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3권 3-9 3 은일隱逸 숨어서 사는 일 9 습지산거習之山居 습지가 산에 살기에 4首
1
야초유화각자춘野草幽花各自春 들풀이며 그윽한 꽃 제각기 봄이 되었는데
십년행각안중진十年行脚眼中塵 십년 동안 행각 끝에 눈[眼] 속에 먼지만 꼈네.
일성제조파한몽一聲啼鳥破閑夢 한 소리 우는 새에 한가로운 꿈 깨니
정정광음뇌쇄인鼎鼎光陰惱殺人 성큼성큼 가는 光陰 사람을 뇌쇄하네.
들풀 우거진 골짜기 꽃피는 봄 왔는데
십년 행각 모두 부질없었네.
새 울음 한소리에 꿈에서 깨어나니
빠르게 가는 세월 나를 슬프게 하네.
►정정鼎鼎
① 행동이 느린 모양. 몸가짐이 단정하지 못한 모양.
소소이즉야騷騷爾則野 상사喪事에 너무 빠르게 서둘러 소란스러우면 상스럽고
정정이즉소인鼎鼎爾則小人 길사吉事에 너무 느리게 하면 소인이니라.
/<예기禮記 단궁상檀弓上>
② 세월이 빠른 모양.
정정백년여전속鼎鼎百年如電速 빨리 가는 백년이 번개 같이 빠르구나.
/<육유陸游 우야유회雨夜有懷>
연자광음래정정燕子光陰來鼎鼎 제비 돌아오는 세월은 빠르게 다가왔고
행화소식로수수杏花消息老垂垂 살구꽃 핀다는 소식 무르익었네.
/<박충원朴忠元 상춘傷春>
►광음光陰 태양과 달. 시간이나 때. 빠른 세월.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한 치 되는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보내지 말라.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연못의 봄풀 꿈이 깨기도 전에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층계 앞의 오동잎은 이미 가을을 알리는구나.
/<주희朱熹 우성偶成>
천지자天地者 만물지역려萬物之逆旅 천지라는 것은 만물의 여관이요.
광음자光陰者 백대지과객百代之過客 세월은 영원한 시간 속의 나그네이다.
/이백李白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뇌쇄惱殺 애가 타도록 몹시 괴롭힘.
특히 여인이 아름다운 용모로 남자를 매혹하는 일. 殺는 조사임.
일면홍장뇌쇄인一面紅粧惱殺人 짙은 화장을 한 얼굴 사람 애타게 하는구나.
위곡화무뢰韋曲花無賴 위곡의 꽃이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니
가가뇌쇄인家家惱殺人 집집마다에서 사람을 애타게 희롱하는구나.
/<두보杜甫 봉배정부마위곡奉陪鄭駙馬韋曲> 二首
2
수음예예락한정樹陰翳翳落閑庭 나무 그림자 어둑어둑 한가한 뜰에 떨어지는데
와간봉만사면청臥看峯巒四面青 누워서 뫼와 산 사면의 푸르름 보고 있네.
개시산중무열뇌箇是山中無熱惱 그것이 그 산중의 뜨거운 번뇌 없애는 것
석하천향자랭랭石罅泉響自冷冷 돌 틈의 샘 소리는 절로 졸졸 흐르네.
►예예翳翳 어둡다. 어두컴컴하다. 명확하지 않다. 은회隱晦하다.
자욱이 낀 모양. 해질 녘의 어둑어둑한 모양.
예예월침무翳翳月沈霧 달은 안개에 잠겨 어둑어둑하고
휘휘성근루輝輝星近樓 별은 누대에 가까워 밝디 밝네./<두보杜甫 불매不寐>
예예자연미원근翳翳紫煙迷遠近 자욱한 자줏빛 연기 원근을 분별 못 하게 하고
이리홍일조고저離離紅日照高低 번성하는 붉은 해는 높고 낮은 데를 다 비추네.
/<이제현李齊賢 달존행화운達尊杏花韻>
●예예翳翳/김시습金時習
예예운차일翳翳雲遮日 어둑하게 구름이 해를 가리니
단단설복송團團雪覆松 동그란 흰 눈이 소나무를 덮었구나
원산첨경호遠山尖更好 먼 산은 뾰족하여 더욱 좋고
유흥담환농幽興淡還濃 그윽한 흥취 담담하다 짙어지고
대객배수민對客排愁悶 손님을 대하고는 근심과 우울 덜고
과시가탕흉課詩可盪胸 시 짓기를 일과 삼아 가슴을 씻어낸다
외인여문아外人如問我 세상 사람들 나에게 묻는다면
천지일소용天地一疏慵 천지간에 한 사람 게으름뱅이라 하리오
►‘틈 하罅’ 틈, 틈새. 결함缺陷. 실수失手
3
일림홍엽경추상一林紅葉警秋霜 숲속 가득 붉은 잎새 가을 서리 경계하는데
안점청공철작행鴈點清空綴作行 기러기 떼 맑은 하늘에 줄줄이 줄지었네.
최시선심릉정처最是禪心凌靜處 참선 마음 그 무엇보다 깊은 靜寂에 있거니
소간봉정백운망笑看峯頂白雲忙 산꼭대기 흰 구름, 바쁜 모양을 웃으며 보네.
4
지장포단토돌온紙帳蒲團土堗溫 종이 휘장 창포 방석 흙 구들이 따뜻한데
남창홍일난매혼南窓紅日暖梅魂 남쪽 창 붉은 해에 매화의 넋이 따뜻해라.
도인수벽룡다병道人手劈龍茶餅 도인 손수 龍茶 내어 덩어리를 쪼개더니
자설청란주소준煮雪清瀾注小樽 눈 녹은 맑은 물에 달여 작은 단지에 붓네.
►‘굴뚝 돌堗’ 굴뚝.부엌 窓. 구들
►용차龍茶 상등차上等茶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