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씨의 맛
내가 잘 알고 지내는 동료교수 한 분은 언제나 자기 부인의 건강 진단서를 가지고 다닌다. 그 부인은 또 남편의 진단서를 가지고 다닌다. 벌써 나이도50 중반이 넘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을 잡을 수 없다. 진단서의 내용은,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료교수는 부인의 진단서를 보여주면서 자기가 얼마나 괴로운지 아무도 모를 거라고 하소연한다. 부인은 남편의 진단서를 보이면서 눈물로 호소한다. 그러면서 서로 감사하고 헐뜯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처럼 긴장하고 싸우며 산 것이 15년도 넘는다고 한다.
남의 머리카락에 붙은 겨는 보아도 자신의 머리카락에 붙은 커다란 검부러기는 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 하기야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사람들을 볼 경우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저 여자는 어떻게 탤런트가 되었지? 입은 나오고 눈은 새우눈에다가 돼지코에다 잘도 생겨 먹었다." "저렇게 성깔있게 생기고도 가정생활이 원만할까?" 모두 자기자신은 보지 못하고 남만 헐뜯는다.
하루에 세 번 반성하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깊이 알 때 남의 장점을 많이 볼 수 있으며 그 때 비로소 대추씨의 맛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대추씨 물고 10리 간다는 말이 있다. 오래 오래 단맛이 나기 때문이다. 어디를 둘러보다도 삭막한 세상이다. 대추씨의 맛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자신을 갈고 닦지 않으면 안될 때라고 여겨진다. 돈과 권력의 힘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과 친교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번쩍번쩍하는 외제 승용차를 타고 고급 음식점에 가서 돈을 물쓰듯 하면서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또 높은 권력의 자리에 앉아서 아는 사람이 매우 어려운 처지에 당해서 호소하면 쉽게쉽게 해결해주고, 어떤 때는 직장 문제도 가볍게 해결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성서에 나오는 구절 하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도 어렵다"는 말이 있다. 어디 부자만 그렇겠는가?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이 말이 해당될 것이다. 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이 있다. 돈 많고 권력 많은 사람은 실상 근심 걱정이 떠날 날이 없다. 불교에 서는 촛불을 불어서 끄는 것을 열반이라고 한다. 마음의 온갖 잡념을 없애버린다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갈고 닦는 사람만이 대추씨의 맛같이 오래오래 가도 잘 변하지 않는 단맛을 지닐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대추씨 맛처럼 은은한 맛을 풍긴다면 우리의 삶도 한결 밝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