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티는 작은 것이고 들보는 큰 것이다. 남을 아주 정죄하는 그것은 벌써 큰 죄이다. 그 뿐 아니라 그가 남을 아주 정죄하기 좋아하는 것을 봄녀 그의 생활이면에도 여러가지 다른 죄과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업을 위하여 인물을 비판하여 혹은 채용 혹은 퇴직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를 아주 정죄하는 것은 죄이다.
[마 7: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마 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어찌하여 형제의...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이 두 구절은 39, 40절과 연결되어잘못된 선생들의 과오를 지적하는 말이다. '티'와 '들보'는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인간성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티'는 원래 '조각'이란 뜻인데 조그마한 나무조각, 즉 '나무 부스러기'를 가리킨다. 이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가지셨던 목수 일을 연상케 하는 말이다. 그리고 들보는 건물의 서까래로 쓰기에 적절한 무거운 목재를 가리킨다.
자신이 저지른 커다란 범죄에도 불구하고 형제의 생활 속에서 나타난 조그마한 실수나 잘못을 비판하는 거짓 선생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예수께서 작은 나무 부스러기와 커다란 들보의 관계로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은 대개 다른 이의 잘못에 관심이 많으며 그것을 비난하고 흉봄으로써 쾌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리고 한 단체의 개선이나 개혁을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의 개혁이 수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허물을 냉철히 돌아보는 일에는 인색하다.
그래서 서로가 상대방을 비방하고 정죄함으로써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특히 당시 바리새인들의 심각성은 그들 속에 들보가 박혀 있으면서도 전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 있다. 진정한 개선이나 회개는 자신의 처한 형편을 직시하는 데서 비롯되거니와 그들은 위선과 외식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하나님의 신령한 계시의 빛이 뚫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어찌하여(포스) - 이는 부정적인 답변을 기대하는 의문사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자신의 눈 속에는 들보, 즉 온갖 위선과 죄악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형제의 조그마한 실수나 허물을 정죄하고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의미이다.
[눅 6: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눅 6: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