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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간 영명축일자들 축하식 장면(매주 교중미사 때마다 축일자들에게 장미꽃과 상본 등을 선물하고 성가대 축가를 부르고 있음)
-남종기 신부님, 미사 후 신자들과 차를 나누며 담소하시는 모습
이것이 대림이다
+찬미예수님
저는 지금 천호성지에 있습니다. 천호성지 간지 벌써 3년 정도 되었는데요, 성지 순례하시는 분들 맞이하기 위하여 항상 성지에 있으면서 오전 11시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런데 주말에는 순례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데 겨울에는 순례자들이 많이 오시지 않기 때문에 문정 본당 대림 특강 요청에 흔쾌히 수락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미사 특강을 하게 되면 많은 이야기는 못 드립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들도 바쁘시지요? 예 빨리 가시는 게 좋지 않아요? 미사 빨리 끝내고 집에 돌아가셔서 일보셔야 할 것들이 많은 거예요,, 그렇지요? 예, 그럼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얼마 전 살레시오 수녀님들하고 년 피정을 함께 했어요. 광주에 내려가서 수녀님들하고 7박 8일 같이 피정을 동반해드리면서 아침 미사를 하고 강의를 하고 고백성사를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연피정을 가면 하루 이틀 시간이 많이 나요, 그래서 제 일들을 하면서 인터넷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 봤는데 그런데 그 동영상을 보면서 제가 울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동영상이 무슨 내용이냐 하면,
멀리 이제 일 때문에 멀리 떨어진 아버지가 가족들이 알지 못하는 그 시간에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그 순간에 가족들, 딸, 자녀들, 부인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거예요. 그런 유튜브인데요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멀리 가 계셨던 아버지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아버지, 그러나 언제나 항상 마음속에는 그 아버지가 있어요? 없어요? 있는 거예요, 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에 대한 사랑들이, 그리고 내 남편에 대한, 애인에 대한 사랑들이 마음속에 온통 그렇게 그리움으로 간직되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아는 장소에서 이 남편이, 애인이, 아버지가 눈에 딱 나타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동영상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거의 비슷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합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가 아버지를 만나는 거고,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 일을 하다가 자기가 사랑하는 그 남편, 아버지를 보는데요, 보통 그 순서가 어떻게 되냐면요, 보자마자 눈이 커지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얼굴이 일그러 저요,, 그러면서 눈에서 눈물이 쪼르륵 이 일그러진 얼굴을 타고 내려오는 겁니다. 그리고 두말도 안 해요, 모든 것 다 팽개치고 아버지가 있는 곳, 그리고 내 남편이 있는 곳, 내 사랑하는 그 사람이 있는 곳, 그곳으로 달려가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요, 그냥 안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한번 상상을 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잠시도 잊어보지도 않은 그 누군가가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생각지도 않은 장소에서 여러분 앞에 나타났다고 상상을 해보세요. 얼굴은 어떻게 되겠어요? 눈은 커지고 그 놀라움 때문에 얼굴은 일그러지고 그러면서 눈물이 흐르면서 그 사랑하는 사람 앞으로 달려가서 안기지요.
이게 대림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우리가 삶을 통해서 온전히 누군가를 가슴속에 그렇게 그리움을 품고 살아갈 때, 그 누군가가 내 앞에 딱 도착하면은요, 우리는 더 없는 기쁨으로 그분을 향해서 뛰어나갈 수 있는 거지요. 대림은 이런 마음으로 기다리는 거예요.,그렇지요?
우리가 지금 대림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이 대림 시기에 끊임없이 교회 복음에서 그리고 독서에서 하는 이야기가 깨어서 잘 기다리고 있어라, 이런 이야기지요.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 놓고 그리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고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때 어느 순간 그 사람이 내 앞에 갑자기 도착한다고 상상을 해보세요, 그 품 안으로 뛰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 그 사람이 그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다가 그 사람이 내 앞에 딱 도착했을 때,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 그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그냥 숨어버리고 싶은 거예요.
왜 복음에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늘 깨어 준비하면서 그렇게 잘 기다리고 있어라 하는 이유는요, 우리가 우리 삶에서 우리 삶의 가장 사랑하는 그 하느님, 예수님을 만났을 때 우리가 주저 없이 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그 하느님, 예수님 품으로 달려가서 안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잘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맞죠? 맞아요, 잘 살아가야 합니다. 한자로는 '오매불망[寤寐不忘]' 한다 그런 이야기가 있죠? 무슨 이야기입니까? '오매불망[寤寐不忘]'
요약하면 '자나 깨나 잊지 못하다'라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여 잠 못 들거나 근심 또는 생각이 많아 잠 못 드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시경(詩經)》에 실린 〈관저(關雎)〉라는 시에서 유래되었다. <두산 백과 참조>
오매불망- 잠을 자거나 깨어 있거나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오매불망이라고 그래요. 여러분들이 하느님을, 예수님을, 그분을 잠을 자거나 아니면 깨어서 일상생활을 하거나 늘 가슴속에 사랑하는 분으로 그렇게 기억하면서 잊지 않으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삶을 함부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다는 거지요,,
오늘은 인권 주일입니다. 인간들이 갖고 있는,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들을 생각하고 그 존엄성들을 지켜주는 것, 이 교회가 이야기해주는 게 바로 이런 내용들인데요, 여러분들 11월에 교황님께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날을 정해주신 것 기억나십니까?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이 가난이 인간이 갖고 있는 존엄성들을 어떻게 해치게 되는지, 강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현대 세계에서 가난을 명쾌하게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가난은 우리에게 날마다 수만 가지 방식으로, 곧 고통, 소외, 억압, 폭력, 고문과 옥살이, 전쟁, 자유와 존엄의 박탈, 무지와 몽매, 응급 의료 상황과 일자리 부족, 인신매매와 노예살이, 망명, 극빈과 강제 이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도전해옵니다. 가난은 돈과 권력의 권모술수에 짓밟히고 저열한 이익을 위하여 착취되는 남녀노소의 모습에 존재합니다. 이 밖에도 사회 불평등 도덕적 타락 선택받은 소수의 탐욕, 대중에 무관심에서 비롯된 가난에 대한 얼마나 씁쓸하고 끝도 없이 많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이런 일들이 많이 있지요. 가난 때문에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대림 시기를 보내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그 하느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가난한 사람들 곁에 머물고 그들을 품고 그들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해주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 앞에 오셨을 때, 두말없이 두 팔을 벌리고 그분께로 달려갈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긴다고 이야기를 해주는 겁니다. 이게 잘 살아가는 겁니다 여러분들 혹시 정세훈이라는 노동 시인,
노동자이면서 시를 쓰는 분이세요. 그런데 이분이 쓰신 글 중에 "몸에 중심"이라는 글이 있는데, 제이 티브이시 손석희 앵커가 앵커 브리핑에서 소개했던 글에 한 대목입니다.
"몸에 중심" 세상에 중심이 어디인가? 여러분 삶에 중심이 어디인가? 여러분 들 몸에 여러분 가정에 중심은 어딥니까? 삼장? 아니면 뇌? 여러분 가정의 중심은 어디인가요? 아빠? 엄마?
국가의 중심은? 본당의 중심은 어딥니까? 한번 들어보세요,,
몸에 중심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 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시 '몸의 중심' 전문)
몸의 중심은 아픈 곳 맞지요?
손톱 끝에 가시가 박혀 있으면 미사 중에도 온 신경이 아픈 곳으로 가지요,,
여러분 가정에도 아픈 분이 있다면 여러분의 가정의 모든 것들이 이 아픈 분을 위해서 돌아가지요,, 물론 이런저런 경제적인 활동들을 안 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아픈 분을 치료하고 아픈 분을 돕고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게 우리 자신인 거지요.
그러면 본당의 중심은 어디인가요? 가난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 이들이 여러분 본당의 중심입니다.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는가? 하느님의 마음은 어디에 머물러 계시는가?
아픈 사람들이 있는 곳, 가난한 이들이 있는 곳, 그래서 그들이 한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곳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제가 오늘 강론 준비를 하면서 제가 천호성지 있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지 아십니까? 교구청에 사회사목국에 2년 반을 있었습니다. 저는 사회복지 잘 몰랐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주교님께서 사회사목국에 가 있어라 하셔서 그곳에 있으면서 제가 배운 공부보다 더 큰 공부를 거기에서 했습니다. 사회사목국에 있으면서 제가 만난 여러분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정말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중에 한 분이 여러분도 잘 아시는 지정환 신부님입니다. 임실치즈피자로 유명하시지요.
그런데 지정환 신부님이 피자를 만드시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분을 만나고 그분과 함께 2년 반 동안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신부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신 감동적인 일인데요, 그분이 이제 몸이 안 좋으셔서 무지개 장학 재단을 만드셨습니다. 본인이 장애가 있거나 부보가 장애가 있는 가난한 학생들을 돕는 장학 재단입니다. 신자이거나 신자가 아니거나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먼저 장학금을 주기 전에 신부님이 심사를 합니다. 그런데 한 번은 심사를 하는데 신자가 아닌 어머니와 건장한 청년 대학교 1학년인 이 청년이 같이 온 거예요. 그래서 이 두 사람이 오자 신부님은 당신 앞에 어머니를 앉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을 앉힙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자폐입니다. 자폐를 갖고 있으면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지요. 신부님과 대화하는데 이런 식입니다. 이름이 뭐예요? 신부님이 묻습니다. 그러면 이 자기 이름을 대답하는데 한~참 걸려요,, 그러면 어디 학교에 다니세요? 그러면 또 한참 있다가,, 무엇을 원하세요? 또 한참~ 몇 마디 안 물어봤는데 한 시간이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가 한 시간쯤 오고 간 대화 도중 한 5분쯤 지나가니 울기 시작을 합니다. 신자가 아닌데도 두 분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어머니는 그냥 계속 웁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대화를 다 끝내고 난 뒤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그런데 왜 그렇게 대화하는 중에 그렇게 우셨어요? 그러니 이 어머니가 대답합니다. 신부님, 저는 제 아이가 자폐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가난하기 때문에 이 아이를 위해서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면접을 했습니다. 그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이 아이를 앞에 놓고 이 아이의 이름을 물어보고 이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 아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었습니다. 모두들 어머니인 나에게 묻고 내 이야기를 듣고 그래서 몇 분 동안 다 듣고 나서 도움을 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거기에서 끝냈어요.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신부님께서 제 아들의 소리에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울었습니다.
이게 뭐예요. 한 인간을 그 사람이 장애를 갖고 있거나 그 사람이 어떤 상황 속에 있거나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한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해 주는 것, 어머니는 그것을 본 거예요. 어느 누구도 내 아이를 아들이 갖고 있는 이 장애 때문에 인간으로서 존중해주고 품어주지 안 했는데 신부님께서는 처음으로 이 아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해주고 품어준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본 것입니다. 단돈 몇백만 원 그 학자금 그것보다 이 어머니는 신부님을 통해서 더 큰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이게 인권 존중인 것입니다. 이게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라는 것, 이것이 인권 존중입니다. 이들에게 우리가 주어야 할 것들이 단지 그냥 동정 어린 몇 푼 이나 이런저런 도움들이 아니라 한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해주고 품어주는 것, 이것이 진짜 사랑이고 이것이 진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 삶 속에서 그렇게 사람들을 대하고 만나고 살아가게 되면은요 그 사람들 가운데 어느 날 우리 곁에 와 계시는 그 예수님, 하느님을 만나게 되면은요 두말없이 뛰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이런저런 조건들 때문에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치부되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을 때, 그렇게 살아갔을 때, 그들 가운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계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아마 도망가겠지요,, 맞지요?
여러분, 이제 잘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본당에 중심 그분들을 위해서 그분들을 잘 품으시면서 함께 잘 살아가시면 좋겠다 싶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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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강론,정리도 감사합니다 ^^
네, 그레고리오님, 좋은 강론 내용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정환 신부님의 자폐증 학생과의 대화 내용을 듣고 그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저도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신부님의 뜻깊은 강론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정다감하게 가슴속을 파고들었습니다. 강론내용을 녹음하여 편집했습니다. 깊어가는 대림시기 말씀에 귀 기울이고 깨어 오시는 주님을 반갑게 맞이해야겠습니다.
어제는 어디를 다녀오셨다면서 그 긴 내용을 녹취하여 언제 다 정리하셨대요...잠이나 잘 주무셨는지요? 덕분에 다시 한 번 새겨들으며 올바른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멋진 강론 이었어요~^^
신자분들을 위해 녹취를 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가끔 올려주신 소식들 덕분에 잘 보고 있답니다.~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저의 젊은 날의 추억속에 한없이 부드럽고 다정했던 신부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순간 순간 그리웠는데 인연의 고리가 연결이 돼어 다시 뵈서 기뻤고...신부님의 강론말씀인 중심을 바로 알고 삶안에서 실천하며 살수있도록 다짐해봅니다.~~
많은 분들이 강론 말씀에 공감하시는군요,,강론을 듣고 글을 올리면서 또 녹음을 들으면서 몇가지 주제들이 크게 울림을 주고 또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천호성지에 가면 인사드려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