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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다 여행기(4편)
안녕하세요. 농심거사입니다.
지난 3개월前 전남 완도군 노화도의 넙도섬 여행을 다녀온 후,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왜 4편을 안올리냐는 당시의 그 일행과 관련된 가족분들의 항의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뒤늦게지만 이제라도 4편을 올립니다. 다행히 당시 여행중에 메모지에 적어 놓았던 메모가 있어서 그때를 회상하면서 이제라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잦은 출장과 회사업무 때문에 차일피일 미룬점 대단히 송구합니다. 부디 널리 해량(海量)하여 주십시오.
4편 : 천년 고찰 두륜산의 대흥사 탐방기
♣ 그리고 본문을 쓰기전, 넙도에서 우리 일행에게 정성을 다해주신 권용호 사장님께 감사드리는 의미에서 그분이 경영하시는 ‘완도의 명품 전복에 대한 안내문’을 겸한 광고문을 하나 올리겠습니다. 전복구입에 대한 문의는 아래 광고에 있는 권이사님께 하여 주시면 최상의 상품을 저렴하게 믿고 사실수 있을 것입니다.
♣ 대흥사는 두륜산 도립공원 아래에 위치해 있으므로 두륜산을 찾는 관광객의 필수 코스나 다름없었습니다.차량으로 불과 10여분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대흥사로 향하는 길목의 “비자나무 숲”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 우리 일행을 태운 Best driver 임베드로 형제는 대흥사로 진입하는 일반차량이 통제되어있었으나, 그는 눈치빠르게 정문을 지키는 경비직원이 잠시 쉬하러 갔는지? 자리를 비운 그 틈을 이용하여 잽싸게 non-stop으로 대흥사 건물 중심부까지 승합차로 쌩~하고 달렸습니다.
♣ 대흥사 입구 매표소로부터 대흥사 본건물이 있는 곳까지는 무려 4Km 이상이나 되는 먼 거리로서 그날 만약 우리 일행이 매표소 앞에 주차시키고 도보로 대흥사의 대웅전 근처까지 갔다면, 그 무더운 날씨에 아마도 진이 빠졌을 터이고, 특히 시간상 도저히 대흥사의 관람이 불가했을 것입니다.
♣ 그의 재치있는 행동 그리고 과감한 결단력에 우리 모두는 탄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에 매표소 앞에 경비직원이 출입을 제한 했었어도 그는 “대흥사 본관 근처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으로 불리는 “유선여관”에 이미 예약한터라 숙박하러 간다~!‘라고 당당히 말할 준비까지 했다니 그저 그의 재치에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 그도 그럴것이 대흥사 절 근처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여관인 “유선여관”이 있었습니다. 두륜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꺽어드는 계곡에 자리잡고 있어 물소리를 벗삼아 하룻밤 머물기 아주 좋은 곳이랍니다. 지금까지 다섯명의 주인을 거치고 현재는 여섯 번째 주인(현재 주인 윤재명 님)이 운영하고 있답니다.
♣ 유선여관은 한일병합 이후인 1915년에 지어졌다고하니 딱 100년이 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인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라 비록 낡기는 했지만, 당대 최고의 목수가 지은 멋진 한옥건물이었습니다.
♣ 유선여관은 객실이 10개인데, 객실마다 방문 위에 나무문패로 장비꽃방, 매화꽃방, 참나무방 등의 팻말이 걸려있고 하룻밤 묵는데 3만원을 받는 2인실, 6만원을 받는 4인실, 12만원을 받는 8인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으로 쓴다지만 꼭 묵고 싶은 멋진 여관임이 틀림없었습니다. 특히 저녁밥은 1인당 1만원, 아침식사는 7천원인데 반찬이 아주 좋다고 입소문이 자자하답니다.
♣ 어떻든 갈길이 바빴던 우리는 승합차로 대흥사 내의 넓은 전용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고, 우선 담배한대를 여유있게 피울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 대흥사 입구의 계곡에서는 맑은 물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았고, 숲속 나무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대흥사 입구의 공터에 주차를 시킨 후 우리는 약 300여 m 정도 소로길을 걸어 대흥사 본관으로 향했습니다. 길목에는 대형의 잘 다듬어 놓은 검은색 큰 대리석에 대흥사를 잘 소개 하는 안내문이 적혀있었습니다.
♣ 그리고 대흥사 본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이 절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탑들이 잘 정비되어 있었고, 오래된 고풍의 사당도 보였습니다. 스님들의 사리를 보관하는 곳을 흔히 부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부두(浮頭) · 포도(蒲圖) · 불도(佛圖)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는데, 원래는 불타(佛陀)와 같이 붓다(Buddha)를 번역한 것이라 하고 또는 솔도파(率屠婆, stupa), 즉 탑파(塔婆)의 전음(轉音)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어원으로 본다면 불타가 곧 부도이므로 외형적으로 나타난 불상이나 불탑이 바로 부도이며, 더 나아가 승려들까지도 부도라 부르기도 합니다.
♣ 우리 나라에서 묘탑, 즉 부도라는 용어로 승려의 사리탑을 가리키는 실례는 신라 하대부터 보이고 있습니다. 묘탑, 즉 부도를 세우는 것은 불교식 장례법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불교가 전래된 때부터 묘탑의 건립이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4세기 후반이지만 연대가 그때까지 올라가는 묘탑은 문헌상으로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627∼649년경에 원광법사(圓光法師)의 부도를 세웠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이 시기를 부도 건립의 시초로 볼 수 있지요.
♣ 부도에는 다른 석조물과 달리 탑비(塔碑)가 따로 세워져 있어 부도의 주인공과 그의 생애 및 행적 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당시의 사회상·문화상 등을 알 수 있어 주목됩니다. 이와 아울러 각 부의 정교한 불교 조각과 화려한 장식문양도 조각의 극치를 보이고 있으며, 형태도 전체적으로 균형된 조형으로 조화미를 보이고 있어 우리 나라 석조미술의 백미로 꼽힙니다. 대흥사로 가는 길목에 수없이 많이 세워진 부도를 보면서 천년고찰의 역사를 지닌 명승지가 틀림없다고 느껴졌습니다.
♣ 계곡을 넘어 절로 들어가는 돌다리는 아마도 천년전 신라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당시에는 현대식 기중기도 없었을 터인데 어떻게 그런 커다란 암석을 운반했을까? 의문이 갈 정도였습니다. 정말 하나의 예술품과 같았습니다.
♣ 계곡의 돌다리를 건너 대흥사 본관 입구에 들어서자 또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넓은 절터에 잘 조성된 천혜의 자연환경에 그저 경탄을 금할 수 밖에...
♣ 두륜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의 물소리가 경쾌했고, 주변에 만발한 꽃들과 경내의 풍경이 너무도 잘 어울렸습니다. 사찰내 중심부에 위치한 고풍스런 건물 앞에는 “조용히” 하라는 글귀가 붙어있었고 “출입금지” 팻말이 써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백일기도를 드리는 곳인지? 수련을 하고 계신 곳인지? 출입을 금지시키는 팻말 앞이지만 워낙 전경이 아름답기에 살짝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또한 대흥사 북원구역으로 가는 길가에 큰 고목나무가 있었는데, 이 고묵은 “보호수”였습니다. 그 보호수 안내판에는 수종은 느티나무이며, 수고는 20m, 수령은 500년, 관리자는 해남군에서 맡고 있다고 쓰여있었고, 나무의 특징 및 연혁에는 “절에 위치하며 행운이 온다고 하며,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비유되어 사랑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풍치에도 좋고 수령이 우수하여 보호수로 지정 되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 그리고 이나무가 특히 연리근이라는 것에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나무가 한몸이 되어있기에 “천년의 인연, 만남, 약속”을 상징하기에 “사랑나무”로 불리는 것인가 봅니다.
♣ 가까이 자라는 두나무가 서로 만나 합쳐지는 현상을 연리(連理)라고 하는데,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햇빛을 향해 바람을 따라 서로 부디끼고 겹쳐져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뿌리가 만나면 연리근(連理根), 줄기가 겹치면 연리목(連理木), 가지가 하나되면 연리지(連理枝)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두몸이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각각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되어 일명 “사랑나무”로도 불립니다.
♣ ‘삼국사기와 고려사’에도 연리나무에 관한 기록이 전하는데, 우리 조상들은 연리나무가 나타나면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吉兆)로 여겼습니다. 대흥사 연리근은 천년된 느티나무로 그 오랜 세월 동안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왼쪽은 음의 형태이며, 오른쪽은 양의 형태로 언 듯 남녀가 천년동안 사랑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 우리 일행은 대흥사 경내에서는 비교적 많은 관광객이 있는터라 사회적 이목과 체면상 우르르 몰려 다닐수 없어서 각개약진으로 경내를 구경하고 20여분후에 대흥사 법종 앞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이에따라 2명씩 짝을 지어 자율적으로 경내를 둘러 보았지요.
♣ 북원구역(北院區域) 안내판 앞에섰는데, 거기에는 “이곳은 침계루 앞의 금당천을 기준으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북원이라고 한다.”는 설명과 더불어 신라 말에 조성된 응진당 삼층석탑이 있는 지역으로 사찰에서 가장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는 곳이라는데 더욱 호기심을 느겼습니다.
♣ 과연 그곳은 아주 조용한 사찰 뒤편이었는데, 대웅보전에는 원교 이광사(1705~1777년)가 쓴 편액이 걸려있고, 백설당에는 추사 김정희(1786~1856년)가 쓴 “무량수각(无量壽閣) 편액과 해사(海士) 김성근(1835~1919년)이 쓴 ”백설당(白雪堂)“ 편액이 걸려 있어서 조선 후기 명필의 필체를 비교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1899년(대한제국 광무5년) 북원일대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새로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 대웅보전 안을 들여다 보았는데, 위 사진에서와 같이 우리의 호프 용산 성당의 레지오 총단장인 정베드로 형제가 법당 안에서 기도를 하고 있어서 무척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형제! 자네는 천주교 신자인데 법당 안에서 두손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뭐냐?”라고 물었지요.
♣ 그런데 그의 왈(曰) 타종교도 존중하는 것이 신자의 도리(道理)라고 하면서, 자신은 법당 안에서 부처님께 기도 드린 것이 아니고, 주님께 주의기도를 드렸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다시금 그의 깊은 신앙적인 내공에 그저 감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그리고 북원구역에 가장 눈에 확~ 띄는 대흥사 웅진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 앞에 섰습니다. 석탑 옆에 활짝핀 철쭉꽃이 너무도 잘 어울렸습니다. 여러명의 관광객들이 석탑보다는 활짝 핀 철쭉을 배경으로 연속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통에 한참을 기달려 겨우 3층석탑과 철쭉 꽃을 촬영했습니다.
♣ 대흥사는 지금까지 가본 사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절이었습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왕년의 정훈장교 답게 이곳에 더 머물며 구석 구석을 둘러보며 역사공부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 마치 코끼리 뒷다리만 만지고 가는 꼴이라 아쉽기 그지 없으나, 오후 3시경 신안군 압해도에서 배를 타고 ‘매화도’로 가야하기에 발길을 서둘 수 밖에 없기에 약 30여분간 대흥사를 둘러 보곤하산을 시도했습니다.
♣ Am 11시 15분경 대흥사를 출발하여 목포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곧 사월초파일이 다가오는 탓인지 사찰 주변에는 연등을 구석 구석에 달아 놓아 사찰이 더 아름답게 그리고 진한 불교의 냄새가 짙게 느껴졌습니다.
♣ 대흥사를 떠나면서 우리 일행 모두는 다시한번 최고의 운전기사 Best driver 임베드로 형제에게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그가 대흥사 사찰 입구에 있는 ‘유선여관“을 통과하여 경당 가까이 까지 승합차를 몰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번 대흥사 탐방은 절대 불가능했었다고 이구동성으로 그를 치하했습니다.
♣ 입장 할 때에 슬쩍 스쳐지나간 ’유선여관‘을 하행 할 시에 승합차를 잠시 정차 시키고 잠깐이지만 사진이라도 찍고자 ’유선여관‘을 둘러 보았는데, 아~! 정말 머물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이런 집이 최고의 명품 여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우리 일행이 대흥사를 떠나 입구의 매표사까지 가는 길목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도보로 대흥사를 향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분들은 30~40분 이상 걸어서야 대흥사 본전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지요. 시간만 허락되었다면 우리도 가로수길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분명 걸어갔을 것입니다만, 빡빡한 스케줄 상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 조직내 사무총장 임베드로 형제 덕분에 대흥사 탐방도 오늘 성공적이었습니다.
독천에서 맛본 최고의 별미 “낙지요리"
♣ 2015. 4. 25(토) Am 11시 15분, 우리 일행은 대흥사 탑사를 마치고 목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점심식사는 목포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의 낙지마을”에서 낙지요리로 점심을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인솔 책임자인 임베드로 형제는 이 지역일대가 그의 나우바리이기도 하지만 수차례에 사전 충분한 검토한터라 우린 기대가 컸습니다.
♣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 인솔 책임자는 운전중에도 고향 후배들에게 수소문하여 독천 낙지마을에서 제일 낙지요리를 잘하는 집이 어디 어니냐?를 묻고는 이곳 지역 후배가 지정해준 “해남식당”으로 찍방했습니다.
♣ 우리의 승합차는 해남읍을 경유하여 고속도로와 일반국도 13번을 타고 쏜살같이 달려 불과 30여분만인 Am 11시 45분경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소재의 독천낙지마을에 도착한 것입니다.
♣ 해남식당의 입구 수족관에는 산낙지들이 바글 바글했고, 쥔장의 얼굴이 크게 게시된 ‘SBS 맛자랑 출현 식당“이라는 광고판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를 통해볼 때 장사가 무척 잘되는 집이라는 걸 댄번에 느낄 수 있었지요. 물건이 많고 손님이 많은 집은 대체로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지요.
♣ 인솔 책임자인 우리의 호프 임베드로 형제는 우리 촌놈들이 낙지에 대해 무지한 것을 재빨리 눈치채곤 자기 직권으로 갈낙탕, 낙지초무침, 낙지비빔밥 등을 골고루 시켰습니다.
♣ 카~아~! 냉동낙지만 먹었던 우리 서울촌놈들은 산낙지를 그대로 요리한 이곳 해남식당의 낙지요리에 넋을 잃고 뻘건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입세주와 막걸리를 수병이나 마셨습니다. 그런데 최고참이신 안토니어 형님이 장염으로 인해 그 맛있는 갈낙탕 국물도 못드시는 것을 보곤 너무 맛있다고 소리내어 떠들기가 무지 무지 미안했습니다. 어떻든 갈낙탕도 좋았고 낙지초무침도 기막혔습니다. 저절로 술이 땡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점심식사는 통상 30여분이면 끝나지만, 우리는 낙지요리를 안주삼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낮술을 거하게 하다보니 점심식사 시간이 한시간을 넘겼지요.
♣ 점심식사비가 솔찮게 나왔을 것 같은데, 인솔 총책이 알아서 계산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기에 다음 목적지가 압해도에서 배를 타고 매화도로 가는 것이기에 매화도를 꼭 가야한다고 빡빡우긴 그 책임이 있고 또한 이건 나로서는 회사업무차 가는 사적인 문제라서 점심식사 낙지 요리비용은 상기인이 내야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일 것 같아서 살짝 계산을 하고 얼른 문을 나섰습니다.
♣ 전라남도 영암군은 예로부터 쇠고기와 낙지가 유명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영암군 독천면 독천 우시장은 함평, 장흥과 함께 질 좋은 한우가 거래되는 최고의 우시장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또한 영암만 개펄에서는 나는 세발낙지도 전국적으로 유명했습니다.
♣ 이러한 지역적 특성에 맞게 낙지와 소갈비를 함께 요리해 먹는 것이 독천 갈낙탕입니다. 갈낙탕은 육수에 삶은 갈비를 앉히고 밤, 대추, 수삼 등 한약재를 얹어 한바탕 끓인 후 낙지를 넣어 살짝 익을 때 갈비와 함께 먹는 음식이지요. 하여간 지금까지 먹어본 낙지요리중에 최고였습니다.
♣ 점심식사를 마치고 해남식당을 나서는데, 그 식당 처마밑에는 제비새끼들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제비집에는 몇 마리의 새끼제비들이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울고 있었지요.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강남가는 제비를 이곳 독천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 독천 낙지마을 입구에는 온통 낙지마을을 상징하는 탑과 안내 게시물이 많았는데 그 내용들을 하나 하나 읽을 수 없어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아보았습니다.
영암의 낙지거리 상징탑 등의 전경
♣ 영암군 일대 영산강 하구는 우리나라 최대의 갯벌이자 세계적으로 희귀한 생명 자원의 보고였는데, 지금은 간척지 사업으로 그 넓은 갯벌은 논으로 변했고 낙지는 보기 힘들다고 합니다다. 그리고 독천 우시장도 사라져 예전의 명성은 이름만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 하지만 독천시장을 중심으로 수십여 개 낙지 음식점들이 밀집해 낙지 거리를 이루고 있어 호롱낙지와 갈낙탕 등을 맛볼 수 있지요. 낙지 거리는 학산면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현재는 30여 개의 음식점들이 성업 중이며 2010년 ‘음식 문화 개선 시범 거리’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 이곳에서는 쇠갈비와 낙지를 넣어 만든 갈낙탕 이외에도 연포탕과 낙지볶음, 낙지 무침, 산낙지, 낙지 구이 등 낙지 요리를 한 곳에서 맛볼 수 있으며, 포뮬러 원 코리아 그랑프리 개최(영암에 위치한 국제 자동차경주 대회장) 등으로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꾸준히 그 수효가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다음 목적지인 신안군 압해읍 매화리를 향하여...
♣ 점심식사를 마치고 난 후, 우리는 독천낙지거리 일대를 잠시 둘러보고 Am 12시 50분, 다음 목적지인 신안군 압해읍 매화도를 향했습니다. 점심식사를 잘 한 덕으로 기분도 상쾌했고 차도 쌩쌩거리면서 잘 달렸습니다.
내용이 길어서 4편은 여기서 총총 맺습니다.
제5편에서는 매화도로 가는 길에 목포의 임베드로 형제의 지인이 운영하는 전통식품점에서 그가 사전에 준비한 김치 1박스씩 선물로 받아들고 매화도로 갔던 이야기와 또한 매화도에 있는 임베드로 친구가 우리가 매화도로 올줄 알고 밤새워 낙지를 한바케스나 잡아서 우리에게 억지로 먹이던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고편 장면
임베드로 형제가 목포의 전통식품점에서 준비한 김치를 선물 받아 승합차에 싣고 있는 전경입니다.
매화도에서 각기 1마리 이상 산낙지를 이렇게 먹었습니다.
매화도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임베드로의 친구분 내외와 함께 기념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