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를 필요한 곳에 쓰십시오(김용민, 베드로, 정형외과 의사)
1987년 12월 초 어느 새벽, 추운 날씨를 뚫고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탓인지 혜화동성당의 노란 나트륨 조명은 유난히 더 비장한 느낌으로 103위 한국 순교 성인화를 비추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은 전공의 선발시험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소록도 근무 이후로 정형외과만을 염두에 두었는데, 그전 해까지는 지원자들의 사전 조율로 탈락자가 없던 정형외과에 그해에는 끝끝내 지원 초과로 높은 경쟁률을 보였고, 막강한 인물들이 많아 저는 ‘유력 후보’는 아니었습니다.
기도하겠다고 성당에는 왔지만, 단순히 “제발 저 시험 붙게 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은 쑥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저의 기도 내용은 “주님, 오늘의 시험 결과를 전적으로 당신 뜻으로 받들겠나이다. 만일 제가 합격해, 정형외과 의사가 된다면 주님께서 저를 쓰시겠다는 뜻으로 믿고 응하겠나이다. 어디든 가라 하시는 곳에 가겠습니다”였습니다. 어찌 보면 “당신이 날 쓰려면 합격시켜 달라”는 흥정 같은 느낌도 약간 듭니다.
오전 필기시험에 이어 다음은 면접시험. 면접장 앞 복도에 초조하게 서 있는 제 앞으로 먼저 들어갔던 응시자들이 모두 얼굴이 벌게져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왜들 저래?’ 했는데 그 이유는 면접장에 들어섰을 때 알게 되었지요. 첫 질문 “왜 정형외과를 지원하였나?”에 지원자들이 할 수 있는 대답이 무슨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적성에 맞아서” “남자다워서” 등의 보편적 대답은 면접위원들로부터 “학문적 자세가 아니야”, “남자다운 게 좋으면 깡패가 되지 그래” 등의 비난과 조롱만 불러올 뿐이었습니다. 궁지에 몰리던 저는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록도에서 근무하는 동안 정형외과야말로 나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과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기적과도 같이 면접위원 교수님들의 분위기가 돌변했습니다. “자네가 소록도에 있었다고?”
이후로는 그분들께 소록도에 관해 제가 설명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저보다 앞서 정형외과 선배 한 분이 소록도에서 3년을 지내는 바람에 교수님들이 그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고, 그렇게 다녀갔던 분들은 소록도를 희생과 봉사 정신이 가득한 이상향처럼 여기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였을까요? 며칠 뒤 합격자 발표에 제 이름이 들어 있었습니다. 새벽 미사에서 하느님께 드린 약속에 대한 보답이었음을 믿습니다. 이후로 저는 중요 갈림길마다 혜화동성당의 약속을 되새겼습니다. “그곳이 주님께서 저를 쓰시려는 곳이라면 기꺼이 가겠나이다.”
이후로 지방 신설 의대를 시작으로, 아이티 대지진 긴급 구호, 뜨거운 도로를 걷는 대학생 국토대장정, 눈 덮인 2018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 경기장 등…. 그리고 마침내 저는 국경없는의사회에 가입해, 총상 젊은이들이 가득한 팔레스타인, 적도 아프리카 오지에서 정형외과 의사로서 구호 활동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앞으로도 하느님이 가라 하시는 곳 어디든 기꺼이 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