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층 출입문 안까지 매서운 바람은 파고들었다.
올 들어 처음 찾아왔다는 한파란 것이 실감이 난다.
아직 출근하기엔 이른 시간이다.
마주 보이는 아파트 창 넘어 허공으로 퍼진 불빛들이 반짝인다.
콘크리트 물체를 의지한 생명체들이 이제 부스스 일어나 하나 둘
전기 콘센트 박스를 누를 것이다.
흐르는 시간따라 불빛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생명체의 감지는 지금 저 불빛 속에 있다.
그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다.
얻어 타고 갈 차를 기다린다.
지금이 막바지 단잠이리라.
이 시각 불쑥 전화를 날리는 것은 나도 그렇게 느껴보았듯
불과 몇 분의 시간 촌법에 불과하지만 대단한 낭패감이 되고 만다.
아침시간 5분은 저녁 한나절 한시간과도 같다.
어느 공간쯤에서 콩나물 담은 냄비 엎어질 때 나는 자지러지는 소음이 난다.
사람은 자꾸 늘어난다지만 늘어난다 하여 그에 비례하여
삶의 모습들이 제각각 다양하게 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정반대로 마치 장충동에만 머물던 왕족발 맛이
전국 어디서든 같아지는 비결처럼
인간생활의 습성은 엇비슷한 것으로 모아지고 통일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격자 틀 안에서 히히덕거리기도 떨떠름도 되었다 환호도 되었다가
치고 박고 왁자지껄도 되었다 지지고 볶고 그렇게
김치찌개 메뉴를 자기 식으로 끓여먹고 사는 존재들이 우리다.
이런 표현으로 삶을 뭉뚱거리는 것은 어제 내게 일어난 일을
다소라도 희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내심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난 어제 저 출입문을 열한시쯤 넘어섰다.
그리고 승강기를 타고 맨 위층으로 올라 취기 어린 모습으로 가족들과
상면하였는데 술 취한 김에 터져 버린 말 한마디가 화근이 되어 결국 난 오랜만에
부부싸움이란 걸 했다.
자는 둥 마는 둥 아침도 거른 채 부르르 달려나온 지금 시각 난 후회와
분한 마음 조금으로 취기 떨어진 머리를 애써 씻고 있는 중이다.
떨어져 산다하여도 고부간의 갈등은 내 경우 여전하다.
그렇다고 큰 흠집 낼 정도는 아니지만 절기 맞춰 찾아오는 계절풍 창가에
기대 서성이는 것처럼 어느 때 마음을 꽤나 곤곤하게 만들어 버린다.
설마 깨어지진 않겠지.. 하면서도 불안스런
어젠 그 조바심이 한 몫 한 것이다.
그 틈새에 끼어 때론 간신도 되고 이방도 되보고 엄격한 장군도 되보지만
수시로 다변화되는 틈새를 메꾸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처방이 부실해 불거지고 나면 임시 뗌빵을 나무라는 것이 요즘 내 처신의 전부다.
지금같이 속마음 쓰린 날 쓴 바람까지 겹으로 파고드는 날엔
나만 그렇게 사는 가 하는 허실의 반문이 저절로 나오고
다들 숫하게 끓여먹는 김치찌개 생각도 해 보는 것인데
어젯 밤 그 취기에 다시 안 들어 올 것 같은 위압은 소금절인 고추마냥
하룻 밤도 못 지나 이내 수그러들어 버리고 마는 지
벌써부터 휴대폰 번호 1번에 손이 자꾸 간다.
아마도 난 저녁 땐 다시 이 출입문을 밀치고 다시 기어 올라가 쨍그렁 소리 들으며 밥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아침 잠 막바지 5분을 즐기며 콘센트를 켜고 헤헤거리며
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어느 싸움을 대비하고 말 것이다.
이윽고 그가 사는 집 불이 켜졌다.
그렇게 사는 것이 보통이 택할 길이고 어차피 인생은 기억의 짬뽕으로 사는 것 아니겠는가. (2003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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