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천 500년 전 가야시대 순장 소녀인 '송현이'의 인골이 발굴된 창녕 교동 고분군 전경. 바로 인접한 창녕 박물관과 송현 고분군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다음 달이면 겨울방학에 이어 봄 방학을 맞는다. 방학기간을 맞아 가족과 함께 문화유적 기행을 떠나면 어떨까. 그다지 추운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가족 간에 추억을 쌓을 수 있고, 알게 되는 만큼 즐거운 게 문화유적 기행이다.
유적지가 많아 '제2의 경주'라 불리는 경남 창녕으로 발길을 잡았다. 창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우포늪이고 부곡 하와이일 것이다. 하지만 이외에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오산이다. 창녕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역사와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 곳곳에 널려 있다시피 하다. 땅을 파기만 하면 유물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거지 일원에도 유적이 산재해 있다. 창녕에는 국보 2점과 보물 12점 외에도 100여 점에 이르는 문화재가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도 21점에 이른다. 이는 보고, 체험할만한 유물과 유적이 많다는 얘기다. 도보 여행이 가능하도록 창녕읍 창녕시장 주변의 유물과 유적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균형·장중·단아함 3박자 갖춘 동3층석탑 18세기 축조 석빙고, 과학적 설계 '눈길' 길이 13.5m 너비 3m 만년교 영산의 자랑 첨단기법으로 복원된 가야 소녀도 볼거리 크고 작은 고분 관람하면서 걷는 재미
■술정리 동3층석탑
경남에서 유일한 국보 탑으로 오일장인 창녕시장과 인접해 있다. 국보 제34호. 통일신라 시대 때 만들어진 것이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안정된 구조여서 균형미를 자랑한다. 여기에다 장중함과 단아함까지 더해져 경주의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과 비교될 정도로 규모와 양식, 제작연대 면에서 돋보인다는 평가다. 4개의 면석과 4개의 갑석, 탑 주변 둘레 석이 설치된 것도 특징이다. 1960년대 복원할 무렵, 인접한 민가의 담 밑으로 하층기단 일부가 들어가 지역 주민들이 이불을 말릴 정도로 한때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발견 당시, 3층 탑신 중앙의 방형 사리공에서 뚜껑이 있는 동제잔형사리용기, 유리제 사리병, 사리 7과 등이 발견됐다고 한다. 맨 꼭대기 상륜부는 없어졌다. 창녕 문화해설사 김정순(48) 씨는 "인근에 사는 동네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1960년대 동네 축구대회 때, 상륜부를 우승 트로피로 사용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바로 옆에는 지은 지 250년이 지난 하 씨 초가가 있다.
■창녕석빙고
고분 모양으로 생긴 창녕 석빙고.
보물 제310호다. 창녕시장 바로 옆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경주와 청도 등에 모두 6개의 석빙고가 남아 있는데, 창녕에 2개나 있다. 모두 18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월께 인근 강가에서 두께 12cm 이상의 얼음을 채취해서 봄, 여름, 가을까지 보관했다고 전해진다. 기록상 1742년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창녕 석빙고는 외관상 고분 모양이다. 절반은 지하에, 나머지는 보온과 방수를 위해 진흙과 석회 등으로 다져 덮은 형태의 구조이다. 구조상 아주 과학적으로 설계된 게 흥미롭다. 우선, 입구에 날개벽을 설치해 북서풍의 찬바람을 막아, 석빙고 내부로 빨려 들어가게 함으로써 내부온도를 영하 0.5~영상 2도를 유지토록 했다. 천장에는 요철 구조로 된 환기 구멍을 만들어, 갇힌 따뜻한 공기를 외부로 빠져나가게 하고, 냉기를 오래 유지토록 했다. 또, 밑바닥을 경사지게 하고, 바로 옆 하천과 직각으로 배수구를 설치해 녹은 얼음물을 흘려보냈다.
■만옥정 공원과 신라진흥왕척경비
경주 석가탑을 연상케 하는 술정리 동3층석탑.
신라진흥왕척경비는 창녕읍사무소와 인접한 만옥정 공원 안에 있다. 국보 제33호다. 진흥왕 22년(561년)에 세워진 진흥왕척경비(拓境碑)는 원래 화왕산 기슭에 방치돼 있다가 일제 강점기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자연 암석에 해서체로 새긴 비문에는 진흥왕이 이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살핀 행적과 수행원 이름 등이 기록돼 있다. 한반도에 전해지는 순수비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고, 실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전문 642자 중 현재 400자가 판독돼 있다. 다른 순수비와는 달리 창녕비에는 순수관경이라는 글자가 없다고 해서 척경비로 불린다.
일본 강점기 때인 1914년 창녕초등학교 학생이 창녕읍 말흘리에 소풍 갔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인 교장이 탁본해서 동경제대에 보내어 신라 비석임을 확인하고, 학계에 보고했다. 높이 178㎝, 너비 175㎝, 두께 30㎝ 크기다. 이밖에 만옥정 공원에는 흥선대원군 척화비와 창녕객사, 개폐식 고인돌, 퇴천 3층 석탑 등이 있다.
■창녕박물관
교동 고분군과 송현 고분군이 주변에 있다.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이 주로 전시돼 있다. 눈길이 가는 것은 지난 2008년 송현동 고분군 15호분에서 출토된 16세 순장 여성의 인골을 첨단과학기술을 통해 복원한 모형. 1천500년 전 가야시대 소녀의 것이다. 지역명을 따서 '송현이'라 이름을 지었다. 발견 당시, 머리를 동쪽으로 두고 모두 4명의 남녀가 무덤 입구부터 놓여 있었다고 한다. 보존상태가 좋은 첫 번째 인골이 송현이였다. 중독사 또는 질식사한 것으로 분석돼 순장된 것으로 추정됐다. 정강이와 종아리뼈 상태를 보아 무릎을 많이 꿇은 시녀였을 것으로 분석됐다. 키 153.5㎝가량으로 8등신의 미인형 얼굴을 가졌다고 한다. 인근 교동 고분군과 송현 고분군에는 총 100여 기의 크고 작은 고분이 산재해 있는데, 이중 40여 기 가량이 복원됐다. 고분을 관람하면서 걷는 재미가 있다. 1911년 일본 학자가 처음 발굴할 때, 마차 20대와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공품 등이 출토됐다고 한다. 모두 5~6세기 때의 것으로 현재 대부분 유물은 소재조차 모른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영산 만년교
옛 다리 중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영산 만년교.
만옥정에서 15분가량 떨어진 영산면 동리 영산호국공원 입구에 또 다른 보물이 있다. 보물 제564호인 만년교다. 지역 주민들은 만년교를 영산의 숨결이자 자랑으로 여긴다. 지금도 만년교를 이용해 개천 너머로 건너다닌다. 길이 13.5m, 너비 3m의 무지개 모양이다. 옛 다리 중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년교는 예전부터 있던 나무다리가 큰물에 자주 떠내려가자 조선 정조 4년(1780년) 지역 주민들이 힘을 합쳐 돌을 가져다 건립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개울 양쪽의 자연 암반을 주춧돌로 이용해 홍예(虹霓)라는 반원 모양의 구조로 만들었다. 남쪽 다리 입구 비에 만년교(萬年橋)라 새겨져 있고 그 옆에 십삼세서(十三歲書)라는 작은 글씨가 덧붙여 있다. 만년교를 만들 당시, 신통한 필력을 가진 13세 신동이 산신의 계시를 받아 글을 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영산호국공원에는 호국비와 3.1독립운동 기념비, 6.25영산지구 전적비, 호국충혼탑 등이 세워져 있다.
글·사진=송대성 선임기자 sds@busan.com
여행 팁
■그밖에 둘러볼 곳
창녕의 오일장은 풍성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고, 장사꾼의 넉넉한 정이 있어 활력이 넘쳐 둘러볼만하다.
영산 만년교 옆 무료 썰매장.
창녕읍 술정리 창녕장(3, 8일)과 남지읍 남지리 남지장(2, 7일), 영산면 성내리 영산장(5, 10일), 이방면 거남리 이방장(4, 9일), 대합면 십이리 대합장(2, 7일)등 5개의 오일장이 있다. 영산 만년교에서 상류 쪽으로 200m 거리에 영산청년회에서 운영하는 무료 썰매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도 있다.
■교통 편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 칠원분기점에서 김천·대구·칠서 방면으로 빠져나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탄다. 만년교를 먼저 가려면 영산 IC로 나오면 된다. 창녕읍 일원을 우선 둘러보려면 창녕 IC로 나와 창녕 방면으로 좌회전, 우포대로를 따라 창녕읍 방면으로 가면 된다.
버스를 이용하면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창녕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7시부터 40~5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요금은 6천 700원. 터미널에서 창녕박물관까지는 도보로 15분 거리.
■먹을 곳
창녕읍 화왕산로변에 있는 양반청국장(055-533-0066)은 전통 방식으로 만든 웰빙 청국장과 부드럽고 고소한 손두부가 유명하다. 청국장 비빔밥 6천 원, 자연송이 해물손두부전골 1만 원. 창녕대가(055-532-3301)는 한우구이로 잘 알려져 있다. 탄탄한 육질의 한우와 17가지 재료로 만든 특제 소스가 일품이다. 1인분 1만 5천 원. 영산면 온천로 도리원(055-521-6116)은 창녕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점이다. 장아찌밥상 1만 원, 삼겹살 1만 3천 원, 오리훈제 1만 5천~1만 6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