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피는 봄을 기다리며/이명철 (2023.3.13.)
나이가 분명 들었나보다.
오후에 아내와 같이 운동하는 일 외에 운전하고 밖에 나가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러운 걸 보면서 세월의 무게에 깔린 나를 발견하곤 한다.
용기를 내어 운전하고 선운사에 갔다. 선운사 동백 숲의 동백꽃이 얼마나 피었나를 보고 봄맞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산신당(山神堂)과 팔상전(八相殿) 뒤의 동백 숲에서 동백꽃이 어쩌다 한 송이씩 피어있고, 꽃망울 벌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부끄러운 듯 빨갛게 얼굴 붉히며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저 장연강으로부터 올라온 봄바람 산들 불어 잠에 취해 몽롱(朦朧)한 동백꽃과 잎을 간질이며 봄소식 전하는 것을 보면서 천천히 바람 따라 봄 속으로 들어가 본다.
동박새 소리 가녀리게 들리는 숲속은 그 소리 간간히 들려 더욱 조용한데, 꽃은 젊은 날의 그녀처럼 항상 수줍고 앙증스럽게 푸른 잎으로 얼굴가리며 잎 뒤로 숨는다. 그 모습은 말 한 마디 건너보지 못한 첫사랑 마주쳐 방긋 웃고 돌아서는 그런 수줍음이 지금도 가슴시린 추억의 옹달샘이다.
그녀는 정말 그랬다.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며 방긋 웃고 대문 안으로 사라지곤 했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아름다움이어도 가슴 아픈 것인가.
영산전 앞 화단 돌 틈에 새싹 돋아나지 못한 능소화(凌霄花)줄기가 봄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보살의 화신(化身)인가! 통째로 떨어지는 동백꽃 닮은 능소화는 조선시대 장원급제자가 쓴 어사화(御史花)다.
세한삼우(歲寒三友)는 동백꽃과 동백나무, 동백기름을 말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꽃이기에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수줍음 머금은 채 붉게 피어 한창일 때, 그 붉은 꽃송이 통째로 뚝 떨어지는 애처로운 아름다움 시나브로 지고 나면 나무 밑이 벌겋게 더 처연하다. 요절(夭折) 하듯 눈물 한 방울 없이 뚝 떨어지는 동백꽃, 그래서 동백꽃은 미인박명(美人薄命)의 흉내를 낸다고 한다. 그러한 연유로 동백은 절 뒤에는 안 심는다는데, 선운사의 동백은 스님들의 삶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심은 것이다.
조선조의 억불(抑佛) 책은 고려 때 그 많았던 사찰 소유의 땅을 다 국가에 몰수당하고 시주만으로는 도저히 살수 없어, 재원 마련을 위해서, 조선조 9대 임금인 성종 3년(1472년)에 심은 것이다.
얼른 생각해도 600년이 다된 나무다. 동백 씨에서 머릿기름과 약용, 식용 등의 기름을 짜서 재원을 마련했던 것이다.
옛날에는 동백기름이 머릿기름으로는 최고급이었다. 아주까리기름도 있었지만, 먼지를 많이 타서 바르고 나면 금방 머리에 뿌옇게 앉는다. 동백기름은 사대부 집, 부잣집 부인들이 애용하고, 아주까리기름은 서민들이 사용했던 것이다.
선운사의 동백은 갈수록 나의 애착(愛着)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꽃망울을 보며, 이 나이에도 아련한 첫사랑을 떠올리는 걸 보면 말이다.
문득 동백꽃 피면 온다던 그녀들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여자동창들이다. 운전하는 동창이 무릎수술을 해서 못 오는 걸까? 지난 해 유독 친했던 동창 하나가 동백꽃 떨어지듯 뚝~떨어졌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녀가 간 뒤 우리들은 한번이라도 더 만나기를 소원했었다. 멀리 있어 간절하게 생각이 나는 어린 시절의 그리움,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곤 한다.
동백꽃 활짝 피면 동박새 날아올 것이다. 제자리 날갯짓으로 동백꽃에서 꿀을 취하는 동박새. 동백꽃의 수정까지 같이 시켜준다. 그래서 동백은 새가 수정을 시켜주는 대표적인 나무다. 새가 수정을 시켜준다 해서, 새 조(鳥)자를 써서, 일명 동백나무를 조매화라고도 한다. 동백이라 부를 때는 새 이름이 동박새이지만, 조매화라 부를 때는 매조새가 되는 것이다. 화투에서 2월 매조,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바로 매조새, 동박새인 것이다.
이제 며칠만 더 기다리면 동백꽃이 활짝 필 것이다. 보통은 3월 말에서 4월 15일까지가 만개할 때지만, 시절에 따라서는 늦거나 이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선운사의 동백은, 목탁소리, 염불소리 따라 피었다가 바람에 흐느끼는 풍경 소리에 스러지는가! 이제 막 피어나려하는 가녀린 저 꽃망울을 두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 무겁다.
동백꽃을 보는 노년의 내 마음에 나의 존재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면서 이 어려운 시국을 살아가는 데에 힘을 얻는다면 선운사 동백숲을 찾는 이 인연으로 언젠가는 피안(彼岸)의 저 언덕에 꽃피울 일이 일어나기를 기원해 본다.
버려야 한다. 꽃송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하나 덜렁 남기고 미련 없이 시들어가는 꽃잎처럼, 열매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사유(思惟)마저 버리고 또 버리며 동백꽃 피는 봄을 하염없이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