 헬라의 문화가 시작된다. 성경에서 '야완'(창10:2)은 헬라, 즉 그리스를 가리킨다. 헬라의 히브리식 발음이 야완이다. 그리스라는 명칭은 B.C.3세기 로마가 헬라를 정복한 후 붙여진 이름이다.
고대의 역사를 말할 때 지중해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지금도 지중해 연안에서 시작된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중해는 알파벳을 만들어 낸 페니키아 사람들의 오랜동안 활동무대였고, 고대 올림픽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며, 수많은 전쟁을 통해 많은 영웅들을 나오게 한 곳이다. 조그만 도시 국가에 불과했었지만 그 세력을 아시아까지 떨치며, 제국을 1천년동안이나 이어왔던 로마의 번영도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지중해 연안 조그만 국가에서 제국을 이루어 낸 영웅이 있다. 순식간이라 해도 과장되지 않은 짧은 기간 10년만에 제국을 이루어 낸 '알렉산더'이다.
알렉산더는 마게도냐 사람이다.
마게도냐는 발칸 반도의 북쪽 지방을 가리키며, 남쪽 지방을 아가야 지방이라 한다.
알렉산더는 B.C.356년 마게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나 12세 되던 때부터 말을 잘타고 용맹을 떨쳤다고 한다. 아버지 필리포스 2세는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초청하여 알렉산더의 가정 교사로 삼았는데 알렉산더가 헬라 문명에 심취하여, 그가 정복하는 곳마다 헬라 문화를 심어 놓은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B.C.336년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살해되어 20세의 나이에 왕이 되었다.
용감했던 필리포스 2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게도냐의 지배를 받던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아버지를 따라 일찍부터 전장터를 따라 다니며 승리를 거두었던 알렉산더는 신속하게 이것을 진압하여 잔인하게 응징한다. 그리스 지역을 평정한 알렉산더는 B.C.334년 그의 나이 23세에 아버지가 이루려 했던 페르시아 정복에 나선다.
소아시아를 건너 이수스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순식간에 격파한 그는 소아시아 전역을 차지하였다. 알렉산더는 계속 페르시아의 수도를 향해 진격하기 전에 측면 방어를 위해 지중해 해안을 따라 남으로 방향을 돌려 베니게, 두로, 팔레스틴을 거쳐 애굽에 진입하였다. 이 때가 B.C.332년이었으니 소아시아를 건너 2년만에 소아시아와 팔레스틴, 애굽을 정복한 것이다. 페르시아의 혹독한 지배를 받아 철저히 피폐해 있었던 애굽인들은 알렉산더를 해방자로 환영하며 바로 왕으로 옹립하기도 했다.
놀라운 속도로 진격한 것이다. 그런만큼 알렉산더는 전쟁을 수행하면서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는데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그 중 하나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알렉산더의 성격과 그의 정복이 그토록 빠르게 진행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는 고르디우스라는 전차가 있는데, 그 전차에는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매듭이 달려 있었다. 아시아를 정복하는 사람만이 그 매듭을 풀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는데, 알렉산드로스가 그 지역을 지나가던 중 그 얘기를 듣고 칼로 매듭을 끊어버렸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기는 하나, 지어낸 것이라고 한다. -위키백과-
비록 이 이야기가 지어낸 것이라 해도, 알렉산더가 어떠한 성격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격 급한 사람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고 하는데 아마 알렉산더에게 해당되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성격 급한 사람은 과격하게 일을 처리한다.
B.C.331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는 가우가멜라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으나 완전히 궤멸하고 말았다. 알렉산더는 곧 바벨론으로 입성한 후, 수사(성경에서는 수산), 페르세폴리스로 입성하였는데, 다리우스 3세는 도망치던 중 그의 태수 중 한 사람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리고 계속 진군하여 인더스 강을 넘기도 한다. 인더스 강을 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년이었다.
이처럼 10년의 짧은 기간에 세계 최대의 영토를 정복한 알렉산더는, 정복지마다 헬라식 도시를 건설하고 그 이름을 알렉산더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알렉산드리아'라 명명한다. 70여개의 '알렉산드리아' 중에서 애굽의 알렉산드리아가 가장 유명하다. 알렉산더 제국은 정치적 의미보다는 서아시아를 비롯한 모든 민족들에게 미친 헬리니즘 문화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헬라문화에 우월성에 심취한 알렉산더는 그의 제국이 정치적 통일 뿐 아니라 문화의 통일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하여 오리엔트 민족들과 자신들이 제휴하기를 원했는데, 이를 위해 자신의 군사들과 토착 주민들의 통혼을 계획했고, 헬라 사람들을 그가 정복한 제국에 이주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 자신도 박트리아 귀족의 딸과 결혼을 한다. 박트리아는 지금의 히말라야 산맥 서쪽지역이다. 이렇게 헬라 사람들이 방대한 제국 전역에 살게 되면서 헬라어는 제국 곳곳에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국제 공식 외교언어로 통용하게 하였다.
공식적인 외교 언어 뿐 아니라 행정처리를 할 때도 헬라어를 사용하게 했다. 헬라어는 지금의 영어만큼이나 중요한 세계 공용어가 되었다. 귀족들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헬라어를 사용하고, 헬라식 주택에 헬라식 의상을 입는 것으로 자신들의 교양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은 동쪽이 서쪽만큼 먼 것처럼, 간극이 크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양 즉 헬라의 사고(思考)를 수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게 전광석화처럼 정치적, 문화적으로 세계를 정복해 나가던 알렉산더의 정복은 인더스 강에서 멈추어 버린다.
인도까지 정복하기 위해 인더스강을 건너려 하자, 더 이상 진군을 강행하면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 같은 위기감을 알아차린 알렉산더는 할 수없이 바벨론으로 돌아온다. 고향을 떠나 10여년을 전장터에서 보내며 향수병에 걸린 병사들은, 인더스강을 건너면 고향에 영영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향수병을 더욱 자극했을 것이다.
바벨론으로 돌아온 알렉산더는 자신의 못다 이룬 정복의 야욕을 술로 달래던 중 열병으로 갑자기 죽는다. 아마 암살되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학자들 사이에서 솔솔 나오고 있다. 이 때 그의 아내 록산나는 임신 중이었다. 알렉산더의 죽음이 급작스러웠기 때문에 임종 직전이라도 후계자 지명을 하지 않을까 하여, 그의 침대 옆에서는 그의 유언을 듣기 위해 측근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 때가 B.C.323년이었다.
결국 알렉산더는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한 채 죽고, 기다리고 있던 정치적 사건은 당연하게도 피비린내 나는 왕위 쟁탈전이었다.
알렉산더에게는 정신병을 앓는 형이 있었는데, 일단 형을 왕으로 추대한 후 아들이 태어나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도록 결정하였다. 그러나 제국을 통치하게 된 사람은 그의 형도, 그의 아들도 아니었다. B.C.310년이 되었을 때는 왕이 된 형, 알렉산더의 어머니, 아내와 어린 아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또 다시 제국의 통치권을 놓고 치열한 암투가 벌어졌다.
권력을 향한 피바람은 또 다시 장군들에 의한 권력 쟁탈전이 이어지고 알렉산더와 고락을 함께 했던 4명의 장군들이 그의 제국을 분할통치하게 된 것이다. 프톨레미는 애굽을, 셀류커스는 수리아와 팔레스틴을, 안티고누스는 소아시아, 카산더는 마게도냐를 각각 통치하게 되었다.
알렉산더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영향은 300여년간 '헬레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었고, 유일하게 '유일 신 여호와 신앙'을 지키고 있던 유다 또한 이 세계적인 '헬레니즘'의 물결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유대 지도자들의 이름이 헬라식 이름으로 바뀌고, 유월절이면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순례자들 역시 헬라화 된 유대인들이었다. 이렇게 헬라의 문화와 사고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세계적인 도시가 된 애굽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이 준비되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읽혀지게 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세운 프톨레미는 세계 각국의 도서를 수집하였는데, 유대인의 경전을 헬라어로 번역할 수 있도록 유대 지도자들에게 요청하였고, 유대 지도자들은 각 지파에서 6명씩 72명의 학자들을 보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것을 '70인역'이라 하는데, 이 후 각 회당에서는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갈릴리 회당에서 읽으신 이사야서도 이 '70인역'이었다.
이 시기에는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그리스의 철학사상이 발전한 때이기도 하다.
철학의 'ㅊ'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철학자들이 이 시기에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 탈레스... 그만큼 이 시기에는 학문이 발달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고명한 철학사상이라 해도, 그 안에는 '사랑과 구원'이 없다. 심지어 중국의 공자, 맹자, 노자, 한비자, 장자 등도 이 시대의 사람들이다.
헤로도투스는 그의 저서에서 '신은 인간을 괴롭히고 인간의 번영을 질투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헬라의 지식인이 그들의 신에 대한 평가가 이러하다면, 이러한 신들에게서 구원을 구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인간을 괴롭히고 인간의 번영을 질투하는 신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인생의 허무함을 심화시킬 따름이다. 인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으며, 구주를 이 땅으로 내려 보내실 준비기간이 이 시기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세주 그리스도가 아니면, 그 어떤 신이라도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인식하기를 준비시키신 것이 이 시기라 생각한다.
성경은 이러한 세속사에 대해 침묵하지 않으시고 미리 예언하시는 이유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성경은 알렉산더와 그의 제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계신다.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단7:5)
여기서 표범은 알렉산더와 그의 제국을 가리킨다.
알렉산더 제국이 얼마나 신속하게 정복사역을 이루어 갈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다.
짐승 중 가장 빠른 것은 표범이다. 빠른 짐승에게 새의 날개가 네 개씩이나 달려 있으니 얼마나 빠르겠는가?
그 짐승에게 머리 넷이 있다는 것은, 그의 제국이 결국 넷으로 분할 될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숫염소가 서쪽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의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단8:5)
숫염소는 헬라를 상징한다.
알렉산더는 B.C.336년 왕으로 즉위하여 5년만에 페르시아를 정복하였다. 그야말로 발이 땅에 닿을 새 없이 빠른 속도로 정복 전쟁을 치른 것이다. 현저한 뿔이 났다는 것은 그의 용맹과 정치력이 현저하게 뛰어났다는 것이다. '뿔'은 권세 가진 자를 지칭한다.
'내가 본즉 그것이 숫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숫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숫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었더라'(단8:7)
숫양은 바세제국의 수호신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이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할 것을 예언한다. 숫양의 두 뿔은, 페르시아가 메대와 연합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숫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단8:8)
큰 뿔이 꺾이는 것은 알렉산더의 죽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의 제국이 네 명의 지도자들에 의해 네 개의 나라로 분할 될 것의 예언을 '현저한 뿔이 하늘 사방을 향해 났다'고 표현한다.
말라기 이 후부터 예수님의 성육신까지를 '신구약 중간기'라 한다.
이 시기를 '하나님의 침묵기'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구주의 강림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셨는지를 이 기간의 역사를 배우며 알게 된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미지의 세계를 향방없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분명한 목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 영웅이 죽고 제국이 무너지고 또 다른 제국이 일어나는 세기의 격동기에,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고 계시지 않았다. 나는 이 시기의 사건들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실 '물밑 작업'이라 말한다. 구원을 위한 '물 밑 작업'이 끝나고 구주께서 강림하실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구주께서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https://m.blog.naver.co/withwords/221365556164
신구약 중간기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알렉산더 대왕이 다리오욍 물리침
구약의 마지막 책들과 그리스도의 출현 사이의 시간을 “신구약 중간기” (또는 “신구약 사이의 기간") 라고 부릅니다.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예언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400년의 침묵기"라고 부릅니다. 이 기간 동안에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그때 발생한 일들의 대부분은 선지자 다니엘에 의해 예언되었습니다 (다니엘 2장, 7장, 8장, 11장을 참조하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기원전 532-325년경에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인들은 유대인들이 거의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그들의 종교를 유지하도록 허용하였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성전을 재건하고 그곳에서 예배하는 일도 허용했습니다 (역대하 36:22-23; 에스라 1:1-4). 이 기간은 구약 성경 시대의 마지막 100년과 중간기의 처음 100년을 포함합니다. 폭풍이 몰려오기 전에 고요한 것처럼, 이 기간은 상당히 평화롭고 안락한 시기였습니다.
중간기가 시작되기 전,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Darius을 물리치고, 온 세계에 헬라제국의 통치를 확립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생이었고 헬라 철학과 정치학을 잘 배웠습니다. 그는 그가 정복한 모든 땅에 헬라 문화를 장려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헬라어로 번역되었으며, 이로 인해 70인역이라는 헬라어 성경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구약 성경을 인용한 대부분의 구절은 70인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는 유대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긴 했지만, 여전히 헬라적 생활 방식을 강력하게 장려했습니다. 헬라 문화는 매우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이며, 경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지 못했습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유대는 일련의 후계자들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셀루시드 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Antiochus Epiphanes에 이르게 됩니다. 안티오쿠스는 유대인들의 종교의 자유를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악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기원전 167년경 그는 합법적인 제사장직을 무너뜨렸으며, 불결한 동물들과 이교도 제단으로 성전을 더럽히고 모독했습니다 (마가복음 13:14를 보면 미래에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안티오쿠스의 행동은 종교적인 강간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마카비 형제들과 하스모니안 가문이 주도한 안티오쿠스에 대한 유대인의 저항으로 합법적인 제사장들이 회복되었고 성전이 복구되었습니다. 마카비 항쟁의 시기는 전쟁과 폭력과 내란의 시기였습니다.
기원전 약 63년 경 로마의 폼페이우스는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고, 유대 전체를 시저의 통치 하에 두었습니다. 로마 황제와 상원 의원에 의해 결국 헤롯이 유대의 왕이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이스라엘에 세금을 부과하고 유대인들을 통제하며, 종국에는 메시아를 로마의 사형틀인 십자가에서 처형시켰습니다. 이제 유대 지방에는 로마, 헬라, 히브리 문화가 혼합 되었습니다.
헬라제국과 로마제국의 점령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에서는 두 개의 중요한 정치적, 종교적 집단이 출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전을 통해 내려오던 전통을 모세 율법에 추가하였고, 마침내 자신들의 율법을 하나님의 율법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마가복음 7:1-23 참조).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종종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 일치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공허한 율법주의와 긍휼의 마음이 부족한 것에 대하여 강력하게 비난하셨습니다. 사두개인들은 귀족들과 부자들을 대표했습니다. 산헤드린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던 사두개인들은 구약에 속한 모세의 책들 외에는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기를 거부했고, 헬라 사람들을 크게 동경함으로써 일반적으로 헬라 문화에 물들어갔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한 무대를 준비하기 위하여 중간기에 일어난 사건들은 유대 백성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대인들과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들 모두가 종교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교도들은 다신론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인과 헬라인은 이제 그들의 신화에서 벗어나 헬라어와 라틴어로 쉽게 읽을 수 있게 된 히브리어 성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낙담했습니다. 다시 한번, 그들은 정복 당하고, 억압 받고, 더럽혀졌습니다. 소망은 거의 사라진 상태였고, 믿음도 바닥까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과 그들의 신앙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메시아의 등장 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메시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여러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로마인들은 도로를 깔았고 (복음의 전파를 돕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은 공통의 언어인 코이네 헬라어 (신약성경을 기록한 언어)를 이해하고 있었고, 여행하기에 (복음을 더 편만하게 전파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불편하지 않은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한 소망이 어떻게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분을 찾던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예언을 성취할 것을 인식하고 대망하였습니다. 로마 백부장, 지혜자들, 바리새인 니고데모의 이야기는 그 시대에 몇 가지 다른 문화권 출신의 사람들에 의해 예수님이 어떻게 메시아로 인식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중간기의 "침묵의 400년"은 지금까지 전해졌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깨어졌습니다!
https://www.gotquestions.org/Korean/Korean-intertestamental-period.html
딤전1:20 그중에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는데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넘겨준 것은 그들이 배워서 신성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https://bibleverses.tistory.com/3421
알렉산더대왕의 가나안 정복 예언?
https://m.blog.naver.com/davidycho/221223520158
알렉산더 대왕의 동전
http://eunice.kr/%EC%95%8C%EB%A0%89%EC%82%B0%EB%8D%94-%EB%8C%80%EC%99%95%EC%9D%98-%EB%8F%99%EC%A0%84/
알렉산더
http://cafe.chch.kr/numz/view.php?bid=club1&bno=36997&clid=yeonggwangch#.Ywh0W6TlLis
https://changmoolee.tistory.com/1005
알렉산더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jesus
조회 수 : 2417
2015.06.12 (08:02:35)
중간
▶ 알렉산더대왕 Alexander the Great. [Alexan'der the Great]
관련 Map.Paintings
BC356 필리포스 2세와 왕비 올림피아스 사이에서 알렉산더 출생
BC336 20세 마게도니아 왕으로 재위
BC334 소아시아로 진군
BC333 이수스 전투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 격파
BC332 가을 이집트 정복후 알렉산드리아 시 건설
BC331 봄 아르벨라 전투 페르시아 군 격파
BC330 페르시아 멸망
BC326 겨울 인더스 강 상류로 인도 진군
BC324 바빌론으로 회군
BC323 봄 바빌론 수도로 정함
BC323.6월 33세 열병으로 사망
이후 헬레니즘 왕국이
마케도니아의 카산드로스( 안티고노스)왕조 ,
시리아의 셀레우코스왕조,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분열
This conqueror is not mentioned by name in scripture, but his kingdom is certainly referred to in prophecy, principally in Daniel, some 200 years before he was born. It is first spoken of as a part of the great image seen in a dream by Nebuchadnezzar; it is foreshadowed by the belly and thighs, which are of brass, a depreciation in the character of the kingdom in comparison with the empires of Babylon and of the Medes and Persians, though it was larger in extent: it "shall bear rule over all the earth." Dan. 2:32, 39. It is also compared to a leopard which had four heads and four wings of a fowl. The leopard is distinguished for its blood-thirstiness and tearing its prey : this indeed magnifies the contrast in the millennium when it will lie down with the kid. Isa. 11:6. Also remarkable for its swiftness of action: 'their horses also are swifter than the leopards.' Habakkuk 1:8. These characteristics exactly agree with the character and actions of Alexander. The four heads and four wings refer to the extension of the kingdom to the four winds of heaven, as it was divided among four of his generals after his death. Dan. 7:6. Again in Dan, 8., where the kingdom of Media and Persia is compared to a ram, Greece is compared to a he goat, with a great horn, which is its first king, Alexander, Dan. 8:21. Here again we get his character described: so swift that he 'touched not the ground,' he rushed against the ram 'with choler,' cast him to the ground and stamped upon him. Dan. 8:5-8. In Zech. 6:2, 3, the four great monarchies are alluded to, and the third, the kingdom of Greece, is compared to a chariot with white horses.
(단02:32. 39 32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9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세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사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합01:8 그 말은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 기병은 원방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기병이라 마치 식물을 움키려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단07: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단08:
(슥06:2,3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세째 병거는 백마들이, 네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Alexander the Great, son of Philip II. and Olympias, was born at Pella B.C. 356; became king of Macedon on the assassination of his father in 336: subdued the Greeks in 335; defeated the Persians, 334; took Tyre; conquered Syria and Egypt, and founded Alexandria 332; defeated Darius in 331; conquered Parthia, Media, Bactria, and invaded India, 330-324, sought fresh conquests, but died at Babylon in 323. These dates show the rapidity of his conquests, agreeing with the above scriptures. As to his cruelty let one instance suffice: at the capture of Tyre which then belonged to Persia, provoked by the long resistance and valiant defence, 8,000 of the inhabitants were massacred, 2,000 being crucified: of the rest, except those who escaped by sea, 30,000 were sold into slavery, the king and the chief magistrates were spared, doubtless as trophies. This was the work of the 'leopard' of scripture. While besieging Tyre Alexander sent to demand the submission of the Jews; but was told they were faithful vassals of Darius. After the conquest of Gaza, the conqueror marched to Jerusalem. The high priest Jaddua, being warned of God in a vision, hung the city with garlands and went forth in his robes with the other priests and the people in white to meet the king. On seeing these Alexander was arrested, fell to the ground and then embraced the high priest. In reply to an astonished courtier, Alexander said he did not worship the priest, but the name on his frontlet, and explained that he had seen in a vision a figure resembling this very priest, who told him to conquer Persia. He granted the Jews in Palestine, Media and Babylonia the free enjoyment of their laws and exemption from tribute during the Sabbatical year. Such is a rapid sketch of how prophecy and history agree. The empire of Greece had thus to do with God's ancient people the Jews, and formed a link in the chain of kingdoms until the Messiah Himself appeared and laid the foundation for His kingdom that shall endure for ever.
--- Morrish Bible Dictionary
출처
https://www.subkorea.com/xe/index.php?mid=bbdictionary&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Alexand&document_srl=250971
알렉산드로스 3세
https://namu.wiki/w/%EC%95%8C%EB%A0%89%EC%82%B0%EB%93%9C%EB%A1%9C%EC%8A%A4%203%EC%84%B8
알렉산더대왕과 복음의 세계화
http://m.pckworld.com/article.php?aid=8041793307
성경속의 5대제국 알렉산더본문 중
https://m.cafe.daum.net/Fullgospelgk/EMwg/238?searchView=Y
알렉산더 ㅡ 사마리아
https://m.cafe.daum.net/Fullgospelgk/EMwg/308?searchView=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