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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
UCLA에 한국 불교 석좌 교수직 신설코자
370만 달러 기부 약정
한국 불교를 인연으로 만난 버스웰 부부 (1)
글 | 스텔라 박 (취재기자)
지난 6월 25일, 36년간 가르쳤던 UCLA를 은퇴한 로버트 버스웰 주니어 교수와 그의 아내 크리스티나 버스웰씨를 브렌트우드의 자택에서 만났다. 석등이 놓여있고 대나무가 푸르른 정원 앞에 이르렀을 때, 번지 수를 확인하지 않고도 버스웰 교수 부부의 거처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 부부의 집안 곳곳에는 불상과 불화들이 장식돼 있고 버스웰 교수의 서재는 의자 대신 방석이 놓여 있어 한국 불교와의 깊은 인연을 말 없이도 알게 해주었다.
크리스티나 버스웰씨가 직접 키워 말린 베르베나 차(Verbena Tea)와 손수 구운 캐롯케이크를 색깔 고운 도자기 잔과 접시에 받아들고서 두 부부와 함께 햇살 잘 비추는 페리오 의자에 앉았다. 크리스티나씨는 “햇볕만 잘 비춰주고 물만 주면 아무런 투정 없이 너무 잘 자라요.” 라면서 실란트로, 민트, 테라곤 등 당장 따다가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허브들은 물론 토마토, 오이, 호박, 세라노 고추에 깻잎까지 제대로 농부 놀이를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버스웰 부부는 인터뷰를 하는 이에게도 관심을 갖고 많은 것을 물어봤다.
특히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에서 마인드풀니스 지도 교사 프로그램을 했던 나의 경험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보며 두 부부의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버스웰 부부는 완전한 이중언어 부부이다. “어떤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영어”라고 답한다.
“2가지 언어를 말한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거든요. 하나의 언어를 말할 경우의 우주가 이만큼이라면 2개의 언어를 말할 경우 그 우주는 2배 이상 더 커지는 것 같아요.” 라는 크리스티나씨의 말에 폭풍공감한다.
별다른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두 부부는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나누며 자신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려줬다. 다음은 6월의 어느 날, 은퇴를 앞둔 버스웰 교수 부부와 나눈 이야기이다.
기자: 자신 소개 좀 해주세요.
크리스티나: “저는 13살 때 미국으로 가족과 함께 이민와서 동부 뉴욕에서 살았어요. 저희 집안은 가톨릭이었지만, 한국계 미국인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던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계속 답을 찾던 중 만난 것이 불교입니다.
그래서 패션을 공부하던 저는 다시 학부에서 불교를 공부했답니다. 스토니브룩에 위치한 뉴욕주립대학에서 종교학으로 학사 과정을 다시 했어요. 그리고 콜롬비아 대학에서 불교와 한국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죠.
한국의 동국대학교에 잠시 나가 공부를 한 적도 있는데, 동국대학교에서 국제학술대회를 할 때 초청한 외국 학자들의 통역을 제가 맡았었거든요.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로버트 버스웰 교수님이었습니다.
그때가 첫번째 만남은 아니에요. 그전에 콜롬비아에서 석사 과정을 할 때 버스웰 교수님이 강의하러 오셨었는데, 그때 처음 만났었습니다. 통역을 계기로 다시 만나고 나서 결혼을 결심하고 LA로 온 것이죠. 이제 LA에서 25년을 살았네요. 로버트와 결혼한 것도 25년째에요. 불교가 우리 둘을 만나게 해준 것이죠.”
기자: 은퇴를 앞두고 계신데 은퇴 공식 행사라도 있나요?
로버트: “6월 말인 24일, 25일 이틀 동안 하루 종일 UCLA에서 저의 은퇴를 기념하는 컨퍼런스가 있어요. 저의 제자들이 꽤 많아졌는데 그 제자들이 이번에 거의 다 모여서 컨퍼런스를 하는 거에요. 이수미 교수, 김종명 교수 등 한국에 있는 제자들도 오고, 캐나다에서도 오는 제자도 있어요. 워낙 오랜 세월 동안 가르쳐서 제자들이 전 세계에서 가르치고 있거든요. 제자들이 많아져서 얼마나 컨퍼런스 스케줄을 빠듯하게 짰는지 몰라요. 그 컨퍼런스를 끝으로 이제 공식적으로 은퇴를 합니다.”
기자: 이번에 정말 거액의 도네이션을 약정하셨는데요? 그 얘기 좀 해주세요.
크리스티나: “남편의 은퇴를 앞두면서 부동산과 재산 목록을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희에게는 아이들이 없어요.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것이니 준비해야하잖아요. 우리 부부는 우리 자신을 불교에 헌신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한국 불교를 인연으로 만났고, 평생을 한국 불교에 봉사했으며, 앞으로도 한국 불교를 위해서 죽을 사람들이에요.
저도 콜롬비아 대학에서 30년 전, 한국학을 공부했는데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한국학, 그리고 한국 불교 프로그램이 너무 미약하다 보니 한국인으로서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도 한국학, 그리고 한국 불교학을 좀 번듯하게 만들어놔야겠다 싶더라고요.
공부할 때 영어로 된 한국 불교 자료, 한국학 자료가 너무 없어 서러웠던 적이 많았었습니다. 한국 불교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엔 거의 남편 책으로 공부를 했어요. 그 책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되었죠.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희는 그 책을 인연으로 만났던 것 같아요. 그만큼 저는 그 책을 좋아했어요.
남편은 젊은 시절인 70년대, 한국 송광사에서 5년간 스님 생활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니 한국 불교와의 뿌리가 얼마나 깊겠어요? 남편은 그후 학교에서 일하며 학교를 위해, 한국 불교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불교의 석좌 교수 자리가 미국에 한 군데도 없는 거에요. 그래서 UCLA의 한국불교 석좌교수직 신설을 위해 저희 부부가 370만 달러를 약정기부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UCLA에 한국 불교 석좌 교수 자리를 확보하는 것에 이처럼 열정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 한 한국인 기독교 신자가 UCLA에 거액을 기부하면서 ‘한국 기독교학(Korean Christianity)’ 자리를 만들었어요. 학교 입장에서 볼 때엔 불교 클래스 특히 한국 불교학 클래스를 택하는 사람이 한국 기독교학 클래스를 택하는 사람보다 많았지만, 뜻이 있는 사람이 거액의 기부금을 내면서 ‘한국 기독교학’ 석좌교수 자리를 보장해달라고 하니 따르게 된 것이죠.
로버트는 수년 전, UCLA에 한국학과 한국불교학과를 설립했고 실제적으로 개발한 사람이 사람이에요. 그리고 한국학 연구소(Center for Korean Studies)와 한국 불교학 연구소(Center for Korean Buddhist Studies)도요.
하지만 남편이 은퇴하면 앞으로 UCLA에 한국 불교를 강의하는 사람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불교 강좌를 보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측에 저희 부부의 그런 바램을 알리고 저희 집이라는 자산으로 한국 불교 석좌교수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전달했습니다. 그랬더니 학교에서 그 자리를 만들려면 370만 달러가 필요하데요. 그런데 저희에게 당장 그 돈이 수중에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저희 부부가 죽을 때 이 집을 팔고 기부하려는 것을 알고 학교에서는 알고서 저희에게 꼭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줬습니다.
‘우선 50만 달러를 다운페이처럼 하면 한국 불교 석좌 교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시작해줄 수 있다. 그렇지만 360만 달러의 기금이 모두 학교 측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석좌교수 자리가 마련된다.’고요.
그리고 50만 달러의 다운페이에 대해서도 일정 액수 다운페이를 하고 남은 액수를 몇 년에 걸쳐 저희 부부가 편안하게 나눠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줬습니다.
그런데 한국 불교 석좌 교수직 신설을 위한 도네이션을 저희 부부만 한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적어도 50만 달러라는 다운페이 만이라도 함께 기부할 수 있는 분이 생긴다면, 한국 불교 석좌 교수 자리는 더욱 빨리 만들어질 거에요. 그렇지 않다면 저희가 계속 다운페이를 하고 저희들이 죽고난 후 저희 집 처리한 것으로 충당될 것입니다. 즉 저희들이 평생 일한 결과인 집으로 석좌교수 자리를 보장하는 것이죠.
UCLA에는 불교를 가르치는 교수가 모두 4명 있어요. 보통 미국 대학교에 불교학 교수는 1명이 고작입니다. 2명의 교수가 있다면 아주 많은 것이에요. 그런데 UCLA에는 무려 4명이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은퇴하면서 남편의 한국 불교를 강의하는 자리가 금방 다시 메워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코비드(Covid) 팬데믹을 지나면서 주립대학인 UCLA는 정부의 지원금이 대거 삭감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남편이 은퇴하면서 남편이 가르치던 한국 불교 교수 자리를 금방 메꿔준다는 보장이 없기에, 더더욱 저희들은 한국 불교 석좌 교수직을 신설하고 계속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싶은 거죠.
기자: 한국 불교 석좌교수 자리를 꼭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로버트: “현재 UCLA에는 미 전국에서 가장 알차고 포괄적인 불교학 프로그램과 한국 불교 프로그램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불교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 충분히 구축돼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UCLA야말로 미 전국에서 한국 불교학을 계속 발전시키기에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적합한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게는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 불교를 전공한 많은 박사들을 배출했고 그들이 전 세계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불교 석좌교수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UCLA에서 앞으로 한국 불교학 강의가 계속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금을 조성해 그 프로그램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석좌교수 제도입니다. 거의 모든 교수 직은 그렇지 않아요. 학장이나 총장이 바뀌면서, 또는 그때 그때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학과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등 변화가 많습니다. 저처럼 한국불교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교수가 은퇴한다고 해서 그 자리를 메꿔줄, 한국불교 전문 교수가 다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학과에서 이번에는 한국 불교 대신 일본 불교나 중국 불교 전문 교수를 초빙하자고 결정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석좌교수 기금을 마련하면 그 자리가 바뀌지 않고 보장되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가 UCLA에서 계속 강의되고 명맥이 이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석좌교수직을 신설하기 위한 펀드를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자: 자녀가 없다 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은 리버스 모기지를 이용해 평생 못해봤던 경험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는 것을 선택할텐데, 두 분은 그렇지 않네요. 정말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됩니다.
로버트: “왜냐하면 우리 부부의 전 생애가 한국 불교에 헌신한 것이었기에 그래요. 한국 불교학이 미국에서 뿌리 내리고 성장하는 것에 전 생애를 바쳤거든요. 크리스티나 역시 미국에서 비교적 초기에 한국 불교학을 공부했어요. 저희는 전 세계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불교학 교재들을 함께 만들기도 했습니다.”
기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셨는지요?
로버트: “스탠포드 대학에서 1년, UCLA에서 36년 가르치면서 박사 학위 학생을 20명 정도 배출했습니다. 그 중 8명 정도는 중국 불교 전공이고 12명은 한국 불교 전공이에요. 모두 교수님이 됐습니다. 미 전국과 캐나다, 그리고 한국에서 한국 불교를 가르치고 있답니다.
UCLA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박사 학위 학생들을 배출해냈다고 평가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거의 모든 대학들은 한국학이면 한국학, 불교학이면 불교학, 이렇게 한 가지만 있어요. 그런데 UCLA는 한국학과 불교학이 둘 다 있고 두 프로그램이 모두 막강합니다. 그래서 박사학위 과정을 한 사람들이 아주 잘 훈련돼 있습니다.
그들이 여러 대학에 가서 가르칠 때 한국 불교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에요. 대부분은 일반적인 불교학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 불교를 공부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한국 불교를 강의 내용에 포함시킬 수가 있어요. 이렇게 한국 불교가 존재감을 갖고 대학에서 프로필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본과 중국을 알지만 한국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자: 아직도 한국에 대해 주류사회에서 잘 모르나요?
로버트: “지금이야 케이팝이나 한류로 인해 많이 달라졌지만 제가 처음 미국에서 불교를 공부할 때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었어요. 제로였답니다. 1970년대였는데 아무도 한국과 한국 불교에 대해 몰랐던 거죠. 일본과 중국, 티베트와 동남아시아의 불교만 있었지, 당시 한국은 미국 불교학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던 거에요.
크리스티나의 경우엔 스토니부룩에 있는 뉴욕주립대학에 한국인 박성배 교수가 있어 한국 불교를 공부할 수 있었으니 정말 행운이었던 거죠. 그렇긴 해도 학교 자체가 한국 불교학을 따로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철학이나 문학 과목 아래에서 한국 불교에 대해 약간 맛보기 공부를 한 거에요.”
크리스티나: “다시 강조하지만 UCLA에는 한국학도 있고 불교학도 있기 때문에 한국 불교 석좌교수직을 신설하기에 가장 적합한 학교입니다. 저도 콜롬비아에서 석사 학위를 할 때 한국불교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때 불교를 가르치던 2명의 교수님은 티베트 불교와 일본 불교 전공이었어요. 그분들과 대화를 해봤지만 한국 불교를 몰랐고, 당연히 알지 못하는 걸 가르쳐줄 수도 없었어요.
그때 제가 느꼈던 것은 미국에 지속적으로 한국 불교를 가르칠 수 있는 학교가 적어도 한 곳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40년 전부터 해온 생각이에요. 그래서 이번에 한국 불교 석좌 교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기부금을 약정하게 된 것입니다.
기자: 전 세계 불교의 지형에서 한국 불교는 어떻게 중요한가요?
로버트: “우리 부부는 한국이라는 나라도 중요하고 동시에 한국 불교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한국 불교와 동아시아 지역의 불교는 중국에서 흘러들어왔는데 중국이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종교를 다 없앴잖아요. 그래서 거기서 전통적인 불교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오히려 한국의 불교는 중국에서 불교가 꽃피던 시대의 원형을 많이 유지하고 있죠. 그래서 요즘에는 한국 스님들이나 교수님들을 모셔가 공부하더라고요.
한국에서 일본으로 불교가 넘어갔을 때도 일본의 문화에 맞춰 많이 변형됐죠. 그래서 더욱 한국 불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전의 전통적인 아시아 불교를 많이 보존하고 있고, 발전시켰고, 실제로 수행하고 있거든요.”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을 거치고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의 불교 역시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되는데요?
로버트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이 있어서 스님들이 산사에 고립되며 세상 또는 사회와의 상호작용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 불교는 예전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고, 보수적인 수행에 더욱 집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와 중국 불교의 매우 오래된 스타일을 고스란히 유지한 것이죠.
현재 중국은 문화혁명 때 사라진 중국 불교의 전통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재건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죠. 타이완 불교 역시 20세기 중반,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재건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염불과 경전공부는 많이 하는데 명상이나 수행을 하는 이들은 별로 없어요.
일본에서도 불교는 억압당하면서 사회 운동이 있었죠. 일본의 불교를 장례 불교라고 합니다. 스님과 사찰의 존재 목적이 가족들의 장례식을 담당해주는 역할이기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스님들은 장례 의식을 치러주는 일을 파트타임으로 하고 다른 직업을 가져요. 결혼도 하고요. 수행을 하는 스님들은 아주 적은 비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이야말로 송나라 시절에 했던, 매우 깊고 보수적인 좌선 수행, 화두 수행, 선 수행의 전통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한국 사찰에서는 아직도 간화선을 하는데 이는 14세기 송나라 때 하던 전통입니다.
기자: 한국 불교가 미국 불교와 대화 없이 너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크리스티나: “로버트는 동국대학교의 한국불교학술원 초대 원장으로도 10년간 일했습니다. 당시 큰 규모의 국제학술대회를 2차례 열었는데요. 처음으로 한국의 학자들과 선사들이 함께 모였었던 행사였어요. 학교에 진재스님, 수불스님, 혜국스님 등 한국의 대표적 선사들을 모셔서 법문도 듣고 법문 후에는 학자들이 학회를 하는 방식이었죠.
그때 느꼈던 것이 바로 한국 불교를 전공하는 한국의 학자들과 미국의 학자들의 교류가 너무 적다는 것이었습니다. 교류를 하다 보면 한국 불교와 미국 불교가 대화를 하고 다른 언어(Vocabulary)의 공통점을 찾고 더욱 통합된 학문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 불교 석좌교수직을 신설하면 한국 불교와 미국 불교의 대화도 좀더 진지하게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입니다. 그것도 한국 불교 석좌 교수직이 신설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큰 이유입니다.”
기자: 미국에서는 티베트 불교, 일본 불교 인구가 제법 있죠. 학생들 중에서도 티베트 불교와 일본 불교를 더 선호하는 이들이 있지 않나요?
로버트: “대학은 달라요. 불교 개론 시간에 오는 학생들은 단 한 번도 불교를 접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불교 전파에 있어 스님보다 교수가 더 중요하답니다. 처음으로 불교를 가르치는 사람이 스님이 아니고 대학교수인 거에요. 처음으로 불교에 노출되는 장소가 절이 아니라 대학 강의실인 것이죠. 그래서 대학에서 불교를 가르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 강의실에서 접하게 된 불교가 티베트 또는 일본 불교가 아니라 한국 불교라면 학생들이 곧바로 한국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겠죠.
기자: 불교를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이 불교를 접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대부분이로군요?
크리스티나: 저도 불교학 학사부터 다시 했잖아요. 일반 불교 개론 즉 불교학 101을 청강하거나 강의 신청해서 오는 사람들은 불교에 노출되었던 경험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에요. 기독교 문화의 토대 위에 형성된 유럽과 미국의 문화에 환멸을 느끼고, 의문을 갖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더 이상 기독교에서 말하는 내용을 믿지 않고,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고, 기도도 안 하고… 그들은 현재, 즉 진실을 향한 뭔가 다른 사고 방식을 원하는 거에요.
30년 전에도 부디즘 101, 즉 불교 개론 클래스에는 학생들이 200-300명씩 몰려왔어요. 강의실 자리가 부족해 강당에서 강의를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죠. 이게 30년 전의 일이에요. 그러니 지금은 더하죠. 그 학생들은 불교에 백그라운드가 있어서라기 보다, 자신들의 전통 문화(기독교적)에 대해 피곤함을 느끼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하기 때문에 불교 클래스에 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에는 카르마, 다르마, 만트라, 너바나, 삼사라 등의 불교 단어들이 미국의 언어, 영어의 일부가 되어버렸잖아요. 그런 단어들을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불교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좀더 알아보고 싶고 탐구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기자: UCLA의 불교 클래스 학생들도 그런가요?
로버트: “UCLA는 그런 면에서 더 특별해요. 우리에게는 아주 많은 한국계 학생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들조차 단 한 번도 불교에 노출되지 않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에요. 접해봤다 해도 할머니가 절에 가서 절 하고 나무관세음보살 염불하고, 절밥 먹고 오는 것만 본 학생들이 대부분이죠. 많은 학생들이 수업 후에 ‘아, 관세음보살이 그런 뜻이군요? 어릴 때 저희 할머니가 맨날 외우셨어요. 저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았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불교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 한국 불교에 대한 첫 만남은 이렇듯 강의실에서인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한국 불교에 대한 강의를 선택해 들으면서 불교를 처음 접하고 점점 알게 되는 것이죠.
UCLA 불교 강좌에는 오는 사람들은 불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오는 이들이 제일 많고, ‘카르마’ 라는 말이나 쿨한 불상 조각 또는 사찰이나 수행자가 영화에 나온 장면 등 대중문화 속의 불교를 접했던 사람들, 아니면 할머니의 불교를 곁에서 접했던 사람들, MARC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했다가 오는 사람들, 문화적 연결점을 찾고자 하는 학생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옵니다. 실제 불교를 미리 알고 오는 불교신자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매우 드물어요. 총 클래스의 5퍼센트 정도가 가장 많을 때의 수치에요.
기자: 그래서 한국 불교 학과의 석좌교수 직을 UCLA에 보장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로군요?
로버트: “그렇습니다. 사실 그 어떤 대학이라도 가능하지만 현재까지의 학문적 성취나 규모 등 모든 기존 여건으로 볼 때 UCLA 만큼 한국 불교 석좌교수 직을 마련하기에 좋은 곳은 없습니다.
로버트 & 크리스티나 버스웰 인터뷰는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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