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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체반(心廣體胖) 덕스런 행동이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한다
오후 햇빛이 가득한 문수선원 큰방에 여느 때보다 많은 스님들이 방을 채우면서 큰스님께 삼배를 올리셨다.
“새해 첫날인데 참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큰스님이 고마워 하셨다.
“안 빠지려고 원을 세웠습니다.”
스님들이 말씀에 큰스님이 더욱 흡족해하시며 힘있게 말씀하셨다.
“한달에 한 번씩은 그렇게 내 자신을 묶어 놔야 정신이 팔팔 살아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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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스님이 오늘 아침에 몇 년째 듣는 큰스님의 화엄경 강설 씨디를 듣다가 ‘지혜와 자비를 동등하게 생각하라’는 부분에서 크게 깨달았다고 말씀하셨다.
‘스님 같은 분이 내게 제일 큰 공양’이라고 하면서 고마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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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학스님이 오시자 반가와 하셨다.
“용학스님 와야지, 용학스님 안오면 말짱 황이야.”
어제는 무작정 용학스님이 계신 수암선원에 가시려고 했었다고 곁에서 지혜월 보살님이 귀띔하셨다.
“이제 팔자가 펴가지고 얼굴에 빛이 나네.”
“아닙니다, 스님.”
“아니야, 심광체반이라고 해서 마음도 넓어지고 몸도 살찌고 그러는 거지.”
곁에서 보살님들이 웃으며 ‘살이 찌는 것은 좀’하고 말씀드리자
“살이 좀 쪄야 돼.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
하고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용학스님이 큰스님은 요즘 어떠신지 안부를 여쭙자
“용학스님 없는 것 빼고 다 괜찮아.”하셨다.
“기름 푹 푹 때면서 따뜻하게 지내요.”
하고 큰스님이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예, 수암은 햇볕도 좋습니다.”
“햇볕도 좋고. 불은 잘 들어오지? 기분이 좋으니까 만사가 형통이지.”
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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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좋아보이시네요.”
새해 인사차 오신 이진두 기자님이 조용히 지켜보시다가 큰스님께 말씀하셨다.
“여기 내려와서 공부하는 스님들 보면 힘이 없다가도 힘이 생겨요.”
“그렇지요.”
“내 사는 힘과 보람이 여기 다 있으니까, 공부하는 이들이 너무 고맙고.”
하면서 전국에서 스님들이 온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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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아 좋다. 모두가 부처님의 공덕이다.”
46권째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집에 ‘佛 功德’이라고 사인을 해주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오늘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46권 점안식을 간단히 봉행하고 본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품 이름이 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法品)이다. 불부사의법품 1이 있고 2가 있는데 그 중 첫 1권째다.
서문
불가사의하여라,여래(如來)이시여!
불가사의하여라,응공(應供)이시여!
불가사의하여라,정변지(正遍知)이시여!
불가사의하여라,명행족(明行足)이시여!
불가사의하여라,선서(善逝)이시여!
불가사의하여라,세간해(世間解)이시여!
불가사의하여라,무상사(無上士)이시여!
불가사의하여라,조어장부(調御丈夫)이시여!
불가사의하여라,천인사(天人師)이시여!
불가사의하여라,불세존(佛世尊)이시여!
아무리 불가사의하다 한들 어찌 그 공덕을 다 찬탄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사의하여라.
불가사의하여라.
오직 불가사의할 뿐입니다.
2016년 8월 15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여래 응공 정변지 등등 부처님 십호를 쭉 나열했지만 이 불가사의한 실체는 결국 우리다. 불가사의하다고 읊조리는 우리들 자신이다. 모든 것을 다 감지하고 느끼고 보고 듣고 아는 이 사실 너무나도 명백한 이 사실 뚜렷한 이 사실만이 정말 불가사의중의 불가사의다.
오늘부터 만 3년이면 여러분에게 매달 한 권씩 이 책을 공양 올리는 일이 끝나게 된다. 3년까지는 잘 버텨야 된다. 그 때까지는 우리 강의 진도도 상당히 많이 나갈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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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경전연구회가 발족된 지가 만 10년이 됐다. 염화실지 첫 페이지에 보면 <문수경전연구회 연혁>이라고 해서 2008년 1월 7일 법화경을 시작해서 마쳤고, 2009년 5월 11일 임제록을 시작해서 마쳤고, 화엄경은 2010년 3월 1일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혹시 이 자리에 2008년 법화경 첫 시간부터 오신 분이 있는가?
오늘은 안 나오셨지만 그 이전부터 나하고 강의에 인연된 스님이 있는데 천안에 있는 성엽스님이시다. 서울 미타사 대승암에서 스님들의 모임이 결성이 되어서 상당한 시간 공부를 하였는데 내가 거기에 가서 임제록을 강의했다. 그 내용을 아는 스님들이 부산에서도 공부를 하자고 해서 부산에서 공부를 시작한지가 벌써 만 10년이다.
처음 그 때 서울에서 입승을 보시던 지장스님이 여기서도 입승을 보셨고, 정일스님이 또 입승을 몇 년 하셨다. 또 정오스님이 맡아서 이렇게 무난하게 운영하셔서 어느새 만 10년이 되었다. 오시는 스님들이 더러 바뀌기도 했지만 10년 세월을 시종일관 이 정도의 숫자로 꾸준히 채워서 공부한다고 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희유하다.
스님들의 강원공부 4년 동안에도 계속 사람들이 들쑥날쑥 바뀌고, 공부도 들쑥날쑥이다. 지금은 말세고 세상이 하도 변화무쌍해서 스님들의 수행이라든지, 공부하는 정신 내지 여러 가지 사항들이 참 어렵다.
그래도 여기는 자격증을 주는 것도 아니고, 주지 나가는데 고과(考課)점수가 반영되는 것도 아닌데 오로지 순수한 신심으로 부처님 제자로서 부처님 법을 공부 하겠다고 하는 그 마음 하나 가지고 스님들이 매달 한 번씩 이렇게 와서 공부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자랑스럽기도 하고 희유한 일이기도 하다.
첫째 내가 여러 스님들에게 너무 고맙게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이 경전 한 구절 한 구절의 표현을 적절하게 현대에 맞게 잘 설명해 드릴 수 있을까? 자나 깨나 그 생각 하나로 이렇게 해오고 있다.
내가 오랜 세월 절집안에 살았기 때문에, 강원(講院)이든지 선방이든지 아니면 친목 단체가 됐든지,승속(僧俗)을 막론하고 무수히 많은 모임을 겪었다.
어떤 단체에서 소임자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면 그 단체가 깨지기 일쑤고, 또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처음 지장스님도 광주에서 다니셨는데 정말 순수하게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소임을 보았고, 정일스님도 아주 선량하고 능력도 있는 스님인데 그 스님은 직지사 교무, 해인사 교무, 송광사 교무, 전국 사찰 큰 사찰 교무만 곳곳에서 불려 다니면서 소임을 볼 정도로 인기 있는 좋은 스님이었다. 두 스님이 몸이 좀 불편해서 그만두게 되었고 지금 정오스님이 그 후에 맡아서 상당한 세월을 소임을 보고 있다. 정오스님 당신이 유능해서 딴 데 일도 많고, 신경 쓸 데도 많음에도 가능하면 공부에 빠지지 않으려고 하고 그러면서 또 내가 제일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절대 일을 안 만들고, 현상유지만 그대로 해나가는데 물 흐르듯이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고맙다. 공부 하는데 지장 없이 마장장애 없이 무사하게 물 흐르듯이 흘러가도록만 그냥 두는 것,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 이것이 어려운 일이다.
소임 사는 사람들은 일을 만들려고 하고 또 거기에 개인의 어떤 생각을 집어넣어서 어떻게 하려고 하고, 잘 하려고 하고, 잘 하려고 하다가 늘 문제가 생긴다. 어느 모임을 막론하고 모임마다 늘 그런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순수하게 공부하는 모임이고 불보살의 가호지묘력(加護之妙力)으로 이렇게 공부하는데 아무 티가 없이, 마장장애 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 만 10년을 맞은 이 마당에 내가 돌이켜 보니 여러 소임자들의 그 어떤 고마움이 있어서 이렇게까지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별 변함없이 이대로만 나아가지리라고 본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九
十廻向品 二十五之七
(1) 積集一切善根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等隨順一切衆生廻向고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隨所積集一切善根하나니 所謂小善根과 大善根과 廣善根과 多善根과 無量善根과 種種善根과 微塵數善根과 阿僧祇善根과 無邊際善根과 不可思善根과 不可量善根과 佛境界善根과 法境界善根과 僧境界善根과 善知識境界善根과 一切衆生境界善根과 方便善巧境界善根과 修諸善心境界善根과 內境界善根과 外境界善根과 無邊助道法境界善根과 勤修一切捨善根과 立勝志究竟持淨戒善根과 一切捨無不受堪忍善根과 常精進心無退善根과 以大方便으로 入無量三昧善根과 以智慧善觀察善根과 知一切衆生心行差別善根과 集無邊功德善根과 勤修習菩薩業行善根과 普覆育一切世間善根이니라
“불자들이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수순하는 [等隨順一切衆生] 회향이라 하는가. 불자들이여, 이 보살마하살이 가는 곳마다 일체 선근(善根)을 쌓아 모으느니라.
이른 바 작은 선근, 큰 선근, 넓은 선근, 많은 선근, 한량없는 선근, 갖가지 선근, 티끌 수 같은 선근, 아승지 선근, 한계가 없는[無邊際] 선근, 생각할 수 없는 선근, 헤아릴 수 없는 선근이니라.
부처님 경계 선근, 법 경계 선근, 승(僧) 경계 선근, 선지식(善知識) 경계 선근, 일체 중생 경계 선근, 방편의 공교한 경계 선근, 모든 선한 마음을 닦는 경계 선근, 안[內] 경계 선근, 바깥 경계 선근, 그지없는 도(道)를 돕는 법[無邊助道法] 경계 선근이니라.
모든 보시를 부지런히 닦는 선근, 훌륭한 뜻을 세워 끝까지 계율을 지니는 선근, 일체 버리는 것을 모두 받아 견디고 참는 선근, 항상 정진하는 마음이 물러가지 않는 선근, 큰 방편으로 무량한 삼매에 들어가는 선근, 지혜로 잘 관찰하는 선근, 모든 중생의 마음과 행동의 차별함을 아는 선근, 그지없는 공덕을 모으는 선근, 보살의 업(業)과 행(行)을 부지런히 닦는 선근, 일체 세간을 덮어 기르는 선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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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권제이십구(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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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공부는 역시 십회향품 제 29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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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회향품(十廻向品) 제이십오지칠(二十五之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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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쪽(화엄경 제2권 민족사 刊) 십회향품 제25지 7을 할 차례다. 십회향품이 열 한 권 반인데 그 중에 일곱 권째다. 지금까지 제6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을 일년 이상 공부했다. 열 가지 회향중에 하나의 회향만 가지고 상당히 긴 시간을 공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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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등수순일체중생회향(第七等隨順一切衆生廻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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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등수순일체중생회향은 일체 중생에게 평등하게 수순하는 회향이라는 뜻이다.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고 해서 자비희사(慈悲喜捨)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을 대한다고 하였다. 그중에 사(捨)는 평등하게 본다, 평등하게 대한다, 차별을 버린다는 뜻이다. 차별과 분별심을 버리는 마음,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이 자비희(慈悲喜)보다 더 어렵다 그래서 사(捨)가 제일 어렵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 평등하게 일체 중생을 수순한다. 자비희사 중에 사(捨)의 정신이 포함되어 있는 내용으로 정말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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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집일체선근(積集一切善根) : 일체 선근을 모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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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선근을 쌓아서 모은다고 하는 내용인데 여러 가지 선근이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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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운하위보살마하살(云何爲菩薩摩訶薩)의 :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고 :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수순하는 회향인가. 평등하게 수순하는 것은 참 어려운 주문이다.
우리는 그저 자나 깨나 분별을 하고 차별을 하고 마음속에서 나도 모르게 저울질을 하고 따진다. 상대의 상태나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나에게 대하는 것에 따라서 온갖 정보를 다 총동원해서 순식간에 마음속 컴퓨터로 정보를 뽑아낸다. ‘저 사람은 얼마짜리, 저 사람은 어떤 인격’ 이런 것을 기가 막힌 빠른 속도로 산출해서 차별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주문하기를 ‘평등하게 수순하라’‘차별과 분별을 버리고 평등하게 대하라’ 이런 주문을 우리에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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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차보살마하살(此菩薩摩訶薩)이 : 이 보살마하살이
수소적집일체선근(隨所積集一切善根)하나니 : 일체 선근을 적집한 바를 따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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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소선근(所謂小善根)과: 아주 작은 선근
대선근(大善根)과: 큰 선근
광선근(廣善根)과: 넓은 선근
다선근(多善根)과: 많은 선근
무량선근(無量善根)과: 한량없는 선근
종종선근(種種善根)과: 가지가지 선근
미진수선근(微塵數善根)과: 미진수와 같이 많은 선근
아승지선근(阿僧祇善根)과: 아승지와 같이 많은 선근
무변제선근(無邊際善根)과 : 변제가 없는 많은 선근
불가사선근(不可思善根)과: 생각할 수 없는 선근
불가량선근(不可量善根)과: 헤아릴 수 없는 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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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계선근(佛境界善根)과 : 부처님의 경계에 준하는 선근
법경계선근(法境界善根)과 : 법의 경계에 준하는 선근
승경계선근(僧境界善根)과: 스님의 경계에 준하는 선근과
선지식경계선근(善知識境界善根)과 : 선지식 경계의 선근과 불 법 승 선지식 다음에
일체중생경계선근(一切衆生境界善根)과 : 일체중생경계선근과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면 일체 중생에 준하는 선근도 꼭 필요할 것이다.
방편선교경계선근(方便善巧境界善根)과 : 우리가 선근을 닦되 거기에 아주 적절한 방편 선교가 있어야 된다고 하는 뜻으로 방편선교경계선근과
수제선심경계선근(修諸善心境界善根)과 : 모든 선을 닦는 마음의 경계 선근
내경계선근(內境界善根)과 : 내경계 선근
외경계선근(外境界善根)과: 외경계 선근 안팎의 모든 경계에 맞는 선근이다.
무변조도법경계선근(無邊助道法境界善根)과 : 가히 없는 도를 돕는 법의 경계 선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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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수일체사선근(勤修一切捨善根)과 : 근수일체사 선근 여기 또 사(捨)가 나온다. 일체 사를 부지런히 닦는 선근 분별과 차별을 버리고 평등하게 중생을 대하는 선근과
입승지구경지정계선근(立勝志究竟持淨戒善根)과: 아주 훌륭한 뜻을 세워서 구경에 청정한 계를 가지는 선근과
일체사무불수감인선근(一切捨無不受堪忍善根)과 : 일체사에 무불수감인 선근, 일체 모든 것을 버리는 선근이다. 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이기 때문에 사(捨)가 자주 나온다. 사는 등이라는 말과 그 뜻이 같다. 평등할 등(等)자나 버릴 사(捨)라고 하는 것은 ‘차별을 버린다’는 것으로 속뜻은 평등이라는 의미다.
모든 것의 일체 차별을 버림에 있어서 받아들이지 않음이 없는 감인(堪忍)선근, 참고 견디는 선근이다. 뜻밖에도 화엄경에 감인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사바세계를 번역하면 감인세계라고 하는데, 견디고 참는 선근과
상정진심무퇴선근(常精進心無退善根)과: 항상 정진을 부지런히 해서 마음에 퇴보가 없는 선근과
이대방편(以大方便)으로: 큰 방편으로
입무량삼매선근(入無量三昧善根)과: 무량삼매에 들어가는 선근과
이지혜선관찰선근(以智慧善觀察善根)과 : 지혜로써 잘 관찰하는 선근과
지일체중생심행차별선근(知一切衆生心行差別善根)과 : 일체 중생 심행 차별을 아는 선근, 이선근이 중요하다. 일체 중생의 심행차별이다. 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이 움직이고 어떻게 생각을 하고 속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평가를 하고 이것이 전부 일체 중생 심행이다. 우리가 똑같은 환경에서 화엄경을 공부한다 하더라도 각자 자기 지식이나 수행이나 살아온 배경에 따라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다르다. 중생들의 심행차별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여러 가지다. 그런 것을 다 아는 선근과
집무변공덕선근(集無邊功德善根)과 : 가없는 공덕을 다 모으는 선근과
근수습보살업행선근(勤修習菩薩業行善根)과 : 보살업행을 부지런히 수습하는 선근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다. 보살이 해야할 업행을 부지런히 수습해서
보부육일체세간선근(普覆育一切世間善根)이니라 : 일체 세간 사람들을 널리 다 감싸주고 키워주고 보듬어 주고 쓰다듬어 주는 선근이다. 부육이라고 하는 말이 그런 뜻이다.
선근의 종류가 여기에 서른 한 가지가 소개 되었다.
(2) 善根修行成德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於此善根에 修行安住하며 趣入攝受하며 積集辦具하며 悟解心淨하며 開示發起時에 得堪忍心하야 閉惡趣門하며 善攝諸根하야 威儀具足하며 遠離顚倒하야 正行圓滿하며 堪爲一切諸佛法器하야 能作衆生福德良田하며 爲佛所念하야 長佛善根하며 住諸佛願하야 行諸佛業하며 心得自在하야 等三世佛하야 趣佛道場하며 入如來力하야 具佛色相하야 超諸世間하며 不樂生天하고 不貪富樂하며 不着諸行하야 一切善根으로 悉以廻向하며 爲諸衆生功德之藏하야 住究竟道하야 普覆一切하며 於虛妄道中에 拔出衆生하야 令其安住一切善法하며 遍諸境界하야 無斷無盡하야 開一切智菩提之門하며 建立智幢하야 嚴淨大道하며 普能示現一切世間하야 令除垢染하며 心善調伏하야 生如來家하며 淨佛種性하야 功德具足하며 作大福田하야 爲世所依하며 安立衆生하야 咸令淸淨하며 常勤修習一切善根이니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 선근을 닦아 행하고, 편안히 머물고, 나아가 들어가고, 거두어 가지고, 쌓아 모으고, 마련하여 갖추고, 깨달아 알고, 마음이 깨끗하고, 열어 보이고, 발(發)하여 일으킬 때에 견디고 참는 마음을 얻고 나쁜 갈래의 문을 닫아 버리느니라.
여러 근(根)을 잘 거두어 위의(威儀)가 구족하며, 전도함을 멀리 떠나서 바른 행(行)이 원만하느니라.
능히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의 그릇이 되고, 또 중생들의 복덕의 좋은 밭을 짓느니라.
부처님의 호념하심이 되어 부처님의 선근을 증장하며, 모든 부처님의 서원에 머물러 모든 부처님의 사업을 행하느니라.
마음이 자재함을 얻어 삼세의 부처님과 평등하며, 부처님의 도량에 나아가 여래의 힘에 들어가고, 부처님의 상호를 갖추어 모든 세간을 초월하느니라.
천상에 나기를 좋아하지 않고 부귀를 탐하지 않으며 모든 행(行)에 집착하지 않고 일체 선근을 모두 회향하느니라.
모든 중생들의 공덕장(功德藏)이 되고 구경의 도[究竟道]에 머물러 모두를 널리 덮어 주느니라.
허망한 길에서 중생을 구해 내어 모든 선(善)한 법에 편안히 머물게 하느니라.
여러 경계에 두루 하여 끊임도 없고 다함도 없으며, 일체 지혜에 나아가는 보리의 문을 열고, 지혜의 깃발을 세워 큰 도를 깨끗이 장엄하느니라.
일체 세간에 두루 나타나서 물든 때를 제거하게 하며, 마음이 잘 조복되어 여래의 가문에 나며, 부처님의 종성(種性)을 청정히 하여 공덕이 구족하느니라.
큰 복전을 지어 세상에서 의지할 곳이 되며, 중생이 편안히 머물러 모두 청정하게 하며, 항상 일체 선근을 부지런히 닦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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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근수행성덕(善根修行成德): 선근을 닦아 덕을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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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은 내용들이 여기 계속 소개된다. 서른 한 가지 선근 종류를 일단 소개해 놓고 그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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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어차선근(於此善根)에 : 이 선근에
수행안주(修行安住)하며: 수행해서 거기 편안히 머물며
취입섭수(趣入攝受)하며: 거기에 나아가서 들어가고 또 섭수하며
적집판구(積集辦具)하며: 쌓고 마련하며, 판구는 마련한다는 뜻이다. 적집하고 마련하며
오해심정(悟解心淨)하며 : 깨달아 알아서 마음이 텅 비어서 청정하며
개시발기시(開示發起時)에 : 열어 보이고 선근을 일으킬 때에
득감인심(得堪忍心)하야 : 참고 견디는 마음을 얻어서 벌써 감인이 두 번째 나왔다.
폐악취문(閉惡趣門)하며 : 악취문을 다 닫아버린다. 악의 갈래, 좋지 아니한 길, 나쁜 길, 그런 문을 다 닫아버린다. 그렇게 하려면 견디고 참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감인대(堪忍待)는 내가 참 좋아하는 구절이다. 사실은 감인대 그 글자 석 자를 가지고 버텨오는 중이다.
견디고 참고 기다리는 것 무슨 일을 하든지 그 길 밖에 없다.
수행이 됐든 사업이 됐든 무엇이 됐든지 빨리 뭐든지 이루고자 하는 욕심에서 너무 서두르면 일을 망친다. 맹자에 보면 ‘무약송인(無若宋人) 송나라 사람같이 하지 말라’고 하였다. 송나라 사람은 벼가 빨리 안자란다고 얼른 자라라고 벼 싹을 쑥쑥 뽑아놓았다. 그 이튿날 가보니 벼는 다 말라 죽어버렸다. 사람 사는 것은 옛날에도 똑같다. 매사에 그렇다.
절을 확장하는 일이라든지 포교를 잘 해서 신도를 많이 불린다든지 절을 발전시키는 일이라든지 개인의 수행이라든지 기타 하찮은 공부라 하더라도 언제나 견디고 참고 기다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 견디고 참고 기다리는 것, 감인대(得堪待)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절대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라는 교훈이다. 감인대로 잘못된 길을 다 막아버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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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섭제근(善攝諸根)하야 : 모든 근을 잘 섭수해서, ‘관리해서’라는 뜻이다. 제근을 전부 잘 관리해서
위의구족(威儀具足)하며 : 위의가 구족하며, 여기서 제근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제근이라는 뜻이다. 안이비설신의를 잘 관리해서 위의가 잘 갖추어지며, 위의가 구족해야 한다. 말을 함부로 한다든지 행동이나 생각을 함부로 한다든지 해서는 안된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에서부터 기타 여러가지 생활상에 있어서 어떤 일들을 잘 관리해야지 한 순간도 실수가 있으면 그만 저만치 물러가게 된다. 그래서
원리전도(遠離顚倒)하야: 원리전도하야, 잘못된 견해를 멀리 떠나서
정행원만(正行圓滿)하며 : 바른 행이 원만해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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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위일체제불법기(堪爲一切諸佛法器)하야 : 능히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의 그릇이 되어서, 이럴 때 감(堪)자는 견딜 감이 아니라 ‘능히’라는 뜻이다. 능히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그릇이 된다. 법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늘 희망하는 바가 이것이다. 법의 그릇이 얼마만치 크고 얼마만치 법그릇다우냐.
능작중생복덕양전(能作衆生福德良田)하며 : 능히 중생들의 복덕의 훌륭한 밭을 지으며. 우리가 가사를 해탈의(解脫衣) 또는 복전의(福田衣)라고 한다. 밭두둑으로 스님들의 가사가 만들어졌다. 가사의 조(條) 라고 하는 것이 오조 칠조 구조 십일조 전부 복전을 상징한다.
여기도 그대로 나왔다. 중생복덕의 양전 중들에게 복덕이 되는 좋은 밭이 되어야 한다. 중생들에게 복덕이 되는 좋은 밭을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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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불소념(爲佛所念)하야 : 부처님의 염려하는 바가 되어서
장불선근(長佛善根)하며 : 부처님의 선근을 기르며
주제불원(住諸佛願)하야 : 모든 부처님의 원력, 부처님의 소원 거기에 머물러서
행제불업(行諸佛業)하며 : 모든 부처님의 업을 행하며, 불업(佛業)이 있다. 신기한 일이다. 우리가 보통 업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데 화엄경에서는 불업이라고 하였다. 내가 화엄경의 이세간품(離世間品)을 제일 좋아하는데 이세간품에 가면 여러 가지 업이 소개된다. 지혜의 업이 있고 그 업을 벗어나는 반대적인 일들도 다 나온다. 마업, 마구니의 업, 지혜의 업, 불업이 다 있다. 불업이라고 하는 것을 한마디로 이야기 하면 권실쌍행(權實雙行)이다. 권(權)과 실(實) 방편과 진실을 쌍으로 행할 줄 아는 것이다.
내가 사경책으로도 만들었고 만선동귀중도송(萬善同歸中道頌)을 몇 번이고 소개하였다.
거기에는 육바라밀을 닦는 일이라든지 기타 불사를 하는 일, 부처님 앞에 공양을 올리는 일 등이 전부 중도의 이치에 맞아야 된다고 하였다. 나무나 돌로 깎아놓은 불상을 부처님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또 너무 부처님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고 하였다.
권실쌍행이다. 권과 실을 쌍으로 행하는 것이다.
만선동귀중도송에 보면 참 좋은 말이 많다.
불자들은 항상 무아(無我), 무인(無人)이라는 말을 잘 쓴다. 나도 없고 남도 없다는 말이다. 남도 없고 나도 없는 것을 잘 관찰하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서 중생을 교화해야 된다.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다면 중생 교화할 일이 없다. 진실에 있어서는 없지만 그러나 방편에 있어서는 분명히 부처가 있고 중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없는 줄을 알면서 또 중생을 잘 교화하는 것이다. 모든 법이 말로 설명할 수가 없고, 부처님도 평생 설법을 해놓고도 ‘나는 한 글자도 설한 적이 없다’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청정한 법을 항상 설해야 한다. 법의 진실에 있어서는 설할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청정한 법륜을 항상 굴려야 되는 것이 권실쌍행이다. 방편과 진실을 쌍으로 행하는 것이다.
설할 바가 없다고 진짜 법을 설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설할 바가 없다고 하는 이치는 이치로 잘 알되 청정한 법륜을 이 몸 다해서 굴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대중들의 마음을 기쁘게 할 줄 알아야 된다. 거기에는 중생을 교화하는데 피로해하거나 싫증을 내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 등등의 내용들이 불업이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모든 분야에 있어서 방편과 진실을 쌍으로 행할 줄 아는 것이다.
부처의 업이라는 것을 너무 그렇게 부담스럽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방편과 진실을 쌍으로 행할 줄 아는 것,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을 불업으로 알면 된다.
진실에 치우치고 방편에 치우치고, 치우치는 것은 전부 중도가 아니다.
치우치지 말고 쌍으로 행할 줄 아는 중도행(中道行)이 부처의 업이다.
여기 불업이라고 하는 하는 말이 나와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심득자재(心得自在)하야 : 마음이 자재함을 얻어서
등삼세불(等三世佛)하야: 삼세 부처님과 평등하게 되어서
취불도량(趣佛道場)하며 : 부처님의 도량에 나아가며 부처님 도량에 제대로 나아가려면 삼세 부처님과 똑같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백날 부처님 도량에 나아가도 부처님 도량에 나아간 것이 아니다.
입여래력(入如來力)하야 : 여래의 힘에 들어가서
구불색상(具佛色相)하야: 부처님의 색상을 갖추어서
초제세간(超諸世間)하며 : 모든 세간에서 초월하며, 여래의 힘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색상을 갖춘다. 부처님의 색상을 갖추면 전부 세간에서 초월한 입장이 된다.
그래서 능엄경에는 아난존자가 마등가 여인에게 홀려서 잘못될 뻔했다가 나중에 부처님에게 끌려 왔을 때 부처님이 아난존자에게 따졌다.
‘네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출가했느냐?’ 하고 부처님이 물으시니 ‘나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부처님의 색상을 보고 모습을 보고 거기에 반해서 출가를 했습니다.’라고 아난존자가 고백을 한다.
‘네가 나의 모습을 봤다니 뭘로 봤느냐?’
‘눈으로 봤습니다.’
‘눈으로 보고 분별한 것은 훌륭하다고 분별한 것은 뭐가 분별했느냐?’
‘마음이 분별했습니다.’
‘그 마음이 어디 있는데?’
이렇게 해서 소위 유명한 칠처징심(七處徵心) 이라고 하는 법문이 능엄경에서 시작된다.
색상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무시할 일도 아니다. 아난존자가 처음에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반했듯이 ‘정말 저런 모습은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는 것이 초제세간이다.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모습이다. 거기에서 뛰어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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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락생천(不樂生天)하고 : 천상에 나는 것을 즐겨하지 아니하고, 어떤 종교는 천상에 나는 것을 제일 목표로 삼는 종교도 있다. 불락생천하고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즐겨하지 않고
불탐부락(不貪富樂)하며: 부자가 되거나 부자가 되어서 세속적으로 아주 즐겁게 사는 것도 탐하지 아니하며
불착제행(不着諸行)하야: 모든 행에 집착하지 아니해서
일체선근(一切善根)으로: 일체선근으로, 일체선근 좋은 일을 한 것은
실이회향(悉以廻向)하며: 전부 다 회향한다. 하나도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갖는 것도 아니고 나의 안락과 내 성불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전부 일체 선근을 다 회향한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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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제중생공덕지장(爲諸衆生功德之藏)하야 : 모든 중생들의 공덕의 창고가 된다. 공덕의 창고다. 남을 위해서, 중생을 위해서 회향을 해야 그것이 중생공덕의 창고가 되는 것이다.
내가 선행을 하고 선근을 닦고 복을 지어서 그것을 내가 다 갖는다고 하면 중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고 그 사람의 것만 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중생들이 그 사람에게 의지한다 하더라도 아무 덕이 안 된다. 회향하는 그 사람에게만 덕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는 모든 중생들의 공덕의 창고가 된다는 말을 했다. 참 좋은 말이다.
주구경도(住究竟道)하야: 구경도 최고의 경지 구경의 경지인 도에 머물러서
보부일체(普覆一切)하며 : 일체 중생들을 널리 두루두루 덮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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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망도중(於虛妄道中)에 : 허망한 길 가운데서
발출중생(拔出衆生)하야 : 중생들을 전부 뽑아낸다. 중생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전부 허망한 일만 한다. 전부 허망한 일만 하는 데서 중생들을 다 뽑아내서
영기안주일체선법(令其安住一切善法)하며 : 그 중생들로 하여금, 허망한 일만 하고 있는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 선법에 안주하게 한다. 그리고
변제경계(遍諸境界)하야 : 모든 경계에 두루해서
무단무진(無斷無盡)하야: 끊어짐도 없고 다함도 없어서
개일체지보리지문(開一切智菩提之門)하며 : 일체 지혜의 보리의 문에 깨달음의 문을 열며
건립지당(建立智幢)하야 : 지혜의 깃발을 높이 세워서
엄정대도(嚴淨大道)하며 : 큰 도를 청정하게 장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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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능시현일체세간(普能示現一切世間)하야 : 일체 세간에 널리 드러내서
영제구염(令除垢染)하며: 모든 번뇌의 때와 더러움을 다 제거하게 하며
심선조복(心善調伏)하야: 마음이 잘 조복해서
생여래가(生如來家)하며: 여래의 집에 태어나며, 화엄경에 ‘여래의 집에 태어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정말 마음이 잘 조복되지 아니하면 여래의 집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불종성(淨佛種性)하야 : 부처님의 종자 성품을 청정하게 해서
공덕구족(功德具足)하며 : 공덕이 구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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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대복전(作大福田)하야: 여기도 나온다. 대복전을 지어서
위세소의(爲世所依)하며 : 세상의 의지할 바가 되며, 복을 제대로 안 짓고는 우리가 세상의 의지할 바가 못된다. 복을 짓고 그 사람이 지은 복이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더라도 잔뜩 갈무리 되어 있는 사람이라야 그야말로 세상 사람들의 의지할 바가 된다. 충분한 복전이 된다. 무엇을 하더라도 그야말로 거기에는 복전이 되는 것이다.
스님들이 복전의를 입고는 있다. 가사가 복전의다. 복전의 옷을 입고는 있지만 가사 입은 목적을 생각하고 가사의 뜻을 생각한다면 이래야 되는 것이다.
그 공덕이 구족해서 우리 자신이 대복전이 되어서 세상에 의지할 바가 된다.
안립중생(安立衆生)하야 : 중생들을 편안히 세워서
함령청정(咸令淸淨)하며: 다 하여금 청정케 하며 훌륭하게 만들며
상근수습일체선근(常勤修習一切善根)이니라 : 항상 일체 선근을 부지런히 닦느니라.
우리가 이렇게 앞에서 한구절 한구절 소개한 선근을 닦아서 무엇을 하자고 하는 것이냐? 이단락의 제목이 ‘선근수행(善根修行) 성덕(成德)’ 덕을 이루는 일이라고 했는데 ‘선근을 왜 심는가? 이러한 목적으로 심는다’ 라는 내용이다. 이 단락에서 선근을 심는 이유를 아주 잘 밝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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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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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實雙行...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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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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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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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