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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변기와 비대 -쪼그려 누기에서 깔아뭉개기로
중학교 시절 나는 영어공부를 잘 못했지만, 통시를 ‘와쉬-룸’ 이라 한다는 것은 기억했다. ‘와서 쉬하는 방’으로 풀어서 암기했기 때문이다. 초기의 수세식 통시는 변기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똥을 누고는 천정에 달린 물통의 끈을 잡아당기는 방식이었는데, 물내려가는 소리가 꼭 대청마루에서서 마당쇠를 부르는 대감님의 목소리 같이 요란하였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물에 쓸려 나가는 똥을 보면 저절로 똥이란 게 참으로 하찮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람은 그렇게 누군가를 하찮게 여기면서 자긍심을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자긍심이 자존심을 부추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수세식 변기가 세도가의 상징물처럼 가가호호를 휩쓸었고, 그렇게 흘러나간 똥들이 하수도는 물론 온 하천을 똥통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변기는 그런 일 따위에는 아랑 곳 하지 않고 저희들끼리 경쟁을 하면서 자기들만의 불국토, 미륵세상, 신천신지를 만들어 나갔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변기혁명이 일어났다. 쪼그리고 앉아 용을 써야하는 구차한 꼴에서, 깔고 앉아 깔아뭉개도 되는 좌변기로 바뀐 것이었다. 좌변기는 사람이 사람을 깔 보고 싶은 욕망을 무한대로 충족 시켜주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문제는 고매하신 어르신과 어린 백성이 아무리 변기이지만 그 위에서 함께 엉덩이를 맞댈 수는 없는 처지였다. 결국 만인과 소통하던 통시는 황제가 올라앉아 볼일을 보던 '매화틀' 마냥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서 안방 곁에 붙어서 저 혼자서만 소통하는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더러는 고상한 척 하는 사람들이 그 옆에다 책꽂이까지 만들어두고는 시집이나 수필집을 꽂아 두기도 했지만, 똥 누는 의미도 모르고 똥을 싸듯이 책도 그렇게 읽었으니 세상과의 소통은커녕 제 자신과도 소통하지 못하였다.
좌변기의 등장은 많은 소통불통의 이야기들을 에피소드로 남겼다. 아파트로 분가한 며느리 집에 들른 시어머니가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좌변기 물로 낯을 씻고는 “세숫대야가 참 이상하게 생겼다”고 했다거나, 똥이 마려운 시아버지가 좌변기에 올라가 쪼그린 채 용을 쓰고는 “애야! 똥통의 아가리가 좁아서 일을 보기가 힘들구나!” 라고 했다는 이야기나, 며느리의 엉덩이가 닿은 곳에다 시아버지 엉덩이를 붙이기가 민망하여 허리춤을 부여잡고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는 소리들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차별의 맛을 본 변기의 진보가 거기서 멈춘 것은 아니었다. 세도가에게 아부하여 부귀영달을 도모하려는 누군가처럼 귀하고 거룩하신 분께서 어찌 뒤를 손으로 닦을 수가 있겠느냐며 비데란 걸 만든 것이었다. 나는 이 비데란 놈을 사용할 줄 몰라 낭패를 당한 일이 있었는데 이야긴 즉은 이러하다.
처음 골프를 배워서 폼을 재며 00컨트리클럽으로 갔는데 운동을 마치고 목욕탕 입구에 있는 간이 화장실로 들어갔겠다. 볼일을 마친 후 물을 내리는 꼭지를 찾지 못해 비데에 붙은 스위치를 이것저것 눌렀더니 갑자기 아래에서 물이 쭉 뿜어 올라오면서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게 아닌가. 오줌발(?)이 어찌나 강하던지 눈을 뜰 수가 없어 멈춤 스위치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예라 모르겠다.’ 하고는 밖으로 달아나 버렸겠다. 그런데 이놈이 브뤼셀 뒷골목에 있는 '오줌 싸게' 동상처럼 계속해서 물을 내질렀으니 그 다음 이야기야 말 안 해도 다 알 것이다. 범인을 찾는 관리인의 목소리가 탕 안을 울리는데 나는 비데도 모르는 놈이 골프 치러 왔느냐고 고함치는 소리처럼 들려 탕 속에다 머리를 푹 담그고 숨어 버렸던 것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런 거지 뭘~’ 하고 깔아뭉개면서. |
글쓴이 수필가 정 임 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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