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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찬송 불러주신 우리 기드온 찬양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사실은 매주일, 매일 매 순간이 감사여야 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보내면서 우리가 잊었던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라고 하는 말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감사는 전하는 이와 그 감사를 받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줍니다. 감사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기도 하고, 감사는 서먹한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묘약이 되기도 합니다.
감사는 받은 은혜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기적이며, 또 감사는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가 이 감사 생활을 습관화하고 감사가 우리의 몸에 베게 될 때 우리 인생과 이 세상은 더 아름답게 되고 따뜻한 곳이 되고,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실은 이 본문 말씀은 앞에 두 절과 짝을 이룹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지요 하나님의 뜻이 뭡니까? 아주 복잡한 게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연구를 하고 성경을 깊이 파고들어야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것 그렇게 복잡한 거 아니라는 거예요.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감사하면서 사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예수 잘 믿는 거예요. 그렇다면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어떤 것인가?
첫째로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해야 합니다. 그래야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매 주일 여기까지 나왔어요.
어떤 하나님을 믿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걸 믿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 인생을 망가뜨리고 수렁으로 빠뜨리고 우리 인생을 복잡하게 하시는 잔인하고 괴팍한 하나님이 아니라 선 자체이시다. 하나님의 성품은 선하시다 그것을 믿는 거예요. 그리고 그가 이 세상을 향해서 또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을 향해서 가지시는 그 계획도 선하시다.
이 믿음이 분명하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향한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지금 그 과정 가운데 있다고 하는 믿음이 우리 속에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생로병사. 인생은 희로애락이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작품입니다. 기쁠 때도 있고 노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는 거예요. 사람이 태어나는 기쁨이 있다면 늙고 병들고 또 죽는 아픔도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쭉 잘 되기만 하는 사람 없습니다. 계속 어렵고 망하기만 하는 사람도 없어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힘들었다가 실패했다가 또 성공했다. 또 평탄한 길이 오기도 합니다. 그게 인생이에요.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었다고 해서 다 잘되는 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인생이 겪어야 되는 것을 우리는 다 겪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거예요.
어떤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 우리를 향하신 계획이 선하시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우리도 고난당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수많은 일들을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 가운데 선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그 가운데서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이루어져 간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성취되고 있다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는 거예요. 우리가 교회 나오면 섭리, 경륜 뭐 이런 특별한 전문 용어를 씁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 그걸 섭리라고 해요. 우리 눈에는 그저 우연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 그래서 보통 이건 우연이야. 또 일이 잘 되면 오늘 재수가 좋았어. 일이 어려우면 오늘 이번에는 재수가 나빴어 이렇게 보통은 표현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볼 때는 재수가 좋아서가 아니고 재수가 나빠서가 아니고 우연도 아니고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떤 계획이 이루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에요. 그걸 보는 것이 영안이 열렸다. 해안을 가졌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해안이 있어야 돼. 혜안이 뭐냐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눈이에요. 그냥 겉에 현상만 보고 울고 웃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본질이 무엇인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을 꿰돌아보는 눈이 있어야 돼요.
영안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는 눈입니다. 영안이 열렸다 그러면 환상 보고 어떤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만 영안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우리 이 역사와 우리 인생을 통해서 지금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는 눈이에요. 그 눈이 영안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해안과 영안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요. 좋은 일이 있을 때도 하나님이 지금 이런 일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이구나. 어려운 일이 내게 와도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고 계시구나 그러면 그 일에 쓰임 받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인생을 잘 알아요. 요셉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어요. 요셉이 원해서도 아닙니다. 그냥 아버지가 요셉을 특별하게 사랑한 거예요. 요셉의 잘못도 아니에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형들한테 미움받았어요. 억울하잖아요. 내가 뭐 사랑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특별히 아버지한테 무슨 백을 쓴 것도 아닌데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해 주시는 걸 어떡하란 말이야.
그런데 나머지 형들한테 미움받았어요.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정말 구세 일생으로 살아서 팔려갑니다. 노예가 됐어요. 거기서도 열심히 일을 합니다. 주인의 신뢰를 얻었어요. 모든 걸 맡겼어요. 자기 부인 외에는 아내 외에는 요셉은 끝까지 그 신의를 지켰어요. 얼마나 훌륭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그것 때문에 요셉은 종신 감옥에 들어갔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요셉에게 끊임없이 일어났어요.
17살부터 30살까지 13년 동안 요셉이 당한 일들은 부조리한 일 자체였습니다. 피 끓는 청년에게 이 13년은 너무나도 아까운 시간입니다. 미래를 준비하고 꿈을 펼쳐야 될 그 나이에 지금 억울한 일들이 계속되는 거예요.
그러나 요셉은 그 어떤 순간에도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다 말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 거예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또 그와 함께 계셔서 역사하신 거예요.
성경에 기록은 안 돼 있지만 그는 매일같이 자기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계없이 매일같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절망적인 상황이 올 때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무슨 뜻이 있으시겠죠? 하나님 선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믿습니다.그러자 그의 눈이 빛났습니다. 버디발이 자기 모든 것을 맡길 때는 감옥의 간수가 모든 것을 맡길 때는 그 얼굴과 눈을 보는 거예요. 그의 얼굴은 그의 눈빛은 노예의 얼굴 눈빛이 아니었어요. 노예는 희망이 없고 눈동자가 풀려 있고 왔다 갔다 갔다 갔다 하고 불안해가지고 또 비굴한 눈이 있어요. 생존해야 되니까. 그런데 요셉은 당당한 자유인의 눈빛을 가졌어요.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눈이 빛나는 겁니다. 얼굴이 빛나는 겁니다. 신부는 노예지만 그의 내면은 자유인이었어요. 그의 나이 30세에 전격 발탁되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자신과 가족과 이집트와 주변인들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됐어요.
사실 요셉도 그 13년 동안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딱 한 가지 붙들었다면 아브라함 자기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믿었던 그 하나님을 믿은 거예요.
하나님의 계획의 신실함을 붙들은 거예요. 그래서 그 순간에도 원망의 말을 내지 않고 자세를 흐트리고 넘어지지 않고 감사하며 희망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견딜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그렇게 됐어요. 총리가 됐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어요.
만약에 우리가 바꿔놓고 생각해서 요셉이 좋은 일 있을 때는 감사하고 우리처럼 막 이해가 안 되고 억울하고 도무지 납득이 안 될 때는 막 분노하고 머리를 막 벽에다 쳐박고 하나님이 이럴 수 있냐 내가 그렇게 믿었는데 내가 뭘 잘못했느냐 하면서 울고 불고 원망을 했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때마다 흔들렸다. 잘될 때야 감사하는 건 당연하지만 우리는 잘될 때도 감사 안 하잖아요. 다 내가 잘 된 줄 알고 그럴 때가 많잖아요.
근데 그건 뭐 당연한 거고 또 어려웠다고 막 그때 이렇게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어떻게 요셉이 되겠어요? 인생의 정점으로 하나님이 끌어올리셨을 때 자기의 과거를 들라면 얼마나 부끄러웠겠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웃기네 웃기는 인생이잖아요. 쪽팔리는 삶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그 계획대로 거기다 갖다 놨을 때 그 오는 과정에 조금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고 조금 힘들다고 시험 들고 막 나는 요즘 조금 어렵다고 조금 상처받았다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원래 안 믿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요즘 유튜브에 막 교회를 욕하는 그런 것들이 나와서 저는 또 유심히 이렇게 봅니다.
도대체 뭘 가지고 그렇게 하나 그랬더니 그 댓글에 보니까 어저께는 댓글에 보니까 그런 얘기가 나와 막 교회를 욕하니까 자기도 이제 나도 상처받았다고 그러면서 내가 7년 동안 드럼머로 드럼을 쳤는데 드럼을 드럼이 좀 낡아서 바꿔달라고 교회에 바꿔달라고 했더니 옆에서 드 같이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야 너는 니 돈으로 사라 헌금도 안 하는 주제에 이렇게 했다는 거예요.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실 인간적으로 열받잖아요. 그래도 열받고 말아야지 그래서 신앙을 버린 거야. 교회를 떠난 거예요. 물론 그렇게 말한 사람은 참 잘못했어요. 그런데 그런 걸로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날 정도였다면 그 사람은 애당초 가짜였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나중에 잘 됐을 때도 얼마나 쪽팔리는 일입니까?
하나님은 어느 날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을 어느 정점으로 이끄실 거예요. 그때 내 과거를 돌아보면서 부끄럽지 말아야 돼요. 그때 왜 그랬을까 그때도 이해는 안 되지만 하나님께 감사. 내가 이해는 안 되지만 하나님 감사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그 마음 가지고 있었다면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날 그때 우리의 그 기쁨은 배가 될 것입니다.
근데 그때 막 부끄러워가지고 어쩔 줄 몰라 그러면 되겠어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 아멘 하나님의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선하시다. 그걸 믿어야 된다니까. 그리고 힘들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부조리하게 느껴져도 그때도 감사하십시오. 그래야 어느 날 쪽팔리지 않는 인생이 되는 거예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라는 거 어떤 은혜입니까?
용서의 은혜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그 죄악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단번에 용서하셨어요.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다. 도말 태워 없애버리는 거예요. 문서 내 죄의 문서를 태워 없애버렸어 하나는 기억도 안 해. 구원의 은혜, 영생의 은혜, 부활의 은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은혜 모든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요.
이것을 하나님은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셨어요.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 인류의 모든 목숨을 다 바쳐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과는 비교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 하셨어요. 인간이 걸어가는 가장 낮은 곳에서 험한 일을 다 겪으셨어요.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 그걸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 영생 용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주신 거예요. 값으로 측정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냐?
내가 예수 믿었다는 이유로 이 은혜 받았다는 이유로 내 인생이 고난당하고 어려움 당하다가 쫄딱 망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은혜. 여러분 예수 믿고 잘 돼야만 감사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 믿었다는 그 자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아주신 그 영원한 축복.
이 세상의 것은 일시적이잖아요. 누군가는 누구든지 그걸 영원히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어요.
잠시 몇 년 그 축복을 유지할 뿐이에요. 어느 날 다 그냥 새가 둥지를 날아가듯이 내가 축복이라고 여겼던 것이 날아가요. 언젠가는 죽어요. 저는 이번에 제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가가지고 열흘 동안 매일 세 번씩 중환자실에 다니면서 있으면서 아주 아버지하고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집을 떠났어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원래 잘 아들하고 말을 안 하는 스타일이라서 집에 있을 때도 별로 말을 안 했어요. 근데 지금 열흘 동안이 내가 아버지하고 가장 오래 정말 최고의 시간을 보낸 거예요. 아버지야 무의식 의식이 왔다 갔다 하시는 그런 상태지만 근데 제가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인생이라는 건 이런 거고 굉장히 깊은 생각을 했어요. 고민도 되고 나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누워야 될 텐데. 야 내가 저 자리에 누울 때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게 20년 20년 30년밖에 안 남은 거예요.
따져보면 금방 여기 있던 사람이 다 빼고 죽었다 이거야. 계속 계속 사람들이 죽어나가 인생은 죽는 거구나. 아무것도 아니다 말이야. 그게 뭐 대단한 것인 것처럼 우리가 붙들고 있지만 그런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도 이 생명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근데 그 그 생명 그 소중한 생명조차도 일시적인 거지만 그것조차도 잃는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이거야. 그러니까 예수 믿었다는 이유로 맞아 죽어도 감사할 수 있어야 돼. 내 그거 잠시 살다가 가는 이 육신의 인생. 그게 인간에게는 최고지만 그거 하고 그거 수만 개라도 바꿀 수가 없어요.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우리가 받은 은혜는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의 피로 건져주신 거예요. 죽으면 영원히 지옥불에서 고통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영원한 죽음이 앞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영생의 길을 열어주셨어요.
그게 예수 믿는 거예요. 복잡할 거 없어요. 예수 믿는 게 뭐냐 예수 믿는 축복이 뭐냐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예수의 십자가로 그거 하나 붙드는 거예요. 그거보다 더 큰 게 어디 있어요? 수조 원의 재산이 있으면 뭐예요? 영생을 받지 못하면 근데 우리는 영생을 얻어서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래서 크리스천은 그냥 내가 예수 믿는다는 자체도 늘 감사해야 돼. 죽는 순간에도 감사해야 돼. 제정 러시아의 한 문학 청년이 사형수가 되었어요. 1849년 러시아의 반체제 성향의 지성인들과 비밀리에 모임을 가졌다는 이유로 페트라셰프스키 서클에 참여했어요. 사형수가 됐어요. 시베리아 겨울 차가운 요새에서 눈이 가려진 채 사형 집행을 기다렸어요. 몇 분 남았는지 몇 초 남았는지 몰라요. 사형 집행인이 방아쇠를 당기면 끝나는 인생이에요. 젊은 나이에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이런 게 인생인가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체념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에요.
얼마나 절망스럽겠어 총알이 날아오기 바로 일보 직전에 니콜라이 1세의 전령이 왔어요.
사형을 중지하라.
구사일생으로 이 청년은 살았습니다. 시베리아에서 유배되어 4년을 지내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죄는 무엇이며 벌은 무엇이며 구원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아주 깊이 묵상한 거예요. 실존적으로 그리고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도스토옙스키 그 청년이 그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 넣는 사건이에요. 그냥 육신의 목숨이 죽어야 되는데 탁 살은 그 사건 하나. 그것도 엄청난 일 아닙니까? 예수 믿었다고 하는 것은 이보다 더 엄청난 사건이잖아요. 그냥 육신의 목숨이 아니라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한 점의 희망도 없던 우리에게 예수 십자가로 영원히 사는 길이 열렸다는 거예요.
그게 예수 믿는 거예요. 그냥 주일날 교회 나오는 게 아니에요. 와서 봉사 좀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운명이 달라진 거야. 영원한 운명이 달라진 거예요. 이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박해당하고 어려움 당하고 지금도 1년에 10만 명이 크리천이라는 이유로 순교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인간적으로 볼 때 그러나 불행한 일이 아니에요. 예수라고 하는 예수 안에서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순교조차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된다. 전혀 희망이라고는 한 점도 없던 우리에게 용서와 구원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십자가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십자가로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됐어요.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지옥 문 앞에서 서성거려야 되는 우리가 천국을 향해서 가는 순례자가 됐어요. 인생이 완전히 바뀐 거예요. 이게 감사해야 될 일이에요.
요즘 감사할 게 뭐가 있어요? 막 인생이 이렇게 꼬이는데 이렇게 말하면 가짜 그리스도인 그래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어요. 왜 예수님 때문에 그 은혜가 너무 크다 이런 말씀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 인생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존재인 우리가 얼마나 웃기냐면 이런 엄청난 은혜를 받고 막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막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는데 자꾸만 그런 식으로 쳐다봤다고 저 집사님이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해가지고 마음이 상하고 막 막 교회 나오기 싫고 원망과 불평이 나온다면 사실은 약간 코미디입니다.
근데 이게 인간이 살다 보면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그게 인간의 연약함인데 그때마다 생각해야 돼. 이런 큰 은혜를 받은 우리가 짜잔한 일로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그 인생은 쪼쫀한 인생이 되는 거예요. 배은망덕한 인생 배은 망덕 이건 일반 사회에서도 가장 안 좋은 덕목 중에 하나예요.
배은 망덕 은혜를 입었는데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기만 합니까? 나중에 가서 등에 칼 꽂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은 다 그래도 너는 그러지 말아야 돼. 니가 그런 깜짝 놀랄 만한 사람들이 있어요. 가끔 그걸 금수보다 보다다 그래요. 일반 사회에서도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런 큰 은혜를 받았는데 뭐 조금 마음 상했다고 신앙을 버리고 교회 떠나고 또 마음 상했다고 나가 다니면서 또 하나님 욕하고 말이야 그게 뭐냐면 하나님 등에 칼꽂았다는 거예요.
그게 배은망덕입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크리스천은요. 한 번 이 은혜를 진짜 받은 사람은 어떠한 상황이 와도 하나님의 은혜를 져버리면 안 돼요. 사람 관계에서 살다 보면 미웠다 좋았다 부부 간에도 미웠다 좋았다 그래요. 안 그래요. 다 그래요. 부모 형제 간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그럴 수는 있어요. 그래도 거기서도 조심해야 돼요. 은혜를 배반하면 안 돼.
그래야 사람이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어떤 상황에서 실수로라도 배반하는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쓸모없는 인생이 되는 거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감사만 있을 뿐입니다.
제가 너무 과도하게 얘기하는 겁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감사만 있을 뿐이에요. 너무 큰 은혜를 받은 거잖아요. 원망과 불평은 쓰레기통에 오늘 집어넣고 쓰레기통을 막 본드로 못 나오도록 이렇게 붙여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부터 감사함 그리우면 이웃과의 관계도 감사할 수 있어요.
모든 상황에서 감사해야 됩니다. 범사에 모든 상황 한국에서 살 때는 한국에서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돼요.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 한국이라는 땅에서 살게 하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프랑스 땅에 유학 왔고 여기 직장생활 왔으면 프랑스 땅에 와서 살게 하신 거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아야 이게 범사의 감사입니다.
근데 거꾸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이 해일 조선입니다. 좋기만 하더구먼 뭘 해 조선입니까? 먹을 거 풍부하고 물론 선진국 우리나라 선진국이 됐잖아요. 선진국이 된다는 게 다 좋은 건 아니야 틈새가 적어요. 다 틈틈이 이렇게 조밀하게 짜여져 있기 때문에 내가 끼어들어가기가 어려워 경쟁을 많이 해야 돼요. 스트레스가 돼요. 그렇지 않으려면 어디 가서 살면 되냐 하면 아프리카 가면 돼요.
아프리카 가면 틈이 많아요. 막 샘을 파도 엄청난 사업을 할 수 있어요. 뭐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그러나 거기서 다른 걸 못 누려 문화 혜택을 별로 못 누려 그러나 거기서는 수많은 기회가 또 창출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걸 감수하고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한국에서 이렇게 살게 된 거. 거기 살 때는 그냥 감사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한국 사람으로 설교한 거 감사합니다.
얼마나 또 빠릅니까? 막 주문하면 저녁에 주문하면 그날 새벽에 오는 나라 화장실이 얼마나 깨끗한지 요즘은 전 세계에 그런 나라가 없어요. 화장실 깨끗한 뭐 하여튼 뭐 좋은 게 너무 많아. 물론 나쁜 것도 있어요. 근데 자꾸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런 거 생각하면 열받잖아요. 짜증 나고 좋은 거 생각하고 감사하고
그리고 프랑스에 왔으면 프랑스 생활을 감사해야 돼. 하나님 원래 와서 1년은 굉장히 힘들어요. 타 문화에 적응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문화 충격이 있어요.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이 프랑스 파리에 와 있다는 거 얼마나 감사합니까? 저는 벌써 이제 30년째 돼가고 있어요. 너무 감사한 거예요.
충남 서천군 시천면 신흥리 전구석에서 살다가 비행기 타고 나는 비행기는 신혼여행 갈 때 처음으로 탔어요. 제주도로 해외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여기도 나와서 사역까지 하게 된 거예요. 얼마나 감사하지? 오는 내내 안 자고 밖에만 쳐다봤어 이런 날이 오다니 파리에 와가지고 파리를 탁 도는데 막 어느 분이 차로 태워주는데 꽁꼬드를 나갔는데 이게 천국이구나 막 파노라마로 쫙 펼쳐지는데 이야 입을 다물 수가 없어요.
그 감동이 지금도 있어요. 물론 1~2년은 어렵기는 해요.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여기 보내신 것을 후회하지 않았어요. 근데 어떤 사람은 파리에 와가지고 오자마자 살 때 못 댄다고 그러. 물론 여기가 안 좋은 것도 있어요. 개똥 많은 거 확실합니다. 그것도 한 10년 20년 살다 보면요. 눈 감고 가도 나는 1년 내내 안 밟아요. 핸드폰 보고 가도 똥은 피해가 내가 똥이 피하는 괜찮아요. 밟아도 괜찮아. 한 번쯤은 치우기는 해야 되겠더구만 한국에 의하면 그래도 그거 말고도 얼마나 많습니까? 보기 좋은 게 그냥 사방이 문화와 역사 유적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어디 있어요 남들은 평생에 한 번 못 오고 죽는 사람이 인류의 한 90%는 넘을 거예요.
근데 여기서 먹고 자고 공부하고 직장생활하고 언제든지 틈나면 세느강을 걸을 수 있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춥고
그러나 여름에 더우면 여기는 에어컨이 없어도 아예 에어컨이 없을 때는 좀 참고 이분들은 잘 참잖아요. 위통 확 벗고 햇빛 봐도 얼마나 좋아요. 그럴 때 또 양산 써 와가지고 그러지 말고 햇빛 받아 감사합니다. 파리에서 이렇게 또 햇빛을 보게 하시니 그러고 겨울에 비 오고 바람 불면요. 정말 날씨도 지긋지긋하다 이러지 말고 얼마나 감사해요. 그냥 그날 바바리 코트 하나 딱 입고 우산은 쓰지 마요. 나는 우산 안 씁니다. 비가 어지간히 오지 않으면 딱 그러고 모자 하나 쓰고 비 맞으면서 버슬비 맞으면서 딱 하면 영화의 주인공 되는 거야. 내가 남의 영화 별거 볼 거 없어요. 난 사극 외에는 안 봐. 내가 영화의 주인공인데 뭘 감사하잖아요. 프랑스 생활 이런 좋은 환경을 물려주신 프랑스인들에게 얼마나 감사해요. 이런 데 살 수 있다는 거 그게 범사에 감사입니다.
건강할 때는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고 아플 때도 감사해야 돼요. 막 아프고 무슨 저가 이번에 갔다가 혈압이 막 190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그래 그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게 아니라 내가 죽겠구나 그 생각이 들어가지고 그 참 나뻐. 자식은 나빠 아버지 중환자실에 있는데 밑에서 또 지기 살겠다고 응급실 가가지고 혈압 떨어뜨린 약을 놓고 있어. 그러고는 내가 집에 들어와서 그날 밤새 잠을 안 자면서 많은 뒤척거리며 생각을 했어요.
인생이나 내가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나 나도 한 20년 후에는 저 자리에 갈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잊고 혈압 하나 올라간 걸로요. 좀 비겁하긴 하지만 암에 걸린 것도 아니고 그런데 혈압 하나 올라간 걸로 생각을 많이 하더라고. 그러니까 내가 철학자가 되고 신학자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건강할 때는 그런 생각 못 합니다. 근데 위기가 오고 병에 걸리고 그럴 때는 진짜 인생의 본질을 생각하게 돼 감사한 일입니다. 그것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죽는 것보다 인생이 뭔가를 고민하고 방향을 전환해보고 다시 계획해 보고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해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모든 일이 평안할 때도 감사하지만, 주님을 위해서 일하고 헌신하는데 안아주지 않고 오해받고 억울한 일 당하고 박해받고 할 때도 감사합니다.
왜 참 신기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일을 많이 했다고 꼭 상급이 쌓이는 게 아니야.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 너희 상이 큼이라 그냥 봉사하고 헌신한 정도 가지고는 조금씩 쌓이는데, 그렇게 하다가 예수님 때문에 억울하게 당하면 그냥 크레딧이 확 올라가버리는 거예요.
그거 생각하면 기뻐하지 않겠어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라는 거예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어요. 복음 전하다가 빌립보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날 밤에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무슨 기도하고 찬송했을까 그 내용이 뭘까 주님이시 원래 이런 거였습니까? 그렇게 기도했을까요? 아니 원래 원래 이런 거예요. 이렇게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데 잡혀서 얻어맞고 감옥에 갇혀서 지금 착고에 처해 있잖아요. 하나님 억울해요. 저들을 진멸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가둔 놈들 가끔 그런 기도하고 싶을 때가 있죠.
막 억울함은 하나님이 좀 손 좀 봐주세요. 벼락이라도 때려주옵소서.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을 거예요. 주님이시여 우리를 주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사용하시니 감사합니다. 사용하신 것도 감사한데 그것 때문에 오늘 잡혀서 얻어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욕 먹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속으로는 그랬을 거예요. 하늘에 상급이 팍팍 쌓이는군요. 그러면서 감사하는 거예요. 그게 그게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우리의 가치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감옥이 열렸어요. 차고가 풀어졌어요. 그리고 간수의 가족이 구원받았어요. 감사와 찬양 때문에 일어난 기적이에요. 그리고 관원이 그 지방의 관원이 사도 바울을 찾아와서 사과를 했어요. 왜냐하면 로마인인데 로마 시민권자인데 재판도 안 하고 가두면 불법입니다. 그래지고 깜짝 놀래가지고 와서 잘못했다고 하면서 환송해 줬어요.
이런 기적이 어디 있어요? 감사가 일으킨 기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하는 인생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돼. 하나님과 그의 섭리를 믿고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은혜가 크니까 감사해야 됩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감사가 돼요. 좋은 일 있을 때야 누구든지 하죠. 근데 어려운 일 있을 때도 감사해야 됩니다. 그때 감사가 기적의 문을 열고 그때 감사가 천국의 문을 엽니다. 감사는 쉽지 않아요. 특히 우리는 이 원망 불평이 몸에 배 있어요.
근데 어떻게 감사를 하겠어요? 억지로 해야 됩니다. 이성으로 이해가지만 이게 습관이 안 되고 감정이 안 따라가면 이게 안 되면 그냥 자연스럽게 안 돼요.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하는 거야.
또 하고 또 하고 언제까지 습관이 돼서 자연스러울 때까지 그게 영성 훈련이에요.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감사가 체질화되고 그러면 감사하는 인생에게 놀라운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