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 지음/김양미 옮김/김민지 일러스트/인디고 2021년판
상상력의 보물창고, 경이로움의 연속
1-읽다보니 마음 벽에 꽂힌 문장들
-영리한 앨리스는 서두르지 않았다
-“세상에나! 오늘은 온통 희한한 일투성이잖아? 어제만 해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는데 말이야. 밤사이에 내가 변한 건가? 가만, 오늘 아침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뭐가 좀 달랐나? 기분이 살짝 이상하던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내가 정말 변했다면 도대체 지금의 나는 누군 거지? 아, 이거야말로 정말 알쏭달쏭한 문제지!”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아는 것도 더 많아.”
-“내가 뭔가 먹거나 마시기만 하면 재미난 일이 일어나잖아? 그러니 이 병을 확인해 봐야겠어. 다시 자라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작은 몸으로 있는 건 정말이지 너무 너무 지긋해!” 앨리스의 바람이 정말 이루어졌다.
-“나에 대한 책이 있어야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사랑스런 마음을 어떻게 지켜나갈지, 아이들 앞에서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그 숱한 눈망울들을 얼마나 초롱초롱 빛나게 할 지를 생각했다.
2-이 책을 읽다 떠오른 생각
-화를 못 참으면 판도라 상자가 열려 모든 악이 한꺼번에 튀어나올 것이다.
3
인연의 관계는 사람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책에도 적용되는 모양인데 인연이 안 되는 책은 제 아무리 이름난 ‘명작’이거나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읽을 수가 없다. 책을 쓴 작가가 사람이니 자연스레 ‘인연’이 적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만 해도 그렇다. 이 작품이 있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익히 들었지만 내 손은 한 번도 이 책에 가서 머물지 않았다. 혹은 과거 언젠가 얼핏 펼쳐 훑어봤지만 취향이 아니어서 금방 내려놓았을 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어릴 적보다는 어른이 되어서 만나 그 경이로운 세계에 잠시나마 빠져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4
이 책을 읽으며 줄거리 구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일정한 줄거리가 없다. 즉 갈등을 유발하는 사건이 없다보니 각 장마다 전개되는 이야기는 모두 다르며 그 이야기들에는 앨리스라는 주인공의 존재 외에는 연속성이나 일관성이 없다. 이러니 어릴 적 일반적인 동화의 줄거리에 매료된 나로서는 이 책을 보긴 보았어도 끝까지가 아니라 아예 초반에 선택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어느 일상에서 맞닥뜨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그전에 무의식적으로 한 번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던 듯-읽다보니 어느 순간 작품 그 자체가 매혹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이 세상 이야기의 모든 패턴에 적응하여 더 이상 매료되지 않는 어느덧 노년으로 나이가 훌쩍 들어버린 오래 전의 소년 눈에 전혀 다른 새로움으로, 다소 난해하지만 본능적으로 이해가 되는 시를 읽는 것 같은 경이로움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5
상상력의 보물창고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현대물리학이 나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지금 그 상상력이 얼마가지 않아 현실화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움찔하지만 19세기 말에 이런 상상력을 작가가 아이들 앞에서 동원했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풍부하고도 창의적인 상상력은 영상기법이 발달한 요즘 들어 영화계나 CF에서 많이 차용되고 있는 듯싶다. 애니매이션 기법을 동원해 동물을 의인화시켜서 주인공이나 조연으로 출연시킨 영화는 얼마나 많은가.
첫 장면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들어가다 우물같은 바닥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장면을 읽으며 요즘 우주세계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블랙홀’을 연상하기도 했는데 이 개념은 당시로서는 그 누구도 거론하지 않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사고 수준에 걸맞는 공상에 가까운 것으로 치부되지 않았던가. 지금 물리학계에서는 ‘블랙홀’을 시간의 상대성을 설명해주는 고리로 열심히 치환하고 있다. 앨리스는 그 공간을 따라 시간과 가치가 그 전과 판이하게 다른 세계로 옮겨간 것이다.
6
이야기와 세계의 변환을 연결시켜 생각해본다.
오래 전에 회자된 이야기 속에서 후세의 학자들은 인류의 생활을 변화시키고 향상시키는 모티브를 찾아내고는 현실화시키는 작업을 개진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속속 발현되며 현실화되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 거론된 모든 개인에게 하나씩 지급되는 무선통신기는 지금 스마트폰으로 발현되어 세계 각국의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두에게 사용되고 있는데 작품 속의 내용처럼 어느 특수기간에서 집단을 감시, 지배하기 위해 사용될 일말의 여지도 있다. 실제로 범죄사건 해결을 위해 개인의 통화기록을 열어 확인하는 사례는 지금 사회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라든지, 인간의 지능을 본떠 만든 지능 체계 AI라든지 등은 이미 한 세기도 전에 한낱 허구적인 이야기로서 널리 인류에게 회자된 내용들인데 지금은 속속들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단순히 이야기에 불과할 뿐인데 무슨 예언처럼 세상 사회에 실현되고 있는 것에 대해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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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시작된 이 이야기들의 연작은 얼마의 시간에 걸쳐 이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사랑하며 그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지-작품 속의 동생 앨리스를 생각하는 앨리스 언니를 통해 드러난-는 먼 훗날에도 여전히 먼지가 끼지 않는,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할 탁월한 창작을 탄생시킨다.
아이들에게 실제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때그때 전개되는 방식의 작품이라 애초 줄거리를 어느 정도 엮어놓고 전개되는 방식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 차라리 그것이 이 작품을 순발력 있는 전개로 말미암아 독특한 상상력이 그 어느 작품보다 뛰어나며 창의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탄생되는 계기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23.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