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으로의 여행 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
Croatia
11 문명과 자연이 만나는 곳, 크로아티아(1)
스르지 산에서 내려다본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는 브리치 섬과 마르코폴로가 태어난 코르출라 섬에서 나온 돌로 만들어졌다. 반도 모양을 하고 있고 초기 정착민은 일리리아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 해의 중심 도시로 한때는 베네치아와 어깨를 견주었었는데, 영국 시인 바이런은 이곳을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불렀다.
두브로브니크는 12세기 운하를 메우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그 이전에는 라구사의 반도 지역과 두브르바의 새로운 정착지 이 두 곳이 운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공존했다. 하지만 베니치아의 침략이 있은 후 운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끼자 운하를 메웠고 12세기 이후 현재와 같은 성벽 안의 모습이 갖춰지게 되었다.
발칸의 여러 나라를 여행해도 크로아티아만큼 매력적인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아침엔 다른 날보다 엘레나와 내가 좀 더 들떠 있는 듯하였다. 부드바에서 8시에 출발하였다. 코토르를 지나 레페탄(Lepetane)항에 도착하니 8시 50분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페리를 타고 건터편 항인 카네나리(Kanenari)로 가기로 하였다. 만일 이 항구에서 페리를 타지 않고 차를 타고 돌아간다면 한 시간 정도 더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페리를 타고 건너가면 10분 미만의 시간이 걸린다.
카네나리 항구에 도착해 다시 차를 몰아 국경까지 가는 데는 10분 정도 소요되었다. 몬테네그로와 크로아티아 국경을 지나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로 향하였다.
엘레나는 나에게 “흐르바트스카(Hrvatska)”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크로아티아 공화국”이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흐르바트스카, 이것이 정식명칭인데 어떻게 해서 이런 이름이 생겨난 것인 줄 아세요?”
“글쎄요”하고 나는 짧게 대답하였다. 사실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하였다.
“이란에서 들어온 흐르바트(Harvat)족이 슬라브족인 크로아트(Croat)족을 지배하였을 때 쓴 지명이라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엘레나에게 말하였다.
“크로아티아의 개요를 이야기해 볼게요. 현재 지리적으로 크로아티아의 위치를 보면 알프스와 지중해 사이에 놓여 있으며 판노니아 평원이 교차하는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변으로 슬로베니아, 헝가리, 보스니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요. 크기는 한반도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죠. 인구는 500만 명이 좀 안되고, 수도인 자그레브도 100만 명이 채 안됩니다. 구성 민족을 보면 크로아티아인이 약 78퍼센트 정도 되고, 그 다음으로 많은 민족인 세르비아인은 12퍼센트 정도 됩니다. 유대인, 이슬람, 헝가리, 슬로베니아 그리고 이탈리아인등이 약 10퍼센트 정도입니다. 종교는 단연 가톨릭이 강합니다. 가톨릭이 78퍼센트, 세스비아 정교가 11퍼센트 정도 된다고 합니다.”
“옛날 유고슬라비아연방 구성국이던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남 슬라브 민족입니다. 그중 크로아티아는 서유럽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아서 가톨릭이 강합니다. 그리고 세르비아는 비잔틴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서 동방 정교를 믿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이로 이러한 종교적인 차이가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 분쟁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유럽의 종교 역사는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 로마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과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방교회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의 기독교 문명은 1054년에 완전히 분리되지요.”
나는 이야기가 끝나자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엘레나에 관한 생각을 하였다. ‘어떠한 여자인가?’
엘레나는 지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생각보다 해박한 역사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것이 그녀에 대한 궁금증을 더 유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옷을 갖추어 입었다. 격식을, 그리고 멋을 아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 중 좋은 옷을 입고 정장을 입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차림이었다.
그때 엘레나가 나에게 말했다.
“크로아티아의 역사에 관해 간단히 이야기해 보죠. 혹시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이곳에 언제부터 정착하였는지 아세요?”
“정작이요? 글쎄요.” 하고 나는 머뭇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보고 웃더니 말을 이어 나갓다.
“그로아티아인은 이곳에 와서 두 공국을 세웁니다. 7세기 초의 일이죠. 그 후 200년 정도 주권을 지키지만 1102년 헝가리 왕국과 연합을 맺으며 1526년에는 크로아티아 의회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페르디난트 1세를 국왕으로 선출합니다. 그러다가 1918년에 이 나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왕국으로부터 독립을 하죠. 그 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편입됩니다. 그리고 이후 독립합니다. 크로아티아가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한 날이 1991년 6월 25일인거 아시죠? 달과 날이 우리 6.25가 일어난 날과 같아서 기억하기가 쉽죠.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2년 5월에 UN에 가입했습니다. 정치 형태는 대통령 직선제하의 의원 내각제입니다. 화폐는 쿠나(KUNA)를 사용합니다.”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보고 생각하는 것은 오래간만인 듯하였다. 항상 세상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직업인지라 무엇인가 세상을 많이 볼 수 있는 장점은 있었지만 시간이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는 것, 그리고 누구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나는 엘레나에게 말하였다.
“그로아티아가 가입한 기구가 무엇들인지 아세요?”
“국제연합, 유럽평의회, 세계무역기구, 중부유럽 자유무역협정, 북대서양 조약기구, 지중해 연합의 창립 회원국, 그리고 2013년 6월 1일 스물 여덟 번째 EU가입국이 됩니다. 1991년 이전에는 티토가 통치하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독립한 크로아티아가 되기 위해서는 아픔을 겪었던 나라입니다.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이었던 현재의 세르비아와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동안 엘레나와 나는 석회암산과 푸른빛 아드리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두브로브니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영국 시인 바이런은 이곳을 보고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렀다. 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바다의 푸른색, 붉은 지붕, 그리고 바닷가에 견고하게 둘러쳐진 성곽, 이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