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Narrative Olia Mari-기억·서사』
제목을 봐서는 뭔가 차원이 좀 있어 보인다. ‘기억(記憶)’이라면 뇌 이야기인가 싶다가 ‘서사(敍事)’라면 그냥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다. 저자 오카마리(岡真理)는 일본 교토대학에서 현대 아랍 문학과 페미니즘 사상을 전공하고는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환경학연구과 교수로 또 교토대학의 명예교수라고 한다. 이 책의 원래 일본어 제목은 『記憶/物語』다.
사람이 ‘사건’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건’의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갖기 위해서는 먼저 이야기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전달되어야 한다. 사건의 기억을 타자와 공유해야만 한다는 것은 사건의 기억을 타자와 나누어 갖는 형태로서 그와 같은 서사는 과연 가능한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리얼리즘이 보여 주는 정교함의 문제인가. ‘리얼’하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물음이 생긴다.
‘기억’이란 때때로 나에게는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의 신체에 습격해오는 것이기도 하다. 사건은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현재를 살아간다. 그렇다면 기억의 회귀란 근원적인 폭력성을 숨기고 있는 것이 된다. 폭력적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에서는 그 사건이 지닌 폭력성의 핵심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사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 사건의 기억을 타자와 나누어 가질 수 있을까.
무의식의 욕망에 의해 부인된 사람, 리얼하게 완결된 서사에서 배제된 사람들이야말로 ‘타자’일 것이다. 사건을 받아들이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올바르게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과제로 부여된 바로 그때 그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적 언설이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노골적으로 이야기되면서 사건의 폭력 속에서 살아온 어떤 주인공에게 다시 한번 폭력을 휘두르게 되고, 우리는 그 폭력을 고발하고 규탄할 책임이 있게 된다.
‘사건’의 기억은 어떻게 해서든지 타자, 즉 사건 외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집단적 기억, 역사의 언설을 구성하는 이것은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살아남은 사람들, 곧 타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그 기억을 공유하지 않으면 사건은 없었던 일로 되어버린다.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존재는 타자의 기억 저편에서 세계의 외부로 밀려나고 역사에서 잊힌다. 결코 매듭지을 수 없는 어긋남 ‘사건’의 폭력이 남긴 흔적을 상처로, 현재의 이야기에 기록하는 것, 거기에 ‘사건’의 기억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인간이 사건을 영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인간을 영유하는 사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건’의 기억을 ‘서사’로 영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으로 영유하는 것, 난민적 삶을 사는 사람들뿐이다. 사건의 기억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가 난민에게 생성하는 것이 된다. 즉 난민적 삶을 살아가는 것 속에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래하는 폭력적 사건의 기억 때문에 현재의 삶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를 크게 두 가지 주제로 집약해서 다루는데, 타자가 경험한 사건의 기억을 나누어 갖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한가?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저자는 소설, 영화, 르포르타주 등 다양한 장르의 서사 비평을 통해 찾아보는 한편 과거의 사건을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사건의 기억을 함께 나누어 가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 논지는 과거 사건의 폭력성으로 인해 정신적 외상을 입고 타자의 삶을 사는 이들의 기억을 그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나누어 가져야 하고,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타자가 겪은 폭력적 사건의 기억을 나누어 갖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로 저자는 폭력적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와 타자를 부인하는 내셔널리즘, 폭력적 사건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표상하려는 리얼리즘적 욕망 등을 들고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억의 항쟁 한복판에 있는 현재, ‘사건’의 기억을 어떻게 이해하고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해법을 모색하라고 시사한다.
사건의 기억과 폭력적 사건의 표상 불가능성에 있어 과거 폭력적 사건에 놓여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은 여전히 명징한 언어로 표상되지 않는데, 그렇게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는 사건을 “이 세계의 시공간에 새겨 넣어진 상처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기억 속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통제 불가능하게 습격해온다. 따라서 사건의 회귀는 근원적인 폭력성을 숨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폭력적인 사건이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을 때 폭력의 한가운데에 있는 당사자는 이야기하지 못하고 사건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사건은 ‘경험’이라는 말로 사건을 과거형으로 언어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언어화하는 일은 사람이 사건을 과거로 길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건을 언어화한 이면에는 현재형, 폭력적으로 회귀하는 사건은 과거형으로 언어화될 수 없는 사건, 단순히 경험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건의 잉여가 있다고도 한다. 따라서 언어화한 사건은 사건의 잉여로 인해 언어로는 표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타자와 기억을 나누어 가져야만 한다고 말한다.
말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 기억의 분유는 표상 불가능한 폭력적 사건을 타자와 나누어 갖기 위해, 이 사회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자들을 향해 일관되게 질문한다. 현재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망각의 정치학으로 인해 기억을 분유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저자는 왜 사건의 기억을 어떻게 해서든지 타자, 즉 사건 외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일까.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살아남은 사람들과 기억을 공유하지 않으면 사건은 없었던 일,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되어버려 폭력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존재는 역사에서 잊히기 때문이다. 지금 존재하는 세계와 다른 세계를 만들어 살아가기 위해 말할 수 없는 사건이라 하더라도 말해야만 한다.
사건을 경험했고 그 사건의 내부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사건’의 폭력을 지금도 계속 겪고 있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건 외부에 있는 제3자가 증언해야만 한다. 사건의 폭력이 남긴 흔적을 상처로 현재의 이야기에 기록함으로써 사건의 기억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려면 기억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 서평을 읽어봐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그런 독서였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은 아마 삼복더위보다 더한 초복 더위에 지쳐가는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고, 이 책과 같이 읽고 있는 ‘이스라엘의 인종청소’에 관한 어떤 책이 메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다. - 7.4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