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새로우면서 예스러울 수가 있을까?
전남 제1회 국제수묵화비엔날레 확정을 축하하며
예향 전남의 전통과 위상에 걸 맞는 국제행사가 내년 10월에 목포권과 진도 운림산방권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에 앞서 제1회 국제수묵화비엔날레가 정부로부터 승인되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올 해는 프레 비엔날레 성격으로 다음 달인 10월 13일에 5개국 200여 명의 작가들이 참가 600여점이 전시된다. 그 규모만으로도 가히 국제적임이 분명하다. 이 행사에 진도군이 함께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현재 진도군은 소전미술관을 비롯해 장전미술관과 남도전통미술관 그리고 유명 진도출신 작가들이 선뜻 기증한 작품들로 백포미술관 옥산미술관에 이어 금봉미술관 전정미술관 옥전미술관이 곧 들어설 예정이다. 이 밖에도 나절로미술관 현대미술관 운림산방 내 남도전통미술관이 자리해 진도군 전체가 자연미술관의 풍취를 자아내게 한다.
소치 허련 선생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남종문인화 정신을 바탕으로 굵은 줄기를 뻗어와 근현대에서는 국전을 비롯하여, 수백 명이 공신력 있는 전국공모전에서 대상은 물론 특선 작가를 배출한 진도는 예향 중의 예향임이 분명하다. 예술의 길은 스스로 선택한 고난의 길이라 하지만 지금 사회적으로 제대로 예우와 기반을 마련하는데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림 그리는 것을 기꺼이 업으로 삼아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화가들의 개인전시회도 예전과 달리 모두 성황을 이루지는 못한다. 산업사회에서 IT정보사회로 진입하면서 본격 예술인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들고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젊은 희곡 작가는 굶주림에 지쳐 아사나 다름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미술선생, 국어강사, 예술단원 등 또 다른 수입원이 없으면 예술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준엄한 현실을 힘겹게 보듬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국제수묵화비엔날레는 일말의 서광으로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이미 진도군은 예총 진도지부와 함께 국제교류전을 가져오고 있다. 작가들이 국제적인 안목을 키우고 새로운 기법과 창의성을 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 많은 부분에서 미흡함이 남아있다. 방고(倣古)를 생각해 본다. 본디 뜻은 ‘옛것을 본뜸’이라 하였다.
그런데 자꾸 옛것을 그대로 따르려는 습성은 오히려 연암이 지적하였듯이 “자기의 말과 뜻으로 하지 않고 옛것을 모방하여 짓는다고 해서 하여 옛것과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꼭 같게 하면 훌륭한 작품이 되는가?”라고 묻는다.
이어 “거울에 비추듯 하면 될까 싶어도 거울 속의 나는 언제나 왼손잡이다“ 라며 한계를 분명하게 밝힌다. 이와 같이 아무리 옛것을 흉내 내 봐도 결국 비슷하기는 해도 ‘사(似)’일 뿐 종내는 옛것은 될 수가 없다‘ 라는 지론으로 매듭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래 동안 소치와 왕희지와 의재 그리고 소전의 치열하고도 고아한 틀 속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거의 1백여 년의 기간 동안 전국적인 경향이었지만 특히나 그 본원이나 다름없는 전남에서는 폐쇄적인 습성과 의식이 전인들에 비해 오히려 퇴행하고 시대조류가 인간 민중 지역의 편견 폄시,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욕구를 담는 위험하면서 준엄한 시대사명을 담은 작업들이 광주 전남에서 활발하게 펼쳐졌다. 그 주역들 중 동인들이 진도에 자리하고 있다.
세월호는 그 배의 무게만큼 진도에 큰 짐이 되었다. 진도문인협회는 2014년부터 적극적으로 안산문인협회와 만나 인간으로서, 시대를 기록하고자 하는 문학인으로서 깊은 공유를 갖고 교류를 넘어서 우리시대의 모순과 적폐를 거두고 정당한 역사기록은 물론 위로와 공존의 사명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역할을 계속해가고 있다.
다시 어디로 다시 내가 딛는 땅은 어디인가
그림과 그림은 내가 그리는 창조적인 ‘단 하나의 세상’을 찾고 새기는 도저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는 불순하다. 감히 종교에 맞서자는 것이냐? 왈부. 그런데 요즘은 그 창신, 법고창신을 제대로 발현시키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는 자괴감을 갖는 분들도 있다. 많은 작가들이 정심을 다해 분투를 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는 성과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더욱 가속도를 높여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세상에 다가와 있다.
처음 사진기가 발명되었을 때 초상화를 전업으로 하는 많은 화가들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럽의 인상파는 오히려 새로운 의식으로 자연을 해석하고 빛의 찬란한 향연을 펼치게 되었다. 사진에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과 개성을 포착해 전형을 구축하는 능력이 더욱 배가 되었다.
작년부터 충격적으로 알파고 에 굴복한 바둑기사들의 전례가 화가에게 적용되기에 앞서 화가들이 다시 한 단계 도약을 이뤄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래서 올해의 프레비엔날레 전시회와 내년의 제1회 국제수묵화비엔날레는 오늘의 작가들에게 많은 과제와 시사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다시 설파한다. “겉모습은 하나도 같지 않은데 담긴 뜻은 조금의 차이가 없는” 작품을 높이 사야 한다는 것이다. 옛 사람의 정신은 저만치 놓아두고 겉모습만 그대로 본뜨려 한다. 즉 여기서 연암은 심사(心似)와 형사(形似)라는 두 개념을 이끌어냈다. 바로 겉모습은 전혀 다른데 마음가짐은 진실 되어 있는 것이 심사라고 한다. 그리하여 심사는 끝내 참 진(眞)에 이른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우면서 예스러울 수가 있을까? 어찌하면 본받지 않으면서 본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새것이 옛것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심동모이(心同貌異)의 방법을 유지기는 <사통(史通)>에서 제시했다고 한다.
추사 선생의 ‘세한도’는 “더도 말고 더 보탤 능력도 없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경지를 청나라의 최고 문화도시 연경 서화계에서 요즘으로 보면 비엔날레 연서를 줄줄이 받게 하였다. 금봉 박행보 선생은 작년 고희집의 제목으로 “강산을 훔쳐보고 시(詩)를 건졌다” 고 했다. 의재 선생에게서 춘설차의 향을 흠뻑 먹으로 갈아 흔들릴수록 더 꼿꼿한 대(竹)의 허심으로 강산은 물론 호남의 역사를 당당하게 훔쳤다.
화론은 궁극적으로 ‘무(無)로 축약된다.’고 했다. 한 대가의 정신세계가 맥놀이를 하는 고려 종소리처럼 가슴 깊이 울려온다. 앞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소년시절에 처음 시를 쓰면서 “작은 앞산이 큰 산을 가린다.”고 표현했다. 앞선 작은 세상을 지울 때 큰 세상과 만날 수 있다는 이치를 얼릉 깨달은 것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이제 ‘국제수묵화비엔날레’라는 가을 하늘 같은 세상으로 유유히 웅비하는 대붕이 비엔날레를 기다린다.(박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