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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3월 3일 체육관 선거로 11대에 이어 12대 대통령에 전두환이 취임했다. 이해 5월 14일에는 경부선 경산 열차 추돌사고로 56명이 사망하고 244명이 부상한다. 1973년 에너지 파동으로 중단되었던 TV의 아침방송이 재개되었고 유아를 상대로 한 프로 뽀뽀뽀가 첫 방영을 했으며 정부는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사상가이며 교육자인 다석(多夕) 류영모 선생이 2월 3일에 사망했다.
갓 군대를 제대한 칠닥이가 아버지의 고물상 일을 돕고 있었다.
여고에서 국어 과목을 맡아 교직 생활하던 제덕기는 1종 보통 면허증을, 직장에 다니는 중에 틈틈이 연습해서 취득해 두었다. 면허증 소지자가 드문 시절이었다.
고물상에 화물차가 한 대 들어 온 것인데, 기아 1.4 톤 타이탄, 경북 아 9321호이다.
車主는 차를 한 대 사기는 했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고물 수집을 하겠단다. 차주 자신은 무면허라 기사를 고용해서 데리고 왔다. 이 두 양반과 고물 수집상의 고참인 조 씨가 합승하여 고물 장사를 시작했다. 세 사람의 동업이다.
그런지 얼마 안 되어 기사는 자신이 소위 운전 기술자인데 몫을 똑같이, 삼등분한다는 것에 불만을 내뱉고는 그만두었다. 불안해하면서도 차주는 무면허 운전으로 장사 계속하였고 기사의 그 빈자리에 칠닥이가 들어갔다.
한여름이라 얼음 공장에서 하드를 도매로 떼어서는 시골로 다니면서 고물과 물물교환을 했는데 차가 귀한 당시라 자동차로 고물 수집을 한다는 게 시골 양반들에게는 상당이 있어 보이는 모양새였던 모양이었다.
“학교 다닐 때 우리 친구네가 고물상을 했거등 예. 보기는 그래도 그 가시나네가 엄청 부자라 아입니꺼.”
어느 촌구석에서인가는 대구에서 공부했다는 아가씨가 학교 친구 집이 고물상을 하는데 듣기로는 우습게 보여도 돈 버는 직업이라 하더라며, 칠닥이에게 상당한 호감을 보이기도 하였다. 아마 칠닥이가 비위가 좀 있었더라면 쉽게 뭐가 연인이라도 될 판이다.
하루는 장사를 일찍 마치고 고물상 골목에 차를 세워두고 있는데 여학교에서 퇴근한 덕기가 자신이 딴 운전 면허증을 은근히 과시하면서 차에 대해 뭘 좀 아는 얼븐을 떨었다. 그러자 무면허 차주가 존경해마지 않는 부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차주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내친김에 덕기는 만용을 부린다.
“보소! 빠때리 메다가 요, 요까지 가야 하는데 좀 덜 가네. 내가 끌고 한 바퀴 돌아볼게요.”
엉겁결에 차 키를 받아 쥔 덕기가 칠닥이를 태우고 덜덜 떨면서 고물상 골목을 빠져나간다. 고물상과 담을 맞대고 있는 제재소에서는 골목 입구에 원목을 실어 나르는 제무씨 (GMC)를 주차해 두었는데 덕기가 그 차를 그냥 스쳐 가지 못했다. G.M.C 흙받기에 닿은 톤 반 차 조수 대 문짝이 길게 선을 그으며 찌그러졌다.
“아이고, 야 야~ 면허증을 금방 땄다믄써 무신 운전을 한다꼬?”
칠닥이의 뒤늦은 질타를 호되게 얻어맞은, 덕기는 상당한 금액의 손해배상을 해야만 했다. 어쨌든 그런 일이 있었던 계기로 칠닥이는 운전 면허증을 따기로 작정하고 영주에 있는 자동차 학원에 등록하였다. 면허시험장에서는 고물상에 차와 동종인 1.4 톤 타이탄으로 시험 연습을 했다. 이미 군대에서 운전병이었던 욱준이나 택시 운전사인 일환이나, 이런 사람들은 버스를 운전할 수 있는 대형면허에 도전하고 있었다.
칠닥이와 학원에 동기로 등록한 일 년 선배 송 준익과 이 년 후배인 손 애란과 함께 다녔다. 손 애란은 십자 거리의 활천 이발관의 딸이었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내려와서는 운전 면허증을 따겠다고 다녔다.
“어머, 안녕하세요? 미스터 오.”
그녀는 칠닥이를 미스터 오라고 불렀는데 딴은 도회적인 호칭이 세련되게 들리기도 하였고 생경하고 어색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뛰어난 미인이다. 적당히 큰 키에 긴 생머리 하며 진하고 큰 눈이며 오뚝하면서도 복스러운 코, 작으나마 하면서 도톰한 입술은 한 층 매력을 더했다. 얼굴이나 피부가 삶은 달걀을 벗겨놓은 듯 뽀얗고 몸매는 전체가 적당히 살이 있어서 건드리면 그 감각이 그대로 전해 올 것만 같은 육감적이었다. 바람둥이 소 우목가 지껄인 말이 있었다. ,
“아고, 저런 년과 함 자 봤으면 좋겠다!”
우목이는 한동네에 사는 그녀가 심부름으로 자기네 집에 왔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다.
손 애란은 학원에 여러 남자가 농을 걸거나 직접 대어도 화내지 아니하고 상대가 당혹하거나 불쾌하지 않도록 재치있게 넘기고는 하였다. 그녀는 칠닥이의 시험 합격을 걱정해 주기도 하였고 학원을 끝내고도 한 번은 칠닥이의 전화에 다방까지 나와 주기도 하였다. 잘못 생각하면 칠닥이에게 호감이 있는 듯이도 보일 만큼 그녀의 행동거지가 뭇사람에게는 늘 부드러웠다. 그러고는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는데 88년도에 칠닥이가 점보 타이탄을 끌고는 울진에 장사 다니던 때, 거래처 사장이 그녀의 작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 애란이? 어떻게 알아? 시집 갔제. 선생한테 갔어.”
손 애란은 국민학교 선생에게 시집갔다고 들었다. 학력이 변변치 않은 그녀가 교사에게 시집갈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미모가 출중하기 때문이라고 짐작을 했다. 칠닥이로서는 기억에 진한 여인이다.
“어머, 어머~ 너무 축하해요! 미스터 오.”
경북 상주까지 가서 치른 면허시험은 다행히 한 번에 합격했고 손 애란은 일부러 찾아와 축하의 말을 해 주며 긴장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했다. 칠닥이로서는 약간은 창피하였다. 물론 그녀도 첫 번에 합격했다.
“면허쯩만 있으믄 되나? 내가 운전 배울 곳, 쫌 알아볼까?”
칠닥이가 면허증을 따자, 남의 일에 나서기 좋아하는 박 동명이는 소미에 있는 안병열이를 소개해 준다. 그의 집은 가마니 공장을 하는데 촌 동네 딱 한 대 있는 화물차는 가마니와 재료인 짚을 실어 나르는 현대 3t 화물차, 5537호이다. 공부하기 싫어하던 병열이의 동생, 병국이는 중학을 다니다가는 오입을 나갔다. 그렇게 객지로 떠돌다가는 어디서 운전을 배운 것이다.
“쟈가, 운전은 곧잘 하는데, 마침 우리 집이 가마이 공장을 하께니 우야노? 차 한 대 빼뿌렛다.”
그의 아버지는 그런 둘째 아들을 믿고 현대 3t 차를 산 것이다.
병국이는 운전만 배워 온 것이 아니라 여자 훑이는 것에도 선수가 되어있어서 칠닥이가 조수로 따라다니는 동안에 병국이가 수시로 생기는 여자들과 그런 짓거리를 목격도 하고 뒷수발도 해야만 했다.
“형님요, 쫌 내려가 있으소. 저년을 차에서 조져야겠니더.”
병열이는 술에 취해서 읍내에 세워둔 병국이 차를 몰고는 온통 시내를 쏘다니고는 해서 병국이가 기겁할 정도로 대책 없는 돌아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음주 인사사고를 내어서 옥살이까지 하게 된다.
병열이는 중매로, 안동에 있는 간장 공장 딸과 결혼을 했는데 새색시는 신랑이 자신이 속았다고 분해하고 억울해하였다. 결혼 전에 자신이 알기로는 병열이네가 촌에서 엄청난 집안으로 알았는데 부자이기는 하지만 들은 만큼은 부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이고, 내사 중매재이한테 깜빡 속았다 아이껴? 그쿠 부자라 케서…. 난재이 똥자루만 한 키하고 배 뿔덕이제, 저 나이에 벌쌔 이마 벗겨지는 것 쫌 보소!”
병열이가 제 처남의 주선으로 안동 신시장에 채소 가게를 열었는데 그 때문에 3t 차는 더 바쁘게 되었다. 칠닥이는 그래서 병국이네에게 욱준이를 끌어들였다.
“나는 아무 차나 말이지. 요, 국민학교 운동장에 가서는 구라찌 한 번 밟아 보고, 부레끼 한 번 팍! 발바삐면 다 아 끌 수 있어. ”
욱준이는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인상을 써 가며 단추 구녕 같은 눈을 끔벅거리며 자신의 운전 실력에 자신을 보였다. 그러나 학교 운동장에서 시험 운전을 시켜 본 병국이는 불안해서 못 맡길 정도라고 그를 평을 했다.
“저 행님은 운전이, 순다지 무데뽀시더!”
현대 3t은 추운 겨울에는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서 병국이가 공기정화기에 기화제를 뿌리거나 시골 언덕길에서 차를 밀어 가속을 붙이고 그 반동으로 시동을 걸고는 하였다. 병국이는 현대차가 무엇보다도 클랙슨 하나는 빵빵하게 잘 터진다고 했다.
결국, 욱준이는 병국이네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그의 어머니 운명 소식을 듣게 되고 칠닥이도 친구의 초상 일 도우면서 그 바람에 화물차 조수 일을 그만두게 된다. 그러나 병국이는 그들이 몇 달 일한 품값을 운전 가르쳤다는 이유로 한 푼도 쳐 주지를 않았다. 어린 녀석이 그쪽으로는 달고 달아 있었다.
“아무 데를 가도 운전 배울 때는 본래 간조가 없는거씨더.”
화물차 따라다니는 일을 그만둔 칠닥이가 하루하루 고물상 일에만 매달려 있을 때, 욱준이는 천하의 백수였다.
칠닥이가 아버지에게 용돈을 좀 얻어서, 100원 하는 환희 담배를 두 갑 사서는 하나씩 나누고 하면 녀석은 눈을 지그시 감고는 솥뚜껑만 한, 두 손바닥에 담배를 받쳐 들고는 그랬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너스레를 떨고는 하였다.
둘은 늘 자주 가는 곳이 막걸리 십자 거리에 있는 장 씨네다.
그곳에서는 막걸릿값만 치르면 소핏국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어떤 때는 막걸리 한 사발에 허기라도 채우려는 듯이 핏국을 여러 번 시켜 먹고는 해서 그들 스스로가 미안할 정도이다.
“하여간 아줌마도 앵간해 으잉? 우리가 이렇게 먹어도 눈치 한 번 안 주고 으잉?”
욱준이는 눈에 힘을 주면서 장작개비 같은 손가락을 들이대며 말한다.
“야가, 여 ~ 여가 뭐 우리 선짓국 먹는 거에 신경 쓰는지 아나? 여가 여, 해장술만 서 말 판다는 집이다. 아, 그런 집에서 우리 같이 불쌍티 불쌍한 사람이 그까짓 선짓국 한 그릇 더 먹은들? 응, 신경 쓰는지 아나?”
욱준이 말버릇은 평상다운 말을 하는데도 꼭 인상을 쓰고 손가락을 내어 젖어야 했다. 그래서 초면인 사람은 건방지다고 오해하기가 딱, 좋았다.
농협에 다니는 종봉이 아버지는 손님 접대로 장 씨 집에 더러 오는 편인데, 고기 안주를 대부분 남기고 가고는 한다. 그러면 아줌마는 깨끗이 챙겨서 새 접시에 담아서 우리 식탁에 살며시 얹어 놓기도 하였다. 또는 몰려다니기 좋아하는 욱준이 동창들이 한패 들이닥치면 틀림없이 가보시키로 고기를 굽는다. 그들은 방으로 들면서 홀에 있는 욱준이를 부르게 되고 욱준이는 칠닥이를 불러서 그날은 이빨 쑤시며 장 씨 집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야, 우리 한 번 실성 사이다에 원서 내 볼래?”
하루는 욱준이가 실성 사이다에 지원해 보자고 제안하였다. 칠닥이의 고물상에는 공병을 실으러 오는 고까 콜라 판매원이 있어서 대충 어떤 일인인지는 알고 있었다.
실성 사이다는 굴지의 좃데 그룹의 계열의 음료 회사이다.
칠닥이는 그런 대기업에 취직이 될 수 있을까 했지만 이미 작년에 지원해서 합격했었던 욱진의 독려에 용기를 내었다. 욱준이는 작년에 그 회사 서울 영업소에 합격했었으나 화근이와 이별주가 너무 과해서 야간열차를 놓치고 신입사원 소집일에 참석하지 못했었다.
“서울 가는 열차가 밤 열한 시 반에 있짠나? 송별 주를 먹꼬 집에 와설랑 차 시간 기다리믄서 깜빡 졸았는데 벌써 새벽인 기라. 늦었지만 새벽차를 타고 갈라카이, 우리 창준이 행님이 못 가게 하는 거라. 그 따우 정신으로는 안된다 카믄서. 그래가아 꼬빡 일 년을 기다리가꼬 다시 쳐 보는 거 아이라.”
그렇게 해서 욱진이와 칠닥이는 실성 사이다, 대구지점으로 원서를 냈고 안동영업소로 발령을 받았다.
현대 3t 화물차에 이어서 칠닥이가 만져 본 자동차는 여기 실성 사이다 회사의 4.5 톤, 기아 자동차의 복사와 기아 2.5 톤 타이탄 화물차이다.
칠닥이와 욱진이, 그리고 대구지점에 근무하던 화근이가 안동으로 전근을 해서 동향의 세 사람이 실성 사이다, 안동영업소에 근무하게 되었고, 이들의 군 제대 후, 총각 생활이 여기서 시작된다.
안동영업소의 소장은 현대 자동차의 포니 2의 픽업을 마치 자가용처럼 아끼며 사용했는데 누구든 함부로 손을 대지 못했다. 회사생활 자체가 군대의 병영 생활과 다름이 없는 환경에서 이인환 소장은 자신은 군부대의 지휘관이요, 포니2 픽업, 18902호는 지휘관을 모시는 찦차로 착각하는 듯했다. 그 착각은 모든 직원에게 적용이 되고 있었다. 화근이는 불뚝, 성질이 수시로 솟아서 운전이 난폭하기가 동승자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이다. 특히나 도로에서 고까 콜라 판매차가 앞서 있으면 추월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지라 커브 길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화근이가 운전하던 실성 사이다 차가 한번은 산으로 올라갔고 또 한 번은 논바닥에 곤두박질을 쳐서 차에서 기어서 나와야만 했다.
칠닥이도 큰 사고를 냈는데 의성지역 판매 담당자가 되어 안평에서 판매를 마치고 귀사를 재촉하는 길이었다. 경상북도에서도 빈촌인 의성, 그중에서 오지인 안평은 신작로라고 하는 것이 일본강점기 때 길, 그대로인 곳이다. 부사수 이상철이가 운전했는데 반대쪽 차량이 산 쪽으로 바짝 붙어서 기다려 주자 이상철이는 절벽 쪽으로 태연히 교행하는 찰나이다.
“어? 어! 어! 어!”
아주 짧은 한순간에 동승하고 있던 칠닥이가 선뜻함을 느끼고 손잡이를 움켜잡으면서 엉덩이를 드는 동시에 4.5t 기아 복사, 경북 아 5156호 실성 사이다 판매차는 강이 흐르는 절벽을 세 바퀴하고 반을 굴렀다. 차는 미루나무에 걸려서 강에 추락하는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
근 오 년 동안 실성 음료에 근무하면서 칠닥이나 욱준이와 입사 동기였던 재환이는 뜻 모르게 자살을 했고, 화근이는 신설되는 상주 영업소로 자원해서 전근하여서는 그쪽에서 술집 여자를 만나 신혼살림을 차렸다. 입사 선배인 김승수가 동향의 이 세 사람에게 특별히 애정을 보였다.
“칫! 지가 기껏해야 내보다 두 살 많은데, 엉가이 형 노릇을 할라꼬 하네.”
화근이는 김승수를 살갑게 보지를 않았고 욱진이는 사소한 문제를 끈질기게 따지는 성격 때문에 자연히 김승수는 칠닥이와 제일 친했다.
1985년 2월 전두환 정권의 실력자라던 권정달의 동생이 실성 사이다의 안동영업소에 찾아왔다. 이자가 선거운동을 하던 제12대 총선에서는 권정달이 전국에서 최다득표자로 등극하였지만, 집권당인 민정당은 사실상 참패한 선거이다. 이민우가 이끌고 김대중, 김영삼이 지원하는 신당인 신민당이 선거 돌풍을 일으켜서 창당 25 일 만에 신한당과 국민당을 누르고 제1야당으로 입성한다.
칠닥이는 입사 5년이 되어 갈 즈음에 판매처에서 받지 못하는 미수금이 늘어나고 장부에서 미수금 차액이 불어나자 실성 사이다를 그만두고 신생 라면회사인 청보라면 안동 대리점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무렵에 실성 음료에 남아 있던 욱준이는 예천의 시골 우체국 아가씨와 연애하다가 결혼을 하였다.
“하이고, 내가 호명 우체국에서 퇴근해서 길을 걷고 있는데, 사이다 차가 끽하고 내 앞에 서더이 태워준다 카자나아요? 싫타꼬, 해띠마는 우락부락하고 못생긴 저이가 나를 번쩍 안아서 차에다 탁 태우는 기라요. 내사, 남사시러버서!”
욱진이 색시는 그때를 회상하며 싫지 않은 상큼한 눈빛으로 핀잔을 늘어놓고는 하였다.
욱진이 결혼식에 사회를 봤던 칠닥이는 그날 한없이 허망하였다. 늘 노총각으로 함께 하다가 욱진이가 혼자서 훌쩍 장가를 가 버린 것이다.
청와대 보지 라면이, 청보 라면이라는 말이 시중에서 떠돌았다.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이 시장을 분할 하는 현황에서 신생 회사, 청보 라면이 뛰어들었다. 당시의 광고계에 영향력이 대단한 코미디언 이주일을 농심에서 일거에 빼 오는 것이나 천문학적으로 자금이 든다는 삼미, 슈퍼 스타즈 야구단을 인수하거나 하는 등, 만만치 않은 그 회사의 행보에 세간에서는 영부인 이순자의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실성 사이다를 그만둔 칠닥이는 신생 라면회사의 안동 대리점에 취직했다. 대리점 사장은 대기업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은 판매원이 왔다면서 좋아했다.
어쨌거나 청보라면은 빠르게 시장점유를 넓혀 갔었는데 안동 대리점의 권 사장은 집 담보 2,500만 원으로 안동, 영주, 의성까지의 경북 북부 전역의 영업권을 얻었다. 대리점의 판매 차량은 기아 1t 봉고 화물차, 4352호이다.
기아 자동차는 봉고 시리즈로 시중에 큰 인기를 끌었는데, 앞바퀴는 크고 뒷바퀴는 작아서 적재함을 와이드 로우라 하여 낮아서 짐을 싣고 내리기에 편리하였다. 그러나 장난감처럼 작은 뒷바퀴는 비포장도로를 다녀오고는 하면 호일 볼트가 부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심지어는 바퀴의 중심인 호일도 찢어지기도 하였다.
그놈을 끌고는 청송 골짜기를 들어가면 그곳에서는 물이 참으로 좋았다.
한여름에 라면 팔려 들어갔다가는 개울에 몸을 담기고는 땀 때를 밀면 때 찌꺼기가 물 아래쪽에서부터 뽀글뽀글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데 마치 거울을 들려다 보는 듯이 투명한 광경이다. 일회용 샴푸 같을 거로 거품을 내기가 미안한 정도로 그토록 맑은 물이 사방천지에서 흐르는 곳이 청송 골짜기다.
경북 영양도 청송만큼이나 물이 맑은 고장이다.
영양을 들어가는 길목에는 입암이라는 면 소재지가 있는데 그곳에는 곱창을 구워 주는 식당이 있었다. 영양 판매하는 날에는 그 집에서 식사하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주인이며 남자요리사인 그곳에서는 두께가 오 센티나 되는 달구어 놓은 돌 판을 먼저 불 위에 얹어 준다. 그 열기를 얼굴에 느낄 때쯤에 양념에 버무린 곱창을 부어 주는데 벌겋게 익어갈 즘에 희뿌연 육수를 부어 준다. 지글거리며 굽히는 곱창이 타지 않고 노릿하게 익어간다.
“이자 , 익었니더 . 잡수소 !”
하면 그놈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는 공깃밥에 썩썩 비벼서 입안에 넣으면 씹기도 전이 그놈이 목구멍으로 꿀꺼덕 넘어가는데 매콤하고 쫄깃한 감촉이 목젖을 건드려 자극하는 그 절묘한 맛에 소주 한 잔을 단숨에 비운다.
안주를 젓가락을 집는 게 아니라 숟가락 수북이 떠서는 한껏, 그렇게 곱창의 맛을 즐기는 것이다. 칠닥이는 고기도, 소주도 2인분을 시켜서는 배가 터지라 먹고는 봉고차로 돌아가 누워서 배가 꺼지고 술이 깨기를 기다려서 다시, 라면 팔이를 나서고는 했다. 그렇게 배 불리 먹고는 영양 읍내로 들어가서는 또 항상 방문이 기대되는 슈퍼마켓이 있었다. 그 슈퍼마켓의 사장 여동생은 미모가 뛰어났다. 오빠네 가게를 보면서 항상 어렵다는 철학책을 탐독하고는 해서 칠닥이의 호기심을 끌고는 했다.
청보라면은 시중의 관심 속에 대리점 역시도 영업 신장이 날로 상승하여 2.5t 기아 타이탄을 새로 사들였다. 차 번호는 3824였다. 칠닥이가 2.5 톤 트럭에 높게 호로를 씌운 라면 판매 차를 잠시 본가 앞에 세우고 밥을 먹는 중이다.
“칠닥아, 골목에 세운 니 차 키 좀 줘 봐. 차 좀 빼달란다.”
개동이는 운전면허를 딴지가 얼마 안 되어 차만 보면 환장을 하고 몰아보고 싶을 때다. 개동이가 차 열쇠를 건네받아서 나가고 그러고는 얼마 되지도 않아서다.
“야 , 야 칠닥아 나와 봐라. 차가 골목에 꽉 끼여서 꼼짝도 안 한데이.”
개동이는 라면을 싣기 위하여 트럭에 지지대를 씌우고 호로를 씌운 차의 높이를 계산 못 하고 그저 차폭만 보고 골목으로 몰아넣어서는 남의 집 처마에 차를 끼여 놓은 것이다. 참, 가지가지 말썽을 일으키는 개동이다. 호로를 다 찢어 놓은 것도 그렇지만 청보라면 로고를 인쇄한 것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칠닥이는 난감하기가 그지없다.
칠닥이가 아랫도리에 털 나고 처음으로 자기 차를 소유하게 된 차는 1.4 톤 타이탄이다. 경북 7너 7495호다.
칠닥이가 청보 라면을 그만두고 실성 사이다 때부터 거래하던 식품 중도매상이 차를 바꾸면서 폐차 직전인 차를 60만 원 주고 샀다. 장사해 볼 요량이다. 낡고 낡은 차는 운전석이나 동반석이거나 바닥이 다 삭아서 발이 빠질 지경이다. 칠닥이는 바닥에 장판지를 깔고, 차에 올라 바닥을 디딜 때는 앵글이 지나는 자리만 밟고 올랐다. 누가 그런 형편없는 차에 동석이라도 하게 되면 긴장을 한다.
“어 어, 잠깐! 니 요기 하고 요기만 밟고 올라 오그래이 ~”
“왜?”
“아, 시키는 대로 하거라. 안 그러면 니 발이 차를 메고 갈끼다.”
그래서 그렇게 시작한 장사가 영주 열매 시장에 가서 귤 받아서 슈퍼에 팔기도 하고, 김장 배추를 싣고 황지 태백의 탄광촌에 가서 팔기며 과수원에 고다마 사과를 받아서 탄광촌에 거리 팔기를 하였다. 그러는 중에 익준이조차 실성 사이다를 그만두는 계기로 해서 익준이도, 칠닥이도 통조림 장사를 하게 된다.
“야, 우리 통조림 장사해 볼래? 쌕쌕이 대던 전 사장이 그러더라. 장사 시작하믄, 밀어 준다꼬.”
욱준이는 기아 자동차의 1t 봉고 화물차를 뺏다. 새 차, 8834호이다.
칠닥이가 서울 청량리시장에 물건을 받아서 오는 길에 이미 낡을 대로 낡은 7459호로는 장거리는 갈 수 없다는 경험을 하고는 새 차를 빼기로 큰 결심을 한다.
“니, 생각 잘했다! 장사는, 장비가 좋아야 돈도 번데이.”
대학을 졸업하고 기아 자동차 영주영업소 새내기 사원이 된 중학교 동기 정 재평이는 입이 가로로 째지면서 침을 계속해서 튕겼다. 기아 자동차 영업사원인 정 재평에게 의뢰하고 외삼촌을 보증 세워서 산 새 차가 기아 점보 타이탄 2.5 톤이다. 경북 아 1552, 이것이 새 차 번호이다.
“우에, 흰 색깔 차를 주문했는데 퍼런 차가 나오니 껴?”
칠닥이가 기아 자동차 시흥공장에 새 차를 받으러 갔는데 엉뚱한 차가 출고되었다.
1987년은 우리나라에서 노동쟁의의 원년이라 할 만치 대기업마다 파업 열풍이 휘몰아치던 때다.
“햐~ 노조의 파업으로 이 차가 전체 공장에 있는 점보 타이탄,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차입니다. 파업이 언제 풀릴지도 모르는데 사업하시는 사장님이 몇 달이고 기다리시면 영업 손실도 크지 않겠습니까?”
상앗빛 차에서 청색으로 바뀐 차를 몰고 서울에 온 김에 강남에 있는 차병원 주차장에 들어갔다. 엠비시 기자를 하는 국 해원의 소개로 이 병원에 간호사로 취직한 여동생 금숙이도 만나보고 직장 상사에게 인사도 할 겸이다. 차를 정지시키고 키를 뽑았는데 새 차의 엔진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허~ 이상한 일이네. 기어를 3단에 넣고 브레이크를 밟아서 강제로 엔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기아 자동차의 노동조합이 총파업 바로 직전에 모든 찌꺼기 부품을 몽땅 모아서 조립한 마지막 점보 타이탄, 1522호 불량이력의 첫 사례가 시동이 꺼지지 않는 것이었다.
“어라, 새 차가 벌써 다마가 나갔나?”
내장 탑차의 네 귀퉁이에 붙어 있는 표시등이 두 개는 정상인데 두 개는 불량이었다.
“하이고, 이 게 뭐꼬! 오일이 사방 분졌네. 새 차가…….”
새 차를 사고, 500㎞ 운행 점검에서 엔진룸을 열어 본 정비사는 깜짝 놀란다. 엔진에 윤활유가 새서 온통 범벅되어 있는 것이다.
“아이고, 그 차가 노사분규 마지막 차라서 그런 갑니더. 서비스센터에 가서 정비를 받으소!”
재평이를 통해서 항의를 받은 영업소장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사무적인 대답을 하였다.
운행 육 개월에 교체해 줘야 한다는 변속기와 대후의 씨오일을 갈기 위하여 카센터에 갔다.
“사장님, 이것 좀 보소! 요 게 변속기에 기어 이빨 깨진 게 나온 거라요. 이라면, 요 작은 쇳조각이 온 사방 돌아댕기면서 나머지 기어도 다 망가트린다. 아이 껴”
“미션, 교체요? 하이고 말도 마소. 지금 모든 부품이 올 스톱이시더! 스톱. 망할 놈의 노사분균지 먼지 우리도 미친다니까요?”
칠닥이에게 계속 항의를 받아 오던 소장은 처음에는 미안해하더니 조금씩 짜증을 내기 시작하였다.
“빙신 같은 게, 씨발 누가 노사분규 때 차를 빼라 했어?”
칠닥이는 회사 사정을 잘 알면서 새 차 구매를 강력히 종용한 정 재평이가 원망스러웠다.
“야, 하~ 동창이라는 새끼가 알잘 없네. 으이? 다아 지 잇속만 챙기는 기라.”
불량 현상은 계속해서 발견되었다. 한겨울에 봉화 오지에 들어가서는 찬 바람이 몰아치는 아스팔트 국도에서 차 밑을 기어들어 가야 했다.
“싸이도 부레끼가요? 그면 13미리 스파나 들고 거, 대후 쪽에... 라이닝을 푸소! 부레끼 모도시가 안 되는 거네.”
“햐~ 지기미, 환장하겠네. 마치 똥차 수리하듯이 하나 고쳐 놓으면 하나 터지고 또 터지고 내 몰라라 하는 자동차 회사를 믿고 기다릴 수 없어서 그동안 쏟아 분 수리비가 얼매로, 어이?”
칠닥이 자신의 돈으로 끊임없이 수리해 가면서 이제 불량 현상이 좀 잠잠, 하는가 싶을 때 거리에서는 2.5t 점보 타이탄 신차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조지나, 이제 노사분규가 풀린 모양이제? 그런데 저것들하고 내 차하고 뭔가 좀 다른 게 있다?”
그랬다. 칠닥이의 1552는 점보 타이탄의 삼색, 세 띠의 로고가 좌측에는 붙어 있는데 우측에는 붙지 않았다. 출고가 얼마나 급했으면 안은 고사하고 바깥의 가장 기본적인 포장인, 로고를 붙이다 말고 내보냈겠는가.
(안 되겠다! 내가 이차를 계속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더 손해를 보게 되려는지 모를 일이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정리를 해야 그나마 더는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때까지 그 차의 불량은 총 아홉 가지나 되었다.
“햐~ 차 관리 잘 되었네!”
깨끗하게 세차를 해서 서울, 장안평에 있는 중고 자동차 시장에 끌고 갔다. 출고된 지 1년 남짓한 차가 아버지한테 팔아도 반듯이 남긴다는 나까마들의 난도질 끝에 남은 할부금 제하고 형편없는 상태의, 중고 1t 봉고로 교환된 것을 끌고 올 수밖에 없었다. 차 번호는 2522호였다.
서울 장안평 출신인 2522는 시골 생활 몇 개월 만에 다시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기게 된다. 아이 어미가 시골 생활을 싫어라 해서 칠닥이네 식구는 서울로 이사를 하기로 전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아들 강하가 생후 5개월 되던 때다.
서울의 북단에 있는 변두리 방학2동, 신 방학동이라 하는 그곳에서 다세대 2층 방 두 칸짜리 월세방에 칠닥이네 식구는 움을 틀었다. 칠닥이가 아침에 눈을 떠서 맨 먼저 하는 행사는 창문 아래로 보이는 2522 자신의 화물차를 살피는 일이다. 이사 온 지 채 한 달이나 됐을 하루는,
“어? 차가……!”
도난을 당한 것이었다.
“차를 어디에다 두었다고요?”
방학 파출소에 도난 신고를 하는 중이다.
“집 앞에요.”
“집 앞? 길에다 세워두었단 말이요?”
“예.”
“길에 두었으면, 내 차를 가져가세요! 했네? 응?”
“그게 ….”
“아, 차를 주차장에 세워야지, 온 길에 차 천지로 세워두고 우리보고 어쩌라고 응?”
소식을 들은 칠닥이 형 개동이가 찾아와서 승용차로 서울 시내를 찾아 헤맸으나 한강 강변에서 바늘 찾기였다. 파출소에서 쫓겨나다시피하고 도봉경찰서에 차량 분실신고를 냈으나 경찰이 찾아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면목동에 사는 칠닥이의 중학교 동창인 김 우목이는 몇 년째 백수 생활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한때 평화시장에서 원단 장사를 했으나 방탕한 생활과 노름으로 날려 먹고 시골에 있는 아버지 집까지 팔아먹었는데 더 돈이 나올 곳이 없게 되자 변두리의 월세방을 얻어서 늙은 여자 등골을 빼 먹고 있었다. 칠닥이가 서울로 이사를 오자, 지리를 가르쳐 준다는 이유로 칠닥이네 집으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장사를 따라다녔다.
“야 야, 요번에 니 이, 마누라가 돈 해 주면 마구 2,600만 원이 니 밑에 들어가는 거라 하더라. 너 장인이 축협에서 대출해 준 천만을 원하고, 이사 올 때 보증금이 천만 원이제, 요번에 차를 다시 사는데 육백만 원 하고…….”
우목이는 아이 엄마의 넋두리를 대신에 해 주고 있던 셈이다.
잃어버린 차는 찾기를 포기하고 새로 산 중고차가 기아 자동차의 6밴 승합차이고 차량 번호는 3060호이다.
“예, 계속 카운터 펀치를 허용하는 오 선수, 그로기 상태인 지금 저 선수의 심정은 어떨까요?”
중계되고 있는 권투경기는 보기에조차 지루한 게임이었다. 너무나 일방적인 저 시합이 어떻게 이루어지기나 했을까 하는 정도이다. 때리는 선수는 무표정하게 기계적이면서도 주먹이 다양한 방향으로 날려 댔고 맞는 선수는 맞느라 지칠 대로 지쳐서 두 발로 서 있는 것이 오히려 안타까울 지경이다. 차라리 바닥에 눕기라도 한다면 보는 사람의 부담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게요. 이기고 지고의 승패의 의지는 무망한 셈이지요. 일 초라도 빨리 종이 울려서 집에 가고 싶을 겁니다.”
규모가 형편없이 줄어든 상태로 억지로 무의미한 생업을 이어가는 칠닥이에게 낯선 전화가 벨을 울린다.
“2522 봉고 1t 화물차 차주시지요? 당신 차, 찾았어 으 이! 도난당한…. 신분증 가지고 마장동 파출소로 오시오.”
(허~ 낭패네. 인제 와서 차를 찾으면 차가 두 댄데, 어쩐다?)
칠닥이는 난감했지만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마장동 파출소를 찾아갔다.
“어, 어 거 뭣인가, 우리 직원들 차 찾느라고 고생했는데 그거 야식비라도…….”
찾을 필요가 없는 차를 찾게 되어 경찰관에게 촌지 주고, 방전된 배터리 돈 주고 갈아서 궁여지책으로 가락동 농수산 시장의 공용주차장에 세워두었다.
“야, 칠닥아! 니 차에 무단주차 범칙금이 덕지덕지 유리창에 붙었드라. 얼릉 처리하그래이 나중에 벌금 우에 다 감당할라꼬 그라노?”
그조차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안 찾으면 좋을 차를 찾아서 폐차를 시키는 수밖에 없는데 2522는 서울로 이사 온 지 채 한 달이 안 되어서, 미처 주소 이전이 안 된 셈이었다. 그것은 벌금 감이었다. 시골 주소로 되어있으니 주소지에 가서 폐차처리 하게끔 되어있어서 움직일 수 없는 차를 견인차에 달아서 시골까지 간다고 하면 찻값보다도 더 큰 비용이 발생할 판이다. 힘들게 카센터를 통해서 알아낸 방법이 이른바 야매로 폐차를 시키는 방법인데 그것도 적지 않은 뒷돈을 줘야만 했다. 그래도 폐차는 해야만 했다. 파출소 촌지에, 배터리 새것에다 무단주차 범칙금에, 야매 폐차비용에다 주소 미이전 벌금에, 이 모든 비용은 도난당하지 않았거나, 도난당했으면 찾아지지 않았더라면 입지 않아도 될 손해였다. 당시에 칠닥이가 가지고 있는 장사, 밑천의 절반이 넘는 100여만 원의 돈을 들여서 의정부 폐차장에서, 1552호 말썽 많은 점보 타이탄의 교환이 된 2522호 1t 봉고 화물차는 마침내 처리되었다.
칠닥이는 카썬터로부터 받아 쥔, 구멍 뚫린 차 번호판을 두 손에 움켜잡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오, 운명의 여신이여!
1991년 추석은 칠닥이네 가족이 서울에 이사 온 첫해의 첫 명절이다.
찌들고 지친 칠닥이는 명절이고 뭐고 간에 고향에 갈 기분도 체면도 명목도 없었지만, 본가뿐 아니라 처가도 엄연하니까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고, 야야 이게 머로? 니 이래가꼬 장사라고 핸나? 어이.”
고향까지 끌고 간 3060호의 차 문을 열어 본 어머니는 어처구니없게도 찌들어 진 장사 행태를 목격하고는 한탄이 늘어졌다. 칠닥이는 보이고 싶지 않은 약점을 들킨지라 한없이 민망스럽고 자존심 상해서 불끈 화가 솟았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한 푼어치의 도움을 줄 수 없는 부모의 처지에 대해서도 원망이 일었다. 그리고 그 이후 칠닥이는 서울 생활하는 내내 단 한 번도 시골을 내려가지 않았다. 그만큼 칠닥이 인생이 그동안 형편이 좋아진 적이 없었다.
“응, 그냥 일주일에 두세 번 할머니,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회장님 사무실에 출퇴근시키면 되는 거다.”
칠닥이에게 국 해원이 자가용 운전사로 취직할 것을 권했다. 이미 3060호, 차량을 이용해서는 수입이 거의 없는 상태라 새벽에 우유배달을 시작하고 있었다. 우유 일이 끝나고 낮 동안은 운전해서 고정적인 수입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는 야간에 우유 대리점에서 부탁한 우유제품 배송 작업을 3060을 이용해서 두세 시간을 했다. 이맘때가 칠닥이 인생에 있어 가장 강도 높은 노동을 감행하던 시기이다. 우유배달에서 자가용 운전에다가 우유제품 배송, 하루 잠자는 시간, 댓 시간을 빼면 나머지는 몽땅 노동의 시간으로 채우는 셈이다. 운전사로 지원한 그 댁은 국 해원의 처 이모 댁으로 미아리 일대에서는 동네 부자였다. 임대사업을 하는 건물이(강남빌딩) 삼양동 입구에 있었고 자택은 성북동 부촌에 있었다. 그 집은 코미디언 구봉서로부터 사들였다고 하였다. 자가용은 3156, 현대차, 소나타와 7879, 마찬가지로 현대차인 낡은, 스텔라이다. 그 댁에서 한 달 정도를 일해 보니 운전은 명목적이고 사실은 환자를 간호하는 간병인 역할이 주된 일이라 하겠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댁에서는 운전할 줄 아는 힘 좋은 간병인을 구한 것이다.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중환자로 일주일에 세 번을 서울대 병원에서, 피에서 오줌을 걸러 내는 투석을 한 번에 대 여섯 시간을 받아야 한다. 물론 운전사는 그 긴 시간 동안 할머니 옆을 지키며 수발을 거들어야 한다.
“아저씨, 그만 이사를 오세요. 우리 아들, 김 박사도 그럽디다. ‘나 같으면 이사를 하겠네! 한 달에 20만 원이 어디야.’ 하더라고요. 그냥 돈 안 받고 제공하는 거니까 매달 내는 월세 아껴서 그 돈으로 빚을 갚으면 얼마나 좋아요?”
할머니는 일단 칠닥이를 수개월 일을 시켜 보니 괜찮다 싶어서, 아예 빌딩 옥상에 있는 경비용 사무실로 이사를 하라는 것이다. 자신을 잡아두고자 하는 심사라는 사실을 칠닥이는 짐작은 하였지만 일 년이면 240만 원이라는 월세가 절약된다는 욕심에서 이사 결정을 해 버린다.
“아저씨 어디 전화할 때 없어요?”
투석을 받지 않는 날, 칠닥이가 휠체어에 모시고 공원을 산책하는 중에 할머니가 느닷없는 말을 하였다.
“아니요, 저는 전화할 일이 없는데 왜 그러세요?”
“아니, 내가 딸에게 꼭 전화할 게 있는데 공중전화비가 20원 아니에요? 그런데 주머니에 100원짜리 밖에 없으니 나머지 80원이 손해 않아요. 아저씨라도 쓴다면 전화를 하겠는데….”
“일이 있으면, 100원 넣고 80원 남기면 누구라도 잘 쓰겠지요.”
“그만두지요. 뭐, 아까워서….”
할머니 댁은 부촌답게 옆집은 광장시장에서 포목상을 하는 大商이고, 뒷집은 전자회사인 인켈의 사장이 산다. 또 다른 옆집은 종로에 있는 큰 금융사라고 했다.
“우리 집이야, 도둑이 들은들 뭐 가져갈 게 있겠어요?”
할머니는 부근에서 자기네가 제일 가난하다면서 너스레를 하고는 했다. 그렇게 하면서 그 댁에서 일한 지가 일 년이 넘어가던 하루였다.
“할머니, 저는 뭐로 친구 계원이의 처 이모 댁이기도 하고 해서 월급이 얼만지도 따지지 않은 채 주시는 대로 받고는 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까 자연히 딴 사람들은 얼마씩이나 받는가? 알게 되는데 남들은 보통 월급을 80만 원씩은 받습디다. 거기에다 다 다르기는 하지만 얼마씩이라도 보너스를 받기도 하더구먼요?”
“하이고~ 참, 아저씨는 집세를 생각해야지요! 지금 옥상에 사는 거 돈 한 푼 안 내잖아요? 우리 형편에 돈을 더 주고는 사람을 쓸 수가 없어요!”
칠닥이는 보기 좋게도 이용을 당한 셈이다.
무식하면 답답한 일이고 어리석으면 남에게 속기가 쉽다. 칠닥이는 지혜롭지 못했다.
할머니는 꼼짝 못 할 거라고 생각을 했겠지만, 칠닥이는 그로부터 육 개월을 준비해서 대형면허증을 취득하여 시내버스회사로 일자리를 옮겼다. 따라서 옥상에서는 살림살이를 내린 것은 물론이다. 옥상에 올라가면서 또는 내려가면서 쓰지 않아도 될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운전사가 모자라서, 기사 한 사람 유치해 오면 5만 원씩 수당을 지급한다는 시내버스 입사도 막상 지원서를 내고부터는 합격이 만만치 않았다. 입사 운전시험은 정비책임자가 주관하는데 정비 쪽으로서는 차 고장을 덜 내고 안전운전을 해서 사고 내지 않을 운전사를 가리자니 자연히 심사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고, 운행 책임자는, 모자라는 인원에 차가 서는 일만큼은 막아야 할 터이니 되도록 빨리 합격을 시켜 인력난이 해소되기를 바랐다. 떨어지는 사람도 꽤 있었으나 칠닥이는 다행히 합격하였다. 정비팀은 운전시험에서 특히나 유심히 보는 게 반 클러치 쓰는 버릇이 있는가이다. 버스는 대형차량인 만큼 클러치를 떼는 동시에 액 슬레이트를 밟아서 출발해야 한다. 출발을 부드럽게 한답시고 소형차처럼 반 클러치 상태로 액 슬레이터를 밟아 출발하게 되면 삼발이 디스크가 금방 망가져서 부속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다.
“음, 버스는 첨이군요? 멋보다도 버스는 사고가 없어야 해요! 잘해 주시기 바라고, 노조 사무실에 가서 추천서를 받아 오세요.”
칠닥이의 입사 서류를 살피던 사무실 김 주임은 면담 중에도 책상 밑에 무슨 병을 꺼내서는 주위를 살핀 후, 훌쩍훌쩍 마시고는 하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소주였다.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노조?”
무슨 관공서 사무실인 줄 알았던 그곳이 그, 말로만 듣던 기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자 조합이다.
“에~ 유 일관 씨 소개로 입사하셨군요. 경상도라, 이 성우 씨가 경상도계 수장인데 나하고는 아주 친해요, 하하하 우리 앞으로 잘해 봅시다!”
조합장 이재순이가 신입 기사에게 지나치게 친절하면서 굳은 악수를 나눈 것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조합장은 강원도 사람이고 전번 조합장 선거에서 경상도계의 지원을 받아 당선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반대파는 전라도계와 충청도계였다.
강북에서 최대규모라고 하는 한성 버스는 현대 RB 520 버스 22대가 20-2번 노선으로, 대우 BF 105 버스 28대가 20번 노선으로 현대 BS 520L 버스 33대가 731노선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운전 면허증이란 대형이, 진정한 면허증이라 할 수 있지! 1종 보통이니, 2종이니 한 건 아무나 가지는 건 면허증 가졌다 하면 안 되는 거야.” 대형면허 시험장에서 누군가 그랬다.
대형차량인 버스 기사는 생각보다도 월급이 많지 않았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조금 주니깐 사람이 안 오는 것이었다. 대형기사는 대부분 건설장비로 빠진다. 그 바람에 칠닥이는 일을 많이 할 수가 있었다. 새벽 4시 30분부터 첫차가 운행되는 오전반, 아홉 시간을 근무하고 오후반 아홉 시간 운행을 더 하고 다음 날, 또다시 오전반을 타는 것을 따블( Double )이라 했다. 이렇게 따블을 하면 그날 일당은 곱이 되는 것이다. 26일 만근을 하는 자의 월급이 70~80만 원보다 칠닥이의 한 달 수입은 120 또는 130만 원씩이나 되었다. 1311호, 1312, 1313…. 이렇게 앞자리가 1로 나가는 버스는 똥차로 신참들 몫이지만 3541, 3543, 3544, 3545…. 3으로 나가는 차는 대 폐차 된 새 차들이다. 일을 빠지는 경우는 주로 고참들이라, 따블을 타게 되면 고참들의 야들야들한 새 차를 모는 기분도 함께 만끽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단 두 대밖에 없는 자동기어 차도 칠닥이는 수시로 경험할 수 있었다.
모처럼 휴일에 두 아이를 데리고 동네 공원을 산책하였다.
아이들의 재깔거림 중에 칠닥이 눈에 공원 저 구석 폐건물이 있는 곳에 낯익은 차 한 대가 보였다.
(허, 이상하다. 생전 처음 와 보는 이 공원에서 저렇게 낯익은 물건이 어째 있을까?)
가까이 가 보았다. 1552호, 청색 점보 타이탄이 그곳에서 방치된 채 녹슬고 있었다. 배 씨네 철공소에서 뒷문 발판을 넓게 제작해서 단 모양새나, 탑 양쪽으로 지워진 흔적이 있는 ‘관포상회’라는 상호는 틀림없이 장안평에 팔아넘긴 칠닥이의 차였다. 노사분규 때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그 차는 새 주인을 만나서도 여전히 애를 버러질 만큼이나 먹였는가 보다.
이 무렵에 구리에서 제 형의 집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같이하던 화근이가 형수와의 갈등으로 상계동으로 이사를 와서 한성 버스에 입사했다. 화근이는 이혼한 나래 엄마를 부려 올려 재결합을 하여 딸과 함께 다시 세 식구가 되었다.
“야 야, 갸 칠닥이 좀 말리그래이! 따블 좋아하다가 운전대 잡고 죽는 사람 마이 있다!”
이웃 회사인 한성 여객의 고향 선배, 유민규가 한성 버스의 따블왕! 오칠닥이라는 소문을 듣고 개동이한테 전화를 해서 걱정을 한 소리다. 주변 사람들의 우려 속에서도 칠닥이의 행진은 멈추지 않고 더 강행하였다. 그렇게 하면서 그동안 진 빚이 서서히 갚아지고 있었던 것이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더 힘이 났다. 삼 일, 72시간 중에서 5 일치 근무량인 54시간을 한 적도 있었다. 26일 만근이 기본인 버스회사 근무체제에서 43일이라는 이 회사의 초유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동료들에게는 잠정적인 민폐가 되기도 하였다. 가령, 어느 기사가 지각하고 있다면 배차 주임은 그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고 대기 중인 칠닥이를 대체 근무로 투입 시키는 것이었다. 겨우 만근을 채우는 형편인 그 사람은 그날 하루 때문에 온전한 월급이 못 되는, 각종 수당이 빠지는 반의반이 월급을 받아야 했다.
어쨌거나, 그 일도 한 일 년이 지나자 일거리가 줄었다. 건설경기가 나빠지면서 덤프트럭 기사들이 대거 버스회사로 몰려왔다. 전 같으면 따블을 예약하던 배차 주임이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는 칠닥이를 오후 막차가 나갈 시간까지도 불러 주지 않았다. 이제 진 빚의 반 이상을 갚아가고 있는 실정에서 아쉽고도 아쉬운 현상이었다. 안동에서 익준이가 갑자기 살림살이를 싸서는 올라왔다. 노름으로 겨우 마련한 아파트도 날려 먹고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서울 강북의 북단 변두리에 고향 까마귀 세 녀석이 실성 사이다 이후로 다시 모여 살게 되었다.
칠닥이는 수유시장에 있는 잡화도매상, 행운 상회를 찾아갔다.
“생각, 잘 했으라우! 내도 세울 첨 올라와서 이 이, 청량리시장에서 럭키 비누, 짝으로 사서랑 짐발이 자전거에 안 실었따오? 쩌그 도봉산까징 점빵이라고는 점빵마다 다 딜리는 것이여~ 긍께, 머꼬 살드라고 이. 요렇게 도매상도 채리고 마림씨.”
칠닥이는 생기지도 않는 따블을 포기하고 출퇴근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화투, 포커, 칫솔을 도매상에서 받아서 실었다. 이 세 가지 물건은 한 개를 팔아도 중간이윤이 좋은 잡화 품목이다.
“이거 진짜 다이아몬드 화투 맞아요?”
“아이고 내, 또 옴시더. 그 게 짜가면 목을 땀시더! 목을.”
팔렸다.
“내 한 통에 만 원 빼서 육만 원짜리, 오만 원에 드린다니요?”
칫솔도, 팔렸다.
“요 이 층에 당구장 있어요. 당구장 골방이 포카판이요, 우린 한두 번 쓰면 기계를 바꾸니 수시로 와서 물건을 대세요!”
포커는 마진이 제일 좋은 품목이다.
“종이컵, 열 박스 갖다줄 수 있어요?”
단골이 생기기 시작하자 부피가 큰 물건도 주문이 들어 왔다. 궁여지책으로 오토바이 뒤에 요구르트 배달용 수레를 달고 다녔다. 버스가 오전반이면 오후에 잡화장사를 하고, 오전에 장사하면 오후에는 버스회사 출근이다.
“어휴` 저를 어쩌!”
지나가던 아줌마가 칠닥이를 향해 안타깝고도 불쌍한 넋두리를 토해냈다.
오토바이에 매달린 잡화 물건은 날마다 불고 불어나서 무리에 무리다 싶었는데, 결국은 언덕에서 힘에 겨워 미끄러지고 사방으로 흩어진 물건에, 수레는 뒤집히고 오토바이는 넘어졌으며 칠닥이의 무르팍은 깨져서 피가 흘렀다.
칠닥이는 한성 버스에 일단, 퇴직하였다. 그리고 보름 후에 재입사를 한다. 중고 퇴직금을 받기 위함이다. 그 돈으로 기아 자동차의 2밴 승합차 베스타 중고를 샀다. 차 번호는 7876이다. 더불어 하는 잡화장사는 나날이 발전하여 버스 월급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입이 따라 올랐다. 일 년을 더하니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많은 빚이 거의 갚아지고 있는 즈음에, 욱준이는 버스회사에는 적응을 못 하고 제 동서의 소개로 레미콘회사에 취직하고 회사가 있는 은평구로 이사를 했다. 화근이는 버스 기사 중에서도 中고참의 반열에 오르고 있었고, 칠닥이는 노동조합에 간부가 되어 후생부장을 맡았다. 이 시기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라는 시민운동에도 참여하면서, 사회적인 의식이 깨이는 계기가 된다.
“무리해서 그래요! 일을 줄여야 합니다.”
의사는 칠닥이 손목을 살핀 후에 내린 결론이다. 언젠가부터 칠닥이 손목에 혹이 불거져 올랐다. 혹은 점점 커져서 동전 크기만 한 것이 봉긋 솟은 것이다. 자동차로 기동성을 높인 잡화장사는 나날이 바빠져 갔었다. 오전 판매를 부랴부랴 마치고 차고지에 출근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배차를 받아서 버스를 몰고 노선에 나섰다. 어떤 때는 배차 주임이 배당받은 버스를 배차 표까지 작성해서, 출발선에 대기 시켜 놓기도 하는 것이다. 오전 운행을 마치면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미리 몰고 온 판매 차를 집에도 들리지 않은 채 거래처로 찾아 나서는 거다.
“이제, 버스는 그만두어야겠어. 두 가지 일을 해서 250은 버는데 잡화장사만 몰입하면 한 200 정도는 벌 것 같아.”
아이 엄마에게 사표 내겠다고 선언을 했지만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승합차 베스타를 기아 자동차의 1.4t 와이드 로드 화물차로 바꿨다. 아무래도 더 큰 차가 필요했다. 차 번호는 3749이다.
잡화장사,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서 칠닥이로서는 몸도 편해졌고 시간적 여유도 많아졌으나 아이 엄마와의 갈등은 한층 더 잦아져서 급기야는 이혼, 이혼! 소리가 서로의 입에서 불거졌다. 칠닥이는 집에 들어가기가 점점 싫어져만 갔다.
“이제 와서, 빚을 다 갚으니 마누라를 버리겠다는 건가?”
심각해지자 장인, 장모가 급하게 올라왔다.
“자네는 결혼식에서 한 약속을 어기자는 거네?”
두 노부부의 핀잔이 쏟아졌지만, 그 모습이 그분들과는 마지막이었다.
얼마 후에 1.4t 외이드로드, 기아 타이탄 3749호 탑차는 두 아이를 태우고 성남을 거쳐서 청계산을 넘어 안산으로 향하고 있다. 아이 엄마와 나눈 살림살이도 실려 있다.
칠닥이는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아~빠! 하고 나하고오 오~ 만든 꼬옷 밭에 봉숭화도 채송화도 하안창 입니다~”
칠닥이가 양부모와 형 개동이외 막내가 한동네에 사는 안산 상록구 수암동으로 내려감으로써 한 가지 잘 된 것은 천년, 만년 백수인 개동이가 자기도 잡화장사를 해 보겠다고 나선 점이다. 물론 칠닥이의 끈질긴 설득이 있었지만 개동이 아내로서는 횡재수를 만난 셈이다. 새 차에 핸드폰까지 개동이 손목을 끌고 다니며 다 준비해 주었다. 개동이 차는 기아 자동차에서 봉고 시리즈 대신에 개발한 뉴프런티어 1t 화물 탑차, 1347호이다. 다행히 개동이는 수단도 있었고 수입도 점차 늘어 갔다. 마누라에게도 사람대접을 받게 되자 나날이 자신감이 충만해져 갔다.
“야 야, 칠닥아! 아 들, 교육 좀 똑바로 시키거래이 어 이!~ 저 봐라. 공부는 한 개도 안 하고, 해 종일 나가 다니는 거!”
난생, 처음으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조금씩 벌게 되고 마누라 입이 가로로 찢어지자, 개동이는 집안에 맏이로서 어른 노릇을 하기 시작하였다. 특히나 결손가족이 된 두 아이에게는 가혹하여 큰아빠 소리만 나와도 앞다투어 화장실로 숨고는 했다. 그런 현상은 평소에 품고 있던 귀농을 결심케 하였다. 틈틈이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교육도 받고 현장도 실습하면서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에서 시골 생활을 시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아이들이 간섭받지 아니하고 행복해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밤이 늦은 어느 하루에, 개동이가 술이 잔뜩 취해서 갑자기 들여 닥쳤다. 그리고는 칠닥이의 멱살을 잡고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
“촌으로 가고 싶으면, 엄마, 아부지를 니가 모시고 가야 해!”
노부부와 칠닥이의 아들딸, 개동이의 딸, 그렇게 세 아이가 함께 그 광경을 생생히 목격하고 있었다.
“걱정 마소. 이미 그래 생각하고 인니더!”
개동이는 딸의 손을 잡고 승리자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칠닥이가 아이들과 먼저 내려가서 집 정리를 끝내면 양부모가 내려오기로 하고 살림살이 한 차 가득 실었다.
“아빠 말 잘 듣고 공부 열씨미 해 어이?”
개동이는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위압적인 말을 하며 7,000원짜리 수박 한 통을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제 작년에 성남 청계산을 넘어온 3749호 타이탄 1,4t 탑차는 전라도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내 달렸다.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아이들 표정이 전라도가 가까워 지면서 불안해하는 기색이 더 역력해져 갔다.
칠닥이는 또 노래를 불렀다.
“아 아빠가 매어 주으신~ 새에끼 주울~ 따라 나팔고오치 아름답게 피이이었습니다 아~”
변산에 내려가서 접한 차는 현대 자동차의 2.5톤 마이티 냉동 탑차이다. 4456호이다.
이제 칠닥이가 이 차로 변산에 있는 생산공동체의 농산물을 실어서 전주에 있는 소비자 공동체로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전임자인 김효중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면서 일정이 없는 날에는 농가를 돌면서 품을 팔았다. 그날은 이장댁 고추심기에 동원되어 일 마치고, 늦은 저녁을 아이들에게 차려 주는 중이다.
“에고 야 야 내사 변산에 안 내려 갈란다!”
“왜요?”
“여 게, 동네 할매들이 촌에 가면 고생하다꼬 가지 마라 칸다.”
“아부지는 요?”
“아부지야, 내가 안 가믄 맹 못가는 기지 뭐.”
어머니의 배신이었다. 일신에 편함을 택하신 거고, 개동이와는 무슨 거래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허~ 거동이 불편한 아부지 땜에 편의시설 맹그느라 고생을 한 기 얼마인데, 이제 와서...)
허망한 마음에 깡소주를 큰 잔으로 두 번이나 마셨다.
잠깐 잠들었나 싶은데 전화가 요란스럽게 울었다.
“형님, 춘섭인데요, 여기 부안에 내리니 격포 가는 버스가 막차까지 다 끊겼네?”
시계는 밤 아홉 시를 넘기고 있는데 귀농 교육의 동기인 황춘섭의 약속이 없는 방문이었다. 칠닥이가 변산으로 오기까지 답사도 같이 오고 하던 뜻이 통하던 총각이었다.
“기다려라! 내 차 몰고 나가마.”
아까 어머니의 섭섭한 말씀을 지우려는 듯이 빠르게 차를 몰았다. 가로수가 귓전을 순식간에 스쳐 가기를 한참이나 되었는가 하는데 저 멀리 도롯가에 검은 제복이 얼핏 얼핏 하였다.
“정지! 정지!”
음주운전 단속반이다.
“더! 더, 더, 더…….”
운전면허 취소 사건은 칠닥이에게 생계 수단을 뺏는 모진 형벌이었다. 애초에 귀농을 결심한 동기가 여기 한울 공동체에서 농산물 운반을 담당하는 간사를 구하는 중이었고, 칠닥이로서는 월 80만 원의 월급이 시골에서 민생은 일단 해결되는 발판인 셈이다. 그러면서 차차 농사로 자립을 할 생각이었다. 귀농한 지 한 달 만이다.
“오 칠닥 씨요?”
면허증이 차압 당하고 며칠이나 흘렀을까, 부안경찰서 민원실의 여순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진술서를 살피던 중, 당신은 면허가 취소되면 생계에 문제가 있겠더라. 방법을 가르쳐 줄 터이니 전북경찰서로 찾아가서 민원을 한번 넣어봐라. 하는 고마운 귀띔이었다.
희미한 희망을 품고는 전주에 있는 전북경찰서로 찾아가서 반나절을 기다리고, 반나절 동안 구구절절 진정서를 작성하여 국무총리 민원실로 올렸다.
정부 1호 누런 봉투로 답신이 우편으로 도착하기는 그로부터 두 달 후였다.
떨리는 손으로 뜯어 본 총리실 답신은,
<귀하의 개인 사정은 딱 하나, 사회적인 기강 확립 차원에서 구제는 불가함!>
세간에는 국무총리 김종필의, 정치자금 100억 원 수수설로 한 참 시끄럽던 그 시기였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다시 돌아갈 여력도 남지 않는 상태이다. 아직은 어리고 여린, 아들과 딸, 두 고생보따리를 들쳐 맨 채 맨발로 맨땅에서 고난의 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진절머리 나는 행군은 칠닥이가 변산을 떠나는 오 년 가까이 질기게도 이어졌다.
면허증을 잃은 3749호는 고철값으로 중고차 중개인에게 넘겨졌다.
운전면허 취소로 약속된 생계 수단이 사라지자 맨발의 행군은 지체없이 닥쳤다. 뒷집의, 김성희의 소개로 겨울에만 한시적으로 가동하는 해태공장에 잡부로 취직했다. 칠닥이가 주간에 16시간을 일하고 성희는 야간 8시간을 하는 2교대 방식이다. 현대 자동차의 마이티 3t, 2431호 트럭이 포구의 물때에 따라 매일 경매 시간이 달라지는 데에 맞추어 김을 실어 왔다. 생김을 엄청나게 큰 탱크에 붓고 기계로 젖어가면서 풀어, 여러 공정을 거친 후에 김 제조기까지 보내는 작업을 잡부가 할 일이다. 그다음에 제조기에서 상품화된 마른김을 상자에 담아 포장하고 창고에 적재하는 일도 역시나 잡부의 일이다.
“에이~ 워 어데 돌려, 먹을 게 없어 근무시간을 돌려먹어야?”
이 백 년이 어처구니없다며 한탄을 하였다. 칠닥이가 김 공장 일을 끝내고 다음 김철이 되는, 그러니까 1년 후에나 안 사실은, 본래 김 공장의 근무시간은 주간 12시간, 야간 12시간이라는 것이다. 성희는 자신의 4시간을 객지에서 온 칠닥이에게 얹은 것이었다. 능청스러운 속임수였다.
그랬던 성희는 또 다른 일자리를 제안한다.
“활어차! 생물고기 싣고 날아다니는 차 말이여 함, 해 볼치여?”
“울메 주니껴?”
“180!”
“와, 당까 괘안네. 며칠 놀고?”
“하루도 안 놀아!”
“하루도? 그라믄 아프면, 우째?”
“야~ 이, 거그 일하믄 안 아파~아~”
칠닥이는 방아를 찧는 정미소에 일을 맡았다. 사장은 김 공장을 하는 윤 덕섭이 양반이다. 가을에는 정미소를, 겨울에는 해태공장으로 촌에서는 알부자며 부안군 군의원이기도 하다. 덕섭이 양반은 일등 농사꾼도 마다하는 중노동 중에도 중노동인, 정미소 일을 지원한 칠닥이가 고마웠는지,
“김 공장에서부터, 자네하고 나하고는 인연이 있는 갑마 안?”
하면서 자신의 고생한 과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정미소 차는 김 공장에서 쓰던 마이티 2431호이다. 칠닥이는 네 바퀴가 달렸으니 차라고 할 정도의 그놈으로 촌 구석구석을 돌면서 나락을 실어 오고, 쌀을 실어다 주고 하였다. 한 달을 일을 하니 열 손가락의 열 손톱에 빠짐없이 피멍이 맺혔다. 칠닥이 생애에 가장 극심한 노동이었다. 감히,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고통에 비유하기도 했다.
“형니 임, 요 차를 말이요오~ 몰고 다니셔! 촌에서는 차가 있어야 한다 말임씨.”
“아니 자네는 어쩌고?”
“나~ 야, 오늘 밤에 여그 땅을 뜬다 말임씨 이!”
백연이 동생, 천연이가 노름빚에 시달리다가 야반도주를 하면서 섞을 대로 섞어서 뒷바퀴 흙받이는 종잇장처럼 얇아져서 너덜너덜한 주인 없는 무적 차, 화물차를 칠닥이에게 강제다시피 맡겼다. 현대 1t 포토 화물차, 8277호이다.
일방적인 권투 시합은 마지막 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도전자, 오칠닥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기진맥진하여 허우적거리는 팔을 허공을 젖고 있지만 맥없는 바람만 일다가 이내 사그라지고 만다. 열심일수록 체력만 소모될 뿐이다. 링 위에 한 명, 링 아래에 두 명의 심판은 이미 오래전에 고개를 가로로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이제, 시합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리면 칠닥이는 패배를 가득 안은 채 쓸쓸히 링을 내려갈 것이다.
“하고, 난 몰은당께? 오형이 받았쓰께 오형이 알아서 할 일이여~ 어!”
늘 그랬지만 사람 좋은 백연이가 동생 천연이 이야기만 나오면 냉정해졌다. 칠닥이가 결국은 변산을 뜨기를 결심하고, 닭의 갈비뼈와 같은 8277호 무적 차를 어쩔까 하고 백연이한테 의논을 보내니 그는 애초에 싹을 자르고 말았다.
딸애는 작년에 제 엄마에게 스스로 떠났고, 아들은 극심하게 반항하는 걸 설득하고 달래고 하여 역시 제 엄마에게 보냈다. 8277은 인적이 드문 산모퉁이에 세우고 안녕을 고했다.
눈 많은 변산에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날 칠닥이는 격포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홀로 몸을 실었다.
현대 시절에, 신발과 같은 자동차를 칠닥이가 어느 곳에서 어떤 운전대를 잡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또 잡게는 될 것이다. 생거 부안이라고, 부안의 깊숙한 변산에서 수많은 한을 켜켜이 쌓아둔 채로 시외버스는 칠닥이를 싣고 앞으로 달리고 있고, 추억은 뒤로 멀어져가고 있다.
삼일장을 맞은 칠닥이의 시신은 이제 화장만 남겨 두었다.
흠칫 칠닥이로서는 자신이 불구덩이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몸서리쳐졌다. 그래도 며칠 동안 자신의 혼령이 장례식장을 떠돌며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회상에 잠겼다는 순간이 문득 아쉬워진다.
“혹시, 내 생애를 아쉬워하는 게 아닐까?”
그것은 죽은 칠닥이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얼마나 죽기를 원했던가. 지신의 소원대로 뇌졸중으로 조용히 순간에 죽었는데 인제 와서야 후회하는 심정이 든다는 것은 혹시라도 누가 눈치챌까 봐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화장장에는 많던 문상객은 다 사라지고 어머니 봉순이와 아들, 강하. 그리고 딸, 하정이. 하정이 뒤편에 멀찌감치에 아직은 생존해 있는 칠닥이가 무표정하게 지켜보고 있다.
자세히 보자면 살아 있는 칠닥이 뒤에는 오 부자가 보일 듯 말 듯, 있는 듯 없는 듯 알 수 없는 형상이 희미하다. 그리고 오부자 뒤편으로 점점이 많은 영혼이 꼬리에 꼬리를 길게, 길게 눈이 아플 정도로 멀어져 있다. 한 줌의 가루로 변한 칠닥이의 시신을 강하가 받쳐서 들고 하정이가 소복 바람으로 뒤따른다.
어머니 봉순이는 보이지는 않는 데서 훌쩍거리는 흐느낌만 허공을 지르고 있다. 칠 남매의 나머지 형제들은 보일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저마다 살고 있을 터이다. 작은 배에 오른 강하와 하정이는 아버지의 가루를 강물에 가만, 가만 뿌렸다 . 다 부려진 뼛가루를 담은 빈 함을 물 가득 담아서는 강물 속으로 밀어 넣는다. 물 가득한 함은 물방울을 뿜으며 맴돌며 가라앉는다.
진공관 티브이의 브라운관에 전원이 끊어지면 환하던 화면은 이내 검어지고 마지막에 다이아몬드형의 불꽃을 한 번 튀기며 모든 게 사라지듯이 칠닥이 인생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의 회상도 함께.
21쪽 295매.
(현대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