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8월 성시간
예수님의 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군대에서 제대를 할 무렵,
외국에 계신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태평양 한가운데서 심장을 움켜쥐고 쓰러지셨고 급하게 후송되어 의식이 없으셨습니다.
그와 함께 들은 소식은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있으며
설사 생명을 건지더라도 반신불수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가족 혹은 가까운 이웃의 죽음을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던 저에게
죽음이란 그만큼 생각해본 적도 없는 어색한 사건이었습니다.
군대 막사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간곡히 기도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계실 어머니의 손이라도 잡아드리고 싶었지만
군대에 있었으므로 그럴 수도 없었고
어떻게든 응급실에 가서 직접 수술의 경과를 듣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계신 병원은 호주의 응급실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앞으로는 정말 열심히 신학생으로써 살아가겠다고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때 쏟아지던 눈보라와 매서운 바람,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원망과
제 자신의 무기력함으로 오는 고통을 저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이처럼 가족이 고통 중에 있을 때, 특별히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우리 인간은 어마어마한 상실감과 고통을 느낍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원망스럽기도 하고 대신 고통 받을 수 없음에 안타까워합니다.
오늘 성시간의 복음에서 우리는 성모님께 대한 시메온의 예언을 들었습니다.
시메온은 요셉과 마리아를 축복하고 나서 마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 예언은 바로 예수님의 전 생애에 있을 사람들의 존경과 비난을 동시에 예언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십자가 위에서의 수난과 죽음을 직접 목격하게 될 마리아의 고통을 예견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다룬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면
예수님의 수난을 직접 바라보는 마리아의 끊임없는 신음과 눈물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로부터 채찍질을 받고 가래침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동안
그를 바라보는 마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꺽꺽 대는 신음 소리를 냅니다.
그 와중에 오버랩되는 장면이 바로 예수님의 어린 시절입니다.
그 장면에는 마리아를 보고 반갑게 달려오는 어린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오던 아기 예수님은 그만 중심을 잃고
길의 한 가운데에 넘어집니다.
이를 보고 마리아는 깜짝 놀라 걱정스런 얼굴로 아기 예수에게 달려가 그를 껴안고는
괜찮다, 괜찮다 달래줍니다.
이 장면은 곧 아들 예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사랑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그를 키워낸 인간적인 어머니의 마음은
어느 부모의 마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스럽고 애틋한 아들이, 사람들의 비난과 폭행 속에 비참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갑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들의 숨이 서서히 끊어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러한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하는 자신의 입장이 말할 수 없이 비참했을 것입니다.
이 고통이 바로 오늘 시메온이 이야기하는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한 번도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그런 시련을 주시는 하느님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게 될 거대한 구원의 업적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참아내야 할 고통이었습니다.
한편 오늘 말씀의 중심에는 한평생 구세주 그리스도를 기다려온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믿으며
매일 매일을 의롭고 독실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그는 사랑스런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으며
“이제야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라며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메온의 찬가는 마리아의 고통을 더없이 찬란하게 빛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마리아가 겪게 될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크겠지만
이를 통해 이뤄질 업적은 모든 민족들에게 있어서 계시의 빛이요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은 마리아의 인내와 시메온의 찬양을 통해, 우리는 오늘 성체를 앞에 모신 상태로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많은 어려움들과 고통들을 상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체험하고 싶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대화와 친분을 나누며 종국에는 하늘나라에 불리움 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 각자는,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세상의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는지,
그 고통 중에 이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이 부재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운데, 내게 주어진 십자가가 말할 수 없이
무겁게 느껴질 때 하느님의 모든 의중을 파악하고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적으로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끝까지 하느님을 따르며 그분께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것,
묵묵히 그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은
바로 우리가 신앙인으로써 가져야할 올바른 자세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8월 성시간 강론을 마무리 지으며 시 한편을 읽어 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으나, 그분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은 적다.
그분의 위안을 구하는 사람은 많으나, 그분의 시련을 살피는 사람은 적다.
그분과 잔칫상을 나누려는 사람은 많으나, 그분의 재에 참여하는 사람은 적다.
누구나 다 예수님과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그분을 위하여 어떠한 고통이라도 겪겠다는 사람은 적다.
많은 사람들이 빵을 쪼갤 때까지는 예수님을 따르지만
예수님의 수난의 잔을 마시는 데까지 가는 사람은 적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곤란을 당하지 않는 때만 사랑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기리고 그분께 기도하지만 자기가 위로를 받을 때만 그렇게 한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숨기시고 잠깐 그들을 떠나실 것 같으면
금세 원망하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한다.
오늘 성체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이
무엇인지, 그 뜻이 무엇인지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멘.
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첫댓글 많이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