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수사학
손택수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 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그가 견딜 수 없는 건
꽃향기 따라 나비와 벌이
붕붕거린다는 것,
내성이 생긴 이파리를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
뜯어먹는다는 것
도로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 이 시를 얼마 전 분석한 기억이 있는데 내가 놓친 곳이 있어 다시 읽어 보기로 한다.
시의 내용은 단순하다. 나무와 꽃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도시를 살아가는 이주민의 삶에
비추어 익명의 삶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치욕스럽고 불경한가를 읊었다. 서른을 갓 넘긴 듯한
객지에 살던 화자가 밥벌이를 위해 낯선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그는 도시의 원주민과
어울리지 못하고 이주민의 삶을 사는 치욕을 맛본다. 그 원인이 "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
부터 그가 도시의 원주민들에게 보여준 속마음인데 마음도 몰라주고 원주민들은 굴러들어 온 그를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본 듯하다. 나와 너의 경계에서 도시의 원주민들은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는
경계에 익숙한 속물들이다. 이 사건이 있은 이후부터 이주민인 그는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나무를 통해 배운다.
나무는 도시의 반어법을 가르쳐준 나의 스승이다.
나무에게도 말 못 할 아픔이 있다. 나무 또한 원주민이 아닌 이주민의 삶에 지쳐있다.
보라, 시끄러운 도로에 낮과 밤의 구별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무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못한다. 도로가의 가로등불 곁에 이주한 나무는 낮이면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소음과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상가의 불빛과 이웃한 원주민의 파수꾼이 항상 불을 밝히고 서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나무도 병이 들어 시들시들해간다. 악착같이 뿌리를 내려 자세를 비틀어 살아보려 하지만
(나무가 병들지 말라고 원주민이 친 농약에)내성이 생긴 벌레들이 그의 마지막 생의 보루인 잎마저
아삭아삭 뜯어먹는 것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시들어가는 나무를 위해 약을 쳐주지만 외려 나무 잎사귀를
갉아먹는 벌레들은 죽지않고 내성만 생겨 더 적극적인 식욕이 생긴걸까?)
시의 첫 행 꽃이 피었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도로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꽃이 피었다는 그러니까 가로등 불이 켜졌다로 읽어야
시맛이 나겠다.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나무가 참을 수 없다는 말로도 들리고
이 같은 상황을 나는 참을 수 없다는 소리로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