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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고라 하는 청년
(행 20:7~12) 유두고를 살리다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두고는 현대 청년들의 얼굴이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유두고란 말은 “운이 좋은”, “행운의”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흔한 노예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이름을 보면 옛날에는 그 사람의 직업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목수는 Carpenter, 대장쟁이는 Smith, 농부는 Farmer 등 직업을 성으로 정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유두고란 이름도 노예들이 흔히 쓰는 이름인 것으로 보아 그는 당시 노예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오늘은 노예출신의 유두고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얼굴을 보고 교훈을 얻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왜 유두고는 창에서 떨어졌는가?
오늘 본문을 보면 유두고란 청년은 예배보다가 졸아서 창에서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조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조는 형태도 참 다양합니다.
첫째 ‘아멘형’의 조는 분들이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아멘 아멘 하면서 좁니다. 얼마나 신앙적입니까? 처음에는 저도 이런 분들에게 많이 속았습니다.
두 번째는 ‘노멘형’의 조는 사람들입니다. 옆으로 고개를 저의면서 왔다갔다합니다. 금방 표가 납니다.
세 번째는 옆에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조는 ‘의지형’이 있습니다. 주로 여자들의 경우입니다.
네 번째는 똑바로 앞을 보면서 움직이지 않고 조는 ‘자립형’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구별하기 힘든 사람은 눈을 뜨고 자는 ‘달달 봉사형’입니다. 오래된 교인 중에 많이 있습니다. 나이 많은 분들 가운데 많습니다.
그러나 바라기는 유두고처럼 창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창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없겠지만 신앙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 유두고는 창에서 떨어졌을까요?
(1) 바울의 설교가 ‘너무 길었기 때문’입니다.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7절 하). 아마 요즈음에 이렇게 너덧 시간씩 길게 설교를 하면 다 졸 것이고, 목회자는 그 교회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저는 길게 설교하는 편은 아닌데도 가끔 조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눈을 뜨고 조는 분들입니다. 남이 보면 설교를 듣는 것 같은데 사실은 졸고 있는 것입니다. 주로 뒤에서 좁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가장 많은 감화를 준 분의 하나가 서울대학의 신사훈 박사님이었습니다. 그는 보통 2시간반 정도 길게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길다고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설교 하나가 작은 노트 한 권씩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찬송을 조금만 부르라고 특별히 부탁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설교를 할 때 특별히 이 날은 성찬식을 겸해서 하였기 때문에 밤이 늦도록 예배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성찬식 때에 애찬식을 겸해서 하였기 때문에 몇 시간씩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중국에서도 예배 시간은 한 두 시간에 끝나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설교할 때 부탁하는 것은 항상 같은 말인데 그것은 “좀 길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길게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제는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좀 짧게 해달라”는 부탁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영적으로 배가 불러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는 풍성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듣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병들었기 때문에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왜 유두고가 창에서 떨어졌습니까?
(2) 유두고가 ‘깊이 졸았기 때문’입니다(9절).
“깊이 졸 더니”(9절 상).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지거늘”(9절 하). 졸음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생리현상입니다. 사실 유두고는 노예였기 때문에 온종일 고된 일을 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피곤하여 졸았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세상에서 돈벌고, 비즈니스 하다가 교회에 오면 잠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텔비를 받는 것도 아니고, 경찰이 지키는 것도 아니니 규율부장이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마음놓고 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졸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졸면 유두고처럼 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시설은 창에서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믿음에서 떨어지고, 예배 보다가 꿈이라도 꾸면 그것을 계시로 착각하여 이단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3) 또 유두고의 문제점은 ‘창에 걸터앉았는데’ 있습니다(9절 상).
창은 본래 걸터앉으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중국에서도 보면 가정 교회에서는 창문에 걸터앉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보통 집에서도 3-400명 정도가 모일 수 있는 것을 보면 유두고가 창문에 꼭 앉아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삼층 누각에서 위험하게 앉아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편리하게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창문에 앉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더구나 방은 좁고 사람들은 많아서 공기 유통은 원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기주의 내지는 편리주의적 사고에서 창문에 걸터앉은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유두고는 사람들은 많고 키는 작아서 뽕 나무에 올라간 삭개오처럼 볼려고 창문에 걸터앉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앞에 앉는 것을 싫어합니다. ‘인간의 숲에 숨으려는 심리적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자와 눈이 마주쳐서 혹시나 너무 감동을 받아 재산을 바치거나 봉사하는 일에 빠질까봐 두려워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목사와 눈이 마주쳐서 얼굴이 노출되면 결석할 때 곤란하고, 적당히 믿으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좌석은 은혜 받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 맨 앞쪽은 은혜가 충만한 금 자리이고, 가운데는 약간의 은혜를 받는 은 자리이고, 뒤쪽은 구경이나 하다가 별 볼일 없이 가는 동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은혜 받기를 원한다면 앞자리로 앉으시기 바랍니다.
(4) 유두고가 창에서 덜어진 네번째 이유는 ‘너무 피곤’하였기 때문입니다.
노예출신이라면 온종일 많은 일을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피곤한 것은 당연하고,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교회에서 선한 일을 하려고 하면 피곤합니다. 한 주간 내내 일터에서 일하다가 교회에 와서까지 부서에서 일하면 피곤한 것은 당연합니다. 부끄러운 것은 저도 예배 볼 때 정신 통일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잡념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갈 6장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한 일을 할 때에도 피곤하면 시험에 빠집니다.
2. 어떻게 죽은 유두고가 살아나게 되었는가?
(1) 바울이 내려갔을 때입니다.
10절 “바울이 내려가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은 모든 일에 그렇습니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내려가야 삽니다. 교회에서도 은혜 받으려면 내려가야 받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능하면 장로나 권사 같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위에 있으면 은혜받는 것이 아주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가대원들에게 말씀을 들을 때 밑으로 내려가라고 말합니다. 뜻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려갈수록 깊어지고, 많습니다. 믿습니까?
(2) 다음은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창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고 했습니다. 엎드려 몸을 안는 것은 일치감을 뜻하는 표현이요, 또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까? 눅 19장 10절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성육신은 바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얻는 심정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3)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말하되”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바로 살리는 일을 합니다. 히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마른 뼈들이 큰 군대를 형성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먼저 골짜기에 뼈가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다음에는 뼈가 심히 말랐더라고 했습니다. 소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합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아시나이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 모든 뼈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때에 말씀을 대언 했습니다. 그러자 생기가 들어가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지고, 가죽으로 덮이면서 살아나 큰 군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장래를 예언한 것입니다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전달되면 지금도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3. 청년 유두고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과 ‘예배하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영화나 연극이나 운동을 참관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해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배에서는 영성이 중요합니다. 영성이 없으면 사람 냄새만 피우다가 은혜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고 맙니다. 특별히 교회에 익숙하신 분들 가운데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바로 예배를 하나의 습관적으로, 형식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에 구역질을 하실 것입니다.
(2) 예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헌신’입니다.
예배를 받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예배의 근본은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도 드리고, 몸도 드리고, 물질도 드리는 것이고, 시간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다른 것은 드리면 모든 것이 변하여 되돌아옵니다. 마음을 드리면 깨끗하게 변하여 돌아오고, 몸을 드리면 영적으로 건강해서 돌아오고, 물질을 드리면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여 돌아오고, 마치 헌 자동차를 자동차 수리공에 맡기면 새 것이 되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재창조하시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며 변화시켜주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유두고 처럼 졸다가 가지 마시고, 변화되어 큰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3) 끝으로 중요한 것은 유두고처럼 주변을 맴도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철학적으로는 marginal being이라고 부릅니다. 여자들이 주변에 맴돌면 인신매매단에 잡혀가고, 남자들이 주변에 맴돌면 마피아단에 끌려가고 교인들이 주변에서 맴돌면 사탄에게 유혹되어 잡혀가 사탄의 종이 되고 맙니다. 창에 걸터앉았다는 것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주변에 있으면서 형편에 따라 나가려고 하는 기회주의적 자세입니다.
교회도 주변에서 맴돌면 개인적으로 희생은 안 하겠지만 그러나 참여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면서 헌신하고, 참여하는 자를 쓰시지 주변으로 맴도는 사람은 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안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참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성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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