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본을 목적 자체로 간주하는 자본주의를 가리켜서 “천민자본주의”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했다기보다는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도덕성을 외면한 천박한 정신을 비판한 것이다. 공정한 경쟁이나 정당한 보상이 아니라 가진 자는 자신이 가진 부를 바탕으로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가난한 자는, 대를 이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를 가진 그런 사회, 어떤 사람들은 적은 일을 하는데 많은 보상을 받고, 어떤 사람들은 뼈가 빠지도록 노동해도 살아가기 빠듯한 대가를 받아야만 하는 사회를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은 과연 살기 좋은 사회일까?
반면에 복지 정책이라는 것이 사람을 건강하고 의욕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놀면서 적게 받고 살지”를 선택하도록 유도하거나 일하는 즐거움을 모르게 만드는 그런 정책이라면 과연 올바른 복지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성장과 배분”이라는 양쪽 측면에는 모두 천박함이 숨어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나라가 나아가는 복지국가의 방향은 건강하고 옳은 것일까?
구약의 이스라엘 사회제도가 엿보이는 출애굽기 23장에서 우리는 안식일과 안식년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세우시고자 했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배려와 돌봄 제도를 우리는 배우게 된다. 물론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상 최상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진자들이 천박하게 인간과 동물과 환경을 대하지 않도록 사랑이라는 원칙에서 이 제도를 만들어 두셨다.
(출 23:10)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출 23:11)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출 23:12)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더 많은 수확을 위해서라면 사람이고 동물이고를 떠나서 지나치게 학대하고 닭장 속의 닭은 달걀을 빼먹을 수 있을 만큼 빼먹고는 폐기해 버리는 비열함이 21세기 세상의 모습인 데 반해, 모세 시대에 하나님은 한 국가로서 이스라엘을 세울 때 약자와 가지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철저한 배려를 원칙으로 사회가 돌아가도록 만드셨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안식년과 안식일은 여유로운 사람들이 즐기는 여가의 날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믿음으로 지키는 날이었으며 나눔과 감사의 시간으로 보내는 철저히 타인 배려의 시간이었다. 심지어 동식물과 같은 미물에게까지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 계명에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도 포함되어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23장에서는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고 표현하였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을 주인이 지킴으로 종들이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안식일은 섬기고 돌보고 베푸는 날이다. 이것을 모르고 바리새인들은 맨날 안식일을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문자에만 집착해서 무엇을 안 하는 무위의 날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객(나그네)이란 여행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회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정말 안식일이 필요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안식일에 주인이 일하면 종들은 반드시 일해야 하니 안식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철저히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날이었다. 예수님은 안식일 트집을 잡는 사람들에게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대답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주의 통치자요 주인으로서 안식일에도 일하시므로 안식하신다. 그래야 우리 인간들이 쉼을 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사랑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안식일이 내 몸 편하여지려고 지키는 이기적인 안식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고 배려하는 나눔과 감사의 날이 되게 하소서 군대에서 소방서에서 병원에서 안식하지도 못하고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수고로움에 하나님의 되갚아 주심을 기도드립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정욕을 위해 쓰지 않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