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오늘도 난 도서관의 이젠 내자리로 정해져 버린 좌석에 앉았습니다.
이곳을 내자리로 만든건 며칠째 내 옆에 앉고 있는 한 여학생때문입니다.
오늘도 그녀는 내 옆좌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그녀
는 많은 시간을 도서관 내 옆자리에서 보냈습니다.
하하 이정도 시간이 되면 그녀는 항상 날 미소짓게 합니다.
또 엎드려 자는군요.
그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여름방학을 맞이한 학교분위기로 한산한 도서관에서 그녀는 오수를 열
람석에 엎드려 잠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멀쩡하게 생긴 이 아가씨가 이제는 침까지 조금 흘렸습니다.
뽀얀 그녀의 목덜미가 아름답습니다.
두껍기만 한 일본어 책을 베개삼아 그녀는 어딘가 꿈나들이를 떠났습니다.
민이: 오늘도 그는 그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며칠전부터 나와 눈이 마주친 멀쩡하게 생긴
남학생하나가 내기억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매일 도
서관을 나왔고 이제는 일정하게 정해진 좌석에 앉고 있습니다. 그의 옆자리는 내자리입니다.
오후가 되면 전 항상 졸음이 옵니다. 오늘같이 방학이라 한산한 도서관 열람석은 잠자기에
너무나 좋습니다.
잠에서 깨어보면 그는 항상 나에게 미소를 줍니다. 호호 오늘도 그는 내가 잠에서 깨었을때
속된말로 머리를 쳐박고 자고 있었습니다. 책상바닥이 상당히 딱딱할텐데 그는 책도 안받치
고 그냥 바닥에 머리를 붙이고 잠들어 있습니다. 호호 그의 목에는 제법 큰 점이 두개가 있
군요.
철이: 오늘은 그녀가 자리를 오랜시간 비우는 군요. 하기야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공부가 잘
될리 없지요.
나도 커피나 한잔 마시고 와야겠습니다. 아. 그녀가 저기 오는군요.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녀
의 잠든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옵니다. 그녀도 커피를 한잔 할려나 봅니다. 내 뒤에 섰
군요. 밀크커피를 눌렀습니다. 그러나 커피색깔만 흉내낸 그냥 물이었습니다.
그녀가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습니다. 말리고 싶었습니다만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기에 그냥
말없이 자판기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녀가 커피를 한모금 마시더니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자
기 바로 앞에도 휴지통이 있었는데 그녀는 애써 나쪽에 있는 휴지통에다 그 컵을 버리고 가
더군요. 그리고 나에게 못마땅한 눈짓을 보내고 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이 귀여웠
습니다.
민이: 오늘은 날씨가 참 더웠습니다. 도서관에는 나왔지만 공부는 되질 않는군요. 이런날 애
인이라도 있으면 어디 놀러라도 갈텐데 아쉽게도 없네요. 공부는 잘되지 않았습니다. 에어콘
이 시원하게 틀어져 있는 커피숍에서 책이나 읽고 와야겠습니다. 옆자리의 남학생은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는척을 하는군요 하지만 전 알지요. 오전부터 펴져 있는 연습장은 아직 한장
도 넘겨지지 않았다는 것을... 커피숍에서 홀로 냉커피를 마셨습니다. 다시 도서관에 오니 그
가
나와있었습니다. 자판기커피를 뽑아 마실려나 봅니다. 그래 더운커피도 한잔 더 하지뭐. 그
의 뒤에 섰습니다. 목에 점이 또 보이길래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가 컵을 뽑고 자판기에서
멀어졌습니다. 밀크커피를 눌렀는데 커피를 가장한 맹물이더군요. 그도 맹물인걸 알았을텐데
나에게 그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100원이었지만 아깝더군요. 일부러 그녀석 앞에 있는
휴지통에다 따지듯 들고있던 컵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웃어버리더군요.
철이: 그녀는 일어교육과 학생인것 같습니다. 일본어인듯한 말을 중얼거리며 공부하고 있습
니다. 도서관에서 중얼거리면 실례가 되지만 뭐 주위에 공부하는 학생도 별로 없었고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기에 내 좌석 칸막이에
귀를 대고 그녀의 음성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나보다 고학년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
각이 들정도로 그녀의 일본어 솜씨는 유창해 보였습니다. 나도 뒤지기 싫었습니다. 연습장에
나조차 전혀 이해가 되지않는 전공 공식들을 그려놓고 담배나 필려고 자리를 떴습니다.
민이: 괜히 앉아 있으니까 또 잠이 오는군요. 책을 폈지만 일본어단어들이 생소했습니다. 재
수를 했지만 난 아직 일학년이기 때문에 이런 문장들은 읽을수가 없었습니다. 히나가타나
첨부터 다시 외어보기로 결심을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주위에 사람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맘놓고 중얼거릴수 있었습니다. 중얼거리다가 책장도 넘겨보았습니다. 그가 좀 내 중얼거림
이 시끄럽게 느껴졌나봅니다. 못참겠다는 듯 책상 칸막이사이로 머리를 박더니 자리를 박차
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치. 자기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그가 자리를 비운 책상의 연습장을 보았습니다. 몰래 넘겨보기도 했습니다.
글씨는 예쁘게 쓰더군요. 무슨과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어려운 공식들이 적혀있었습니다. 연
습장 앞에는 9012** 전자공학과 성혜철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삼학년이구나...
철이: 오늘오후도 그녀는 잠이 들었군요. 제발 침만은 흘리지 말기를...
그래 오늘은 침은 흘리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내자리 한쪽편에 씨씨인듯한 남녀둘이가 연애하듯 공부를 했습니다.
부럽기도 하고 아니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 옆자리의 그녀는 태연하게 잠자리에 들어있
습니다. 내가 일어났을때 그녀는 가방을 싸가지고 나가더군요 무슨 좋은일이 있는지 나를
보고 히죽 웃고 가더군요.
민이: 오늘은 기분이 나빴습니다. 옆좌석에 씨씨가 앉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는척 하
는게 참 아니꼽더군요.
그꼴이 보기 싫어 책상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다 또 잠이 들었습니다. 삐삐가 진동을 하더군
요. 뿌듯했습니다. 내 친구들중에 진동이 되는 삐삐는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옆좌
석의 그가 내삐삐진동을 느꼈으면 했는데 그는
일상처럼 머리를 쳐박고 자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미팅을 하라고 하는군요.
대타로 뛰는게 기분이 별로지만 미팅이 참 설레였던 나이라 바로 승낙을 했지요. 가방을 챙
겨서 자리에서 뜰려고 할때쯤 그가 일어나더군요.
쯧쯧 침이나 좀 닦지...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미팅은 대타로 나갔다가 남자쪽에서도
한명이 빠져 벤취신세만 지고 왔습니다.
철이:오늘은 늦잠을 자버린 관계로 도서관을 오후에 나갔습니다. 내 고정된 자리는 나이든
남자선배가 앉아 있었읍니다. 뭔가 히죽거리는게 기분이 별로 였지요. 그녀는 여전히 그자리
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잠이 들었군요. 참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깊이 잠들었나봅니
다. 아직 침을 흘리고 있지는 않지만 왠지 불안해 보였습니다. 한동안 망설이다가 그녀가 잠
들어 있는 자리에다 휴지를 하나사다가 놓아 주었습니다. 옆좌석의 남학생은 떡대같은게 무
식해
보이더군요. 무슨과인지... 삭막한 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책을 보니 전자공학과학생
이었습니다. 땜쟁이였구만...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분명 내 연습장을 꺼내었는데 표지에 딴놈녀석의 이름이 적혀 있
는게 아니겠습니까? 낯익은 이름이었습니다.
아. 우리형도 전자공학과 다니는구나라는걸 일깨워주는 이름이었읍니다. 참 저는 전산과학생
입니다. 그리고 이제 싱싱한 91학번입니다. 이름이 뭘까요?
성계철입니다. 개철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민이: 오늘은 그보다 내가 먼저 도서관에 왔습니다. 그가 앉아야 할 자리에 떡대같은 아저씨
가 앉을려고 하더군요. 분명 이자리는 앉을사람이 있는데요.라고 말했지만 그 아저씨는 막무
가내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흑흑 나쁜 아저씨... 오후가 되니 그가 내옆에 있었
다면 잠이 쉽게 들었을텐데, 떡대 아저씨 때문에 잠이 쉽게 들지 않더군요. 하지만 오후 도
서관실내는 너무 더웠습니다. 떡대 아저씨가 자리를 비운틈을 타 조금 눈을 부쳤지요. 일어
나서 눈을 떠 옆자리를 보니 눈에 들온건 늘 미소짓게 했던 그의 머리박고 주무시는 모습이
아니라 떡대아저씨의 히죽거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실망... 책상위에는 화장지 한봉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떡대아저씨의 히죽거리는 모습이 의심
스러웠습니다. 혹시 내가 침이라도 흘리지 않았나 걱정이 되어 거울을 보았습니다. 괜찮더군
요. 화장한 내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내
화장기술은 언니들 덕분이지요. 일학년치고 나처럼 세련되게 화장한 학생들은 드물걸요. 참
제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전 일어교육과를 다니고 우리집 네딸중 셋째입니다. 92학번이지만
재수를 했고 하지만 73년생입니다. 생일이 좀
빠르거든요. 이름은 소수민입니다. 이름 이쁘죠? 혹 소수민족 이런식으로 이름가지고 놀리면
저 화낼겁니다.
104 풋풋한 사랑 이야기 (2) 멍청이 05/22 9
풋풋한 사랑 이야기 (2)
철이: 곧 이학기가 개강을 할겁니다. 그녀는 오늘도 내 옆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녀는 점
점 이뻐지는거 같습니다. 학기가 새로 시작할려고 하니까 도서관에 사람이 빽빽합니다. 이런
날은 메뚜기가 기성이지요. 올해도 풍년이 들어야 할텐데...
친구가 찾아와서 당구를 치자고 꼬셨습니다. 그래 한게임치지 뭐. 당구를 멋지고 가뿐하게
시범삼아 져주고 도서관에 왔습니다. 아니 근데 이게 왠일이랍니까? 그녀의 자리에는 다른
여학생이 앉아 자고 있었고 내자리에는 그녀가 앉아 또한 자고 있었습니다. 참 이거 난감하
군요. 깨우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마땅히 앉을 빈자리도 없었습니다. 그녀한테 말도 못거는데
도저히 깨울수는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커피하나 뽑아 도서관앞 벤취에 앉아 멀뚱멀뚱 지
나가는 사람 쳐다보면서 담배만 피고 있었습니다. 한참 그러고 있었는데 아까 내자리에서
자던 그녀와 그녀의 자리에서 자던 묘령의 여자가 재잘거리며 도서관을 나오더군요. 또 난
감합니다. 앉을 벤취가 마땅한게 없었나봅니다. 내가 앉아 있는 벤취에 앉더군요. 그렇게 도
서관에서도 내옆자리에
앉더니만 벤취에서도 내옆에 앉고 싶었을까요? 앉아서 참 많이도 재잘거리더군요. 굴러온
돌이 박힌돌을 뽑는다고 괜히 담배피는 나에게 시비를 그녀가 걸었습니다. 별로 연기가 그
리로 가지도 않았건만 그녀가 두손으로 연기를 내쪽으로 보내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나중엔 엄청 기침까지 하더군요. 오버액션이 꼭 경찰청사람들에 나오는 액스트라같
았읍니다. 그냥 일어서 도서관 내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씨 책이나 치워놓고 가지...
민이: 개강날짜가 얼마남지 않아서 도서관이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그는 오늘도 내 옆자리
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오늘도 말없이 공부하는척 하겠지요. 그가 자리를 비운뒤 얼마되지
않아 내친구가 빈자리 없나 두리번 거리는게 보였습니다. 나를 발견하곤 내자리쪽으로 왔습
니다. 친구는 메뚜기를 할려나봅니다. 그래서 내 옆자리에 앉으라고 했지요. 당구치러 갔으
니 한시간안에는 오지 않을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는 사람자리냐고 묻더군요.
당연히 모르는 사람자리라고 말했답니다. 친구가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더군요. 그래서 쬐
금 아는사이라고 말해주었읍니다. 친구가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그럴거면서 도서관은 왜 왔
는지 모르겠습니다.
굴러온돌이 박힌돌을 쳐낸다고 잠이 와 안되겠다며 내자리좀 바꿔달라고 하더군요. 할수없
이 난 자리를 비켜주고 그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랫동안 그는 돌아오지 않더군요. 당구의
묘미에 빠져버렸나봅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친구가 날 깨웠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구요. 친구가 커피나 한잔하자며 밖으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밖에 나오니
시원했습니다. 도서관 사람이 많았던 탓인지 벤취도 빈자리가 없더군요. 저기 벤취하나가
한사람만을 앉히고 있었습니다. 그자리에 앉긴 했는데 하필 그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내
옆자리 그였습니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인상을 너무 심어주는거 같았습니다. 친구의 재잘
거림이 잘 들리지 않고 있을때 그를 쫓아낼 구실을 그가 주었습니다. 그가 담배를 피웠거든
요. 첨엔 손짓으로 담배연기가 이쪽으로 옴을 표현했지요.
솔직히 연기는 하나도 안왔지만요. 그는 참 무감각한 놈이더이다.
그래서 기침을 했지요. 일부러 하다보니 나중엔 진짜 목이 아파 리얼한 연기가 되더군요.
그제서야 그가 일어나 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친구와 이야기했습
니다. 이야기하다보니 공부하기 싫었습니다. 친구랑 근처 커피숍가서 마저 재잘거리기로 하
고 가방싸러 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그의 자리에서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잘자라 인사를 해주며... 물론 속으로 말입니다.
가방을 챙겼습니다. 가방이 들고왔을때보다 왠지 가벼웠습니다. 어머나! 그가 잠든 모습은
예전처럼 책상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던것이 아니라 내책위에 볼을 대고 있는 모습이었습
니다. 잠시 망설였지만 내일도 그는 저자리에 앉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나는 그냥 가버리
기로 했습니다. 내일 책을 돌려받을 수 있을거란 생각이었지요. 내일 책을 돌려주면 내 커피
한잔 뽑아주지... 내일 봐요. 호호. 그러며 도서관을 나왔습니다.
그러나 학기시작하고 며칠동안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옆에 그가 없으니 허전
합니다.
철이: 오늘은 도서관 내자리에 앉을수가 없습니다. 그럴 사정이 있거든요. 어제 난 실수를
했습니다. 그녀의 책을 베고 잤거든요.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일어나보니 그녀책의 책장에 엄
청 많이도 침을 흘려놨습니다. 몇페이지가 젖어버렸습니다. 집에가 정성들여 닦아도보고 다
림질도 해보았지만 침자국은 선명히 남아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책에는 그녀가 써놓은 예
쁜글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름은 적혀있지 않더군요. 내 침 때문에 번져버린 그녀가
쓰놓은 글자들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오늘 도서관에서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혹시 들킬까봐 숨었지요. 책내놔
라 그럴까봐 두려웠습니다. 한동안 숨어다녀야 했습니다.
그녀가 옆에 없는 도서관열람석은 허전했습니다.
역시 도망만 다닐수는 없었나봅니다. 개강을 하고 그주 마지막날 교양수업을 들으러 생활문
화대란 단과대의 한 강의실로 갔을때 그녀와 눈이 떡 마주쳤습니다. 그녀도 이 교양수업을
신청했나봅니다. 책내놔라. 그럴줄 알았는데 그냥 밝은 표정만 짓고는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습니다. 이 교양수업 첫날은 그녀한테 죄지은게 있기 때문에 맨뒤로가 앉았습니다.
참 강의실이 길더군요. 하얗게 그려지는 건 글자일거고 그 바탕은 칠판이겠지 그것밖에는
구분이 안되었습니다. 조교가 딱 넉자를 적었을때 학생들이 그냥 일어서 나가더군요. 그 글
자가 궁금해 앞으로 가보았지요. 그녀가 가방을 싸고 있었습니다.
날 쳐다보더군요. 책내놔라라는 눈빛이 분명했습니다. 그책을 새로하나 사야겠습니다. 칠판
에는 "오늘휴강"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좀 크게나 적지...
민이: 그를 다시 보게된 장소는 도서관이 아니라 교양수업을 들을려고 찾아간 생문대의 한
강의실이었습니다. 넓은 캠퍼스와 수많은 학생들 틈에서 그와 같이 이수업을 듣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연일까? 인연일까?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지요. 그가 맨뒤
로 가서 앉더군요. 난 앞에 앉았는데 말입니다. 책을 돌려달라고 할까도 생각을 해보았습니
다. 하지만 내가 그의 자리에 놓고간 책이라 말하기가 그랬습니다. 이교양수업은 첫날부터
휴강이었습니다. 게으른 교수인가 봅니다. 예? 교양과목은 보통 첫날은 휴강한다구요? 전에
도 말했듯이 전 일학년이에요. 가방을 싸고 있는데 그가 앞으로 왔더군요. 드디어 나한테 책
을 줄려고 말을 걸려나 봅니다. 마침 호주머니에 백원짜리 몇개가 있고 강의실 앞에 자판기
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칠판을 눈비비고 보더니 횡하니 나가버렸습니다. 야속한 놈... 그
책은 전공책인데...
철이: 학기초라 들뜬 기분 때문에 도서관을 가지 못했지요. 그래서 그녀를 일주일동안 보지
를 못했읍니다. 교양시간이 많이도 기다려지더군요.
교양수업이 시작하기 20분전쯤에 강의실로 갔습니다. 앞 자리쪽에 가방을 던져놓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얼마후면 그녀가 나타나 제 근처에 자리를 잡을거라 기대를 했습니다.
강의실앞문쪽에 시선을 두고 그녀만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냐구요? 그녀의 모습이 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침에 얼룩져 버렸던 그녀의 책도 새로
하나 샀습니다. 생각보다 비싸더군요.
한참을 기다렸는데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혹 수강변경이나 해버리지 않았나 걱정도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강의는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를 못 보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수업이 끝났을때 복도에서 그녀를 보았습니다.
친구와 같이 있더군요.
친구와 같이 가는 그녀에게 말을걸어 책을 주기는 그랬습니다. 더군다나 그녀의 책이 아니
라 새로 산 책이니 말입니다. 할수 없습니다. 다음에 보게되면 주어야 겠습니다.
미안하다는 글도 하나 적어 같이 주어야 겠습니다.
민이: 학기초라 여기저기 불려다녀 도서관을 가지 못했답니다.
이번주 전공수업은 책없이 강의를 들어야 했습니다.
드디어 한민족의 역사라는 교양과목이 있는 날이 돌아 왔습니다. 그 교양은 그와 같이 듣는
수업이지요. 기대가 됩니다. 교양수업이 시작하기 30분전쯤에 강의실로 갔습니다.
친구가 앞자리도 많이 비었는데 왜 굳이 뒤에가 앉느냐고 따지더군요. 그럴일이 있단다. 이
기집애야.
친구와 커피를 한잔 뽑아 강의실 뒷문 계단쪽으로 가 잠시 수다를 떨었습니다.
수업이 시작할 무렵 약간은 설레이는 맘으로 강의실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내 근처에 앉아 있을것만 같았거든요. 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 그가
수강변경이나 해버리지 않았나 걱정이 되더군요.
하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수업이 끝났을때 저기 앞쪽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를 보았기 때문
입니다. 그는 도서관에서처럼 일정한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
복도에서 그와 마주쳤는데 또 횡하니 가버렸습니다. 아주 모르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분명히
날 알텐데 말입니다. 진짜로 날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에이 설마 방학때 그렇게 도서관에서 자주 보았는데...
책은 그래서 받지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그책은 새로 사야겠습니다.
철이: 오늘 우연찮게 그녀를 만났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친구를 붙잡아 뒷자리를 신세
졌었습니다.
사대앞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갔었지요
140 풋풋한 사랑 이야기 (3) 멍청이 05/24 6
풋풋한 사랑 이야기 (3)
철이: 수요일 오후가 한가롭습니다. 가을이라 사내가슴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큰일이
군요. 이럴때면 아무 여자나 막 좋아해 버리는 습성이 있는데... 하하 그녀가 있었군요. 그때
자전거를 태워준 녀석을 꼬셔 사대앞 벤취에 앉아 커피를 마셨습니다. 낭만이 있더군요. 녀
석이 왜 하필이면 사대앞이냐고 따지더군요. 이쁜 여학생들이 많은 예술대나 생문대쪽으로
가자고 그랬습니다.하하 녀석아 여기도 예쁜 여학생이 많다네... 혹시 그녀가 사대쪽에서 나
오지나 않을까 친구와 이야기 하면서도 계속 눈은 사대건물 현관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그러고 있었는데 벤취 뒤쪽에서 누군가 나를 스쳐지나 사대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가다
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 모습이 너무 가을적입니다. 머리결이 여린 바람에 날리고
벌써 떨어져 버리는 나뭇잎 하나가 그녀의 눈망울처럼 내 앞에 내려 앉더군요.
눈이 마주쳤습니다. 좀 쑥스럽더군요. 그녀와 난 잘 마주치는거 같습니다. 애써 태연한척 담
배를 찾아 꺼내어 물었습니다. 하하. 부끄럽습니다. 뭘 그렇게 쳐다봅니까? 빨리 가세요. 책
은 나중에 꼭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사대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민이: 수요일 오전은 여유롭습니다. 오전엔 수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점심이 다가와서야 천
천히 집을 나섰지요
이크. 잘못하면 수업에 늦겠습니다. 오늘따라 길이 너무 막힙니다. 이런 교통사고가 났군요.
체증은 접촉사고가 난 승용차와 택시때문이었습니다. 그 두 자동차가 길을 비켜주지 않아
길이 막혔습니다. 수업 시작 시간은 이미 지났군요.
학교에 도착하자 마자 급히 뛰었습니다. 숨이 찹니다. 이제 걸어가야겠습니다. 사대앞 오르
막길을 오르는데 벤취에 앉은 두 남학생의 뒷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사람의 뒷모습은 낯이
익은 모습이군요. 벤취를 지나치다가 뒤를 돌아 봤습니다. 그였습니다. 벌써 떨어져버리는
낙엽이 그가 앉은 벤취에 몇개가 내려 앉습니다. 그모습이 가을날의 동화같습니다. 어색한
듯 담배를 문 모습마저 정겹게 보입니다. 수업엔 늦었지만 그 보상이라도 하듯 사대앞에서
그를 보았습니다. 호호 뭘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보세요? 알았어요. 전 이만 수업에 들어가볼
께요.
철이: 교양수업 강의실에 난 저번주에 앉았던 자리에 가방을 풀고 앉았습니다. 얼마 안있어
그녀가 나타나더군요.
날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내 바로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고운머리칼의 향내가 오늘
의 나를 기쁘게 합니다.
오늘은 그녀의 책을 가져왔지만 또 주지는 못할겁니다. 예전에 미안하다는 말 몇자 적은 편
지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앞자리의 그녀 책의 이름도 보았습니다. 가을입니다. 가을은 언
제나 사내의 마음을 설레게 하나봅니다. 문득 편지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
의 학과와 학번과 이름을 아는데 그녀한테 편지를 못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그녀한테
편지나 보내 볼랍니다. 아마 편지지에 내이름을 적지는 못할겁니다. 그냥 우연히 그대를 보
고 마음이 이끌린 사내라고만 적어야겠습니다.
민이: 오늘은 교양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강의실엔 그가 먼저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습니다.
홀로 앉아 있지만 외롭게 보이진 않습니다. 그렇지요 내마음이 끌렸으니 말입니다. 강의를
듣다가 창가에 이는 바람소리가 정경운 색으로 들어옵니다. 그의 앞에 앉아 시를 한편 적었
습니다. 그는 잘 모르겠지요. 내가 적은 공책의 시를...
오늘도 그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횡하니 나가버렸습니다.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그를 알게될
날이 오겠지요.
철이: 드디어 그녀에게 보낼 나의 첫편지를 썼습니다. 옆좌석에 그녀는 없었지만 오늘은 제
법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남들은 공부를 한줄 알겠지만 사실은 편지를 썼지요.
늦은밤 사대수위아저씨의 눈을 피해 일교과 편지함 일학년란에다 넣어두었습니다. 그녀가
저 편지를 보아야 할텐데 말입니다. 글자를 좀더 크게 쓸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충
성! 수위 아저씨 저 임무 마치고 철수 합니다.
열심히 티비를 보십시오. 가을은 이제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의 하늘이 많이 맑
아졌습니다. 남쪽하늘에 시리우스란 적색거성의 별빛이 오늘은 보입니다.
민이: 오늘 전공수업을 듣는데 친구가 편지하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분명 나한테 온것은
맞는데 누가 보냈을까요?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강의를 듣다 말고 편지 내용을 읽었습니다. 우연히 내마음에
내려앉은 소녀에게 보냅니다.
호호. 아직 이런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이세상에는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누굴까? 나의 눈에
자주 띤 모르는 남학생이 있었던가? 우리과학생은 아닐까? 그리고 혹시 그는 아닐까? 하지
만 알수가 없었습니다. 낯선 편지였지만 기분은 좋군요. 캠퍼스는 가을빛으로 이제 변해가고
있습니다.
철이: 이번주 교양시간에도 난 그녀의 뒤에 앉았습니다. 편지를 보낸 탓인지 조금은 다른 날
보다 그녀의 뒷좌석에 앉기가 쑥스러웠습니다. 그녀는 나의 편지를 보았을까요? 예전과 별
반 다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었습니다. 친구와 다정하게 속삭이는 그녀의 모습이 왠지 사
랑스럽습니다. 가을이라 그렇겠지요?
민이: 그는 지금 내뒤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아직 내가 가을을 타고 있는것을 모르나 봅니
다. 그의 볼펜 구르는 소리가 애처롭습니다. 옆에 앉아 있는 친구가 수업이 무료했던지 속삭
였습니다. 그 속삭임속에는 그에 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전에부터 일정하게 뒷좌석에 앉는
그가 친구에게도 눈에 들어왔나봅니다. 자기 때문에 저자리에 앉는거 같다고 합니다. 후. 그
럴지도 모르겠네요. 친구의 모습은 참 예뻤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아니겠지요. 친구때문에
그가 저 자리에 계속 앉는다고는 생각하기 싫습니다. 도서관에서부터 봐왔지만 그는 자리를
정하면 계속 같은 자리를 고집한다는 것을 난 이미 알고 있습니다.
철이: 일요일날 학교에 왔습니다. 편지지도 들고 왔지요. 오늘은 예전에 그녀 옆에 앉던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내 옆자리에 없습니다. 왠 떡대같은놈이 아침부터
이를 갈고 자고 있습니다. 깰 생각을 않는군요.
오전내내 이가는 소리를 들으며 편지를 썼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로 꽉찬 도서관
풍경도 아름답겠지만 학생들이 별로 없는 한산한 분위기의 열람실에서 이렇게 철모르고 자
는 놈과 꽃편지지에다 짝사랑의 편지쓰는 놈의 모습도 미소띠게하는 풍경같은데 그렇지 않
으세요?
점심 먹기 전에 사대에 편지지를 갖다 놓았습니다. 편지를 무사히 갖다놓고 나오니 기분이
좋습니다. 히죽히죽 웃고 나오다가 사대앞에서 하하 그녀와 눈이 떡 마주쳤네요. 아무래도
오늘 그녀가 편지를 발견한다면 그 편지 쓴 놈이 나란걸 알게되겠군요. 쪽팔립니다. 또 죽어
라 뛰어야겠습니다. 잠시간의 눈마춤 뒤에 난 뛰었습니다. 가을 바람 색깔은 점점 짙어만 갑
니다.
민이: 오늘은 일요일이지만 학교를 나갔습니다. 별로 동아리활동은 안했지만은 과내 어학동
아리에서 오늘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를 사대앞에서 보았습니다. 일요일날 여기는 무슨일일
까요? 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뭔가 어색한 표정을 짓습니다. 자주 마주쳤는데 눈인사나 해
줄까 했는데 그는 전에 자전거에서 떨어졌을 때처럼 잠시 내앞에 머물다 육상선수처럼 뛰어
나를 지나쳐 가버렸습니다. 뛰는걸 좋아하나 봅니다. 동아리방을 들어갈려고 했습니다만 우
리과 편지함 옆에 동아리의 모임장소가 학교앞 무슨 찻집이니 그리로 오라는 내용의 포스트
가 붙어 있었습니다. 다시 왔던길로 되돌아가야 겠군요.
163 풋풋한 사랑 이야기 (4) 멍청이 05/24 8
풋풋한 사랑 이야기 (4)
철이: 한동안 편지는 못보내겠습니다. 편지를 쓰기 시작한 지 두 번째만에 들켜버린거 같아
부끄럽습니다. 오늘은 화요일입니다. 학생식당 양식 메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하 그녀는
내눈에 잘 띠는군요. 학생식당 몇 테이블 건너 내 맞은편에 앉은 여학생이 낯이 익길래 봤
더니 그녀의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뒷모
습이군요. 난 그녀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더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나와 같이 밥을 먹던
친구가 그녀의 친구를 보더니 이쁘다 그럽니다. 하하 녀석아 그 맞은편에 앉은 여학생은 더
이쁘다네. 내말을 듣기라도 한 듯 그녀가 이쪽으로 고개를 한번 돌렸습니다. 친구는 그녀의
친구가 더 이쁘다는군요. 내 친구는 눈이 삐었나봅니다.
그녀가 이번에도 내 편지지를 받았을까요? 그랬다면 내가보냈다는 걸 알까요? 그녀의 모습
을 보니 들켰던 말건 계속 내 마음의 조각같은 편지를 계속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이: 과친구하나가 어제부터 있었는데 안 찾아갔다며 편지를 건네 주었습니다. 또 무기명이
군요. 그 편지에는 내가 좋다느니 사랑의 감정이 생겼다느니 하는 연애편지같은 내용이 아
니라 차분하게 자기 마음과 자기 마음 속의 내모습을 시처럼 적어간 내용의 글이 담겨 있었
습니다. 누굴까? 궁금하군요. 두번째로 온것으로 봐서 몇번더 이 편지의 주인은 이런 짓을
계속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번 만나자고 하겠지요.
학생식당에서 친구가 교양과목의 남학생이 저기 보인다며 눈웃음을 짓더군요. 고개를 돌려
보았습니다. 저기 멀리서 그가 식사를 하고 있군요. 옆에 앉은 사람은 호호 그때 자전거를
운전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밥먹는 척
을 했습니다. 친구는 계속 눈웃음을 짓고 있군요. 의심이 갑니다. 정말 내친구 때문에 그가
교양과목 그자리에 앉지나 않나 하구요.
철이: 교양 과목시간에 지각을 해버렸군요. 정말 강의실 한번 길군요. 뒤에 앉으니 정말 앞
이 캄캄합니다. 하하 이건 진짜 아닙니다. 내가 꼭 그녀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도
지각을 하고선 내 옆에 앉았습니다. 기분이 묘합니다.
도서관에서 내 옆에 앉았을 때하고 느낌이 또 다르군요. 나도 지각을 해서 여기에 앉은 겁
니다. 당신이 앞 좌석에 없었기 때문에 뒤로 온 것은 절대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
다.
민이: 교양수업시간에 지각을 했습니다. 당연히 앞문으로는 들어 갈 수 없었지요. 내 친구
뒤에 그가 앉아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니 기분이 별로 좋지가 않습니다. 뒷문으로 들어가
빈자리가 있길래 얼른 앉았습니다. 저 앞에 친구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어? 그의 모습은 보
이지 않습니다. 호호 그가 내 옆에 앉아 있군요. 난 그냥 앉았을 뿐입니다. 절대 당신이 여
기 앉아 있어서 여기로 온 것이 아니라 단지 빈자리였기 때문에 앉았단 말이에요. 라고 그
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철이: 다음주가 시험이라는군요. 하하 뭐 상관없습니다. 그녀 때문에 이 수업은 한번도 결석
을 한 적이 없습니다.
교양수업은 출석만 잘해도 시험은 무난히 치를 수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녀에게 고맙단
말을 해주어야 겠군요. 오늘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민이: 다음주가 시험입니다. 필기도 잘 했고 뭐 걱정은 없어요. 공책을 넘겨보니 그를 생각
하며 썼던 시가 보이는군요.
바로 나의 옆에 있는 그가 이 시를 보면 무슨 느낌이 들까요?
철이: 오늘은 편지를 썼습니다. 세 번째이니 만큼 어느 정도 나를 밝혀도 괜찮을 거 같습니
다.
교양 과목명을 적고 그 시간에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라고 적었습니다. 다음번 편지에
는 저의 학과 이름도 적어볼까요?
일요일날 아주 눈치를 보며 편지를 갖다 놓았습니다. 혹시 저번처럼 그녀와 마주치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에...
민이: 월요일 아침에 수업을 들어가다 혹시나 하고 봤는데 편지함에 나한테 온 편지가 있었
습니다. 그 사람이군요.
무기명입니다. 누굴까요? 편지를 읽어 보았습니다. 이 사람도 그와 같이 금요일 교양수업을
듣는다는군요. 그 시간에 나를 지켜본다는데... 너무 그에게만 신경을 썼을까요? 누군지 짐작
이 되지를 않습니다. 혹시 그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확인을 해봐야 겠군요.
철이: 오늘은 공대 앞에서 아주 낯선 사람처럼 그녀 앞을 지나쳐 갔습니다.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내 모습이 반가와 쳐다봤지만 얼른 피해야 했지요. 그녀는 아직 나를 모르기 때문입니
다.
그녀는 지금 내 맘을 온통 가을색으로 물들어 놓았습니다. 에이 씨. 그녀와 눈 마주치는걸
피하다가 공대 앞에서 족구 하던 놈들의 공에 머리를 맞았습니다. 또 그녀가 그 모습을 보
았습니다. 내 앞에 떨어진 공을 족구 하던 학생들 반대방향으로 있는 힘껏 차버리고 또 열
심히 뛰었습니다.
헉헉 생각을 해보니 도로 돌아가야겠군요. 전 공대에 수업이 있었습니다.
민이: 공대 쪽으로 난 길에서 난 그를 보았습니다. 그의 모습이 참 반가웠지만 그는 얼른 고
개를 돌려버리는군요. 그는 가을 바람처럼 내 마음의 나뭇잎들을 떨게 하고 있습니다. 나한
테 편지를 보내는 사람처럼 나도 그에게 편지나 써볼까요? 이런 그가 공에 머리를 맞았군
요. 호호 화가 났나봅니다. 공을 반대방향으로 차버리고 또 힘껏 뜀박질을 하며 멀어져 가는
군요. 이젠 그의 뛰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습니다.
철이: 교양시험을 열심히 보았습니다. 그녀가 내 뒤에 앉았군요. 혹시 그녀가 문제가 어렵다
고는 생각하지 않을까요. 내 답지를 보여주고 싶군요. 그런데 그녀가 먼저 답지를 내버립니
다. 문제가 쉬웠던 모양입니다. 다시 가방을가지러 이쪽으로 옵니다. 답지를 작성하는 척 해
야겠습니다. 그녀가 가방을 챙기다 내 쪽으로 무언가 떨어뜨렸습니다. 하하.
내가 보낸 편지군요. 그녀가 내 편지를 받아서 읽어보고는 있나 봅니다. 기분이 좋군요. 웃
으며 태연하게 그걸 주어서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답지를 작성하는 척 했습니다.
저도 답지를 이제 완성했습니다.
저기 그녀가 강의실을 나가는군요.
민이: 문제가 참 쉽습니다. 결석을 하지 않은 탓이겠지요. 답지를 제출 했습니다. 앞에 앉은
그는 아직 답지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꽤 많이 썼군요. 가방을 챙기다 가방 안에 있는 편지
를 보았습니다. 일부러 그가 앉은 쪽으로 떨구어 보았습니다. 혹 그가 이 편지를 썼다면 표
정의 변화가 있겠지요. 그는 별 표정없이 그 편지를 주워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가 쓴 편지는 아닌가 봅니다.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기대는 했었는데...
철이: 다음주부터는 전공시험이 있습니다. 오늘 집에 가자마자 그녀에게 편지를 써야 겠습니
다.
다음주에는 편지를 못 쓸 거 같으니 말입니다. 편지에 전 전산과에 다니는 학생이라 적었습
니다. 그리고 92학번이라고도 적었습니다.
편지 보낸 놈이 나란 걸 추측하기 너무 쉬울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민이: 다섯 번 째 편지를 받았습니다. 역시 그는 아니군요. 편지 보낸 사람은 전산과 학생이
고 더군다나 92학번이라고 합니다. 나의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사
람이 이젠 편지를 그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는 교양과목은 휴강을 한다고 했습니다. 시험기간입니다. 도서관이나 다녀야 겠습니
다.
철이: 월요일부터 도서관을 줄기차게 나왔지만 그녀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기야
내가 어디에 앉았는지 그녀는 모르겠지요. 오늘은 좀 일찍 온 탓인지 예전에 내가 앉던 자
리를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내 옆자리에 낯이 익은 가방이 걸려 있군요. 아침이라 졸립니
다. 오늘은 시험이 없습니다. 좀 자다가 일어나도 되겠지요. 일어나니 옆자리는 아직 가방만
걸려있고 사람은 없습니다. 어라? 내 자리에 생크림 빵이 있습니다. 누가 놔두고 갔을까요?
전 생크림 빵을 무지 좋아합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잘 먹겠습니다. 빵을 먹고 나니 공부가
잘되는군요. 하하. 내 옆자리는 그녀가 주인이었군요. 어쩐지 가방이 낯익다 했습니다. 그녀
가 자리에 앉길래 쳐다보았습니다. 날 보고 웃는군요. 날 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내 얼굴
에 뭐라도 묻어서 일까요? 아무래도 내가 보낸 편지의 필자를 알아 차린 것 같은 웃음 같습
니다. 좀 쑥스럽군요.
민이: 오늘은 첫 교시부터 시험이 있습니다. 새벽에 아침도 먹지 않고 도서관을 나왔습니다.
그하고 인연이 맺어졌던 자리에 가방을 놓았습니다. 배가 고프군요. 학교 근처 제과점으로
갔습니다. 아침 일찍 갓 구운 빵이라 맛이 정말 좋군요.
몇 개 사 가지고 가서 나중에 또 먹어야 겠습니다. 생크림 빵 두개를 샀습니다. 도서관에 돌
아 오니 내 옆에 누가 앉아 자고 있었습니다. 호호 그군요. 그가 오늘은 아침부터 잠에 빠져
있습니다. 첫 교시 시험 때문에 내가 자리를 뜰 때까지 그는 일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시
험을 보러 나갈 준비를 하다가 문득 그가 아침은 먹고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크림빵 두개를 그의 자리에 놓아두었습니다. 나갈려고 하는데 그때 자전거를 몰았
던 그의 친구가 그의 잠든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행히 그를 깨우지는 않더군요. 그런데 말입
니다.
그가 먹으라고 놓아둔 빵 하나를 그 자리에서 뜯어 먹어버렸습니다. 나머지 한 개도 먹어버
리면 오늘 도서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날것도 같습니다. 그의 친구를 째려보았습니다. 내 시
선을 의식했는지 나머지 빵 한개는 손만 댔다가 그냥 놓아두고 갔습니다. 시험을 잘 보고
도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222 풋풋한 사랑 이야기 (5) 멍청이 05/29 6
풋풋한 사랑 이야기 (5)
철이: 이제는 낙엽이 눈에 띠게 떨어집니다. 애처로운 바람이 오후를 여유롭게 하고 있습니
다. 오늘 중간고사가 끝이 났습니다. 내일은 교양과목이 휴강입니다. 그녀는 언제 나와 마주
칠까요? 오늘은 일찍 집에 들어가야겠습니다. 버스가 빨리 안오는군요. 버스 정류장 앞에 있
는 꽃집의 빨간 장미들이 그의 모습들을 웃음으로 발하고 있었습니다.
민이: 내일은 중간고사 시험이 두개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오후는 차분한 느낌을 주네요.
집에 일찍 들어가봐야 겠습니다. 버스 정류장 앞 꽃집의 장미가 너무나 곱습니다. 가을날 바
람은 그 꽃을 사가지고 가라는군요.
꽃을 안고 버스에 탔습니다.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내일은 교양과목이 휴강이군요. 언제
쯤 그와 다시 마주치게 될까요?
철이: 밤의 어둠은 마음을 떨리게 하는군요. 음악을 들으며 그녀에게 편지를 씁니다.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서로 알게 될 날이 오겠지요.
다음날 수업도 없었지만 오후에 편지 때문에 학교를 갔었습니다. 시험이 끝난 선배들과 친
구들에게 붙잡혔지요. 할 수 없이 한잔 해야겠습니다. 해 질 무렵 캠퍼스 잔디밭은 시끄럽습
니다. 띠엄띠엄 가로등이 자신의 존재를 알렸지만 조금 어둡군요. 예비역 선배 3명과 그 중
한 명의 여자 친구 선배 한 명 그리고 자전거몰던 친구 녀석과 잔디밭 한구석에 자리를 잡
았습니다. 근처 여기저기에 우리와 같이 술판을 벌인 학생들이 많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선배들은 취해 갔습니다. 여자선배는 뭐가 좋아 저렇게 히죽거릴까요? 저기
열장 걸음 떨어진 곳에 열 명 정도가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그쪽은 여자들이 참 많군요. 일
본말 소리가 들립니다. 일교과 학생들일까요? 그녀가 일교과학생이지요. 일본말 좀 하는게
뭐 그리 기분 나쁜 일이라고 술취한 선배하나가 그쪽을 보고 한 소리 했습니다.
그쪽에선 그렇게 큰 반응은 보이지 않았지만 남학생하나가 이쪽을 쳐다보기는 했습니다. 사
건은 조금뒤 술이 떨어졌다며 여자 선배가 술을 사러 자리를 비웠을 때 일어났습니다. 예비
역 선배들은 여학생들이 들으면 참 민망할 것 같은 노래를 아주크게 아까 일본말이 들렸던
그곳을 향해서 대놓고 불렀습니다. 저노래는 군대가서 배운것이겠죠?
열장 밖 일본어가 들렸던 자리에는 여학생들이 많았던 탓에 시비건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쪽에서 반응이 왔습니다.
누군가 일어서더니 이 쪽을 보고 조용히 하라고 하더군요. 그 소리가 썩 듣기 좋지는 않았
습니다. 저도 술을 먹었겠다.
선배들이 부르는 노래의 욕 나오는 부분만 따라 부르며 우리 쪽의 반응은 오히려 거세어 졌
습니다. 드디어 쌈나게 생겼습니다. 그 쪽의 남학생 전부가 이 쪽으로 왔습니다. 에게? 겨우
세명입니다. 우리쪽의 기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그쪽에서 온 남학생 중 하나는 엄청 덩치
가 좋았습니다. 조용히 좀 하라는 그사람의 목소리가 무식하게 컸습니다.
하지만 군대까지 갔다온 선배들은 술까지 먹었는데 쫄리 있겠습니까? 대들었습니다. 그 덩
치좋은 남학생이 우리과 선배 하나의 목부분을 잡았습니다. 선배는 달랑 들려 올라가더군요.
그들의 대화를 잠시 들어볼까요?
"놔라. 임마. 우쒸 너 몇학번야~임마?"
"쌍팔학번이다. 왜 한판 붙을래."
"난 팔칠이야~임마. 놔 빨리."
"팔칠같은 소리하고 있네. 더 힘줄까?"
"잘못했시유. 팔구에요. 놔줘유."
힘없이 꺽이는 선배를 보았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군요. 다른 선배들도 기가 꺽이였습니다.
우리쪽은 남자가 다섯이나 되었지만 한번 꺽이고 나니 조용해 졌었습니다. 그 때 술사러 나
갔던 여자선배가 돌아와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짜고짜 그 덩치큰 남학생에게 대들었습니
다. 하하 그 여자선배는 목을 잡혔던 선배의 애인이었습니다.
덩치큰 남학생은 황당해 하더군요. 때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다 툭하고 밀었는데 불쌍한 선
배 그만 잔디밭에 픽 꼬꾸라졌습니다. 목을 잡혔다 놓인 선배가 한쪽에서 목을 캑캑거리고
있다가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까와는 달리 용감하게 달려와 날라차기를 하더군요. 코메디
였습니다. 덩치큰 남학생은 쉽게 피해버렸거든요. 그 선배도 잔디밭에 꼬꾸라 졌습니다. 무
슨일인지 궁금했던지 덩치큰 남학생 무리의 여학생들도 이쪽으로 왔습니다. 넘어졌던 선배
가 머리를 갖다 대며 덩치큰 남학생에게 대들었지만 상대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선
배의 애인이었던 여자선배가 구두를 벗더니 덩치큰 남학생에게 엉겨 붙었습니다. 그모습이
가관입니다. 안되겠습니다. 저라도 말려야 겠습니다. 난 말릴려고 했을뿐인데 그 덩치큰 학
생은 날 지원군이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내 팔을 잡더니 세차게 밀어버렸습니다.
에구구 그는 힘이 천하장사였습니다. 싸움을 보러왔던 상대편 여학생들쪽으로 난 힘없이 날
라갔읍니다. 하하 일본어 쓸때부터 혹시나 했는데... 그쪽의 여학생들중에 그녀가 있었습니
다. 그리고 하필이면 내가 그녀쪽으로 밀려가고 있습니다. 빠른속도로 밀렸기 때문에 그녀는
날 미처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또한... 난 손을 흔들었습니다.
속도를 죽여야겠기에 하지만 잘못했다간... 잘못했다간 말입니다. 그녀의 가슴을 만질수도 있
겠습니다. 흔들던 손을 뒤로 홱 빼버렸습니다. 저 참 단순하지요? 머리로 바로 그녀의 얼굴
을 받아버렸습니다.
고개를 들었더니 그녀의 그 이쁜얼굴에서 코피가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진짜 미안합니다!"
그말만 하고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을 쳤습니다. 헥헥... 난 왜 이럴까? 예전엔 안그랬
던거 같은데... 그녀 볼 면목이 없습니다.
민이: 드디어 시험이 끝났습니다. 과내 어학동아리에서 시험도 끝났고 해서 잔디밭에서 술이
나 한잔 하자고 합니다.
캠퍼스에 저녁이 물들고 있습니다. 가로등이 그 빛을 애써 외면하려고 했지만 잔디밭에는
어둠이 깔렸습니다.
잔디밭에는 우리말고도 술을 마시는 학생들 무리가 많았습니다. 한 쪽 편에 자리를 잡았습
니다. 동아리 회장 오빠는 인기가 좋습니다. 우리 동아리에는 일본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여학생도 있습니다. 한국말이 서툴러 자주 일본어를 썼었습니다. 물론 전 잘 못알아 듣지요.
그녀도 회장오빠를 좋아하나 봅니다. 회장오빠가 뭐가 좋을까요? 덩치는 산만하고... 그 오빠
는 고등학교때까지 씨름을 했다고 했습니다. 요즘도 유도학원을 다닌다고 들었는데... 술이
조금 되니까 일본에서 온 여학생은 어눌한 한국말 대신 일본어를 계속 썼습니다. 그말을 알
아들었는지 선배들은 일본어로 답해주곤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감정이 있나봅
니다. 우리 옆에서 술을 마시던 한무리에서 어디서 쪽** 말을 쓰냐고 신경질적인 반응이 왔
습니다. 쳇... 기분이 안좋습니다. 회장 오빠가 그 쪽을 험한 인상으로 쳐다보았습니다만 주
위에서 말렸죠. 사건은 조금 뒤 일어났습니다. 아까 그 무리의 학생들이 일어서 이쪽을 보며
이상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민망한 가사가 많았습니다. 드디어 회장오빠가 일어섰습니다. 회
장오빠가 일어서자 옆에 있던 두 선배 오빠들도 일어서 회장 오빠를 따라 노래 부르는 무리
에게로 갔습니다. 쌈이 났습니다. 회장 오빠가 그무리의 한 남학생의 목을 잡아 들었습니다.
호호 회장 오빠가 거짓말을 쳤군요. 회장 오빠는 구공 학번인데 팔팔학번이라고 속였습니다.
어머 그 무리에 여학생도 있었군요. 쌈 잘 하는 언니같았습니다. 역시 회장 오빠는 힘이 세
었습니다. 가볍게 손을 댄것처럼 보였는데 그언니는 땅바닥에 넘어졌습니다. 아까 목을 잡혔
던 남학생이 회장오빠한테 달려들더군요.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큰 싸움이 나겠습니다. 우리쪽 여학생들은 모두 그쪽으로 가 싸움을
말리기로 했습니다. 호호 그 무리에 그가 있었습니다. 회장 오빠한테 당하고 있는 남학생 하
나와 여학생이 딱해 보였나봅니다. 그는 한 손을 걷어부치고 회장 오빠에게 갔습니다. 그도
키가 작은건 아니었지만 회장 오빠에게 비하면 왜소해 보였습니다.
안되는데... 저러다 그가 다칠것 같습니다. 말려야 겠습니다. 싸움을 말릴려고 한발짝 걸음을
옮겼을때 그는 회장 오빠에게 팔을 잡혀 내 쪽으로 던져졌습니다. 피해야 하는데 그의 크게
뜬 맑은 눈동자를 보니 움직일 수가 없군요.
그가 나보고 비키라 손을 흔듭니다. 저대로 달려오면 날 안을것도 같습니다. 으이그 손을 빼
버리는군요. 한순간 내 눈앞에 별이 반짝였습니다. 그가 머리로 내 얼굴을 받았거든요.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왜 그랬을까요? 또 빠른 뜀박질로 도망을 쳤습니다. 콧
물이 흐르는 느낌 같아 만져 봤는데 어제 산 장미빛의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으아앙... 어린
아이도 아닌데... 피를 보니 울음이 나왔습니다. 저 때문에 싸움은 끝이 났지요.
그는 그렇게 싸움을 말려 놓고 어디로 뛰어갔는지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철이: 일요일 저녁 무렵에 학교를 왔습니다. 내 손에는 장미꽃 다발이 들여있습니다. 금요일
날 편지를 못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편지만 남겨놓기가 그렇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길건너 꽃집으로 가 전에 보았던 빨간 장미를 샀습니다. 편지와 함께 그 장미를 편지
함에다 놓고 왔습니다. 그녀손에 장미가 안길때까지 시들어버리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미안
합니다. 기분 푸세요.
월요일 캠퍼스안 길을 걷다가 그녀의 꽃을 안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맑아지는군요.
꼭 내가 그녀품에 안긴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내쪽으로 걸어옵니다. 내 뒤쪽엔 아무도
없습니다. 나한테 오는것 같습니다. 그녀에게 코피까지 터뜨렸는데...
238 풋풋한 사랑 이야기 (6) 멍청이 05/30 4
풋풋한 사랑 이야기 (6)
철이: 교양수업시간입니다. 저기 앞쪽에 그녀가 홀로 앉아 있습니다. 난 뒤에 앉았습니다. 그
녀의 친구가 지각을 했습니다. 내 옆쪽에 앉아 있습니다. 친구마저 뒤에 앉았으니 그녀의 뒷
모습이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군요.
그녀 친구가 필기를 하다가 지우개를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부탁을 하는데
안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앞 좌석에 앉은 모르는 놈에게 지우개를 빌려서 그녀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나는 지우
개가 없었거든요. 그녀의 친구도 자세히 보니 예쁘군요. 하지만 그녀에게 비할 수 있겠습니
까?
민이: 오늘 교양수업은 내 친구도 그도 내 주위에 없습니다. 한번 뒤를 돌아봤습니다. 학생
이 많으니 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를 만났습니다. 호호 저기 그도 보
이는군요. 친구가 그의 옆에 앉았었다 하는군요. 그리고
지우개를 빌려달랬더니 남의것을 빌려서 자기한테 준 호의도 베풀었다 합니다. 친구의 웃음
띤 얼굴이 얄밉습니다. 그는 정말 내 친구에게 관심이 있는걸까요?
철이: 시월이 가버리고 십 일월이 왔습니다. 오늘은 그녀의 짧은 치마 입은 모습을 보았습니
다. 싸늘해진 날씨는 그녀의 예쁜 종아리 아래에서 짙은 가을색으로 다시 번져버리고 말았
습니다. 그녀 옆에서 걷고 싶습니다. 열번은 채우려고 했던 편지는 어떡할까요? 한번 만나보
자는 내용을 적고 싶습니다. 오늘 일곱번째 편지를 쓸렵니다.
민이: 학교의 모습이 너무나 노랗게 채색되어 있습니다. 가을색 필터를 끼운듯 여운 그리움
이 있습니다. 그를 보았습니다. 그의 모습이 그 그리움이었나 봅니다. 그와 같이 이캠퍼스를
걸으면 좋은 추억이 되어 낙엽처럼 내 맘에 내릴것도 같지만 그와 난 모르는 사이입니다.
아직 아무말 오고 가지 못한 모르는 사이입니다.
철이: 꽃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와 같이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그녀도 이곳에서 버스를
타나 봅니다. 그런데 왜 한번도 여기선 그녀를 보지 못했을까요? 꽃집 버스 정류장 그리고
그녀... 매캐한 매연이 시야를 흐리기도 하지만 너무나 정겹습니다. 꽃집 옆에 음반점이라도
있다면 영화를 찍어도 좋을 정도의 화면이 되겠습니다. 아쉽게도 음반점은 없네요. 그녀가
버스를 타고 사라졌습니다. 저 버스를 탄 사람들은 좋겠습니다. 그녀와 같이 어디를 가는게
될테니까요.
내가 타야할 버스는 정말 짜증나게 띠엄띠엄 오는군요.
민이: 집으로 가는길에 시디를 하나 샀습니다. 새미 클래식 시디입니다. 클래식은 잘 모르지
만 다른 거보다 쌌습니다.
그리고 실내악은 가을에 여린 마음을 가엽게 감싸줄것만 같아서 듣고도 싶습니다. 내가 타
는 버스 정류장에는 반가운 사람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꽃집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이 시어가 되어 내눈에 들어옵니다. 오늘 시 한편 적어야겠군요. 오늘 산 시디를 들으면
서 말입니다. 아쉽게도 내가 탈 버스가 빨리 와버리는군요. 오늘 그와의 짧은 만남은 이것으
로 끝내야 겠습니다. 먼지 낀 버스의 뒷 유리창으로 그의 모습이 얼룩져 비추어졌습니다.
철이: 오늘 여덟번째 편지를 썼습니다. 교양수업을 들어가니 그녀 혼자 앞자리에 앉아 있습
니다. 그녀의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참 오랜만이군요. 그녀의 뒷 자리에 앉은것이... 그녀는
여전히 향기좋은 머리칼로 내 기분을 좋게 합니다.
그녀를 보니 내 자신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녀에게 코피를 안겼다는 죄책감이 나를 작게 만
듭니다. 가방속의 아직 봉합하지 않은 편지 봉투를 꺼내 열어 학번과 이름을 썼었습니다.
민이: 그가 내 뒤에 앉았군요. 친구는 오지 않을 거 같습니다. 미팅하러 갔거든요. 그는 내
뒤에 앉아 차분히 수업을 들었습니다.
오늘 저녁 집에 갈무렵 편지함에서 나에게 온 편지를 보았습니다. 교양수업 들어갈 때만해
도 그 편지는 없었습니다.
누굴까요? 그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학번과 이름이 적혀 있군요. 보낸 사람의 이름은
성계철이었습니다. 그의 이름과 비슷하군요. 하지만 그는 아닙니다.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
고 싶지는 않지만 다음에 편지가 오면 이런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답장을 해야겠습니다.
철이: 내 이름을 밝혔으니 나에게 그녀가 답장을 해 줄 것도 같습니다. 며칠째 과방의 편지
함을 기웃거렸지만 나한테 온 편지는 없었습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니 나한테 온 편지가 있었습니다. 가히 기분좋은 편지는 아니더군요. "입
영통지서" 소집일이 십이월 이십이일이군요. 한달 조금 더 남았습니다.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대로 군대를 가 버리면 그녀와의 인연은 끊어 질 것같고 영
영 남남으로 살아갈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을 보며 말을 걸 용기는 나지 않습니
다.
입영통지서에 대한 답장을 그녀에게 썼습니다. 다음주 금요일 교양수업을 마치고 저녁에 교
문앞 **커피숍에서 기다리겠으니 한번 만나보자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민이: 그는 얼마동안 캠퍼스에서 마주쳐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편지를 받았습니다. 역시 내
생각데로 만나자는 내용으로 이 편지는 마무리 되어 지고 있습니다. 혹 열번을 채웠다면 한
번은 만나줄 용의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 편지는 아홉번째의 편지입니다. 이번주 금요일
교양수업을 마치고 이편지 보낸 사람은 만남을 기대하는군요.
철이: 오늘 교양수업은 교수가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앞에 앉은 그녀에
대한 두근거림이 너무도 큽니다. 이 소리를 그녀가 들을까 두렵습니다. 그녀가 오늘 약속한
장소에 모습을 나타낼까요?
수업을 끝마치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옷맵시를 보고 머리도 빗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커피숍으로 들어섰습니다. 30분 정도 일찍 들어왔습니다. 커피를 한잔
시켰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3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서빙보는 아가씨의
눈치가 보여 콜라를 한잔 더 시키고 또 한시간을 커피숍에서 보냈습니다. 결국 그녀는 나타
나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시린 달빛이 내 심장을 관통해 나갔습니다. 내 마음은 지금 공허합니다.
하하. 웃음이 나오는군요.
민이: 교양수업 그가 내 뒤에 앉았습니다. 왠지 안절부절 못하며 나의 눈길을 피했습니다.
그는 알까요? 이 강의실에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학생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사람이
오늘 나와 만나자는 제의를 했다는 것을 그는 알까요?
그의 모습이 애처롭게 맑아보입니다.
교양수업을 끝내고 동아리 방에서 편지의 답장을 썼습니다.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은 원치 않지만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편지는 이제 그만 보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받으며 기분은 좋았습니다. 안녕히...
우표를 붙이고 편지함에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편지보낸 사람은 항상 손수 갖다 놓았지만
전 그럴 자신은 없군요.
편지 보낸 사람이 날 기다리며 커피숍에서 쓸쓸히 시간을 허비했겠군요. 미안합니다.
철이: 다시한번 편지를 보내 볼까요? 하지만 편지함에서 발견한 그녀의 편지내용이 그럴 내
마음을 여지없이 꺽어 놓는군요. 훗. 편지를 받아보며 기분이 좋았다는군요. 그것이 나를 얼
마나 비참하게 만드는 말인지 그녀는 알까요?
편지는 기분좋게 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말이니까요.
어쩔까요? 당분간은 그녀를 마주치는 것도 두렵습니다. 곧 기말고사가 다가올겁니다.
민이: 편지보낸 사람한테 내가 너무 했나요? 아무리 자기가 좋아서 편지 보냈지만은 그래도
정성이 담긴 글이었는데...
한번 만나는 줄걸 그랬습니다. 오늘 교양수업은 그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결석을 한것 같습니다.
다음주가 시험이라는데...
253 풋풋한 사랑 이야기 (7) 멍청이 05/31 8
풋풋한 사랑 이야기 (7)
철이: 오늘 그녀를 보았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지나쳐 갔습니다. 내 발자욱에 찬바람
이 일고 있습니다. 가을은 내게 많은 설레임을 불러다 놓고 서럽고 아쉽게 끝이 날려나 봅
니다. 다음주가 시험인데... 시험이 끝나면 그녀의 기억은 저물어 갈겁니다.
민이: 오늘 그를 보았습니다. 나는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지만 그는 나의 그모습을 외면하는
군요. 왜 그는 저렇게 고개를 숙이며 힘없이 걷고 있을까요?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은 자기
때문에 내 마음은 아직 가을이란걸 그는 알까요? 이 마음이 지쳐 낙엽이 다 떨어져도 나는
그 때문에 춥지 않을거 같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다시 도서관에서 여름방학때처럼 나란히
앉기를 기원합니다.
철이: 시험기간입니다. 도서관 자리를 잡아놓고 커피를 뽑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차가운 아
침 공기 속에 입김과 함께 담배연기 날려보았습니다. 그녀가 이제 도서관을 나오는군요. 따
뜻한 외투를 걸치고 따뜻한 미소를 품으며 그녀는 나를 스쳐 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녀가 지나친 자리에 나의 차운 마음이 남았습니다.
도서관에 빈 자리가 이제 없을텐데...
민이: 아직 이른 아침이지만 도서관 자리가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시험기간입니다. 도서관
앞에서 그를 보았습니다.
일찍 나왔나봅니다. 그는 차운공기속에 그의 존재를 알리듯 담배연기를 입김처럼 뿜었습니
다. 그의 앞을 스쳐 지나 갔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를 느끼기가 너무나 애처롭습니다. 그
의 마음은 따뜻하겠지요? 그를 이렇게 모르는 사람처럼 그냥 스쳐갈려니 마음이 차가운 아
침공기처럼 무겁습니다.
도서관에는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철이: 오늘 교양시험을 끝으로 시험도 끝이 나고 학교 생활도 당분간 접어야겠지요. 교양시
험 강의실에서 그녀가 내 근처에서 앉았습니다. 나의 마음을 담아 보낸 편지는 아쉬운 결과
를 주었지만 그 아쉬움을 준 그녀의 모습은 그래도 아름답습니다.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이
교양수업이 출석을 부릅니다. 큰일이군요. 그녀가 내가 편지 보낸 놈이란걸 알 수도 있겠습
니다. 하지만 뭐 쪽팔릴것도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학교와는 끝이니까요. 내이름을 부를때
큰소리로 답했습니다. 내 위치를 알리 듯 말입니다.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오랫동안 쳐
다보았습니다. 그래요 내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하. 그때 만남을 원한 장소에서 네 시간동
안 당신을 기다린 놈이 접니다.
답지를 아주 빠른속도로 적고 백지 낸 학생들 빼고는 아마 내가 제일 처음 시험장을 나온거
같습니다. 그녀가 답지를 적다가 내 모습을 또 쳐다 보았습니다.
시험이 끝났습니다. 교학과에 입영 통지서를 보여주며 휴학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내가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하면 그녀는 4학년이겠군요. 그 때 혹시 또 볼 수도 있겠군요. 그
럼 그때까지 안녕히...
그 동안 그녀 때문에 난 조그만 행복을 꿈꿀수 있었습니다.
민이: 오늘 교양시험이 내 신입생 생활의 마지막 시험입니다. 그가 저기 뒤에 앉았군요. 시
험 잘봐요. 기말고사라 수강생 파악차 처음으로 마지막 출석을 부릅니다. 전자과 출석을 부
르는데 그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수강신청이 잘 못 됐을까요? "전산과 신계철." 그 이름이
불려 졌을때 그가 크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이름은 나한테 편지보냈던 사람의 이름이었습니
다. 그리고 그 이름은 그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럼 그의 연습장에서 보았던 이름은 누구의 이
름입니까?
한동안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습니다. 어색하게 나를 보며 웃는군요. 그가 편지보냈다는 사
실이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그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난 그가 어렵게 보냈던 편지
의 내용을 거절했었습니다.
이거 난처하군요. 편지 보낸 사람이 그인줄 알았다면 난 분명 그 커피숍을 나갔을 터이고
그토록 바라던 그와의 인연을 맺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오늘 그에게 다시 편지를 써야 겠
습니다. 그가 답지를 제출하고 나갔습니다. 어쩌면 이번 겨울은 사연이 생길 것도 같습니다.
298 풋풋한 사랑 이야기 (8) 최병청 06/04 4
풋풋한 사랑 이야기 (8)
철이: 학교 과방에 입대하기전 마지막으로 선배들과 친구들에게 인사를 할려고 들렸습니다.
술이나 한잔 하고 가라고 했지만 거절을 했습니다. 오늘 내일은 일찍 집에가 가족들과 보내
야지요 과방을 나왔습니다. 교내 우편배달부가 우편물들을 한아름 들고 들어가네요. 크리스
마스 카드들도 많이 눈에 띠는군요. 메리 크리스마스다.
곧 입대를 할려니까 그녀가 보고 싶네요. 하지만 캠퍼스에서 그녀와는 마주쳐지지 않았습니
다. 짧게 깍은 내 머리가 조금은 어색한 모습입니다. 안 마주쳐지길 잘 했네요.
민이: 어제 그에게 조금 긴 내용의 성탄절 카드를 보냈습니다. 그 때 만남장소에 못나가 죄
송하다며 22일날 다시 만남을 가지실 의향은 없는지 물어보았지요. 그 시각, 그장소에서 말
입니다. 그가 답장을 줄까요?
그도 나한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왜 그렇게 서로 모르는 척 눈치만 봤을까요. 아쉬운
미소가 맺힙니다.
철이: 드디어 소집일입니다. 집에서 엄마는 그냥 잘 갔다오라는군요. 제가 어디 놀러갑니까?
하여간 잘 다녀오겠습니다. 의정부로 갔습니다. 진짜 총을 매고 있는 군인을 보니 좀 무서웠
습니다. 날씨는 또 왜 이리 춥습니까? 입대하는 사람들 따라 온 사람도 많습니다. 늙은 국군
아저씨가 여러 말을 하는군요. 집에 가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했습니다. 들어버릴까? 누가
하나 손을 들었는데... 연예인 누구였습니다. 신기합니다. 사인이나 받을까요? 누가 그를 데
리고 나가는군요. 진짜 집에 보내줄려고 저러는 걸까요? 나중에 군기가 들어 돌아온 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낯선 곳에서 하루밤을 보냈습니다.
민이: 그가 답장이 없군요. 계속 도서관을 나왔었지만 그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도
서관 여름방학때 앉던 자리에 계속 앉아보지만 그는 제 옆자리에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맘
에서 약속시간이 되어 커피숍을 가보았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한잔 했습니다. 분위기가 좋군요. 설레이는 맘으로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내게로 와서 나와 좋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호호 내가 30분 정도 졸았군요.
3시간동안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편지를 못 받았을까요? 그때 그도 이렇게 나를 기다
렸을까요? 아쉬운 맘으로 커피숍을 나왔습니다. 오늘 그와의 만남이 있었다면 크리스마스때
영화도 보러가고 했을터인데...
철이: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본격적으로 훈련소로 배치되어 신병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날
씨가 더 춥군요. 그래도 우리는 행운아라며 군발이 아저씨가 초코파이를 돌렸습니다. 하하
그것이 그후로 6주동안 한번도 볼수가 없었던 사제 간식이었다는걸 그때는 몰랐지요.
우쒸. 크리스마스인데 아침부터 운동장을 돌리는군요.
민이: 야 신난다. 크리스마스가 내일입니다. 언제나 이날은 설레였지만 올해는 대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인지 더 설레이네요. 고등학교 친구들과 명동을 나갔습니다. 오늘밤을 장식하는 많
은 조명들과 그속에 담긴 사람들의 밝은
표정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캐롤송들... 이런날은 사랑을 해야지요. 눈송이라도 떨어진다
면 정말 그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을거 같아요. 날씨가 추웠지만 거리를 마냥 돌아다녔습니
다.
철이: 새해를 훈련소에서 맞이 하다니 기분이 개떡같습니다. 그래도 일월일일이라고 훈련은
안시킵니다. 담배도 피고 싶고 초코파이도 먹고 싶습니다. 훈련을 시작한지 며칠되지도 않았
는데 손등이 다 깨졌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그렇습니다.
민이: 새해가 되었습니다. 올해가 나의 만 20세 되는 해입니다. 조금 있으면 내 생일이 다가
옵니다. 올해는 모두들 행복하시고 나에게 진하게 잊혀지지 않는 사연하나 남기게 해주옵소
서. 그는 계속 마주쳐지지도 않습니다.
철이: 오늘도 눈이 오는군요. 지겹습니다. 이런 얼어 죽을 날씨에 무슨 명상입니까? 운동장
에 앉혀놓고 무슨 명상을 하라고 하십니까? 이러다 얼어 죽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손등
도 다깨지고 복숭아뼈 다 까지고 발가락도 불어 터졌습니다. 이제는 목까지 쉬어 갑니다. 어
머니 서럽습니다. 명상을 해야하는데 잘 안되는군요. 그녀의 모습이 아련히 스쳐갑니다. 요
즘은 그녀의 모습도 잊고 살았습니다.
민이: 눈이 조금 더 왔으면 했는데 조금 밖에 오지를 않는군요. 차가운 날씨에 입김을 뿜으
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묘미도 참 좋네요. 도서관 앞에서 사람들의 오고 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도서관을 나오지 않을려나 봅니다. 한달째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편지에 대한 나
의 태도가 그에게 많은 아픔을 주었을까요? 잘못된 이해로 그렇게 되었던 건데...
풋풋한 사랑 이야기 (9)
철이: 내일은 훈련소 퇴소를 하고 자대로 배치를 받아 떠납니다. 부모님이 내일 오시겠지요.
오늘 건빵을 받아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알아 보기 쉽게 엄청 크게 쓴 어느 국민학생의
위문편지는 내가 국군 아저씨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눈물젖은 건빵을 받아들고 울
먹거리는 녀석들이 저 말고도 많군요.
지금 내 목소리는 내가 아닙니다. 겨울에도 사람피부가 탈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붉
고 시커멓게 탄 얼굴, 손톱 한 쪽은 피가 맺혔고 손등은 다 깨지고 발도 엉망이지만 오늘은
즐겁습니다. 오랜만에 먹어 보는 간식과 편지 그리고 내일은 부모님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
웁네요. 많은 것들이... 바깥세상이, 친구들이,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오랜만에 선명하게 그려
집니다.
민이: 오늘이 바로 나의 20번째 생일입니다. 동아리 선배들과 친구들이 장미꽃 20송이를 주
었습니다. 케익에 작은 촛불을 스무개 꽂고 생일축하 노래를 들었습니다. 생크림을 얼굴에
묻혀주며 앞으로 성인으로서 삶을 아름답게 꾸미라는 선배들의 모습이 감사의 마음이 담깁
니다.
집에서도 케익에 초를 꼽고 부모님과 언니들과 동생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행복합니다.
오늘 받은 장미를 화병에 꽂았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도 예전에 장미를 나한테 준적이 있군
요. 그 때는 그가 준것인지 몰랐지만... 오늘 잊혀지지 않고 있는 그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철이: 엄마가 내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하 내모습이 그렇게 초췌해 보였나요?
변소뒤에서 밖에서 가져온 담배맛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었습니다. 연기를 뿜
으며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만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하하 그녀. 그
녀와는 인연이 없나봅니다.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참 그립지만 말입니다.
민이: 어제 생일이 지나갔기 때문일까요? 오늘은 기분이 또 다르군요. 이제 엄연히 저도 성
인이니깐요. 날씨는 오늘따라 더 춥습니다. 그는 지금 무얼할까요? 어제 생일날 그가 있었으
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훗 그와의 인연의 끈은 맺어질까요? 내 맘에 품고 계속 그리움
이란 단어를 새기고 있으면 그렇게 될것 같습니다.
철이: 나이는 비슷한 놈들인데 왜 그렇게 높아 보일까요? 고참들에게 전입신고를 하는데 많
이도 떨렸습니다.
서러운 일도 많이 당하고 아니꼬운 일도 많이 당했지만 군대 생활은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
았습니다. 여기는 문산이라는 곳으로 내가 몸담은 곳은 30사 기계화 부대였습니다. 곧 봄이
오면 이렇게 춥지만은 않겠지요?
민이: 얼마 안있으면 새학년이 시작될텐데 그의 모습은 정말 우연으로도 만나지지 않았습니
다. 혹시 그가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갔을까요? 그의 기억은 뚜렷한데 모습을 그려내기가
점점 힘이 들고 있습니다. 잊혀져가는 건가요?
철이: 하하. 자대배치 두달만에 내 후임병이 들어왔습니다. 진짜 신납네다. 내가 어떻게 보이
냐? 예! 하늘처럼 보이십니다. 하하. 그렇지. 고참들이 장난치자며 짝대기 하나끼리 잘 논다
그럽니다. 고참님들도 느껴보시지 않았습니까? 내 밑에 누가 있다는거 그 기분좋군요. 앞으
로 내 널 키워주마.
민이: 신입생들이 우리동아리 신청을 하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이제 열명을 넘겼습니다. 제
위치가 높아졌습니다.
신입부원들이 귀엽습니다. 이제 동아리방에서 저도 인사를 받습니다. 항상 인사를 하며 동아
리방을 들락거렸는데 이제 나도 선배님 안녕하세요. 그런 인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호호.
나보고 꼭 선배 누나라 부르는 남자 후배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래 내 특별히 넌 잘 봐줄께.
어찌보면 그하고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철이: 나도 이제 얼마 안있어 짝대기 두개가 됩니다. 후임병도 세명이나 됩니다. 내 짬밥이
하루 하루 푸짐해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편지는 화장실에서 숨어서 씁니다. 오늘은 부
모님께 편지를 썼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 타는 놈한테도 편지를 보냈습니다. 부모님 말고
군대 갔다고 편지 보내준 놈은 그래도 친구라고 그놈밖에 없습니다.
바깥세상의 소식을 잘 적어 보내라며 무릎에 대고 쓴 글씨라 개발세발이지만 편지를 썼습니
다.
민이: 오늘 예전에 그에게서 받은 편지를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그려진 내 모
습이 참 고웁게도 적혀있습니다. 내 마음속 그의 모습처럼... 그런데 그의 모습은 몇달째 보
이지 않습니다. 곧 여름이고 또 방학이
찾아 올것인데 그는 도서관에서도 캠퍼스에서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의 친구가 자전거를 타
고 내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때도 그의 모습은 볼수가 없습니다. 그 자전거뒤에 다리를
벌리고 고개를 바로한 채 그가 타고 나를 지나쳤던 기억이 나를 미소짓게 하는군요.
철이: 하하. 드디어 휴가를 나갑니다. 짝대기 두개를 달고 말입니다. 군복이 자랑스럽습니다.
에이급 군화에 에이급 군복을 입고 부러운 후임병들의 인사를 받고 아침 일찍 부대를 나왔
습니다. 군복이 조금 덥군요. 학교는 지금 한창 기말고사 준비로 바쁘겠군요. 집에 들리지
않고 학교를 먼저 들렸습니다. 군모로 내려 쓰고 눈에 힘을 주며 학교 캠퍼스를 들어섰습니
다. 참 오랜만이군요. 이 캠퍼스정경이 조금은 낯섭니다. 하하. 자전거 탔던 놈도 영장이 나
왔다는군요. 확 강원도 최전방이나 걸려버려라. 캠퍼스를 그와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운
그녀를 보았습니다.
여전히 그녀는 이 캠퍼스를 아름답게 꾸미며 매일 다른이들의 시선을 받았겠지요. 모자를
더 눌러썼습니다. 그녀가 이 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갔습니다. 하지만 예전 나와 눈이 마주
칠때처럼 눈길을 이쪽으로 잠깐동안 준 것이 아니라 찰라의 순간으로 그냥 같이가던 친구와
웃으며 대화를 하다가 고개를 잠시동안 돌린거 뿐이었습니다. 그리운 그녀의 모습이었지만
지나쳐만 갈수밖에 없는 내 마음이 여웁습니다. 그녀가 많이 성숙해져 보였습니다.
민이: 다음주가 시험이라 참 바쁘네요. 친구와 전공레포트 때문에 복사실로 가다가 그의 친
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의 친구옆에는 군복입은 사람이 같이 있었습니다. 군모 때문에 얼굴을 볼수가 없었습니다.
후. 그들이 나를 지나쳐가고 난다음 뒤돌아 봤습니다. 군복입은 사람의 뒷모습이 그와 닮았
습니다. 혹시 그였을까요?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요? 그가 안 보이게 된 이유가 군대
를 갔을 것 때문이란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의 친구를 다시 보게 된다면 한번 물어 봐야 겠
습니다.
철이: 휴가를 잘못 나왔습니다. 이렇게 찬밥 신세라니 다들 시험 때문에 나를 만나주지 않았
습니다. 시험이 끝날 무렵 난 부대로 복귀를 해야했습니다. 설버라. 다시 부대로 돌아갈 생
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합니다. 부모님 마음도 아프겠지요. 오늘 부모님과 형과 함께 갈비를
뜯었습니다. 잘먹고 군대 생활 잘 견뎌내라고 하시더군요. 형은 대학원까지 진학해서 방위산
업체에 들어갈거라고 하는군요. 한대 맞았습니다. 군대가더니 혀가 꼬부라졌냐고 자기보고
제가 해철이라고 한답니다. 자기도 나보고 개철이라고 하는줄은 모르는가 보죠.
내일밤은 부대 내무반에서 보내겠군요.
민이:오늘 시험을 끝마쳤습니다. 가뿐한 마음으로 캠퍼스를 돌아 다니다가 자전거 타고 가는
그의 친구를 보았습니다. 때마침 그의 친구가 내 앞에서 자전거를 멈추었습니다. 담배를 필
려고 휴지통 근처에서 멈추어 선 것이었습니다.
그냥 가서 물었습니다. 깜짝 놀라는군요.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깐요. 계철씨는 어디갔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개철이 집에 있을거라고 답했습니다. 예?라고 다시 물었더니 휴가나와 오늘 집에 있을거라
고 하며 불쌍한 놈 내일 부대복귀인데 잘 놀지도 못하고... 그러며 아는사이냐고 묻더군요.
언제 군대 갔어요?라고 잠시간 시간을 두고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작년 12월 22일 갔었는데
몰랐었냐고 그러는군요. 생크림빵값은 언제 줄거에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뒤돌아 섰습니
다. 하하. 그랬군요. 그가 군대로 처음 떠나던날 나는 커피숍에서 그를 기다렸던 거군요.
그리고 내 느낌처럼 저번주에 본 그 군복입은 사람의 모습은 그였습니다. 왜 몰랐을까요?
그는 그렇게 편지는 보냈으면서 나한테 말한마디 없었을까요? 참 그의 군대주소나 물어볼걸
그랬습니다. 그의 친구는 다시 볼 수 있겠죠.
그가 내일이면 다시 군대로 돌아가겠군요. 오늘 혹시 그가 학교는 나오지 않을까요. 저기 벤
취가 나보고 앉아 가라고 합니다. 햇살은 조금 따갑게 땅으로 쏘아지고 있습니다.
철이: 내무반장이 나보고 새로온 소대장한테 인사갔다 오랍니다. 씨... 내가 짬밥이 있지. 그
래도 할수없습니다.
나보다 3개월이나 짬밥 없는 놈한테 경례 부치기가 서럽습니다. 자전거 타는 친구가 얼마
안 있어 입대를 한다는군요.
편지를 보니 오늘이 입대일이군요. 이렇게 더운날 연병장 돌아 보거라 하하하. 그녀의 모습.
그녀는 이 여름 어떤 추억을 남기며 보내고 있을까요?
민이: 뒤늦게 가입한 3수생 신입생이 선배와 아는 사이였습니다. 비리입니다. 우리기수와 맞
먹으라니요. 어떻게 그럴수가... 방학이라 그럴까요? 그의 친구의 모습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와의 인연 정말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불안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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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울면서 생떼 쓰는 애들 보면 그 자리에서
"利色期可! 竹乙來!"를 외치고 말 겁니다.
애 엄마들이 기겁을 하겠죠. T_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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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사랑 이야기 (10 - 1)
철이: 새까만 4월 군번들도 애인이 면회를 오고 하는데... 부모님 한번 오신것 말고는 아직
면회조차 없습니다.
서럽습니다. 병장들 사물함안에는 자기 애인들 사진도 붙어 있습니다. 고참들 연애 편지나
대신 써 주어야 하는 내 신세여...
민이: 날씨가 많이도 덥군요. 그는 잘지내고 있을까요? 점점 그를 생각하는 시간들이 짧아
지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잊혀져 가는군요.
철이: 야. 비다. 비한번 시원하게 오는구나. 이런 날은 딱 자기 좋죠. 하하. 너무 옵니다.
3일만에 햇빛을 보았습니다. 대민지원을 나갔습니다. 우유한잔. 맥주한병. 그리고 곰보빵. 그
거 받아먹고 5만원짜리 노가다를 뛰었습니다. 허리가 빠질려고 합니다.
민이: 동아리 엠티 날짜를 잘못 잡았습니다. 비가 너무 옵니다. 이틀내내 민박집 안에만 있
었습니다. 그래도 작은 이야기들로 즐거웠습니다. 돌아오는 날 여기저기 벼가 물에 잠겨 쓰
러져 있었습니다. 풍년이 들어야 하는데... 다시 모습을 빛내고 있는 저 햇살을 받고 기분 좋
게 자라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저걸 누가 다 세울까요?
철이: 날씨가 많이 시원해졌습니다. 임진강건너 산들은 벌써 울긋불긋합니다. 친구녀석은 어
디로 배치를 받았을까?
학교는 곧 개학을 하겠군요. 하하 작년 이 맘때는 한 여학생으로 인해 맘을 많이도 떨었지
요. 그 여학생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별로 시간이 많이 흐른건 아니지만 벌써 그녀에
게 한 여학생이라고밖에는 말을 못하겠군요.
공유한 기억이 얼마나 될까요. 그 기억의 시간은 이곳에서 생활한 시간에 비해 너무나 옅기
에 이제 지워져 갑니다.
민이: 날씨가 선선해지니 잊혀져 가던 그의 기억이 뚜렷해지는군요. 별로 공유했던 시간은
많지 않지만 그의 가을 느낌이 가을이 다가옴에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짝사랑은 영원히
눈 감을 때까지 미소짓게 한다더니 맞나봅니다.
선배누나라고 부르는 후배 녀석이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 맘은 제가 잘 알지
요.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도록 내가 힘을 써주어야 겠습니다.
철이: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찬바람마저 붑니다.
하늘높은 계절에
찬바람이 불면
미지의 소녀와
그 바람속에 흩어지는 낙엽의 울음을
둘이서 같이 듣고 싶다.
아직 사춘기일까요. 아니면 이곳이 그런 느낌을 주는 벽지라 그럴까요? 내 마음이 지금 울
립니다. 그녀는 이제 미지의 소녀가 되어 그려지지 못하고 존재의 기억만으로 아련히 떠오
릅니다.
민이: 오늘 기분좋은 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낙엽들 그렇게 기분좋게 땅 위에 내려 앉습니
다. 호호 몇 개 주워 사전에 꽂았습니다. 아무래도 전 가을여자인가 봅니다. 중간 고사를 차
분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후후 작년엔 이맘때는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던 강의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공과목에 지쳐 그런 기분은 들지 않네요.
철이: 하하. 고참님 감사합니다. 저녁에 병장 두 분이서 빵과 우유를 구해다 생일 축하를 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내 생일인 줄은 알았을까요? 아침에 미역국도 못 먹고 그냥 지나치나
했는데... 그래도 우리 고참님들 정이 많으신 분들입니다. 후임병을 시켜 축하 노래도 부르게
해주시고... 나도 병장이 되면 저렇게 해야겠습니다.
민이: 엄마는... 누구 생일도 아닌데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 놓았습니다. 그래도 뭐 시험도 없
는데 잘 먹겠습니다.
아침은 늦은 시월답게 그의 하늘을 높게 하고 고고한 척 파랗게 물들어 있습니다. 일본 비
자를 끊어야 하는데...
철이: 11월의 비는 이별이라는 걸 의미한다고 합니다. 시린 빗소리에 서럽게 단풍들은 모두
들 떨어졌습니다.
제 휴가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난 꼭 휴가 날짜가 대학들 시험볼 때입니까? 총
이라도 들고 나가 시험보는 강의실 점령하고 하나하나 불러내어 축가나 부르라고 할까요?
민이: 시간 빨리 갑니다. 대학 이학년이라는 이름도 저물고 있습니다. 곧 기말 고사입니다.
오늘 그가 오랜만에 떠올려졌습니다. 그가 이맘때 이름을 밝히고 만나자고 했었죠. 하하. 그
때 만났다면 전 지금 그에게 위문 편지를 쓸려고 가슴 저려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철이: 조금 지겹습니다. 하하 많이 지겹습니다. 빨리 와라. 얼마나 지겨웠으면 고참들 다방
레지더러 면회오라고 돈 부쳤다가 걸려 두명 영창갔습니다. 그래도 군기가 빠지면 안되지요.
이나라 파수병인데...
민이:조금 우울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끼는 후배, 나보고 꼭 선배누나라고 부르는 그녀석
이 군대를 간다고 합니다. 시험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가버린다는군요. 아쉽습니다. 뭐
하나 사주어야 할텐데...
다음에 편지나 써달라고 합니다. 그래 내 특별히 애인처럼 써주께.... 그는 십이월 둘째주가
시작하자 마자 입대를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난 기말고사를 마쳤습니다.
철이: 야호. 드디어 짝대기 세갭니다. 휴가를 나갑니다. "성상병" 이응자 돌림이라 발음하기
힘들지만 참 듣기 좋지 않습니까? 집에 들렀다가 학교를 갔더니 썰렁합니다. 내 생각데로라
면 시험 때문에 북적되야 하는데... 하하
작년보다 일주일 빨리 시험이 끝이 났군요. 이럴줄 알았으면 나 나온다고 편지라도 보내놓
고 오는건데 그랬습니다.
아는 애들도 없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군대로 사라져 버렸군요. 사대앞 벤취에서 자판기커피
에 잠시간의 여유를 가져보았읍니다. 조금 춥습니다. 지나치는 사람들은 적었습니다. 저 건
물안에 그녀가 있을까요? 돌아갈렵니다.
버스정류장 앞 하하 꽃집 옆에 레코드점이 생겼습니다. 내가 조그맣게 바라던 일이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없습니다. 군복 입고 꽃을 사기는 그렇지만 장미 몇송이를 샀습니다.
민이: 학교가 한산합니다. 전 지금 휴학원서를 제출하려고 합니다. 그럴일이 있습니다. 새학
기가 시작되면 전 한국에 없을겁니다. 사대를 나오다가 벤취에 앉아 보았습니다. 누군가 앉
았다 간 모양입니다. 벤취바닥이 그렇게 차갑지가 않습니다. 얼마 있으면 이곳과도 당분간
이별이겠군요. 버스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레코드점에서 음반을 하나 샀습니다. 밖
으로 들려오던 음가락이 너무 좋았거든요.
철이: 이번 휴가도 별 의미 없이 보내버렸습니다. 이번엔 그녀의 잠시간의 모습도 느끼지 못
하고 부대복귀를 해야하는군요. 이번에 들어가면 8개월입니다. 막막합니다.
민이: 후배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내일 자대로 배치받는다는군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
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군생활이 시작된답니다. 추운날씨에 고생이 많겠다. 배치받고 다
시 편지를 보낸다는군요. 그 편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철이: 하하 후임병이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우리 학교 후배이군요. 하하 내 특별히 넌 잘봐
주마. 이래뵈도 내가 실세야. 나중에 그녀석만 따로 불렀습니다.
민이: 여기서 생활도 육개월이 다되어 갑니다. 곧 귀국할겁니다. 배운것도 많고 적극성도 늘
었습니다. 재일교포 자녀들 국어 공부도 시켜주고 다른 아르바이트도 해서 돈도 좀 벌었습
니다. 호호 한국 도착하자마자 또 외국 나갈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유럽으로 배낭여행이나 갔다와야 겠습니다.
철이: 신이병. 아니지 신일병이 휴가를 나갔습니다. 배 아픕니다. 녀석이 그녀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 갖다 준다고 합니다. 그녀석 돌아올 날이 기다려집니다. 근데 녀석이 짬밥이 좀 된다고
요즘 저한테 조금씩 개깁니다. 어떡할까요?
민이:호호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두들 반가워 하는군요. 일학년때 교양을 같이 들었던
친구와 배낭여행 갈 계획을 잡았습니다. 여자 둘이서는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호텔팩으로 가
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귀여운 현석이가... 참
현석이가 제가 잘 봐준 후배이름입니다. 그녀석이 휴가를 나왔다고 합니다. 한번 봐야지요.
얼굴이 많이 까매졌네요. 그리고 좀 어른스러워도 보입니다. 근데 녀석이 나보고 대뜸 성개
철이를 아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혹시 전산과 성계철이를 말함이냐고 되물었지요. 호호
맞다는군요. 자기 내무반 고참이라고 합니다. 정말?
세상좁구나... 그와는 뭔가 전생에 인연이 있었나봅니다.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녀석이 먼저 물어보았는데 제가 더 물었지요. 내가 그의 애인이라는군
요. 호호 그리고?
재밌고 정은 많은데 자기를 너무 못살게 군다고 합니다. 단지 날 안다는 죄로... 호호 또? 자
기편지에 그의 편지도 같이 보냈다고 했습니다. 정말...? 동아리방에서 후배의 편지는 봤지만
그의 편지는 보지 못했었는데... 그리고
녀석이 나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하니까. 하나 갖다 달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다이어리
에서 내가 일본 있을때 찍은 사진을 하나 건네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었다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했지요.
정말 아는사이에요?
조금.
애인사이는 아니죠?
그건 노코멘트.
참 많이 잊고 있었는데 그는 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후배가 그의 얘기를 했을
때 그가 어떻게 사는지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게 떠올려졌거든요. 여행을 마치고 오면 편
지를 보내야겠습니다. 위문편지를 말이죠.
그의 모습이 이년전 처음 그를 보았을때처럼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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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사랑 이야기 (11-1)
철이: 신일병이 돌아왔습니다. 이녀석이 진짜 개기는데요. 사진을 가져왔기는 한데 주기가
아깝다는군요. 이녀석이 간이 배밖으로 나왔나? 그녀를 만났답니다.
엉? 그녀가 돌아왔어?
예 그렇습니다.
너 설마 내 얘기는 안했겠지?
애인이 맞냐고 물어봤습니다.
야~하 죽같네...
참말로 난감한 녀석입니다. 이제 그녀를 보면 무조건 도망을 가야겠군요. 이녀석을 받아버리
고 영창을 가 버려?
그런데 녀석이 몰래 그녀의 독사진을 훔쳐왔다고 했습니다. 일본에서 찍은 사진이군요. 헤헤
이것 때문에 봐줬다.
이제 잠자리에 들면서 그녀를 그리기가 쉬워졌습니다. 그녀는 더 예뻐졌군요. 소녀티에서 이
제는 완연한 아가씨의 모습입니다.
민이: 현석이가 군대로 돌아갔습니다. 조금 섭하군요. 호호 비슷한 녀석들끼리 잘 살고 있나
봅니다. 석이가 그의 욕을 많이 하긴 했지만 친한 사인거 같았습니다. 오늘은 내일 유럽으로
떠날일과 그의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철이: 또 여름이 지쳐 녹음이 들고 그또한 바래버리면 가을이 오겠군요. 날씨는 점점 더워지
는데 이런 날씨에 유격훈련이라니... 신일병 죽으면 안돼... 첫해니까 많이 힘들겁니다. 땀으
로 지친몸이 끓고 있습니다. 잠시 쉬면서 녀석한테 물을 건네었습니다. 자대로 돌아가서 그
녀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민이: 런던의 어느 호텔에서 같이 떠났던 사람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다들 좋은 사람들 같이
보이는군요. 여자가 훨씬 많았습니다. 남자들은 군대 문제 때문에 해외여행에 에로사항이 있
다는군요. 호호 그는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요?
후배녀석을 괴롭히고 있을까요?
철이: 일주일동안의 유격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하하 이제 곧 제가 병장이 됩니다. 병이
아니라 장입니다.
날씨가 더워 뭐 별 할 일도 없습니다. 풀이나 잘랐지요. 이눔의 풀은 뽑아도 끝이 없습니다.
빨리 휴가날짜가 와야하는데...
민이: 호호. 이런곳도 있구나. 놀랍습니다. 친구와 전 참으로 놀랐습니다. 다 벗고 다닙니다.
사람들이 기분 좋은 잔디밭에 앉고, 누워 옷이란 옷은 다 벗어버리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습
니다.
에그 민망해라. 남자가 이상한 걸 덜렁거리며 우리앞을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해가
떴나봅니다. 다른날보다 사람이 많다고 하는군요. 난 지금 뮌헨의 잉글랜드 가든에 와 있습
니다.
이런 멋(?)있는 곳에 와 사진을 안 찍으면 안되겠죠. 호호 저기 남자, 여자가 옷을 다벗고
나란히 누워있군요.
찍어볼까요? 그둘을 앞에 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헤이. 모하는기고.(독일어나 불어.)
엉?
여기서 사진찍으모 오짤라고 그러는기고 기분더럽데이...(독어나 불어)
무슨말하는거야. 홧?
아무래도 누워있던 둘이가 화가 난거 같습니다.
여기서는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나봅니다.
에.. 위아투어리스트.
웨어라퍼럼. 아유코리언?
왜 그사람이 우리보고 바로 한국사람이냐고 물었을까요. 기분이 별로네요. 홀라당 다벗은 놈
하고 이렇게 이야기까지 하게 될줄이야. 녀석의 표정은 분명 기분이 좋지 않은거 같았습니
다.
와타시 니혼징데스 간곡짱데와 아리마셍.
홧? 아유제퍼니스?
오예. 아임 제페니스.
친구와 둘이는 바로 일어서 도망을 쳤지요. 국적을 속인건 가슴 아프지만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진 말아야겠기에. 사진 나오면 스켄해서 인터넷에다 띄워버려야지.
철이: 말병장한테도 면회를 오는군요. 최고참 면회 따라나가서 뭐 좀 얻어먹고 왔습니다. 신
일병 생각이 나서 몇 개 줏어다 주었더니 좋아합니다. 사진때문이야 임마.
민이: 조명에 노랗게 물든 파리의 에펠탑을 보며 저녁을 들고 있습니다. 아름답군요.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한국은 새벽이겠군요. 여기는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은 한국은 참 덥겠습니다.
철이:새벽하늘 별이 참 많습니다. 총알도 없는 총을 들고 화약고를 지키고 섰습니다. 부대
뒤의 산에 올라서면 서울이 보일까요? 지금은 빛을 잃고 잠들어 있겠군요. 새벽이라 한여름
인데도 시원합니다.
민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십일도 채 못되었지만 시차 적응이 안됩니다. 집으로 돌아
오는 지하철에서 내내 졸았습니다. 피곤합니다. 집에 들어가면 샤워부터하고 한숨 푹 자야겠
습니다. 사진 찾고 여행 갔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도 봐야되고 며칠간 좀 바쁘겠습니다.
철이: 딱 열흘 남았습니다. 하하 휴가 나갈일 말입니다. 날씨는 덥고 졸음이 많이 옵니다. 신
일병이 내 눈치를 보며 어디를 갑니다. 불쌍한놈 넌 언제 제대할래?
민이: 학교 동아리방을 갔더니 현석이한테서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치. 그 몰래 편지쓰느라
글씨가 엉망이니 이해해 달라는군요. 그가 나한테 편지쓰는걸 보면 또 그의 편지를 자기봉
투에다 넣어보낼것 같다며 말입니다. 이녀석아. 내가 너한테 잘 해 준 것중 가장 큰 이유가
그와 닮은 분위기 때문이었는데... 그래 잘했다. 그의 편지가 있었다면 너의 이 편지는 푸대
접을 받았겠지? 친구가 녀석 면회한번 가자고 합니다. 그럴까요? 잘하면 그도 볼 수 있겠군
요. 날짜를 잡았습니다.
철이: 드디어 휴가를 나갑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장장 팔개월만에 나가는 겁니다. 중간에 포
상휴가도 있었지만은 대대장이 바뀌는 바람에 취소가 되었습니다.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이
번 휴가에 붙었거든요. 내 팔한쪽에 짝대기 네개가 달렸습니다. 나도 이제 병장입니다. 성병
장. 어감이 좀 이상하군요. 성병~장님 잘 다녀오십시오. 신일병 저 녀석을 한대 패버리고 나
갈까요?
민이: 야했던 사진들은 사진관에서 한장도 현상을 해주지 않았군요. 혹시 사진관 아저씨가
자기만 뽑아가지고 밤마다 보는건 아닐까요? 며칠동안 여행 갔다온 사람들과 재밌게 놀았습
니다. 학교는 못가봤지요. 참 후배 누구를 꼬셔야 하는데요. 석이 면회 갈려는데 그누구가
석이가 좋아했던 여자거든요. 자기가 왜 가냐며 빼고는 있지만 갈 것 같습니다.
어감이 그랬어요.
철이: 학교는 또 썰렁합니다. 한창 방학중이라... 앗 이럴수가? 자전거 타고 다녔던 친구가
군복을 입고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휴가 나왔나봅니다. 핫핫하. 녀석은 이제 짝대기
세개군요. 같이 놀아주기가 그런데요. 자기도 심심했나 봅니다.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로 짤
래짤래 다가왔습니다. 그래 한잔 해.
학교에 소주를 사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낯익은 건물앞 벤취에 앉아 술을 먹었습니다. 둘이서
밤늦게까지 소주 몇 병을 들이켰습니다. 하하. 지금 심정같으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도 말할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마주쳐지지 않았습니다. 캬 좋다. 읔. 벤취위에서 자다가 밤
에 수위 아저씨한테 걸렸습니다. 녀석은 어딜간거야?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는데 할증료를
물어야 했습니다.
민이:사대앞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갈사람은 차 있는 남자선배하나, 나와 친구. 그리고 녀
석이 좋아하는 여자후배 이렇게 넷입니다. 일찍 출발하려고 8시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벤취
밑에서 군복입은 누가 자고 있습니다.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 줄 모르고 자고 있습니다. 낯이 익군요. 자면서도 모자는 똑바로 쓰고 잡니다. 선
배오빠가 그 모습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찹니다. 자기때는 안그랬다며 겨우 상병 휴가 나온거
같은데 빠져도 너무 빠졌다고 합니다. 그런거 같네요.
부대로 갔습니다. 10시가 조금 못되었습니다. 석이가 참 반가운 표정을 짓습니다. 그럴겁니
다. 예쁜 여자가 세 명이나 왔는데요. 여자후배는 안올려고 하더니 말은 자기가 다하는군요.
고개를 돌려 부대를 보았습니다. 이곳에서 그가 군생활을 하는구나... 군인들이 왔다갔다 합
니다. 새까맣게 모두들 탔습니다. 그의 소식이 궁금하군요.
석아? 너 고참선배는 지금 뭐하니?
누구요? 성병장님이요?
응. 못 불러내니? 먹을것도 많은데...
불러낼수 있죠. 아 맞다. 사흘전에 휴가 나갔는데요.
치. 그와는 자주 우연으로 마주쳐지기도 하지만 어긋나기도 자주 하네요. 그가 그럼 서울에
있겠군요. 돌아가면 학교 도서관에 가봐야겠습니다.
철이: 역시 나는 캐주얼이 잘 어울립니다. 스포츠 머리에 핸섬한 얼굴... 이의 제기하시는 분
들 우리 어머니한테 물어보세요. 할일도 없는데 도서관이나 가 볼랍니다. 자전거 친구녀석은
자길 혼자두고 집에 가 버렸다고 엄청 열받아 하더군요. 내가 일어났을때 그는 없었는데...
그녀석하고 도서관 휴게실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제법 늦은 오전이지만 방학이라 도서관에 학생들이 없네요. 어라? 호호 아니지 하하. 그녀가
예전에 그녀가 앉던 자리에 있네요. 또 주무시고 있군요. 훗. 지나쳤던 예전 일들을 떠올리
게하는 그리움이 담긴 모습입니다. 한동안 서서 그녀를 보았습니다. 휴게실로 왔습니다.
커피가 또 맹물이군요. 방학때는 관리를 잘 안하나 봅니다.
친구가 왔습니다. 그도 평상복입니다. 그가 나를 본체만체 자판기 앞으로 가서 동전을 집어
넣는군요. 그래 집어 넣어봐라. 녀석이 졸라(엄청. 아 또 쓰고 말았군요. 졸라...) 투덜됩니다.
알면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잠시간 녀석과 앉아 대화를 했습니다. 불쌍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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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사랑 이야기 (11-2)
아직 제대할 날이 일년도 더 남은 엄청 불쌍한 놈. 녀석이 편지나 주고 받자고 합니다. 애인
처럼 보내주기로... 자기는 여자처럼 글씨를 잘 쓴다고 합니다. 녀석이 글씨를 예쁘게 쓰는건
내가 알지요. 하하 나도 글씨는 좀 예쁘게 씁니다. 군발이들끼리 편지주고 받기가 그렇지만
내무반에서 내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도대체 여자한테 편지가 오지 않습니다. 녀석도 그렇
다는군요. 그래 작전상 후퇴다. 예? 그말은 여기서 쓰는 말이 아니라구요? 군발이들이 다 그
렇지요. 그래 상부상조다. 앗 그녀입니다. 그녀가 자판기 앞으로 생각없이 왔습니다. 아직 저
를 못봤습니다. 보면 큰일나지요. 내가 그녀의 애인이라고 사칭한걸 신일병이라는 놈이 그녀
에게 다 말했다고 했습니다. 녀석 뒤에 모습을 숨겼습니다. 우쒸. 참 친절하다 너. 대뜸 녀석
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기요. 그 자판기 맹물밖에 안나와요.
예?
그녀가 날 봤습니다.
처음에는 설마 날 알아보겠냐고 생각을 했습니다. 신일병이 말한 놈이 누군지 알게 뭡니까?
그런데 그녀는 날 안다는 듯 저놈이 고놈이구나.
하는듯 웃으며 나를 계속 쳐다봅니다. 병장까지 달고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달아나야 겠군
요.
빨리 따라 나와 임마. 친구 녀석한테 그소리만 남겨두고 그녀를 휭 지나쳐 도서관을 빠져
나왔습니다.
민이: 도서관에 나왔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말입니다. 휴가 나와서 도서관 나올 확율은
적지만 그래도 도서관에서 군복입은 사람들을 간혹 봤습니다. 예전에 내가 앉던 자리가 비
었군요. 그가 앉던 자리도 비어 있습니다. 그 자리가 매일 그가 앉아 공부하는 것처럼 그리
움을 주네요. 공부를 할려고 온 것이 아니니 공부가 잘 될 리 없습니다. 졸음이 옵니다. 어
머 또 자버리고 말았군요. 잠을 깨야겠습니다. 커피나 한잔 하고 올렵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을려고 하는데 누가 맹물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훗. 돌아봤습니다. 낯익은 얼굴...
그리고 그 사람 옆에는 그보다 더 낯익고 그리운 얼굴... 그가 있었습니다. 그는 내 기대처럼
도서관에 나와 있었습니다. 군복차림도 아닌 예전에 많이 보았던 옷차림. 그가 내 눈망울 머
쩍은 듯 피해버립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일어서 나를 횡하니 지나쳐 달아나버렸습니다. "
바보."
그의 친구도 곧 뒤따라 나갔습니다. 그 둘이 있었던 자리에는 맹물이 담긴 종이컵 두개가
그둘을 대신해 놓여 있습니다. 훗. 그의 친구가 그에게 예전에 내가 당했던 맹물커피의 복수
를 해 주었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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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사랑 이야기 (12)
철이: 야이. 개라슥아.
왜그래 임마. 아까 그 여학생한테 죄 지은 거라도 있냐? 아니면 네가
짝사랑이라도 하는 여자냐? 그녀를 보더니 왜 갑자기 달아나는데?
그래. 둘다다.
정말? 그래? 너 눈 높다. 주제를 알아라 임마.
참내. 예전엔 별로 안이쁘다고 그랬잖아. 하기야 군발이라 안 예뻐보이는 여자가 어디겠나.
내가 그랬냐? 그렇게 말하니 눈에 익다. 언젠가 나하고 말도 한 것 같은데...
민이: 그는 부끄러움이 많은 걸까요? 아니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요? 그건 아닐꺼에요.
그가 보냈던 편지들은 점점 애틋한 느낌을 주며 그의 순수한 맘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처음 받았을때보다 더 말이죠.
그가 제대를 하고 나면 달라지겠지요? 호호 내년에 그가 복학을 하면 나와 같은 3학년이겠
네요. 나도 내년에 복학을 할 거니까 말이에요.
철이: 또 부대복귀할 날이 이틀밖에 남지를 않았습니다. 도서관이나 가볼까요? 자전거 친구
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당구나 치자고 합니다.
그래.
당구를 치다가 녀석이 뭔가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시간 겐세이를 엄청 하는군요.
아 맞다. 오늘 도서관 휴게실에서 그녀를 봤다.
누구? 빨리 쳐 임마.
그 네가 짝사랑한다는 여학생 말이야.
그녀가 도서관에 있대?
응. 어떤 남자하고 있던데... 쭈글하고 이상하게 생긴 남잔데 선밴가봐. 뭘 상담하더라.
뭘?
얼핏 들어서 자세한건 모르고 그녀가 남자친군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 하던데... 뭐 그
도 자길 좋아하는데 반응이 없다면서 자기가 어떻게 할까? 물어보던데. 안됐다 너. 불쌍한
놈.
뭐. 좋아하는 남자가 있을수 도 있지. 난 그냥 짝사랑이야 임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분이 이상합니다. 꼭 내 맘을 어떤놈한테 뺏긴것 같습니다. 다 이겨가
던 당구도 패하고 말았습니다. 복귀하면 잊혀져 가겠지요. 하하. 흑흑...
민이: 오늘도 도서관을 왔지만 그는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부대복귀를 했나봅니다. 우리과
남자선배와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참 웃기게 생긴 선배입니다.
하지만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있는 선뱁니다. 말도 재밌게 하고 다정한 면이 많거든요. 같이
앉아서 얘기를 좀 했지요. 그냥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남자 친구 얘기가 나오게 되었고 그가
생각이나 몇마디 물어보았지요.
나도 그를 좋아하고 그도 나를 좋아하는걸 아는데 우리는 아무사이도 아니고 심지어 몇 마
디 대화도 못나눈 사이라고 했습니다.
선배가 끌끌 웃더니 서로 짝사랑하는 사이구만. 그러며 누군가 손만 뻗으면 되는 간단한 일
인데 그게 참으로 어려운 게 아쉽다고 합니다.
맞아요. 잘아시는군요.
그래서 또 물어보았습니다. 그가 편지를 보내 먼저 손을 뻗었는데 사소한 오해로 그걸 내가
거부했다고 했지요.
간단하네. 너도 편지보내면 되겠네 뭐.
호호 그렇네요. 위문편지는 취솝니다. 어떤 내용으로 보내지?
얘기에 정신이 팔려 몰랐는데 휴게실에 그의 친구가 있었네요. 그가 혼자 있는걸로 봐서 그
는 부대로 돌아갔나봅니다. 그가 나왔다고 한 날로부터 열흘이 훨씬 지났습니다.
철이: 부대 복귀를 했습니다. 찝찝합니다. 복귀한거 자체도 찝찝하고 그녀 때문에 또 찝찝합
니다. 신일병이 반갑게 날 맞이했습니다.
고참들한테 인사하고 보자 잉.
내가 휴가간 사이 그녀가 면회를 왔다는군요. 또 내 얘기를 했답니다. 물론 좋은 말 했을 리
없겠지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녀석의 머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알밤을 깠습니다.
왜 때려요?
어라. 나보다 일년이나 짬밥이 없는놈이 개깁니다. 군대 많이 좋아졌다.
좋은말 많이 해주었는데요. 누나도 성병~장님 얘기 많이 했단 말입니다. 좋게요.
끝까지 놀리네요. 그래 내가 아들뻘인 너하고 입씨름해서 뭐하겠냐? 가서 꽃편지지나 사와
라.
민이: 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애틋하게 아련하게 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내 마음속 그
의 모습을 그려서 말입니다. 그가 나에게 보냈을 때처럼 저도 무기명으로 보냈습니다. 그래
도 그가 내가 보낸 걸 알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를까요? 괜찮습니다. 나도 그처럼 계속 보내면 되니깐요.
철이: 끌끌. 빨리도 보냈다. 이렇게 보낸다고 내가 넌 줄 모르겠냐? 꽤 여자처럼 썼다. 글씨
도 예쁘고 뭐 하나 나무랄 게 없구만. 휴가때 자전거 친구가 제의했던 걸 실천에 옮겼습니
다. 고참들의 눈초리가 놀라는 빛입니다. 그 괜찮네요. 무기명입니다만 그의 군부대 주소는
이미 알지요. 우표에 찍힌 도장은 희미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서울같기도 한데...아니겠지요.
편지를 전에 받았던 편지와 같이 놓았습니다. 하하
녀석이 전에 나한테 보낸 편지가 눈에 띠네요. 글자가 비슷합니다. 녀석이 맞군요. 신일병한
테 뺏은 그녀의 편지의 글자와도 비슷합니다. 더 비슷한거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그
래 네 글씨 하나 만큼은 맘에 든다. 답장은 몰래 써야 겠지요? 저도 여자처럼 보내야합니다.
무기명으로 보낼까요? 한때 무기명으로 그녀한테 편지를 많이 보냈었는데 기분이 새롭겠네
요.
민이: 새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호호 전 반 백조네요. 학교는 도서관과 동아리활동 때문에
계속 나갔습니다.
현석이한테선 편지가 왔는데 그에게서는 편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현석이의 편지에선 그에
관한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아쉽군요. 오늘 또 하나의 편지를 그에게 써 보낼꺼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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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사랑 이야기 (13)
철이: 또 편지가 왔습니다. 저번과는 분위기가 다르네요.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랑해요
개철씨...? 고참이 다방 레지하고 연애 하냐고 그럽니다. 자전거 이 녀석 이름도 자숙이라고
지어서 보냈습니다. 녀석이 내가 자기보고 자전거 친구라 그러는걸 아는가 봅니다. 자숙이?
편지를 썼습니다. 전에 보낸거처럼 세련되고 애틋하게 보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이름
도 자숙이라 하지 말고 수민이라고 해주었음 좋겠다고 말했지요. 아니면 아예 무기명으로
보내든지... 그래도 글씨는 여전히 예쁘군요. 좋은 부댄가 봅니다. 이제 겨우 상병인 주제에
편하게 내무반에서 글을 쓸 수 있나 봅니다.
참 빠릅니다. 좀 이상하기도 하구요. 어떻게 내가 편지를 보낸지 사흘만에 답장을 받을 수
있지요? 무기명입니다. 애틋한 내용이군요. 낯선 마주침도 그것이 계속되면 그리움이리라.
놀랍군요. 녀석이 이런 문장도 지을 수 있다니...
민이: 너무 노니까 재미 없네요.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습니다. 교문앞 레스토랑같은 경양식
점 서빙 보는 자리가 하나 있네요. 조용한 분위기가 맘에 듭니다. 호호. 조용한게 아니었습
니다. 점심때가 되니까 학생들이 참 많이 옵니다.
볶음밥 드세요. 제발... 또 양식입니다. 한번 세어 봅시다. 메뉴판. 양식이면 물. 세팅. 수프.
밥하고 고기그릇 두개 들고 가야죠. 후식. 다시 그릇. 후식그릇. 그냥 차나 음료수만 시키는
사람이 너무 좋습니다. 메뉴. 차만 갖다주면 끝이니깐요. 한달만 하고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오늘은 군에 있는 후배한테 편지를 썼습니다. 피곤해서 글씨가 별롭니다.
석이 편지에도 그에 대해서 조금 적었습니다. 괜히 그가 보고 싶네요. 호호 내가 그사람을
혼내 줄 수 있을까요?
인연이 닿아 알게 된다면 그럴수도 있겠네요.
철이: 신일병한테 편지가 왔습니다. 누구 편질까? 의심스럽게 관찰을 했지요. 녀석이 편지를
숨깁니다. 결국 뺏었습니다. 편지봉투에는 소수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햐. 냄새좋다. 그녀
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녀석이 참 부럽군요.
편지를 읽어보았습니다. 별 내용 없군요. 앗 나에 관한 말이 있습니다.
현석아 너 괴롭힌다던 고참 성병장인가? 그사람 말 잘들어. 그래도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내가 혼내줄테니까. 호호.
저녀석이 그녀에게 뭐라 말했기에 편지에 이런말을 썼을까요. 무슨 내가 녀석한테 폭력을
행사했다고... 이미지 버렸습니다.
신일병 일루와.
예.
내가 널 괴롭혔냐?
예 그렇습니다.
어쭈 신일병 이녀석 진짜 빠져도 너무 빠졌다. 그래서 녀석을 귀엽게 패주었습니다. 하지만
녀석과 나는 참 친합니다.
녀석도 내가 편하니까 개기는 척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받아 적는다 실시.
예.
성병장님은 착한 분이십니다. 절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분은 너무나 마음이 따뜻한 분이십니
다. 빨랑 적어 임마.
민이: 석이한테 편지가 두통이나 왔네요. 호호. 그에 대하여 좋게 적혀 있습니다. 아니군요.
다른 편지에는 앞의 편지는 성병장님의 갖은 협박에 못이겨 어쩔수 없이 썼답니다. 그가 그
렇게 쓰라고 했다는군요. 석이는 그보고 개철이라고 그러네요. 이런 이름 가지고 그러면 안
되지요. 내가 보낸 편지는 그가 다 보고 있으니 그에 대한 내용은 가급적 피해 달랍니다. 기
분이 별루네요. 남의 편지를 훔쳐보다니...호호
석이가 그를 좋아하는가 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고참이라는군요.
그가 마음이 따뜻한 건 사실이라고 합니다. .
이제 석이한테 보내는 편지도 조금은 그를 생각하며 적어야 겠습니다.
철이: 수민이한테서 나에게로 편지가 왔습니다. 자숙이 친구 수민이라고 하는군요. 애틋하게
보내라고 했던거 때문일까요? 개철씨 애틋하게 사랑합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장난치나?
바로 앞에 온 편지는 날 참 감동시켰는데 바로 또 보내온 편지는 글씨 빼고는 볼게 없습니
다.
개철씨 제가 왜 무기명으로 편지를 보내요? 제가 얼마나 잘난 여잔데요. 무기명으로 보낸적
없어요. 그리고 개철씨가 보낸 편지도 유치하긴 마찬가지에요. 내무반에서 다방 레지하고 연
애 하냐고 놀렸단 말이에요.
큭큭... 이런 짓을 계속 해야합니까? 고참이 내 편지를 읽더니 쿡쿡 거립니다. 뭔가 아는듯
너도 이런짓 하냐? 차라리 가요책 뒤에 있는 주소에다 편지나 보내지? 그럽니다. 차라리 그
게 나을까요?
편지를 썼습니다.
저 당신이 사랑하는 계자입니다. 이제 절 잊어주세요. 편지 주고 받기 싫어졌어요. 흑흑... 제
마음도 찢어 집니다.
앞으로 그런 편지 보내면 죽어!
민이: 에구 힘들어라. 오늘 과감히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었습니다. 다른걸 찾아 봐야지요. 올
해도 가을은 어김없이 깊어만 갑니다. 가을은 왜 항상 그리움을 가지고 저한테 오는지 모르
겠습니다. 여자는 봄을 탄다고 하던데...
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가 반응이 있다면 석이 편지에 그런 내용이 적힐 만도 하지만
아직 없습니다. 언제 한번 석이한테 물어 봐야겠습니다. 그치만 석이한테 보내는 편지도 그
가 봐버린다고 하는데...
가을날 우연히 마주치던 그리운 소녀는 없었나요? 그곳의 산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물들었겠
네요. 내가 누군지 아직 모르시겠죠? 나에게는 가을날 내맘을 뛰어 놀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편지는 그 소년에 대한 그리움으로 쓰는 거에요. 이 정도 썼으면 충분히 내가 보내는 줄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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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사랑 이야기 (14)
철이: 몇장을 보낸지 모르겠습니다. 노래책 뒷면의 여자란 여자에게는 다 편지를 보냈습니
다. 말년이 되니까 심심하거든요. 그녀와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이런 짓 안해도 될텐
데... 그래도 그녀의 향기는 신일병 때문에 느낄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죠. 짝사랑을 깊게
하면 그 사람의 자그마한 어느 무엇에도 그사람의 그리움을 느낄 수 있나 봅니다.
드디어 편지가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냈던 편지의 30%정도는 답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기명도 있습니다. 사흘동안 9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무기명의 편지는 낯설지 않은 느낌입니다. 앞서 자전거 녀석이 보냈던거라 믿고 있는 무
기명의 편지와 동일인의 것 같습니다. 녀석이 계속 편지보내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그 누
군가가?
물론 있지요. 가을날 우연히 마주치던 소녀가 그리움되어 내 맘에 있습니다. 그리고 떠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내 맘 속에 자리잡고 항상 가을인양 가슴떨게 합니다.
무기명이라 답장을 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사놓은 예쁜 꽃편지지에다 또박한 글씨로 한자
한자 글을 써 내려 갔습니다. 자전거 녀석이 보낸거라면 용서하지 않겠어.
민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드디어 찾았습니다. 학교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버스 정류장
앞 고운음이 들려서 레코드점을 바라봤지요.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바로 들어가 신청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남이 아는건 저도 압니다. 계절은 늦가을로
가고 있습니다.
철이: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얏호. 하하핫. 내무반 모두들 이 기쁜날 잠자기
에 바쁘군요. 우핫핫.
잠좀자자.
누구야? 감히 이제 제대할 날이 두자리 숫자인 내가 그것 때문에 좀 웃었기로서니...
난 한달도 안남았어 임마.
아. 김병장님이세요. 말을 하지...
이제 드디어 제대할 날이 두자리숫잡니다. 내무반에선 내 위로 두 명밖에 남지를 않았습니
다. 핫핫...
철이: 날씨가 춥습니다. 신일병 녀석이 아무래도 날 감시하는거 같습니다. 뭘 째려봐?
수민이 누나하고 어떤 관계냐고 좀 진진하게 물어봅니다. 장래를 약속한 사이다. 장난치지
말고 사실을 말하랍니다. 자기가 소개시켜 줄 의향이 있답니다. 아서라. 제대할 날이 언제가
될지 아직도 깜깜한 녀석이... 또 그러기도 싫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녀와 난 인연이 있을거 같습니다. 잊혀지지 않고, 잊을만 하면 내 앞에 나타
나고... 답장이나 쓸랍니다. 답장을 해야 할 편지가 많습니다.
오늘 무기명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 편지를 읽을 때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이 떠올려
졌습니다.
민이: 석이한테 편지가 왔습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가 있네요.
요즘 펜팔 편지 쓰느라 참 바쁘신 몸이라는군요.
뭐야?
조만간 낭패 당할 것 같다고 합니다.
뭘?
그가 쓴 편지의 내용이 뒤죽박죽이라는군요. 자기생각엔 그가 편지지의 이름과 편지봉투의
이름을 다르게 해서 보낸 것도 있다고 합니다. 제대 말년이 되면 다 그런다고 하는데...
석이가 그를 나에게 소개시켜 주었음 하는데 내 의사가 어떤지 물어 보았습니다. 어머머 별
꼴이야. 자기보다 그를 먼저 알았다는 걸 석이는 모르는가 봅니다. 생각은 고맙지만 사양할
께요 후배님...
그와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서로 자연스레 알게 되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는 내가 보내는
편지를 단지 펜팔 편지처럼 받고나 있지 않나 걱정도 되네요.
철이: 내 밑으로 집합! 어라 내무반 전체가 다 모였어? 그러고 보니 내 위로 아무도 없네요.
이제 제대할 날이 두달 정도 남았습니다. 심심하네요. 날씨는 많이 춥습니다. 난 별 할 일도
없어요.
왜 그런지 펜팔했던 애들이 하나 둘 연락을 끊었습니다. 내딴에는 잘 써서 보냈는데... 그래
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편지는 계속 옵니다. 일곱통째 받았습니다.
그 편지는 항상 나에게 그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녀가 이 편지를 보냈을까요? 무엇 때문
에? 누군가 고참인 날 위해 수를 쓴거 같기도 하지만 내 맘은 그녀라 믿고 있습니다.
그럼 됐지요 뭐.
민이: 방학을 했군요. 벌써... 시간이 참 빨리도 갑니다. 무얼 남기고 가버리는지 시간은 그처
럼 나를 횡하니 스쳐 지나갑니다.
음반점 아저씨가 이제는 크리스마스에 관한 송(song)을 내보내도 되지 않겠냐? 합니다. 그
럼요. 설레이는 한주가 되겠습니다.
철이: 시간 진짜 안갑니다. 도대체 동지가 지났것만 해는 왜 이리 긴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
사회에서는 크리스마스라 부르는 날입니다.
그래서 애들이 전부 뭘 읽느라 바쁘군. 나한테 온 편지는 없냐?
없는데요.
신일병 너한테는?
있는데요.
혹시 수민씨한테서 온건 있냐?
없는데요.
너 언제부터 나한테 ~데요.라고 끝을 맺었느냐?
좀 됐는데요.
군발이처럼 해 쨔샤.
예! 시정하겠습니다.
민이: 우표값이 170원으로 올랐다고 합니다. 전 몰랐었거든요. 그와 석이한테 보낸 카드에는
종전의 150원짜리 우표를 붙혔습니다.
혹시 못 받지나 않았나 걱정이 됩니다. 음반점은 크리스마스때가 대목이라 쉬지를 않네요.
흑흑 이 좋은날 오후 음반점 안에 갇혀 있어야 하다니... 하지만 실내에 퍼지는 상쾌한 음악
이 그런 내 마음을 말끔히 씻어 줍니다.
철이: 길고 긴 일월이 갔습니다. 새해에는 사회에서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갈 겁니다.
민간인! 군발이의 우상. 민간인... 바로 내가 민간인이 된다는거 아닙니까. 푸하하. 신일병 저
녀석 상병 휴가 연기 됐습니다.
신상병 안됐네...그려. 다른 건 다 연기되어도 제대 날짜는 연기가 되지 않습니다. 일주일만
버티자. 말년휴가다.
민이: 요즘 그에게 좀 무심 했습니다. 한동안 편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카드까지 합쳐도
여덟번 밖에는 보내지 않았지요. 그는 나에게 아홉 번을 보냈는데 말입니다.
복학 준비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아르바이트는 이번달까지는 내가 책임지기로 했고 못한 공
부도 해야했습니다. 시간이 참 빨리 갑니다. 오늘은 그에게 편지를 써야 겠습니다. 그가 곧
제대를 할것 같네요. 호호 저도 군복무 기간이 26개월인걸 알거든요.
오늘 편지지 마지막에 내이름을 적었습니다.
저 수민인데요. 전 줄 알았어요? 만나게 되면 서로 아는척 하기로 해요. 뭐 이런식으로 내
이름을 밝혔습니다. 그처럼 학번하고 과이름은 밝힐 필요가 없겠죠. 그가 다 알고 있는거니
까 말이에요.
철이: 하하. 나 먼저 나갔다 오마. 신상병 내 돌아오면 봐.
짧은 휴가입니다만 그래도 날아갈것 같습니다. 엄마가 제대할거면서 왜 나왔냐고 합니다. 너
무 하십니다.
학교를 갔었지만 혹시나 그녀를 볼까하고 간 것은 아닙니다. 복학신청을 해야죠. 전 남들처
럼 군복무 때문에 한학기 이상씩 놀고 그러지는 않겠습니다. 빨리 졸업하고 놀겠습니다.
어머머. 이게 누구니? 음반점에 있었는데 참 반가운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석이의 얼굴이었
습니다.
너 휴가 나왔니?
예. 동아리방 갔더니 수민이 누나는 여기 있다고 가르쳐 주더군요.
그래. 이번달까지만...
이거 정말 누나가 보낸거에요?
석이가 나한테 보여준것은 그에게 보낸 아홉번째 편지였습니다.
이걸 왜 네가?
성병장님 제대했어요. 저번주에... 편지는 병장님 제대하는날 도착했구요. 미안해요. 다른 고
참이 뜯어 봤어요. 하하. 내가 전해주어도 되지만 직접 전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