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그립다/조방앞의 추억
지인을 따라 부산진시장을 갔다. 40여년만의 발걸음이다. 서면에서 범내골을 지나면 조방앞이 나온다. 조방앞은 예전엔 부산의 중심지역으로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다. 지금도 평화시장과 자유(도매)시장에다 현대백화점까지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다.
범일역에서 전철을 내려 햇살을 받으며 남쪽으로 잠시 걸어가니 부산진시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건너편 빌딩 너머로 보이는 작은동산, 그것이 자성대이다.
이쯤해서 그때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때, 회사엔 당직제도가 있었으나 요즘처럼 정당한 금전적 보상이나 휴식제도가 없었다. 밤새 잠못자고 가면상태로 견딘후 뒷날엔 집에 가서 옷갈아 입을 정도의 오전 휴식만 주어졌다.
당시 나는 집이 동래에 있었기 때문에 집에 다녀오려면 왔다갔다 버스안에서 시간을 다 허비해야했다. 그래서 어슬렁거리며 걸어서 자성대공원 벤취에 누워 졸면서 오후 근무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그 자성대 공원 아래엔 당시 동갑내기 외사촌 동생의 직장이 있었다. 어느날 동생을 만나려 갔다가 같은 직장의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두번째 그곳을 의미있게 다녀오며 아가씨의 책상위에 나의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떨어뜨리고 왔다. 다음날 그녀의 전화가 있었고, 퇴근시간 근처 다방에서 그녀를 만났다.
우리는 누구도 사랑고백을 하지 않았고, 만나면 고작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짧은 대화만 이어졌다. 그녀는 음악을 좋아했다. 당시 부산에는 두곳의 음악다방이 있었다. 한곳은 남포동의 무아(?)이고, 또한곳은 서면다방이었다. 우리는 남포동을 주로 갔다. 음악다방에 들어서면 그녀는 신청곡을 기다리기에 몰두했고, 나는 DJ에게 그녀를 빼앗긴 것같은 야릇한 열등감과 질투심을 느꼈다.
당시 나의 나이가 30살에 가까웠으니 책임없는 연애를 할수는 없었다. 그녀도 내성적이라 표현이 적었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진해군항제의 벗꽃구경을 가서 그녀의 사촌언니 부부를 만났고, 여동생을 데리고 서낙동강으로 낚시도 다녀왔다.
끝내 가정애기, 결혼애기 한마디 없었던 우리는 그 미지근한 인연을 사랑으로 승화시키지 못하였다. 고리타분한 시대, 우리는 1년동안 사귀며 서로 손목한번 잡지 않았고, 같이 걸으면 간격은 1m였었다. 어느날부터 만남이 중단되었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후 동생으로부터 그녀가 나의 전화번호를 묻더라는 소식만 들었다. 상냥한 서울 말씨에 지적인 그녀의 모습이 한동안 생각났지만,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 결혼이란 관문을 뚫고나갈 용기가 없었고, 그녀가 행복하기만을 빌었다. 무심한 세월은 그녀의 이름(김M라)조차 가물가물 잊혀지게 만들어 이틀동안에 걸쳐 기억해 내었으나 얼굴을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어느해 여름, 매제(여동생의 남편)로부터 지인의 별장에서 하룻밤을 보내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곳은 하동의 쌍계사를 지나 의신으로 올라가는 칠불사 계곡이었다. 당시 내가 사는 곳에선 승용차로 2시간 가량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맑게 흘러가는 계곡물가에 분위기 있게 지은 별장은 부러웠지만, 우리의 생활권에서 벗어나 있었고, 그러한 호사를 자주 누리고 싶은 욕망도 적었다.
그래도 고마운 마음에 누구의 별장이냐고 물었더니, 부산진시장에서 포목점을 운영하는 지인의 별장인데, 필요하면 아무때나 이용하라고 하더란다. 그런데 그 별장 주인이라는 젊은이는 우리네 젊은 시절처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먹고살기 위해 시장의 포목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포목점 주인 할머니는 6.25때 월남한 핏줄이 없는 사람이었단다.
나이가 들어 기력이 약해진 할머니가 포목점 경영을 직원인 그에게 맡긴 것이니, 실질적인 사장이 된 것이었다. 어째든 그는 멀리 떨어진 그곳의 별장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어려서부터 생업에 열중하다보니 친한 친구도 없었고, 알고 지내는 여자도 없었다. 오로지 장사에 전념하다 그래도 자신의 별장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고, 밤중에 다방 아가씨를 대절 택시에 태우고 몇시간을 달려 별장을 다녀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돈만 있었지 인생이 불쌍하단 말들을 했었다.
이상이 내가 부산진시장 주변을 본순간 떠오르는 기억들이다. 시장은 예전과 같이 포목점과 관련 상품들이 많았다.
주변의 작은 국수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칼국수 한그릇, 5,000원, 들깨 칼국수는 7,000원이고, 김밥 한줄이 3,000원이었다. 맛이 좋은지 자리가 비면 이어 손님들이 들었다. 큰돈이야 되겠나마는 그래도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워 장사가 안된다는 이 싯점엔 보기가 좋은 모습이었다.
거리엔 사람들이 더러는 오갔지만, 예전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쯤하면 돈버는 사람은 알수가 없고, 우선은 살아남는 사람이 장사를 잘하는 것같다.
조방앞 시외버스터미널에 관한 아련한 추억이 따로 있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해야겠다. 오랫만에 걸어본 조방앞 거리였다. 아! 옛날이여 그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