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한 번도 안 나온 횟집’이 있는 섬
최 화 웅
높푸른 하늘의 새털구름이 내려앉은 쪽빛 바다에는 윤슬이 눈부시다. 지난주 젊은 날 스쿠바 다이빙을 함께 했던 바다의 가족 열두 명이 모였다. 이튿날 욕지도로 산행을 나섰다. 욕지의 지명은 알고자할 ‘欲’자에 알 ‘知‘자를 쓴다. 흔히 욕지를 ’알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한 섬‘이라는 지명 풀이가 얼른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겨울에도 풀이 자라는 곳이어서 예부터 사슴이 많아 녹도(鹿島)라 불렀다거나 욕지항 안에 작은 섬이 거북이 모양으로 목욕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욕지(浴地)라고 불렀다는 설도 전한다. 통영 삼덕으로부터 정기여객선이 오가는 서촌마을 선창 안쪽으로 사적 제236호 욕지도 패총이 자리 잡았다. 적어도 선사시대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곳에는 초중학교와 도서관, 면사무소와 보건소, 수협과 농협, 파출소가 정답게 이웃하고 있었다. 면사무소에 들러 최근에 나온 나의 수필선집『쏟아지는 그리움』두 권을 전했다.
욕지의 중심지인 면사무소 앞에는 구한말부터 주민이 입도했다는 것을 기념한 ‘욕지도 100년’ 기념비가 1988년 10월 26일에 세웠다. 그 기념비는 1888년 접전지역인 욕지도에 주민의 입도허가가 난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고 전한다. 구한말 이후에는 근대 어촌으로 발돋움한 좌부랑개. 욕지도는 통영으로부터 32km 떨어진 곳으로 다도해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다. 한려수도의 시작과 끝인 통영에는 섬이 많다. 지난 2009년 국토해양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유인도 482개에 무인도 2,876개로 모두 3,358개의 섬이 있다고 밝혔다. 그 중에 통영에는 유인도 44개, 무인도 206개로 250개의 섬이 바다의 꽃처럼 피어 있다. 가장 큰 섬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길목 한산도, 그 다음이 욕지도다. 욕지도는 우리나라의 섬 중에서 39번째로 큰 섬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이 첫발을 내디딘 선창에는 수퍼문의 영향으로 불어난 바닷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바닷물에 가을햇살이 다이아몬드빛 윤슬을 피우며 한려수도의 낭만을 속삭이듯 유혹한다. 무능한 지도자의 부정과 불의로 나라가 온통 시끄러운 세상과는 달리 섬마을의 물빛과 해조음 그윽한 풍경이 경이로웠다.
날씨가 맑고 바람이 잤다. 우리 일행은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해발 392m의 천황봉을 오르고 다른 한 팀은 31.5km에 달하는 해안선 따라 난 일주도로 따라 드라이브를 나섰다. 야포 가는 길과 모개지 길, 푸른 작살 길, 솔구질 길, 대구지 길, 고래머리 길을 차례로 달리며 아름다운 다도해의 섬 풍경을 가슴과 눈에 담았다. 굽이도는 곳마다 비경에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눈이 시렸다. 산등성이에는 색종이 같은 타일을 바른 예수성심상이 욕지공소에서 다도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 출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명예시인에 추대된 언론인 김성우의 에세이집『돌아가는 배』의 기념비도 서 있었다. “나는 돌아가리라. 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리라. 출항의 항로를 따라 귀항하리라. 바람 가득한 돛폭을 달고 배를 띄운 그 항구에 이제 안식하는 대해의 파도와 함께 귀항하리라. 어릴 때 황홀하게 바라보던 만선(滿船)의 귀선(歸船), 색색의 깃발을 날리며 꽹과리를 두들겨대던 그 칭칭이 소리 없이도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빔 배에 내 생애의 그림자를 달빛처럼 싣고 돌아가리라.” 욕지의 9경에 드는 삼여전망대와 노대군도는 빼어난 절경이었다. 오늘도 욕지도 비탈진 곳에서 고구마를 캐고 삣대기를 말리는 거친 아낙의 손이 섬마을의 삶을 이야기한다.
욕지에도 ‘내노라’ 하는 전통 맛집들이 즐비했다. 그중에는 TV에 나왔었다고 허풍을 떠는 곳과 원조라는 간판을 내다 건 음식점들이 우리의 눈을 헷갈리게 했다. 심지어 제 구실을 못해 부끄러운 지상파TV의 이름을 앞세운 음식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심지어 어떤 음식점은 언제 어느 방송의 프로그램에 소개됐었다고 KBS, MBC, SBS를 차례로 들먹이며 장황하게 떠벌인다. 음식점 간판보다 크고 화려한 펼침막을 내다 건 집도 있다. 그러나 욕지도 횟집은 간판 위에 'TV에 한 번도 안 나온 집'이라고 덧간판을 올린 집이 바른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요즘 사람들은 차라리 요란하게 떠벌이는 집을 피해 숨은 전통 맛집을 찾으려고 하는 이유를 알듯도 하다. 머지않아 절과 교회, 성당도 방송을 통해 홍보를 신자를 끌어모으는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우리 일행은 정오를 넘어 산행팀과 해안선 드라이브팀이 만나 면사무소 앞의 한양식당에서 이름난 해물짬뽕을 먹었다. 뱃시간까지 선창길을 걷다 통영으로 돌아오는 여객선에 올랐다. 통영시내로 돌아온 일행은 사우나로 피로를 말끔히 씻어낸 뒤 미륵산자락 용화사로부터 봉평동 용화사거리에 이르는 봉수골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한식당 정원에서 만찬을 나누었다.
첫댓글 욕지도에 가 있는듯 산행팀을 따라 정상에 올라 푸르디푸른 바다와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제목이 참 멋집니다.
저는 다음에 이런 제목의 책을 내고 싶습니다.
'너만 안 본 책'
'너만 안 본 책' 내신다면,
꼭 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