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각산 기도
박운현
pwh9718609@hanmail.net
용각산에 오르려고 아침부터 서둘렀다. 장마기에 접어들면서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기에 애가 타기도 해서다.
용각산은 청도군 청도읍, 매전면, 그리고 경산시 남천면과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며 청도군을 동서로 양분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달성군 비슬산에서 남쪽으로 산등성이가 쭉 뻗어 내려오다 이곳에 터를 잡고 기품을 자랑하며 청도를 한눈에 내려 보며 우뚝 서있다.
지금은 용각산이 곰티재에서 정상부근까지 임도가 설치되어 과거보다는 오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청도읍의 북쪽에 위치하며 실비가 내리는 저녁에 산을 감싸 안고 있는 운무는 신비로움 마저 느끼게 한다. 이를 ‘용각산모우’라 하며 청도팔경의 하나다. 나는 용각산에 오르기 위해 자동차로 원정리, 부야리를 지나 곰티재에서 용각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임도를 따라 숨가쁘게 올라갔다.
한참동안 우거진 수풀사이로 주위를 감상하며 오르는 사이 어느덧 산허리에 도달하였고, 주차를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어 이곳에 오르면서 숨차고 고단했던 차는 세워두고 쉬게 했다. 다행히 이곳에는 차량이 여러 대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용각산 허리춤에 차를 주차하고서 정상을 향해가는 오솔길은 걸어 올라갔다. 주위에는 키 큰 소나무들이 빽빽이 웅장한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군인들이 열병식을 하듯이…. 야산의 산기슭에는 대개 키가 작고 휘어져 있는 볼품없는 모양이지만, 높은 산 깊은 곳에 자리한 나무들은 서양미녀들처럼 자태가 늘씬하다.
최근에 소나무 재선충이 이곳 용각산까지 확산되어 벌겋게 말라 죽어있는 나무가 더러 눈에 띈다. 안쓰럽고 마음에 걸린다. 현재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소나무 재선충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 든다. 구절양장 같은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우거진 숲 사이로 이름모를 산새들이 야단스럽게 지껄여 된다. 아마도 낮선 이방인이 자기들을 헤칠 것이라며 위협을 느끼는 모양이다.
길옆으로는 빨간 산딸기가 먹음직스럽게 지천으로 널려있다. 아마도 아직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보고도 그대로 지나친 까닭일까? 산딸기가 몸에 좋아 약리작용을 한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비가 온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숲속에는 습기가 축축이 남아있다. 이 숲속 나무에서 소나기처럼 뿜어대는 피톤치드라는 유익한 물질은 인체에 항균작용을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죽자 살자 산에 오르는 게 않는가?
산에는 아름다운 여름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도대체 무슨 꽃들인지 영 알 수가 없다. 향기가 그윽하게 피어난다. 왜 저 꽃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낼까.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위해서 일까, 아니면 사람들에게 향기를 제공하기 위해서 일까, 자연이 인간들에게 볼거리로 베푼 선물일까, 도무지 알 수없는 노릇이다. 꽃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한다. 꽃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그렇지만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고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저 꽃들처럼 모두가 아름다워 질 순 없을까, 그러면 세상은 밝아지고 평화로울 텐데.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오르는 사이 어느 듯 산 정상에 발을 놓았다.
‘정상이다, 정상!’
나도 모르게 함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다리도 아프고 숨이 차 힘들어 했던 것도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이 없어졌다.
산정상은 해발 679.4미터 바위로, 바윗돌에는 “용각산”이라는 음각으로 새겨진 글자가 있다. 정상부근을 자세히 살펴보니 재단이 설치되어 있는 흔적이 남아 있다. 옛날에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계속되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는 비가오지 않는 이유를 옛사람들은 용이 노해서 그렇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비를 가져오는 건 용이라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 까닭에서 일까? 산 정상 아래에는 용이 물을 마셨다고 하는 용샘이라는 작은 샘이 하나가 있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일 년 내내 물이 흘러나오는 그런 샘이다.
정상부근 바윗돌에는 말 발자국 같은 형상과 고삐를 맬 수 있는 기묘한 구멍이 나 있어 그 옛날의 장수가 용마를 매어두었다가 이를 타고 청도읍내 뒷산 와우산까지 날아갔다는 전설도 있다. 바윗돌 위에는 어떤 염원을 담아 올려놓은 듯 조그마한 돌로 쌓아둔 여러 개의 작은 탑이 서 있다.
정상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첩첩산중 산뿐이다. 청도가 산이 많은 고장이라는 건 이런 높은 산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면 단번에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산에 올라 산 속의 품에 안겨보니 일순 시름이 사라진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리라 이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세상번뇌 시름잊고 청산에 살으리랐다”. 흥이 절로 나온다. 내가 즐겨 부르는 김연준 곡 “청산에 살리라” 한 부분이다. 목청껏 목 놓아 불러보니 노래 소리가 허공으로 허공으로 메아리져 흩어진다. 높은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어디선가 한 점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스쳐간다.
송글송글 이마에 맺힌 땀방울도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내가 서있는 발아래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첩첩산중 뿐이다. 청산에서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세상번뇌 다 잊어버리고 살아갈 순 없을까 잠시 허망한 꿈에 젖어보기도 한다.
깊은 산속의 신선같이 그렇게 한번 살아 봤으면 하는 생각이 불현듯 마음 한 켠에 자리한다. 산꼭대기에 올라서 용각산 신령님전 축원한다. ‘나와 우리가족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늘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결같이 보살펴 주시옵고, 그리고 우리지역의 주민들에게도 건강하고 행복한 가운데 군민 모두가 하나같이 내일의 밝은 희망 속에서 자자손손 평안하게 잘 살아가는 그런 고장이 되어주소서!’하고 덧붙여 기도한다.
내가 바란 염원이 부디 신령님이 굽어 살피시고 거두어주시기를 두 손 모아 마음속 깊이 빌어본다.
첫댓글 용각산에 가셨군요. 용각산도 청도의 명산이지요. 간절한 기도소리가 들립니다.
용각산 - 뿔처럼 생긴 정점, 청도의 동쪽 성벽이지요. 저도 한 번 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분하게 엮은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가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