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병원에서 조금 특별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집사람이 딸내미와 함께 일본으로 떠난 덕에 저에게도 오랜만에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회다 싶어 진료가 끝난 뒤 병원에 남아 좌대를 짰지요. 환자도 없고 방해받을 일도 없어 한동안 작업에만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허리가 욱신거리고 속이 더부룩해졌습니다. 김밥 반쪽으로 대충 때운 저녁이 소화되지 않았던 겁니다.
평소라면 진료 중간중간 작업하며 자세를 바꾸기도 하고, 짬을 내어 쉬어가며 진행했을 텐데, 오늘은 끝까지 몰아치다 보니 오히려 제 몸이 반기를 든 셈이었습니다. 집사람이 봤다면 잔소리 한 바가지 뒤집어썼을겁니다. 아쉬어 보이지만 잠깐 멈춰 쉬어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병원을 나서며 집으로 가는 길, 문득 집사람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쯤 딸과 함께 일본 어딘가에서 저녁을 즐기고 있겠지요. 혼자 돌아가는 집이 왠지 허전할 것 같았는데, 막상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집사람의 손길이 곳곳에 남아 있는 집은 그 자체로 따뜻했습니다.
거실을 둘러보니 정돈된 소파와 식탁 위에 놓인 깔끔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깔끔히 정리해 두던 집사람의 습관이 여전히 이 집을 따스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부엌에는 정리된 식기와 싱크대 위에 놓인 깨끗한 물컵이 자리하고 있었고요.
배려와 정성의 손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들이 집의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어 내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나의 존재를 감싸 안아 주는 것이었지요.
오늘 병원에서 몰두하며 느꼈던 허리와 속의 불편함이, 집에 들어서자 서서히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집사람의 손길이 눈에 보이지 않게 내 곁을 감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결국, 집이란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가족의 삶이 담긴 장소이며, 내가 숨 쉬고, 내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가족이 살아온 시간에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쌓아온 기억들이 엮여져 있는 공간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집사람과 가족이 남기는 따뜻함으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겁니다. 내가 병원에서 작업하며 느꼈던 몸의 불편함도, 집에 돌아오니 말끔히 잊혀졌습니다. 집사람이 늘 지켜준 이 공간 덕에 제 일상도, 제 몸도 다시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집사람은 지금 일본 어딘가에서 '맛은 없는데
비싸 빠진' 음식에 투덜대며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집사람의 손길과 배려는 여전히 이 집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금 깨닫습니다. 집의 편안함은 벽과 지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한 따뜻한 흔적들과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