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영화 '호우시절(好雨時節)'
중국 청두를 배경으로 우연히 재회한 첫사랑의 남녀가 엮는 한편의 수채화 같은 러브스토리입니다. 조각 미남 정우성과 중국의 미녀 배우 고원원의 호흡도 사랑의 아련함과 설레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출발은 어디였을까요?
허 감독에 따르면, 뜻밖에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바로 시험에 잘 나오는 '두시언해'입니다. 두시언해는 중국 시성 두보의 시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것으로 고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입니다. 교과서에 두보의 시 몇 편이 번역돼 있는데, 바로 그 중 하나인 '춘야희우(春夜喜雨)'라는 시의 첫 대목이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이렇게 시작합니다.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니 봄이면 초목이 싹트고 자란다'란 뜻입니다.
허 감독은 시사회에서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봤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며 이 시를 거의 외우더군요. 아마도 공부를 열심히 했나 봅니다. 제목을 시에서 따와서 그런지 '호우시절'은 한편의 시같은 영화입니다. 카메라는 나뭇잎의 흔들림부터, 갑자기 내리는 비(촬영할 때 정말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우성 고원원의 순간순간 변하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포착합니다. 영상은 언어가 담지 못하는 미세함을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긋지긋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교과서가 허 감독에게는 예술적 영감을 제공한 셈입니다.
+) 두보에 관해 찾아보던 와중에 자주 등장했던 영화입니다.^^; 나름 최근작(작년 가을 개봉) 이어서 그런지 말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제목인 '호우시절'이 두보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스토리나 배경까지 두보와 연관이 깊습니다.
일단, 주인공인 두 남녀는 중국시인 두보와 관련된 장소인 두보초당과 주변 대나무 숲, 그리고 시내를 돌며 며칠간의 만남을 갖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도 두보의 시가 2편 등장하는데요. 남주인공인 동하(정우성)가 두보 시집을 사서 읽게 되는 첫번 째 시 <춘망>과 제목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던 두번 째 시 <춘야희우>가 영화의 줄거리와 잘 어울려져 나옵니다. 사실상 이 두 시가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기도 하고요^^ <춘망>과 <춘야희우> 소개하고 물러갑니다.
春望(춘망) - 봄을 바라보며 (마음의 봄을 기다리며)
国破山河在(국파산하재)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感时花溅泪(감시화천루)
恨别鸟惊心(한별조경심)
烽火连三月(봉화연삼월)
家书抵万金(가서저만금)
白头搔更短(백두소경단)
浑欲不胜簪(혼욕부승잠)
나라는 망했으되 산천은 여전하여 봄을 맞은 성에는 초목만 무성하니
시절을 걱정하여 꽃들은 눈물을 흘리고 한스러운 이별에 새들도 놀랜다
여전한 전란은 끝날줄 모르고 가족 소식은 귀하기가 만금이어
자꾸 긁어 짧아진 흰머리에 애를 써도 비녀는 붙어있질 않는구나
春夜喜雨(춘야희우) 봄 밤을 적시는 단비
1.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봄이 되니 내리네.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소리 없이 촉촉히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俱黑 (야경운구흑)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江船火燭明 (강선화촉명) 강 위에 뜬 배는 불빛만 비치네.
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2.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그 내릴 시절을 알고 있나니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봄이 되면 내려서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구나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비는 바람 따라 살며시 밤에 내리나니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사물을 적시거늘 가늘어서 소리가 없도다
野經雲俱黑 (야경운구흑) 들길은 낮게 드리운 구름과 함께 캄캄하고
江船火獨明 (강선화독명) 강 위에 떠 있는 배의 고기잡이 불만 밝게 보인다
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날 밝으면 붉게 비에 젖어 잇는 곳을 보게 되리니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금성관에 만발한 꽃들도 함초롬히 비에 젖어 있으리라
3.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때맞은 비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이 봄에 내리니 만물이 소생하는구나!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비는 바람 따라 이 밤에 몰래 스며들어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신다.
野徑雲俱黑 (야경운구흑) 들길엔 구름 얕게 드리워 어둑어둑하고,
江船火獨明 (강선화독명) 강 위의 조각배 외로운 등불 깜박인다.
曉看紅濕處 (효간홍자처) 이른 아침 분홍빛으로 젖은 곳 보이니,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금관성에는 꽃이 활짝 피었다.
4.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이 봄에 내려 만물이 소생하는구나!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비는 바람 따라 이 밤에 몰래 스며들어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俱黑 (야경운구흑) 들길엔 구름 얕게 드리워 어둑어둑하고,
江船火獨明 (강선화독명) 강 위의 조각배 외로운 등불 깜박인다.
曉看紅濕處 (효간홍자처) 이른 아침 붉은빛으로 젖은 곡 보이니,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금관성에는 꽃이 활짝 피었네
첫댓글 와후! 재미있네요^^
호우시절 티저 영상에서 저 시를 중국어로 읊어주더라구요 ㅎㅎ
아하, 그게 두보의 시였군요 ㅎㅎ
허진호 감독의 영화 '호우시절(好雨時節)'이 두보의 시와 두보가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였었네요. 재미있네요.^^
고전은 역시 세월이 지나도 꾸준히 사랑받는군요^^
흠...영화를 한번 보고싶네요ㅎㅎ
영화 본적은 없는데, 이걸 보니까 한번 보고 비교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