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오랜만에 경기도를 벗어나 멀리 가는 길었다. 항상 가보고 싶었지만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없다는 현실에 묶여 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농암님이 부석사에 갈 일이 있어서 같이 다녀오자고 얘기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말을 꺼낸 김에 아예 출발 날짜를 5월 29일로 하고, 1박하고 오자고 결정을 하였다. 그 결정이 이루어진 후, 여럿이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 범강님 사모님과 노영님께 함께 가자고 했다.
29일 아침 9시 농암님댁으로 모이기로 했지만 한밤에 대전 출장에서 돌아온 관계로 좀 늦게 일어나 부랴부랴 범강님 사모님을 모시고 농암님 댁에 도착하니 9시 40분이었다.
농암님 댁에 도착하니 노영님이 기다리고 계시면서 공주 마곡사에 계시는
정현스님도 같이 가기로 했다는 반가운 얘기를 전한다. 정현스님은 그동안 아는 분들을 통하여 어름풋이 소식은 듣고 있었으나 뵙지 못했다. 며칠전 초파일에도 마곡사에 가서 스님을 뵐려고 했으나 같이 출발하기로한 일행과의 어긋남으로 인해 인연이 되질 못했는데 이번에 같이 가게 되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마곡사를 가기 위해 길을 잡았다. 천안 톨게이트를 나와 공주가는 국도로 한참을 달리다가 휴게소에서 농암님은 전날 공방에서 작업을 마무리 하느라 잠을 못 잤자고 하시면서 피곤한지 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부치겠다고 하신다. 연신 피곤한 기색이시더니...
나머지 분들은 스님을 모시려 공주로 갔다. 공주로 가는 국도는 4년전 부여 주서님댁에서 명등계 할 때 범강님 차로 갔던 그 길이었다. 그때 처음 갔던 길이 다시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고개 마루에 있는 휴게소에서 주영이 엄마,범강님 같이 감자와 소시지 꼬치를 먹었던 것 부터 4년이란 세월이 마치 몇 달전과 같이 기억이 되살아 난다.
마곡사에 도착하여 강 건너편에 있는 본 절을 뒤로 한 채 윗쪽에 있는 좁을 길로 올라갔다. 정현스님이 계시는 토굴에 도착하니 12시 가까이 되었다. 떠날 준비를 하시는 동안 잠시 숲속에 간이 茶室을 구경하고 같이 차에 올랐다.
약 1시간 반 만에 다시 농암님이 쉬시는 휴게소에 도착하여 곧바로 대전으로 가는 국도에 올랐다. 대전에서 청주, 충주, 단양을 거쳐 험준한 소백산의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풍기, 영주에 들어서니 저녁 6시 가까이 되었다.
영주에서 부석사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공양시간이 되어, 혼자 의성에서 부석사에 도착한 범강님께 전화를 하니 소수서원 곁 유명한 묵밥집에서 저녁을 먹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 집을 찾을려고 가만가만 올라가도 도대체 찾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자는 것이 그만 부석사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올라오고 말았다.
그때 이미 7시가 가까이 되어 저녁을 먹지 말고 올라갈까 아니면 다시 돌아가서 저녁을 먹을까 의논한 끝에 이번 여행에서 묵밥을 먹어 보는 것도 별미인것 같아 의견을 모아 다시 되돌아 나왔다. 유심히 주위를 살펴보며, 묵밥직을 찾아 제법 오래 차를 몰았다. 서원 옆 가까이에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범강님이 알려주신 곳은 아닌것 같았다.
그래도 그곳의 묵밥이 꽤 맛은 있었다. 묵으로 만든 걸쭉한 국과 밥이 나왔는데 처음 먹어 보는데도 맛있게 한그릇 뚝딱 비울 수 있었다. 더 먹었으면 했는데 일행도 있고 또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서둘러 나왔다. 부석사에 도착하니 거의 밤 8시가 넘어간다.
먼저 와서 기다리시던 범강님과 가까이서 바쁘게 일보시는 도륜스님께 인사를 하고, 총무실에 들어 간단한 다담을 나누었다. 마침 결제일이고 매달 마지막 주에 있는 철야 정진날이라 연신 많은 신도들이 절을 찾아오고 있었다.
이런 때 총무 소임을 맡아보시는 도륜스님은 누구보다 바쁘신데도 우리 일행을 위해 다담 나누는 시간을 내시고, 또 근일 큰스님을 뵙도록 준비해 주시는 등 보통 신경쓰시는 것이 아니었다.
밤 9시에는 무량수전에서 큰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무량수전! 교과서에서나 읽어 본 그 배흘림기둥으로 만들어진 무량수전에서 법문을 들어니 마음속에서 엄숙함으로 다가온다.
큰스님의 법문 중에, 밥을 많이 먹지 말라는 소리가 제일 크게 들린다. 요즘 배에 살이 쪄서 식사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나에게 밥 많이 먹는 것이 모든 병에 근원이라는 소리가 나의 귀에 따끔이 들려온다.
한시간 반의 법문 중에도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고 다리가 아파 움직는 내 자신에 대해 불만족이다. 이것도 긴시간이라고 바른 정근은 제쳐놓고 라도 앉아 있지도 못하다니... 법문을 마치고 피곤을 핑계로 잠자리로 드는데 범강님 내외분과, 농암님은 12시까지 참선을 하겠다고 하신다. 다시한번 나의 정신을 뜨끔하게 만들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도 내일 일정을 위하여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잠을 청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늦게 나오는 우리를 위해 일부러 정현스님이 찾아와서 식사를 하라고 하신다. 7시에 공양하려 식당에 들어서니 부석사표 죽이 쪼끔 밖에 남아 있질 않아 나는 밥을 먹은 후, 도륜스님 방에 들어가 정성껏 우리신 귀한 차로 목을 축인다.
모이신 분들과 다담을 하고 난 후, 절 뒤에 암자로 올라갔다. 의상대사가 두었던 지팡이에서 자랐다는 나무의 몇대 손이 처마 안에서 자라는 것을 보았고, 孚石寺로 지은 내력의 돌과 오랫동안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석불을 친견 했다. 정현스님을 따라 모두 삼배를 했다.
무량수전 뒷편에는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올 때 같이 오자고 약속을 하고 혼자 돌아온 선묘낭자를 기린 한평 남짓한 조그마한 사당을 보면서 그 옛날 이야기를 더듬어 본다.
출발하기 앞서 무량수전과, 부석사 군데 군데를 몇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도륜스님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도륜스님이 주시는 다포와 멋진 연꽃 봉우리가 핀 사진을 반갑게 받아 들고 부석사를 나왔다. 오랜 기다림의 부석사를 이렇게 짧게 뒤로 하고 나오니 또 언제 이곳에 들릴지 아쉽다.
오늘 길안내는 이쪽 지역을 손바닥 보듯 하시는 범강님의 차가 맡아 맨 앞에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갔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게 30 ~ 40분을 달려 안동에 이르러 직접 손으로 만드는 유기공장에 들어 갔다.
이곳에서 각자 징과 꽹과리를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했다. 특히 농암님은 밖에 나가시더니 다시 녹이기 위해 쌓아 놓은 오래되고 못쓰는 놋기들 속에서 징을 하나를 가지고 오시면서 대문에 매달 징이라고 하신다. 역시 멋있는 분이시다. 조만간 농암공방의 철대문 위에 매달려 주인을 부르는 징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다시 봉정사로 향하는 길에 연못이 있는 정자에 들러 집 구경을 하면서 나중에 여기서 다회를 한번 열자고 했다. 天燈山 鳳停寺는 전번에 영국 여왕이 방문한 곳으로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봉정사에 도착하여 대웅전과 여러 곳을 둘러보고 돈수스님이 계시는 남탑산방토굴을 올라갔다. 대나무숲에 가려 밖에서 보면 그냥 대숲인 곳에 조그마한 토굴이 있었다. 올라가기 길에 작년에 보내주신 그 귀한 국화차의 밭이 보였다. 사진에 담아 보려고 했는데 얼마전에 모종을 심어 사진에 담을 수 가 없었다. 가을에 국화꽃을 딸때 여기에 다시 올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스님이 사시는 곳은 곳곳이 스님의 보살핌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 가지런히 놓인 난들과 서각을 한 작품과 분재들이 보인다. 우선 방으로 들어서자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접시만큼 큼지막한 중국 찻잔받침이 쭉 쌓여 있는 것이 보이고, 군데군데 차를 넣은 단지와 다구들이다.
스님이 제일 먼저 내어주신 것은 청차였다. 청차는 맛과 향 그리고 피로를 푸는데 청차 만큼 좋을 것은 없을 것이다. 중국차 중에서 제일 우리의 취향에 적합한 것이 아닐까. 나는 청차를 마실때 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저번 여주에 갔다가 오는 길에 너무 피곤하여 우송도예에 들러 마신 청차 몇잔은 순식간에 피로를 가시게 했다. 맑고, 은은한 향과 마시면 시원한 느낌을 주는 청차. 이곳에서도 모처럼 귀한 청차 대접받으면서 넉넉한 잔받침 만큼의 여유로움을 가졌다.
다음에 마신 차는 "구름은 하늘에 있고 차는 독안에 있다"는 남탑산방표 보이차를 큼지막한 독에서 꺼내서 우려 주셨다. 스님께서는 별로 좋치 않는 칠자병차를 기본으로 하여 법제한 차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인사동에서 좋다고 마신 보이차 보다 더 좋았다.
특히 갈 수록 청차같이 맑으면서 맛은 오랜 건식 보이차 같이 곰팡이 냄새도 나지 않는 휼륭한 차였다. 그 다음에 마신차는 "사향 보이차"인데 그것도 스님이 법제한 것이다. 한 시간 가까이 다담을 나누면서 제일 아쉬운 것은 이 좋은 차를 다 우려 마시지도 못하고 나온 일이다. 아마 2 ~ 3시간은 족히 더 우려 마실 수 있는 차를 놓아 두고 나오는 발길이 아쉬웠다.
봉정사 아랫동네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예천을 길을 잡았다. 예천에서 예다원을 열고 계시는 분을 만나 또 한 시간 가량 보낸 후, 문경으로 들어갔다. 문경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주흘요와 수니공방이었는데 아쉽게도 수니공방은 주인이 서울로 출타하는 관계로 못가고 주흘요에 들렀다.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主屹窯에 도착하니 건 오후 4시 반이 지나간다. 아담한 2개의 다실과 전시실과 살림집이 겸하여 있고, 그 위에는 장작가마와 작업실이 있었다. 월파님의 첫인상은 참으로 마음씨 고운 시골 선비같다.
덥지도 않는 날씨에 힘이 들어가시는지 연신 땀을 훔치며, 정성스럽게 우린 우전을 대접 받은 후, 다시 다완을 꺼내어 씻고는 말차 한잔씩을 주신다. 정현스님은 가지고 가진 그림과 목걸이를 선물하시고, 노영님은 직접 만드신 말차통과 차통을 방문한 선물로 내 놓으신다. 그러자 조금 있다가 월파님은 밖으로 나가시더니 예쁜 찻잔을 보자기에 담아 하나씩 귀한 선물을 주신다.
문경이라는 유명 도예인들의 틈에서 그래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안다는 분들이 월파의 기량을 칭찬하는 소리를 여기와 보니 알 수 있었다. 사람은 그 사람의 얼굴에서 이미 자신의 그릇 100%로는 아니더라도 거의를 담고 있지 않는가? 모든 성격과 습성이 바로 얼굴 표현과 생김새로 형성된다고 볼 때 맑은 월파님의 심성을 보고는 다른 것들도 으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넉넉히 허락되지 않아 그동안 묻고 싶은 이야기도 못 나누고 다시 길을 나서게 되었다. 혹시 陶錄이라도 있는지 물으니 아직 준비 못했다고 하신다. 다실 옆방에 마련한 전시실에서 작품을 보고 사진도 몇장 찍고, 몇점의 다기를 구입하고 더 늦기 전에 부랴부랴 수원으로 돌아오고, 농암님과 정현스님은 대구를 거쳐 부산, 해남 미황사까지 가시기 위해 여기서 헤어지게 되었다.
돌아오면서 또 지금 글을 쓰면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분 작품에 대한 충분한 질문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는 것과 도예가로서의 인생 이야기를 듣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 좋은 이번 여행길 마지막에 들린 주흘요에서 맛본 말차의 향과 맛을 입에 담고서 고서란히 수원까지 올라갔다.
이번 짧은 여행에서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돌아왔다. 만난 모든 분들의 정성스런 대접에 다시한번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不遷 金 昌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