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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 1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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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태 |
| 한국에 사진술이 도입된 것은 대한제국 말기, 사진을 예술적인 표현매체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은 1920년대다. 제도권에서 사진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대학에 사진학과가 설립된 것은 1964년 서라벌예대 사진과가 최초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교육한 것이 아니라 기술 중심적이고 아마추어적인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사진 이론을 가르치고 현대사진의 흐름을 소개한 사람은 육명심, 홍순태, 한정식 등 세 사람이다. 이 중 홍순태 신구대학 명예 교수는 사진교육자, 이론가이자 그 이론을 실천한 사진가다.
홍 교수는 다큐멘터리 사진부터 현대적인 풍경사진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고, 이를 이론으로 체계화해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기술에도 박학다식했던 홍 교수는 후학들에게 이 부분도 전수했다.
30여 차례 개인전을 개최한 홍 교수는 8월 30일부터 한미사진미술관(서울 방이동)에서 '장 가는 길'이라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9월 27일까지). 기록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작업한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사라지고 있는 시골장터를 촬영한 사진이다. 1960년부터 1970년대까지 농촌문화와 농민들의 삶을 담은 작품이다.
홍 교수는 시골장터에서 볼 수 있는 상황들과 장터를 찾은 사람들의 행동과 정서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정확한 프레임과 앵글, 잘 훈련된 카메라 워크에서 홍 교수의 역량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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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양, 1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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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태 |
| 홍 교수는 작가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작품을 설명한다.
"사진인생을 정리하면서 첫 번째 주제를 '장날'로 한 데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과거의 생활모습을 사실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장날이면 어디든 참가해 어김없이 기록했다. 처음엔 막연히 기록했으나 날이 갈수록 장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장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단장하거나 차려입고 꿍쳐둔 돈과 농산물을 보따리에 넣어 짊어지거나, 우마차에 싣고 혹은 지게에 지고 수십 리 먼 길을 거쳐 장터에 다다른다.
좋은 자리를 잡아 펼쳐 놓고 물건들을 팔아 아들딸 시집 장가가는 혼숫감을 마련하거나 제물을 사거나 갖가지 일용품을 사기도 하며, 오랜만에 이웃 동네 친구들을 만나 순댓국물에 막걸리를 마시며 회포를 푼다. 총각, 처녀들은 부끄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숙이고, 농사지은 소를 장만하거나, 그동안 자란 소를 팔아 자식의 학비나 결혼 비용을 마련하기도 한다.
장날이면 전국을 돌며 장사하는 약장사의 기합소리, 옷감과 각종 생필품을 파는 호객소리, 흥겹고 즐거운 농악소리, 대장간의 철을 두드리는 망치소리. 이것은 한국의 소리이고 전통문화의 장이며, 흐뭇한 한국적 인심과 관습의 종합적인 집결체다. 그러나 자본주의 대량 경제체제로 바뀌고 면소재지나 마을이 점차 커지며 상설시장이 정착하면서, 장날은 쇠퇴하거나 없어졌다. 이제는 이러한 삶의 정경을 찾아볼 수 없고, 설령 장날이 생존해서 열리고 있더라도 사진에서 보이는 전통성과 민족의 순수한 뿌리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민족사를 기록, 정리하여 영원히 후대에 남기는 게 전시의 목적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풍물이긴 하나, 굳건하고 작은 나라지만 긍지를 품고 사는 민족이 가능했던 데는 장날 같은 협동체의 생활사가 결집해 있음을 젊은 세대에게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나이든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고유의 정서와 문화를 간접 체험하는 기회를 준다.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애호가들에게는 홍 교수의 작품 세계를 일부분이나마 살펴볼 수 있는 학습의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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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담양, 19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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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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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 장날, 1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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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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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창, 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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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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