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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irst oversea expedition
성근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울시산악연맹에서 청도 노산 등반이 있는데 좋은 기회라고 했다. 주저없이 신청했다. 3개월여를 기다렸다. 바로 오늘 5월1일 출정의 날이 밝아왔다. 인천 국제여객선 제2터미널에서 대원들을 기다렸다. 함께 가는 일행이 누구인지 어떻게 가는지에 대한 스케줄에 대한 정확한 첩보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제대로 파악할만한 정보처가 아직 없었다. 서두르지 않고 어떻게 되겠지 하는지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거기에는 성근형님의 일조가 있었다. “괜찮아 그냥 가면 돼” 향후 그 너무 괜찮아야 죽어나지만. 와서 보니 중국 산동성에 소재한 중국등산협회 청도지회와 함께 노산(1,133m)에 등반하는 것이고 서울시산악연맹의 국제교류행사의 일환이었다. 동태를 살펴보니 위동페리(NEW GOLDEN BRIDGE Ⅴ: 30,000ton이고 평균 시속16노트에 전장 190여m, 730여명의 승선 인원과 인천~청도를 16시간 운항하는 배)를 타고 가는 등산객이 얼추 수백명은 되어 보였다. 서울시산악연맹 주관으로 교류행사에 참석하는 인원도 암벽 12명, 등산 24명인 것을 알게 되었다. 혜초여행사가 안내를 맡았다.
성근형의 잽싼 행보로 대원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암벽 12명중 바름산악회 유진경회장, 강정식현대기획대표, 박종관연맹이사, 등반사랑 최성근회장, 이철수 그리고 임일진 감독 6명외에 서울시 산악연맹 임원진이 배치되었다. 얼기설기 인사들을 마치고 승선준비를 하였다. 등반열전으로 이름을 휘날리고 있는 강정식대표와 “벽”을 프로디싱한 임일진감독과도 수인사를 마쳤다.
상황을 곁눈질해보니 이상 6분이 함께 등반 할 것 같았다. 정식형은 이참에 등반열전도 촬영하여 일석이조의 사업수완을 발휘할 듯 했다. 등반열전 촬영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일감에 흥미진진한 대원들 구성으로 볼 때 이벤트가 기대되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승선하면서 배가 굉장히 크며 그것 때문에 큰 안도감을 주었다. 대략 8층은 돼 보이고 크루즈 선을 흉내낸 듯하였다. 성근형이 하달하는 대로 4인실 침대칸 1층에 내가, 2층에 성근형이 앞 칸에 정식형, 임감독 이렇게 페리에서 하루밤을 보내야 했다. 승선한지 대략 1시간이 지난 오후 7시 페리가 인천터미널을 출발하였다. 소요시간은 장장 16시간이란다.
배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배에서 무엇하며 소일해야 하나. 걱정도 잠깐. 침대칸 배치가 끝나자마자. 바다 전경이 보이는 휴게실에 자동 집합이었다.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민족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소주부터 시작된 간담회가 막걸리, 맥주 급기야는 동대문 어르신까지 합류하여 발렌타인 18년이 서너병이상 공급되어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상호간에 이빨 우위를 장악하기 위해 연맹의 어떤 행사에 참석했다는 둥, 제주도 행사에서 일면식이 있다는 둥, 해외원정이 어떻다는 둥. 자신들만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장황설들을 전개해 나가고 있었다.
에라 등반기록도 이번 노산 해외원정이 유일하고 경력도 일천한 나는 별 볼일 없었다. 펼쳐 놀 만한 썰이 없었기에 선상 위를 이리저리 배회했다. 혹시 건수가 없나. 선상 내에 이용 가능한 시설은 무엇인가. 파악되는 대로 성근형에게 보고했다. 이번 기회에 성근형을 완전정복하기 위한 탐색을 점점 추워졌다.
방송으로 선상 꼭대기에서 노래자랑이 있다고 낭랑한 목소리가 퍼져 나왔다. 한번 시야를 크게 둘러보고 하늘을 쳐다봤다. 고고장을 방불케 하는 반짝 불들이 미미하지만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성근형은 카바레 역사를 일갈하면서 춤 출줄 아냐고 물었다. 일단은 모른다고 답변해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상바닥은 물기가 흥건할 정도로 습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미끄러워 조심해야 했다. 여기서 추락하면 망망대해 이 밤에. 이어서 불꽃놀이를 한데나. 계속 방송이 징징거리고 있었다. 특별서비스라고 생색도 내가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추워지니 동물적 감각으로 침대옆 복도로 삼삼오오 모였다. 외곽에서 풍경을 만끽한 산꾼들이 숙련된 행동으로 먹거리들을 시간대별로 원활하게 이동배치하고 있었다. 어디가나 인기품목은 라면이었다. 선내 안내원에게 주의를 받아가면서도 어디서 끓여오는지. 이리저리 흥밋거리를 탐색하던 성근형님은 일찌감치 포기한 듯 침대로 몸을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 나도 따라서 슬쩍 침대에 집어넣었다. 1인용 침대가 편했다. 배 움직임이 미동으로나마 느껴지는 듯했다.
복도에서 마시고 있는 박종관 써틴대구라이머를 비롯한 일행들은 한국, 중국의 정치 경제에 대한 노가리들이 계속 전개되고 있었다. 해외원정에 대한 무용담도 들리는듯했다. 목소리는 높아가지만. 아스라이 잠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 5시였다.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았다. 목욕탕에 투입됐다. 바다풍경이 잘 보이는듯 했지만 떠오르는 일출풍경이 희끄무리하게 너무 망망해서 허망했다. 보이는 것은 뿌연 안개뿐. 어느덧 하선 준비하라는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성근형 뒤를 따라 서둘렀다. 성근형이 스피디해서 채근은 하지만. 나를 버리고 아는 척하지 않지는 않겠지. 보조를 잘 마쳐야 한다.
청도항구에 도착해서 입국수속을 마쳤다. 입국수속중 이유 없이 세 번이나 여권심사에서 거절당했다. 국내에서 개인신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오히려 중국에서는 그것이 문제인가. 얼마전 음주에 체크당한 성근형님도 통과하고, 방사선에 노출된 박종관이사도 통과하는데. 엉성한 심사와 전산프로그램이 문제인 듯했다. 기다리라고 하는 공항요원들이 짜증스러웠지만 공인이 참아야지 도리가 없었다.
수속을 마치고 나와 사진도 찍고 우리를 안내할 청도지회 대원들과 청도 노산 암벽의 개척자이신 양정OB의 김상일 선배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70년대식 후줄근한 버스에 탑승하여 등반할 양구로 향했다. 가는 방향에서 우측으로 노산의 암릉이 눈앞에 펼쳐졌다. 굉장히 큰 산이고 온통 바위투성이라는 암시가 계속되고 있었다. 양구에 위치한 태평궁 입구에 오후 1시경 도착했다.
입구에 위치한 훌륭한 Haier산장에서 간단히 오찬을 마치고 삭도(리프트)에 탑승하였다. 2인승 리프트에 배낭과 1명만이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배에 승선할 때 성근형이 가지고 온 먹고 남은 족발1통을 한손에 들고 탑승하였다. 족발 무게감 때문에 한손이 애를 먹고 있었다. 리프트 밑으로 추락시킬까. 커다란 배낭과 장비들을 존경스런 시선과 관심표명을 보여주는 중국 젊은이들을 즐겼다. 우리대원들은 으쓱대는 것 같았다. 인수봉에서 대단하지 않지만 여기서 위대한 구라이머 처럼 행세할 수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리프트마다 빈자리 없이 선글라스를 낀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노동절 공휴일임을 느낄 수 있었다.
중간쯤 되나보다. 눈에 익은 커다란 목숨 수자 바위가 새롭다. 바위마다 목숨 수(壽)자가 즐비하다. 크다 못해 웅장했다. 중국인들의 이러한 역사와 바위 훼손 행위는 자연파괴 범주에 속하지 않는가 보다. 자연 폄하 역사의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는가 보다.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뒤로 양구 항구와 해수욕장 그리고 시원한 바다를 뒤돌아보며 느낄 수 있고 앞으로는 뾰족한 봉우리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리프트에서 내려 도보로 20분정도 돌계단이 아닌 길을 걸어 베이스캠프인 커다란 마당바위에 도달하였다. 텐트 치고 식사하고 야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오후3시정도 되었다. 양구를 바라보면서 좌측은 경천주봉이고 이 주봉에는 양정길 A, B, C 3개의 루트가 있고, 우측에는 평정국봉으로 수리아리랑길과 김상일선배가 낸 이름없는 크랙길이 있다고 한다. 김상일선배는 양정OB로서 청도지회 산파역을 맡았었고 노산 등반의 파이오니어이며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김선배와 몇 명의 제자들이 우리 등반의 가이드 역할을 자임하고 있었다. 근처 위해나 연태에다 산악회를 만들어야 겠다는 야망을 잠깐이나마 가져보고. 정식형, 임감독, 유진경회장, 박종관이사는 수리아리랑길로 향하기 위해 장비를 챙겼다. 정식형과 임감독은 등반열전 촬영도 준비하였다.
선상에서 특정 4명에게 네파 티셔츠를 공급하고 다른 대원들의 질시어린 누초리와 시기김에 겸연쩍어 하면서. 네파 티셔츠를 많이 가지고 오지 못해 출연 배우들에게만 제공한 것이다. 욕먹어도 싸요 아프로는 협찬 많이 가져와. 모자, 바지,티셔츠 ====.
나와 성근형 그리고 10명정도는 양정A길로 향했다. 베이스에서 어프로치가 장난이 아니다. 가시돝힌 넝쿨과 잡풀들 그리고 바위로 뒤엉킨 접근로는 짜증 그 이상이었다. 이리저리 몸을 숙이고 낮추고 바위를 할퀴고 건너뛰고 하면서 양정A길 1피치가 시작되는 바위에 도달하였다. 양정A길의 1피치는 난이도가 높은 오버행이면서 언더크랙으로 잡고 시작해야 하는 코스와 바위 밑으로 자일을 잡고 내려가서 실 크랙을 잡고 시작하는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인원이 많은 관계로 나와 성근형은 난이도가 높은 1피치를 시작하기로 하고 내가 빌레이를 보고 성근형은 당연 선등을 해야만 했다. 빌레이장소가 안정적이지 못해 나무에 슬링줄을 묶어 확보하고 빌레이를 준비했다. 스피디하면서도 조급증세가 있는 성근형은 재촉하기 시작했다.
“철수, 다됐지. 뭐해 됐어?. 그래서 언제 올라가. 됐어?”
나는 못들은 척하고 완벽한 빌레이만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나름대로의 주술을 외웠다. 제발 성근형님에게 휘말리지 말자. 그리그리로 확보하면서 세 번 네 번 다시 만지작거리고 자일을 당겨보았다.
“형님 올라가시지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언더로 오버행크랙에 매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또 다른 1피치 하단부에는 청도지회 소속이면서 등반길 안내를 위해 차이나 크라이머를 포함 십수명이 뒤섞여 어수선했다. 그러면서도 성근형님의 난이도 높은 1피치 선등을 경외스런 눈초리로 바라 보고 있었다. 눈빛이 강렬했던지 아니면 너무 의식하셨는지 끙끙거리고 얼굴색이 총천연색으로 변하더니 급기야는 줄을 늦추라고 했다. 원위치. 몹시 어려워하고 힘겨워하는 눈치였다. 잘모르니까. 처음이니까. 그러나 역시 성근형님이었다. 대담함과 바위에 대한 집념이 강한 형님은 그 까것 할 수 있다며 다시 시도하였다.
“철수야 빌레이 잘봐라. 추락하면 많이 아프다”
“형님 걱정마세요. 제가 앞으로 빌레이로 이름을 날리게 될 것입니다. 믿으세요. 장비를 믿고 빌레이를 믿고 그리고 자신을 믿으세요”
나는 분위기 반전을 위해 엉까고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댔지만 사실 나도 자신이 없었고 앞으로 무슨 일이 전개될 지 확신할 수 없었다. 선등자에 대한 빌레이 본 경험도 많지 않았기에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능력도 마이너스인 상태다.
“철수야 빌레이 잘 봐라. 잘못 보면 큰일 난다” 조금 겁먹었는지 아니면 한번에 올라가지 못한 것을 나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것인지. 형님은 평소 내가 어떻게 네가 빌레이 보는 것을 믿느냐고 했다. 빌레이를 믿는 것이 아니고 형님 자신만을 믿고 간다고 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님이 여기 청도 노산에서 입증되고 있었다.
“형님 믿고 시도하세요. 너무 늦는 거 아냐요. 정상까지 가려면...”
압박을 가했다. 주도권이 나에게 있었다. 잠시 잠깐 여유가 생겼다. 형님이 통밥을 재고 있었다. 어렵다고 벌써 서너 번 텐을 선언하고 있던 참이었다. 빌레이도 여유가 생겼다. 배에서 내려 정신없이 베이스캠프까지 왔고 성근형님의 채근에 한숨 돌릴 겨를 없이 지금까지 왔다. 경천주봉을 올려다 보고 평정국봉을 뒤돌아봤다. 노산의 날씨는 더없이 맑고 푸르다. 공기가 너무 좋았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공기같이 촉촉하지 않고 드라이한 기분이 들었다. 덥기조차 하였다. 정식형이 짜배기로 준 네파 티셔츠는 목없는 반팔이라 팔뚝과 목둘레가 설설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지기미 긴팔로 목있는 티셔츠를 주지. 아무리 중국아들이 빨강색을 좋아하지만서도 녹음과 언바란스한 의상을.
“형님, 안올라가요. 선등자 교체할 까요”
이리저리 방황하는 성근형에게 농을 쳤다.
“‘야, 3년전에 그냥 올라갔는데. 여기 장난이 아냐. 처음해 보는거라. 바위상태를 모르잖아”
형님의 3년 전, 5년 전 언어구사는 늘 듣던. 진실규명할 날이 오늘 일진대.
“형님, 3년 전에 나는 ..... 5년 전에는 ......”
이야기 끝나기 무섭게 성근형은 크락스를 극복하기 위한 결심이 선 듯. 손이 빠지는 벙어리 언더크랙 그것도 오버행. 힘을 쓰는 것 같았다. 여러 번 시도하다 제자리로 돌아선 상태로 밑에서 올려다보고 있는 경외스런 눈초리도, 감시자 이철수의 시선과 입담을 극복하기 위한. 초인적 등반력이 필요한 시점이 경각에 달려있음을 감지한 듯 했다. 힘을 쓰기 시작했다. 시도한지 5분여가 경과된 상태다. 으라차차. 웬일이여. 내몸이 하늘을 향해 붕 뜨더니만 나뭇가지에 얼굴을 글키고 옆으로 나뒹굴었다. 얼렁 일어났다. 쓰찬성 지진이 일어났나. 경험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예기치 못한 상황 발생에 대해 당황할 수뿐이 없었다. 어떻게 성근형님이 추락할 수 있나. 그것도 해외원정에서. 빨리 수습해야 했다. 등반사랑 비운의 역사가 오늘부터 시작되나. 형님은 손이 빠지면서 밑으로 거시기 했고 그 육중한 몸무게 땜에 올라갔다 내려올 수뿐이 없었으리라. 성근형님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 봐 그래서 내가 빌레이 잘 보랬잖아”
“형님 내가 빌레이 잘 봤으니까. 아무 이상 없지. 내가 잘못 봤으면 저 밑으로 추락야용”
형님은 빌레이에게 살짝 떠넘기려는 것 같았다. 나도 너스레를 떨었다. 빌레이 보는 장소 상태가 열악한지라. 그런저런 핑계도 대가면서 빨리 성근형님의 추락모습을 덮기 위한 계기를 조성하기 위해 떠들어 댔다. 그러자 성근형님은 뜻하지 않게
“철수, 테이프 있어. 이것 봐라. 손가락이 확 먹었다”
테이프를 들고 가보니 중지끝이 상당 깊이로 살점이 떨어져 나가 실크랙이 형성되어 있었다. 아마 끝까지 붙으려고 애쓴 필사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바위에 핏자국이 보였다. 선글라스를 벗고 보니 선혈이 낭자했다. 형님에게 속삭였다.
“형님, 쉬운 아랫길로 갑시다”
“아냐, 아냐 갈수 있어. 길은 쉽다니까. 길 상태를 몰라서 그러는데. 됐어 올라갈 수 있어. 저건 길도 아냐. 5년전에는 그냥 올라갔는데”
“그래도 밑에서 중국애들과 같이온 구라이머들이 쳐다보고 있는데. 그만 슬쩍 내려가서 같이 합류합시다” 점잖게 말렸지만 할 수 있다는 성근형님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우리쪽에는 형님과 나만 등반하고 있었을 뿐. 길 상태를 알려주는 가이드도 없었다. 그야말로 깡다구와 사나이다운 패기가 아니면 시도하기 어려운 길이다. 시뻘건 피가 이곳저곳에 혈흔이 남아있고. 성근형님은 다시 붙었다.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면서도 계속 시도하였다. 드디어 크락스를 올라섰다. 나는 파이팅을 외쳤고 역시 형님이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이곳 깊은 산중에서 성근형님에게 잘 보여야 한다. 다른 대원들 일면식도 없는데 왕따 당하면 나는 고독해진다. 그러한 삶의 철칙을 여기서 암송해야 한다.
“향님, 죽여줍니다. 증말 감동적입니다. 대단혀”
“철수야 이거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5년전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올라갔다니까”
뭘 어떻게 그냥 올라갔다는 것인지. 그럼에도 역시 형님은 기죽지 않았다. 1피치는 길기도 하지만 볼트 간에 간격도 멀고.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에는 아직 암벽등반이 한국처럼 붐이 일지 않았고 초창기이며 이곳에 나 있는 길에도 climber가 자주 등반하지 않아 볼트상태 불량. 피치종료지점에도 와이어대신 슬링줄을 걸어논 것이 아슬아슬하였다.
김상일선배님 왈 중국 크라이머들은 스포츠크라이밍을 선호하고 간현암같은 곳에서 하드프리에 열중한다네요. 성근형은 어쌰어쌰하면서 난국을 잘 피해가며 등반하고 있었다.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고 잠시후 완료소리가 들렸다. 등반하라고 지상명령이 떨어졌다. 십초도 지나지 않아.
“쉬우니까. 빨리 올라와. 괜찮아”
큰 소리가 들렸다. 성근형님의 급물살같은 성질을 이제부터 감안해야 한다. 두 쪽 귀로 듣고 빨리. 찬찬히 바위에 붙었다. 으이크. 장난이 아니었다. 바위에 언더로 붙을 수도 없었지만 붙으려고 하는 순간 하체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이 다리를 후들거리게 하였다.
“형님. 텐션”
“뭐 괜찮아. 그냥 올라와” 연발 괜찮다며 그냥 올라오라는 것이다. 증말 뭐가 괜찮다는 것인지. 에라 모르겠다 . 볼트따기나 하자. 근데 볼트따기도 장난이 아니었다. 볼트에 올라서서 퀵도르를 제거하는 것이. 내려다보니 하단이 사선으로 기울어져 있고. 점점 하단으로 골이 깊어져서 몸이 아래쪽으로 기울면서 떨어질 것 같았다.
“텐션해줘 봐요”
들은척도 안하는 것 같았다. 연실 괜찮다며 그냥 올라오라고 성화였다.
모르겠다. 성근형님이 클릭해논 고난과 역경의 퀵도르에 의존해가면서. 성근형님이 기다리는 피치종료지점까지 갔다. 도착하니 손가락을 쥐고 아프다면서. 웬일이래. 길이 없단다. 가이드가 있으면 양정A길 2피치 시작되는 지점에 갈수 있을 텐데. 가는 길을 찾을 길이 없었다. 하강하여 다시 시작해야 한단다. 하강해 보니 시간은 벌써 오후 5시가 저물어간다. 첫날인데 너무 늦으면 안 된다고 판단. 성근형님 손가락도 중상. 텐트도 치고 야영준비도 해야 한다. 성근형과 나는 올라올 때 길을 찾아 하산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베이스캠프가 눈앞에 보이지만 큰 바위와 덤불이 뒤엉켜 길을 찾기 쉽지 않았고 길이라고 해야 사람 왕래가 거의 없어 가시덤불로 뒤덮여 있어 온몸에 가시침을 맞아가며 돌파해야 했다. 어찌어찌해서 내려왔다.
성근형과 좋은 자리에 텐트를 쳤다. 날씨가 더웠으나 청명했다. 내려다 보는 양구항과 해수욕장, 그리고 경관들이 우리나라 어촌 같았다. 그럼에도 공기의 촉촉함과 상큼함이 느껴지지 않고 많이 건조하고 드라이한 맛이 감지된다. 너럭바위에 설치된 베이스캠프에서 수리아리랑길을 올려다 보니 시야가 장관이었다. 선등에 박종관이사. 정식형과 임감독의 등반열전 촬영을 위해 적나나하게 추락하는 모습들, 큰소리로 어쩌구 저쩌구 노산이 좋고 코스가 기가막히다면서 노가리를 풀어가는 목소리가 쨍쨍하게 들려왔다. 길안내를 자임한 김상일선배, 유진경회장들의 등반하며 속삭이는 언어들이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텐트를 치고 만찬 형태로 모였다. 양구를 바라보며 뒤로 둘러쳐진 병풍모양의 바위기세들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영화 세트장같이 자연이 만들어 주었다. 성근형과 나 그리고 남아있던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어렵게 들고 온 족발도 펴보았다. 아직 상하지는 않았다. 족발, 베이컨 등등이 안주로 출현했다. 서울시산악연맹에서 공급해준 소주를 마시고 있으려니 하강하는 박이사가 족발 남겨 놓으라고 아우성이다. 수리아리랑길에 오르던 대원들도 2피치를 마치고 하강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노산에 대한 칭송도 하고 주변 분위기에 대한 논평도 늘어놓았다. 그러는 가운데 수리아리랑 등반팀도 합류하였다. 갑자기 베이스캠프는 왁자지껄하였다. 대원들이 모두 모였고 노산 캠프의 첫날밤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너럭바위에서 들뜬 기분들이 어떻게 펼쳐질가. 국산술과 중국술이 모였고 안주도 푸짐해졌다. 랜턴이 밝혀지고 양구 해안가의 불빛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꾼들은 아스라한 밤을 즐기고 밤에 더 강해진다. 오늘밤 속내들이 얼마나 들어날지. 김상일선배를 비롯한 청도산악회 회원, 서울산악연맹 12명. 오늘밤 얼마나 결속이 돈독해질지.
계속 연재여부를 성근형님의 호응도에 따라 결정합니다.
허양 | 우리 회장님과 이철수 선배님이 천적 관계? 앞으로 라이벌 열전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회장님 응원 : 회장님께서 입심으로 이겨야지 소리지르고 화내시면 철수 선배님께 지는 것입니다. 이철수 선배님 응원 : 아마도 입심에서는 선배님이 회장님을 이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등반에서는 어떻게 하실는지? | 2008/05/19 | |
김경일 | 흥미진진... 기대 만빵!!! 다음편을 기대해 봅니다. | 2008/05/19 | |
최성근 | 철수야! 5년전 이야기는 한번만 했는데 .. 2편 연재 기대된다. 어제 리빙T V 407 에서 철수 18하는 소리 리얼 하게 잘보았어 뱃곱잡고 웃었지.. | 2008/05/20 | |
이종근 | ㅋㅋ 후속편이 기대됩니다. | 2008/05/20 | |
이규순 | 선배님! 2편 기대됍니다. 후후!^^ | 2008/05/20 | |
성민제 | 제목이 정말 좋습니다.... 저도 붙어갈걸...(^,.^) | 2008/05/20 | |
오일재 | 일편 잘 읽었습니다. 이편 기대되는 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