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계 6장 9-17절
설교제목 : 떨어지는 하늘 별
인간의 폭력성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새로운 희망이 움돋우며 어느새 자연이 연녹색으로 물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이란은 이스라엘군의 시리아 주재 영사관 폭력에 대한 보복으로 13일 드론과 미사일 등 300기 이상의 무기를 동원해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19일에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이란 본토에 재보복을 감행하였습니다. 이스파한 공항 등 군사시설 다수를 겨냥하여 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유가는 급등하였고 정치, 경제적 적신호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불러와 끝없는 카르마 속에 인간과 집단을 고통 속에 함몰시킬 뿐입니다. 인간이 분노와 원한에 사로잡히면 이미 악마적인 공격성이 따뜻한 피를 앗아가고 냉혈적 피로 인간정신을 압도해 버립니다. 공습을 하는 이 사진 한 장은 마치 하늘에서 불덩이가 쏟아져 내려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의 몰락으로 세상이 불바다가 되는 듯한 형국입니다.
또 다른 사진 한 장이 인간의 무지와 폭력성에 대해 질문하게 했습니다. 전주시에 있는 남천교 일대의 전경입니다. 최근에 커다란 버드나무 40그루를 베어버렸습니다. 지난해도 260그루를 벌목하였고 이제는 나무를 볼 수 없는 보기 흉한 하천이 되어버렸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나무가 쓰러질 수 있어서 제방 등 하천 시설의 손상방지를 위해 벌목을 했습니다. 그러나 생태하천 협의회는 버드나무와 홍수 위험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천의 준설작업까지 병행하면서 주민들과 새들과 곤충들의 살아가는 생태공간을 놀이공간과 체험공간을 만들 목적으로 벌이는 일이라 일축했습니다. 개발목적과 인간의 편리성을 위해 자행되는 일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인식하게 하는 사진입니다. 반성적 자기 인식을 통하여 문명과 자연, 사회, 인간 자체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큰 폭력과 마주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원한을 푸는 길
요한계시록의 심판은 한 개체와 집단이 결정적인 순간 앞에서 하나님 앞에 그 행위를 판가름 됨을 계시의 방식으로 전합니다. 이는 우리 정신에서도 객관적인 절대기준으로 인간의 삶이 저울질되는(평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루마리에 일곱봉인이 하나씩 떼어지면서 심판의 국면이 전개됩니다. 일곱 개의 봉인 중에서 네 개의 봉인을 떼어지면서 활을 가지고 흰말을 탄 자, 큰 칼을 들고 붉은 색 말을 탄 자, 손에 저울을 들고 검은 색을 말을 탄 자, 사망이란 이름을 가진 청황색 말을 탄 자가 나타나 심판을 예고합니다.
이제 다섯 번째 인이 떼어지면서, 요한은 제단 아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증언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지배자님,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지배자님께서 땅 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어 우리가 흘린 피의 원한을 풀어 주시겠습니까?(6:10)
죽은 영혼들의 피 맺힌 원한이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은 죽어서도 그 한을 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억울하게 고난당하고 희생당하면 원한이 축적될 수 밖에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정서적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는 것입니다. 교리적이거나 말씀으로 무장한다고 해서 한 맺힌 원한까지 풀 수 없는 법입니다. 오히려 복수심에 불타서 땅 위에 있는 자들을 싹쓸어 버려달라고 간청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참으로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이 복수심과 분노가 들끓는 세상에서 그 충동의 먹이가 되지 않는 것은 원한의 앙갚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입니다. 시편 73편에 기자는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 /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 하나님, 주님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주님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원한와 복수심이 일어날 때 하나님 앞에 서서 모든 심판을 그분에게 맡겼으면 합니다.
이 원한을 푸는 것이 예배이고 심리치료인 듯 합니다. ( ..... ) 저는 그분에게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좋은 내담자 경험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상담은 내담자를 사례 개념화해서 개선하거나 치료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우선 해야할 일은 내담자의 원한을 달래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샤먼은 한 맺힌 혼을 달래주는 일을 하는 자였습니다. 그것은 고통받은 콤플렉스를 위로하고 원한을 달래주는 일입니다.
수가 차기까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피맺힌 원한을 풀어주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6:11)”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정해진 어떤 것이 있음을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욥에의 응답”에서 말한 융의 말과 상당히 일치합니다. “선재하는 패턴 없이는 아무 것도 일어날 수 없다” [CW11, Psychology and Religion, para.641.] 원형(정신의 고대적 선재 패턴)을 어느 정도 결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은 이미 자신이 확립된 패턴을 통해서 작동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선험적이고 선재하는 경륜과 계획, 그 패턴은 죽임을 당하는 자들의 수를 더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운명적 배열이 있음을 선재함을 일러줍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우리의 삶에 전적으로 결정적이지만, 그 예정 운명 속에서 자아의식이 끼어들면 하나님의 변환의 드라마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수가 차기까지, 아직도 더 쉬어야 한다” 말씀합니다. 운명의 배열을 감지하고, 하나님의 때를 적극적으로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고 나를 통하여 운명적 전환이 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개념이지만 주목해야할 복수에 대한 심리적 고려가 있습니다. 복수는 무의식의 작용에서 변환되지 않은 자기(Self)로부터 파생되는 매우 두드러진 역동성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진노, 원시적인 신상의 리비도가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방식입니다. 이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겸손에 대한 설교로 얼버무려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 복수의 진노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인류의 파괴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쟁과 테러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파괴적인 분노하는 신의 출현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융은 말합니다. “인간은 빛의 형상을 상상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의식화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CW13, Alchemical Studies, para.335.] 이럴 때만이 변환이 가능합니다. 이 세계와 우리 안에 일어나는 어둠을 의식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경험만이 우리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떨어지는 하늘의 별
여섯 번째 인의 떼지면서 큰 지진이 일어나고 해는 검은 머리털로 짠 천과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와 같이 되고 하늘의 별들이 떨어집니다(6:12-14). 이런 현상은 자연 세계와 우주의 붕괴 현상입니다. 이런 이미지는 흔히 정신병(조현병)의 현상학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진은 의식의 토대를 붕괴시키는 분열 현상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은 의식으로 분출되는 집단적 무의식의 상위 또는 영적인 측면의 상입니다. 별은 자아로 떨어지는 원형적인 실체들입니다. 집단적 무의식의 침투 현상입니다. 집단적 무의식이 활짝 열려서 자아가 감당할 수 없는 초개인적인 심상들이 자아에 넘치는 것입니다. 무의식적 심상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그 심상들에 압도되는 현상입니다. 이런 원형적 상들이 침입할 때 위로부터 혹은 아래로부터 동시에, 또는 밖에서 혹은 안에서 동시에 발생합니다. 마치 그런 심상이 밖에 있는 것으로 보이거나 들리면 의식이 붕괴될 수 있는 순간입니다.
이런 현상은 개인에게도 일어나지만 제가 시작에서 보여드렸던 하늘에서 떨어지는 미사일과 폭탄의 불꽃은 분노의 신이 모든 것을 파괴시키는 형국과도 같습니다. 2차세계대전에서 경험했던 그 분열적 붕괴현상이 우리 시대에도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열린 눈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떨어지는 하늘의 별은 개인과 집단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보다 열린 마음과 깨어있음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