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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영화 '아마데우스'를 굉장히 인상깊게 보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전편을 통해 흐르는 모짜르트의 음악들 음악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앞에 둔 장면들에서 나오는 레퀴엠의 선율...
이 글에서는 '아마데우스' 영화에서 레퀴엠이 나오는 장면 5영상과 칼 뵘 지휘의 연주곡 영상을 같이 올리겠습니다.
먼저 모짜르트 레퀴엠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INTROIT (입당송): Requiem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2. KYRIE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3. SEQUENTIA (연속된 노래들)
1) Dies irae (진노의 날,
운명의 날)
2) Tuba mirum (심판의 나팔소리
울려퍼지네)
3) Rex
tremendae (두려운 왕이시여)
4) Recordare
(주여 생각하소서)
5)
Confutatis (사악한 자들이 혼란스러울 때)
6) Lacrimosa (눈물과 한탄의 날)
4. OFFERTORIUM (봉헌송)
1)
Donmine Jesu Christe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여)
2) Hostias (주께 바치나이다)
5. SANCTUS (거룩하시다)
6. BENEDICTUS (주에 축복있으라)
7. AGNUS DEI (주의 어린 양)
8. COMMUNIO (성찬의식) : Lux aeterna (그들에게 영원한 빛을 내리소서)
그 중 영화에 삽입된 곡은 빨간색으로 표시된 1. 입당송, 3-1) 진노의 날, 3) 두려운 왕이시여,
5)사악한 자들이 혼란스러울 때, 6)눈물과 한탄의 날 전부 5곡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곡 해설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goclassic.co.kr/review/9908a.html
그리고 '아마데우스' 자막이 나오는 영화영상은 네이버의 혼수상태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blog.naver.com/joon1127/10115583024
밀로스 포먼이 연출했던 1984년도 영화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의 고해의 형식을 빌어 전개되는 데 모짜르트의 죽음이
이 레퀴엠과 상당히 관련돼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에쿠우스로 유명한 영국의 극작가 피터 셰퍼가 대본을 쓴 연극은 오랫동안 세간을 떠돌았던 '모짜르트 독살설'을
모티브로 삼고 있고 그 연극을 기초로 한 밀로스 포먼의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날 사신처럼 모짜르트를 찾아왔던 '검은 남자', 연극과 영화는 그를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군림했던 살리에리의
하수인으로 묘사합니다. 죽음을 사주했던 인물로 지목되는 살리에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로서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궁정악장이었으며 베토벤, 리스트 등에게 음악을 가르쳤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모짜르트는 서양음악사에 기록된 불멸의 작곡가들 중에서 첫번째 프리랜서였습니다. 그는 권력자 밑에서 굽실거리며
일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지옥처럼 여기던 궁정으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데는 성공했으나, 경제적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만 했던 작곡 노동자였고 영화는 그 모습을 부각시킵니다.
영화는 독살설을 전제로 구성했음에도 실제로 모짜르트를 죽음으로 몰고갔던 시대와의 불화, 혹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극심한 노동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프리랜서이면서 경제적으로 어렵지않았던 최초의 작곡가는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던
베토벤이라 합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 곡의 작곡 의뢰는 잿빛 복장의 미지의 사나이로부터 행해져,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이미 병에
시달리고 있던 모짜르트에게는 심한 환영같은 충격을 심어주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모짜르트는 이미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측을 하였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1. INTROIT(입당송) : Requiem(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1791년 여름, 문밖에 서 있는 남자는 온통 시커멓다. 검은 가면을 쓰고 검은 망토까지 뒤집어 썻고 왠지 불길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가 돈을 내보이며 레퀴엠을 의뢰하자 입당송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가 들려온다.
한창 돈에 쪼들리던 모짜르트는 그리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검은 가면의 사내는 "가장 이른 시간에 '레퀴엠'을
작곡해 달라"는 주문과 함께 선금을 던져주고 사라진다. 언제 온다는 기약도 없이, 조만간 다시 오겠다는 짧은
한마디만 남기고...
아버지의 화신을 본 듯 얼이 빠진 모짜르트는 콘스탄체의 부름에 끄떡도 하지 않고 멀어져가는 레퀴엠 의뢰자의
뒷모습만을 바라본다.
모짜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짜르트와의 갈등은 이 영화에서 상당히 교묘한 장치로 이용됩니다.
그는 모짜르트가 죽기 4년전인 1787년 세상을 뜹니다. 흔히 하이든의 작곡으로 잘 못 알려져 있던 장난감교향곡,
트럼펫협주곡을 작곡하고 바이올린 교본 등을 편찬한 상당한 수준의 궁정음악가이었기 때문에 모짜르트의
음악적 수업은 그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짜르트가 성장하고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면서, 짤스부르크에서 정착하기를 원했던 아버지를 떠나
비엔나로의 이주, 궁정에서의 탈출, 무절제한 생활과 콘스탄체와의 결혼 반대,콘스탄체와 아버지와의 불화,
어머니의 죽음 등 많은 갈등을 빚어 왔습니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두려워하면서도 반항했던 모짜르트, 그리고 임종도 하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심한
죄책감과 정신적 압박을 주었을 것입니다.
영화에서 레퀴엠 의뢰인이 쓰고 있는 가면은 그 전 장면의 가면무도회에서 아버지가 쓰고 있던 가면입니다.
의뢰인이 나가고 나서 창가로 가서 그의 뒷모습을 보기 전 벽에 걸린 아버지의 초상을 쳐다보는 데서 그가 이미
아버지의 화신을 본 듯 얼이 빠져있음을 암시합니다.
영화는 계속해서 노년에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정신병원에 갇힌 살리에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살리에리의 고백을 바탕으로 전개됩니다.
이곡을 칼 뵘이 지휘한 연주 영상입니다.
(해설)천천히 암울하게 흐르는 현악기의 선율 사이로 바셋혼과 파곳이 깊은 사색의 소리가 어어진다.
그리고 서로 주고받으면서 곡이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서주 다음에는 베이스로부터 소프라노까지
"Requiem"을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게 된다. 그 뒤에 "et lux perpetua" 에서는 말 뜻대로 "끊임없는 빛"처럼 밝아지면서
소프라노 독창으로 이어진다. "Te decet hymnus Deus"라고 시작되는 소프라노의 독창 뒤에는 바순과 현이 이를 받쳐주듯이 진행된다.
다시 투티를 거쳐서 "Exaudi orationem neam"를 부른 뒤 서서히 종결부로 치닫게 된다.
추가로 조금 더 설명하면...
Te decet hymnus, Deus, in Sion 천주여 시온에서 찬미함이 진정 마땅하오니
Exaudi rationem meam 주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투티(tutti)라는 말은 다 같이 부르거나 다 같이 합주하라는 말입니다.
3. SEQUENTIA(연송)
1) Dies Irae(진노의 날)
시카네더가 <마술피리> 작곡을 재촉하러 왔다. 팀파니 리듬에 맞취 문을 두드리는 시카네더..
그러나 모짜르트는 <레퀴엠>의뢰자가 재촉하러 온 줄 알고 다른 곳으로 피한다.
합창에 의한 굉장한 효과가 목소리의 화음과 트럼본의 울림, 장엄한 트럼펫의 예고, 현의 불길한 트레몰로와
팀파니의 급박한 타격에 의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살리에르가 몰래 고용한 하인 안나는 모짜르트의 집에서 더이상 하인 역할을 못하겠다며 울부짖는다.
시카네더는 배우이자 가수이고 극작가입니다. 모짜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작사자입니다.
그는 순회극단에서 배우생활을 시작해서 오페레타를 쓰고 주연을 맡는 등 배우로서 성공과 더불어 자신이 극단을
운영하는 등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시카네더 극단은 황제인 요세프 2세의 총애를 받아 빈에 정착하게 되고
모짜르트를 지원했던 요세프2세의 사망후 어려워진 모짜르트의 친구이자 후원자가 됩니다.
마술피리의 1791년 초연에서 파파게노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1984년에 이 영화가 만들어 졌으니 벌써 30년 가까이 됩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모짜르트의 저 웃음소리에 엄청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우리의 모짜르트가 저런 웃음을....
그런데 실제로 모짜르트의 웃음소리는 저랬답니다. 어떤 글에선가 그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쟁반에 쇠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고 적어놓은 걸 본 것 같습니다.
(해설)SEQUENTIA(연송)는 6곡으로 나누어지며 첫 곡이 이 곡이다. 앞 곡이 상당히 의미심장한 종결을 맺음으로써
이 곡에서 경외감이나 전율감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강렬한 투티와 추진력 있는 템포를 바탕으로 격렬한 감정을 유감없이 표현한다. 특히 소프라노, 알토, 테너의 "Dies irae"와
베이스의 "Quantus tremor" 가 서로 반복되면서 나타나는 부분은 매우 뚜렷한 인상을 심어준다.
베이스의 효과는 그 가사처럼 두려움을 느낄 정도이다.
마지막까지 현의 치열한 연주도 극적 효과의 상승에 큰 보탬이 된다.
Dies irae, dies illa 진노와 심판의 날이 임하면
Quantus tremor est futurus 하늘과 땅이 모두 재가 되리라
3) Rex Tremendae(두려운 왕이시여)
피폐해져 가는 모짜르트를 걱정하던 콘스탄체는 울분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이에 짜증이 난 모짜르트는 콘스탄체에게
'가서 잠이나 자!(Go back to bed!)라는 말을 던지는 데, 이 때 나오기 시작하는 음악이 이 곡이다.
장대하게 뻗쳐나가는 오케스트라의 서주를 받아 합창이 비통하게 Rex!를 외친다.
콘스탄체의 눈물과 위로에 모짜르트는 다시 곡을 쓰기 시작하지만 콘스탄체가 옆에서 잠이 들자 술병을 들고 잠옷바람으로
밖으로 놀러 나가 버린다.
모짜르트가 죽을 각오를 했나 봅니다. 아내에게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아버지의 초상화가 또 등장하면서 모짜르트의 압박감을 표현합니다.
(해설)포르테로 시작되는 "Rex tremendae"는 그 뜻처럼 앞부분의 "Dies irae"와 이어지는 듯한 분위기이다.
처음 시작되는 부분의 합창은 당연히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salva me"에서는 역시 나를 도와달라는 의미처럼
애절한 분위기로 반전하게 된다. 특히 합창이 잦아들면서 더욱 간절히 도움을 바라는 심정으로 부르는 부분에서
감정의 정점에 도달한다.
Rex tremendae majestatis 위엄과 공포의 왕이시여
salva me, fons pietatis 그때에 우리를 도우소서, 자애의 샘이여
영화 OST와 칼 뵘의 연주 간에 속도차이가 많이 납니다.
영화에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한 곡이 삽입되었습니다.
칼 뵘의 이 연주는 전체적으로 느리면서도 길게 늘어뜨린 전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숭고한 마음이 들 때와 아주 편안할 때가 서로 공존하는 연주입니다. 그래서 처음 들으면 아주 편안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극히 숭고한 마음까지 생기게 합니다. 근본적으로 뵘은 모짜르트가 부여한 이 곡의 성격 중 슬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3. SEQUENTIA(연송) - 5) Confutatis(사악한 자들이 혼란스러울 때)
살리에르가 모짜르트의 작곡을 도와주는 장면에 나오는 곡으로 콘스탄체가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이어지며 교차 반복된다.
격정적인 오케스트라의 반주 위에 나타나는 강건한 남성합창과 사경을 헤매는 듯한 바이올린의 선율 위에 드러나는 애절한
여성합창이 교차되면서, 교차 반복되는 장면과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살리에리는 모짜르트가 지시하는 대로 악보를 받아 적으면서 왜 이 부분이 이런식으로 작곡되는 지 이해가 안된다며
괴로워합니다. 언뜻 보면 합창의 각 성부와 악기들이 제각각 다른 분위기로 교차되면서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프라노가 천상의 소리를, 으르렁대는 듯한 현과 남성 합창이 지옥의 저주를 상징하는 것인데 이렇게 대립하다
나중에 합쳐지며 마무리됩니다. 나중에 곡을 이해하게 된 살리에리는 폭풍감동과 전율에 휩싸입니다.
바덴으로 요양을 갔던 콘스탄체가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음악과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실제로 저런 장면이 존재했었다면 저기 악보를 받아적는 사람은 살리에리가 아니라 모짜르트의 제자 쥐스마이어가
될것으로 보입니다.
그당시 살리에리는 그저 평범하기만한 음악가가 아니라 자기 시대의 요구를 만족시켜줄 정도의 작곡 솜씨를 지녀
모짜르트보다 2배의 급료를 받았던 능력있는 작곡가이었습니다.
문제는 모짜르트가 이 기준을 훨씬 뛰어넘어 버렸다는 것이었는데 이 영화의 다른 장면에서의 대사중...
"모짜르트, 그 젊은 자는 내가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음악에 놀이처럼 가볍게 접근한다.나는 음악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고 버릴 각오가 돼 있지만 그는 놀 것 다 놀고 경박하게 '하하하하' 웃어가며 남는 시간에 작곡을 한다.
그런데도 그의 음악은 시공을 뛰어넘는 불후의 명작이고 내가 쓴 곡은 당대에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게 음악을 준다면 온 생명을 다 바쳐 신을 경배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거늘, 세상은 어쩌면 이다지도 불공평하단
말아냐!" 하고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꿰뚫어보고 좌절하는 살리에리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는 신에게 절규합니다. " 왜 저에게는 딱 그런 천재를 알아볼 정도의 능력, 그의 작품이 정말 뛰어난 곡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만의 능력만을 주셨습니까?"
단지 6살 위였던 살리에리가 그 당시 느꼈을 질시와 좌절.. 그런 것들이 끊임없이 모짜르트의 독살설을 제기하였다고
보여지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먼 듯 합니다.
하기야 모짜르트는 음악에 있어서 신과 다름없는 존재이니....
(평자들은 그와 비교해 베토벤,슈베르트 들은 인간이라고 하는군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 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슬픔을 표현해내던 그의 음악은 이 레퀴엠에 있어서는
굉장히 인간적인 면모를 나타낸다는 평가입니다, 생명과 바꾸는 죽음의 노래..그래서 모짜르트는 이 곡을 반드시
완성시켜야만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역설적으로 이 레퀴엠이 그의 인간적인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해설)남성 합창과 격렬한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저주받은 모습을 이야기하면 여성 합창이 단순한 반주와 함께 구원을
바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 두 가지 모습이 아주 상반된 형태를 나타내지만 다시 전체 합창이 하나로 모인다. 이것은
"Oro supplex et acclinis (엎드려 원합니다)"라는 새로운 합일점을 이루면서 노래한다. 정-반-합의 구조를 보인다.
먼저 현악기들이 분위기를 돋운 후 남성 합창단이 Confutatis maledictis (저주받은 자를 혼란스럽게 하소서)를
장엄하게 노래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여성 합창단이 Voca me cum benedictis. (축복받은 자와
함께 나를 부르소서)라고 간절하게 청합니다. 이 대비가 그야말로 절묘합니다.
Oro supplex et acclinis, (엎드려 원합니다)로 두 합창단이 합일점을
찾아서 끝이 납니다.
6) Lacrimosa(눈물과 한탄의 날)
집에 돌아온 콘스탄체가 모짜르트의 죽음을 발견하고 "Wolfi!"를 절규하며 불러대는 장면에서 들리기 시작하는 눈물의 날..
여기에 비오는 날의 장례식 장면이 이어진다.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살리에르는 장례식에 참석하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콘스탄체를 비롯한 장례식 참석자들 중에 묘지까지 따라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 마르크스 묘지로 실려간 모짜르트의 시신은 여러 시신이 던져져 있는 시체 구덩이에 던져지고 Amem으로 종지부를
찍는 음악과 함께 구덩이 주변에 하얀 생석회 가루가 날리는 장면을 끝으로 살리에르의 회고도 마침표를 찍는다.
성 슈테판 성당에서 화려한 결혼식과 초라한 장례식을 치른 모짜르트...
그는 1791년 12월 5일 비바람이 혹독하게 몰아치는 날씨 속에 35세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모짜르트의 장례식은 당시 하류층의 가난한 사람들이 치루는 3급 매장(여러구의 시체를 3단으로 포개 묻고
10년마다 다른 시신들을 다시 묻어 재사용하는 방식의 무덤)으로 치뤄졌는 데, 가족이나 친지들이 끝까지
따라가지 못했고(악천후 때문이었다는 설과 콘스탄체가 정말 많이 아팠다는 설 등) 또 그 곳에 특별히 표시를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까지 그의 묘의 소재는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의 묘는 1902년 베토벤, 슈베르트의 묘가 있는 성 마르크스 묘지에 가묘와 비석을 세워 만들어집니다.
모짜르트는 레퀴엠 중 이곡 라크리모사를 다 완성하지 못하고 죽게 되는 데 그가 어디까지 이 곡을 만들었는 지는
아래에 자료가 있습니다.
저 비가 오는 중에 석회가루가 펄펄 날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대표적인 옥의 티 장면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해설)모차르트 레퀴엠의 애통한 감정의 정점을 이루면서 가장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곡이다. SEQUENTIA를 종결짓는
거대한 악상을 준비하다 모차르트는 숨을 거두게 된다. 비록 쥐스마이어가 보탠 마지막 "Amen"이 이러한 모차르트의
의도에 100% 도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분명 훌륭한 음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곡의 구조는 참으로 단순하지만 그 선율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한 번의 상승 후에 서서히 낮아지는 형태는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 하다.
마지막 "Amen"에서는 더욱 가슴을 파고드는 감격이 있다.
Lacrimosa dies illa, 눈물의 그날, 그날이 오면
Qua resurget ex favilla, 잿더미에서 그가 일어나
Judicandus homo reus. 죄 지은자를 심판하러 오리라!
Huic ergo parce Deus. 신이시여, 우리를 살려주소서.
Pie Jesu Domine,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dona eis requiem. Amen.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아멘.
모짜르트는 어디까지 작곡했을까? 의뢰인은 누구일까?(고클래식에서..)
모차르트를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해진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극중에서는
모차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르의 음모로 위촉된다고 되어있지만 그것은 사실과는 다르다.
작곡된 동기는 모차르트 생애의 마지막 해인 1791년 여름 빈의 폰 발제그-스투파흐
(von Walstegg-Stuppach, 1763-1827) 백작의 의뢰를 받은 데 있다. 이 귀족은 열렬한 음악애호가이며
스스로 플룻이나 첼로를 연주할뿐더러 자신을 작곡가로 보이고 싶어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1791년 2월 14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그의 부인을 위해서 "레퀴엠"을 작곡하여 자작이라고
칭한 다음 이 곡을 봉헌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 대리 작곡가로서 모차르트를 택한 것이다.
모차르트 사후인 1793년 12월 14일에 Wiener-Neustadt에서 직접 악보를 사필하여 자신의 지휘로 이 곡을
연주했다는 점에서도 그가 이 곡을 자신이 작곡했노라고 주장했을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하지만 곡의 공개 초연은 같은 해 1월 2일 빈에서 판 쉬비텐 (van Swieten) 남작이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Constanze)를 위해 마련한 연주회에서 이뤄졌다.
곡은 모차르트가 죽기 직전에도 모차르트 앞에서 간소히 초연됐다고 전해지는데 모차르트 스스로 라크리모사에서
눈물을 왈칵 쏟았다고 전해진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 곡의 작곡 의뢰는 잿빛 복장의 미지의 사나이로부터 행해졌으므로 이미 병에 시달리고
있던 모차르트에게는 심한 환영 같은 충격을 심어주었다. 이 당시 모차르트는 이미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측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가 이 곡을 미완으로 남겨두고 영면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모차르트는 1791년 여름에 두개의 마지막 오페라와 클라리넷 협주곡등 많은 곡에 착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뢰를 받고
곧 작곡에 착수하지는 못했으며 곡의 작곡은 죽기 직전까지 지속되었고 결국 그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모차르트에 의해 완성된 부분은 Introitus 전체, Kyrie의 대부분, Sequentia와 Offertorium의 성악 파트와 저음 파트
그리고 중요한 악기의 선율 뿐이었다. 특히 Sequentia의 끝 곡인 Lacrimosa는 8째 마디까지만 작곡되어 있었다.
모차르트 사후에 이 미사곡을 완성시키는 것은 부인 콘스탄체에게는 무척 급박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계약금의
절반을 받았으며 만약 완성시키지 않으면 되돌려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맨 먼저 모차르트가 높이 평가하던 제자
이블러 (Josef Eybler, 1765-1845)에게 보필을 의뢰하였다. 그러나 이블러는 Dies Irae와 Confutatis의
오케스트레이션과 Lacrimosa(10 번째 마디까지)를 조금 손댄 뒤 그만 두었다. 그후에 여러 명의 작곡가에게
의뢰되었지만 결국 모차르트의 또 다른 제자인 쥐스마이어 (Franz Xaver Suessmayer, 1766-1803)가 맡게 되었다.
그는 모차르트가 죽기 전까지 그와 함께 있었으며 이 곡의 마지막 작곡 방향에 대해서 지시를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Sequentia와 Offertorium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했으며 이어지는 Sanctus, Benedictus, Agnus Dei는 순수히
쥐스마이어에 의해 작곡됐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이 당시 그의 젊은 나이로 미뤄보거나 그가 별 다른 작품을 남긴 일이
없다는 것으로 감안할 때 이 뒷부분들은 모차르트의 스케치나 모차르트가 생전에 레퀴엠의 작곡을 위해 연주하던 것을
듣고 기억하여 작곡에 이용했으리라는 추측이 있다. 레퀴엠의 끝곡인 Commnio는 곡의 첫 부분인 Introit와 Kyrie의
선율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모차르트가 제자들에게 지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쥐스마이어가 완성시킨 레퀴엠은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악보이긴 하지만 그의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해 후에 많은
비판이 따랐다. 현대 작곡가들에 의해 다양한 보완 작업이 이루어져서 판본이 여러 가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들이 영국의 벤자민 브리튼, 리차트 마운더 그리고 독일의 프란츠 바이어의 작업들이다.
그중 바이어 판은 최근 쥐스마이어 판 다음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쥐스마이어 판의 오류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과 음악가들의 수정은 계속되고 있지만 특정 판본만이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의 충분한 존재 이유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판본은 모차르트 레퀴엠을 바라보는 2차적인 관점에 불과하다.
진정 중요한 점은 어떤 연주가 가장 사람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인가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