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에 앉으면 술잔을 권해 온다. 그러면 그걸 피하는 핑계를 이렇게 말한다. "한 모금만 넘겨도 길치가 되어 집을 못 찾아갑니다. 저는." 하면서 손사래 치고 양해를 구한다. 그러면서 좀더 구체적으로 그것도 화제랍시고 한다는 말이 이런 식이 된다. "한 모금하고 전철을 타면 틀림없이 앉은자리가 침실입니다. 그러면 필경 옆자리의 승객에게 민폐를 끼쳤을 텐데 진상(잠드 나)과 시비하기 싫으신 분의 호의(?) 탓으로 종점에서 기상합니다. 종점이라고 모든 승객을 일괄 몰아내시는 승무원 덕에 기상할 수 있지요. ㅠㅠ 다행히 막차가 아니라면 되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려 타고 귀가하게 됩니다만 그 친절하신 옆 승객의 똘레랑스가 원망스럽지요. 좀 까다로운 분을 만나 폭행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어깨를 탁 때려 주셨으면 내릴 곳을 놓지 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2호선이라면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서울을 몇 바퀴를 순회하는지 모를 무렵까지 숙면을 하고서야 기상합니다. 거기가 어딘지 확인하려면 한참 애를 먹지요. 그리고 거기서 내가 정작 내려야 할 역까지 가는 방법을 다시금 체크하면서 헤아려야 한다니까요." 하며 나 혼자 웃는다. "그럴 것이 걱정스러우면 택시를 타기도 하는데 그 택시에서도 알딸딸한 정신머리가 기사님에게 목적지를 말하면서 112동이라고 한다는 게 집호수인 305호를 305동이라고 불러준다니까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에 맡깁니다." 그리고 발언 마이크가 꺼지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계속한다. "집에 어찌어찌 찾아가면 왜 이렇게 늦었냐고 할망구의 지청구가 시작됩니다. 그러면 나는 거짓말 못하는 성미니까 정직하게 앞에 말한 그런 실수들을 고백합니다. 그러면 할망구의 명령제 몇호에 해당하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앞으로는 음주귀가금지령이지요. 그러면 제가 묻지 않을 수 없지요. 아니 음주금지인지 귀가 금지인지 모르겠는데 하고요. 그러면 둘 다랍니다. 음주도 않고 귀가도 못하면 우찌 되는 긴데? 하고 또 따집니다. 그러면 따진다고 한방 터집니다. 하이고 이러고 삽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도 내가 끝내주지 않거든요. 음주하면 귀가하지 말라는 뜻이라면 나는 그 명령 절대 환영이다. 음주하면 외박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거니까. 고맙소. 내 할멈! 이라고 한다. 그러면 할망구의 입이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않지요. ㅎㅎㅎㅎ(좌중은 아무도 웃어주지 않는데 혼자 웃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