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폭로·입증 문서 나와도 주류언론 침묵
일본 정부 '사실무근' 보도자료는 즉시 받아써
중국 정부 ‘민들레 보도에 일·IAEA 답변해야’
언론, 정치적 계산 말고 진실 밝히는 데 나서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강행을 앞두고 ‘일본 정부가 IAEA에 100만유로(한화 약 14억원)를 뇌물로 전달했다’는 지난 22일 시민언론 민들레와 더탐사의 보도는 충격적이다. 과연 국제사회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일본과 IAEA의 최종 보고서 ‘조작 공모’ 의혹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다. 7월 중으로 예상되는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 계획으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패닉에 가까운 공포와 우려를 갖고 있다. 전국민의 85%가 일본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오염수 무해론’을 펴고, 이에 반대되는 주장은 ‘괴담’으로 몰아가며 혼란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여러 언론사들이 시민언론 민들레가 보도한 ‘일본 정부의 IAEA 뇌물-조사보고서 조작 공모 의혹’에 대해 사실 여부를 포함해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려는 취재·보도에 나서는 것이 상식적이다. 많은 국민들의 관심사이자 국익·안보와 관련된 의혹인 만큼 사실은 사실대로, 오류가 있거나 허위라면 또한 그것대로 밝혀내는 것이 언론의 일이다. 설령 완벽히 확실한 보도가 아니더라도 합리적 의혹을 제기할 만 하다면 공론의 장으로 불러와 이슈화하거나 당사자의 해명을 받아낼 수 있다. 언론계에서는 다른 매체가 쓴 특종 기사를 확인·보완 취재를 하거나, 파장이 큰 사안일 경우 최초 보도를 토대로 추가 취재·보도를 이어가는 게 관행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어떤가? 민들레와 더탐사의 첫 보도가 나간 뒤 거의 모든 언론이 이에 대해 눈과 귀와 입을 닫고 있다. 특히 여론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주류 언론들은 단 한 곳도 이 사안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 보도의 신빙성·타당성을 물어보는 기사조차 없었다. 국내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기업 관련해 아주 작은 의혹만 튀어나와도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부풀려 수백~수천개의 기사를 쏟아내곤 하던 언론들이, 이번에는 왜 그런가?
지난 22일 오후 4시55분 시민언론 민들레는 익명의 제보를 통해 ‘일본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관계자들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서로 협력관계를 맺고 후쿠시마 핵 오염수의 해양투기를 공모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할 만한 내용을 담은 문서가 일본에서 폭로됐다’고 첫 보도를 냈다. (“IAEA, 일본정부 돈받고 '핵오염수 절대안전' 결론?”) 시민언론 민들레는 이 보도에서 ‘담당자’와 ‘외무성 간부’의 대화 내용이 기록된 3쪽짜리 문서를 공개했다. 또 이 문서가 ‘내부자’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어떤 매체도 이와 관련된 기사를 내지 않았다. 시민언론 민들레의 보도 내용을 ‘받아쓴’ 기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민들레가 제기한 ‘일-IAEA 공모 의혹’을 확인하거나 일본 정부의 입장, 한국 정부의 반응 등을 추가 취재한 기사도 없었다. 만약 보도의 신뢰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면 제보(문서)의 진위 여부를 따져볼 법도 한데, 그 어떤 관련 기사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은 이튿날 일본 외무성이 시민언론 민들레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내고 ‘이례적’으로 반박하고 나서자 이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기사를 내는 데에 그쳤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이어 26일 일본 외무성 내부인물로 추정되는 사람으로부터 ‘일-IAEA 공모 등 폭로된 문서의 내용은 사실과 합치한다’는 추가 제보를 전달받았다는 후속 기사를 보도했다. 27일에도 제보자가 자신의 제보가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보내온 ‘후쿠시마 핵 오염수에 관한 IAEA 최종보고서’ 표지 사진을 공개하고 ‘시민언론 민들레·더탐사의 보도 이후 일본 외무성이 정보 유출자를 알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내용 등을 추가로 폭로했다. 29일에는 22일 첫 보도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IAEA 로고가 찍힌 문서를 공개했다.
이렇게 계속된 시민언론 민들레·더탐사의 의혹 제기와 제보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추가 증거 제시에도 불구하고, 첫 보도 이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국내 주류 언론들은 단 한 건의 관련 기사도 보도하지 않고 있다.
다만, 조세 전문 매체인 조세일보만이 27일 ‘일본정부 뇌물주고 IAEA보고서 고쳐…제보자 폭로 파장’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26일 <민들레>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 내부인물로 추정되는 'Jorseti'(가명)는 일본 정부가 IAEA에 100만 유로 이상의 '정치헌금'을 건네고 IAEA의 최종보고서에 '후쿠시마 오염수 절대안전' 결론을 미리 받아놓았다고 제보했”다고 관련 기사를 냈다.
어떤 매체가 ‘특종’ 혹은 ‘단독’ 기사를 낸다고 무조건 다른 매체가 그대로 받아 보도해야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제보와 보도 내용의 진위·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시민언론 민들레와 더탐사가 이번에 단독 보도한 ‘일-IAEA 공모 의혹’의 경우는 납득하기 힘들다. 제보의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제보자가 계속해서 제보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문서를 제공해 왔으며, 제보 내용이 사실임을 추론케 하는 IAEA 문서까지 공개되었다. 언론인의 시각에서 볼 때, 사안의 중요성이나 제보 내용의 신뢰성을 고려하면 다른 매체들이 민들레의 보도에 대해 확인 취재, 의혹 제기 보도를 시작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일반인의 상식적인 판단으로 보더라도,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라는 국가 외교안보·국익·국민건강 상 중차대한 사안과 관련한 충격적 의혹에 대해 국내 주류 언론들이 관련 내용을 전혀 보도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국내 언론이 눈과 귀와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중국 외교부가 반응을 보였다. 28일 중국 외교부 마오닝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시민언론 민들레의 관련 보도에 관한 중국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우리는 심각하게 그 보도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본 정부는 신뢰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IAEA 사무국도 답변을 해야한다”고도 했다. (시민언론 민들레 6월29일 ‘중국, 핵오염수 일본-IAEA 검은 거래 의혹 해명 공식 촉구’ 기사)
한국 언론들은 오래전부터 ‘선택적 보도’에 익숙하다. 정치적 혹은 상업적으로 이익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수많은 매체들이 몰려가 수많은 기사를 쏟아낸다. 사실 확인이 되기 전이라도 의혹을 제기하고 그 의혹을 부풀려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만들어낸다.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 관련 보도, 윤미향 의원 관련 보도가 대표적인 예다. 반면 권력의 눈치가 보이거나 경제적 이득이 되지 않은 경우는 눈·귀·입을 닫는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투기)는 정치적·상업적 계산을 할 사안이 아니다. 작은 신생 매체가 첫 보도를 했다는 게 문제가 되어서도 안 된다. 전 국민의 건강과 생명, 국익과 안보가 걸린 문제다. 국민들은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가 어떤 재앙을 불러올 지 걱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괴담’ ‘선동’이라며 안심시키려 하고 있지만 정작 많은 국민들은 이런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국민뿐 아니라 중국, 태평양의 여러 나라들도 걱정하는 문제다. 일본 정부가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 위해 IAEA에 거액의 뇌물을 주고 ‘오염수 무해론’을 담은 거짓 조사보고서를 내려고 한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더 많은 언론이 나서서 밝혀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