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방학 땐 친구들끼리 해운대 갈 거여요~\'
한창 눈 쥐어뜯으며 공부만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판국인
고등학교 2학년 아들녀석의 입에서 나온 소리이다.
지금 네 상황에서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냐고 발끈 화를 냈다.
\'그래도 갈거여~\'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대꾸다.
\'그래?
걸어서 갈거냐?
해운대가 뭐 옆 동네 이름이니?\'
돈 없이도 네가 해운대를 갈 수있겠냐는 심뽀로 비아냥댔다.
\'걱정마.
알바해서 돈 벌어서 갈 거여요.\'
전혀 물러설 기미가 안 보인다.
친구 다섯이서 일주일 되는 여름방학 중에 2박 3일을 함께 보내기로 했단다.
놀러 갈 비용으로 삐쩍 말라깽이 주제에 노가다를 해서 돈을 벌겠단다.
어떤 말로도 도저히 포기할 성 싶질 않다.
차라리 엄마를 도와주면 비용을 주마고 해도 막무가내다.
\'아빠 알면 못 가게 할텐데?\'
\'그래도 갈거야. 내가 간다는데 뭐...\'
별 일이 있어도 기어코 가겠다는 의지이다.
아예 내 배째라 식이다.
아이 둘을 키워보니 어찌 이리도 성격이 다른지 모르겠다.
십여 년 전 큰애는 급우들 모두 놀러 갈 적에
아빠가 반대할 게 뻔하다며 아예 말도 안 꺼냈다는데 둘째는 막무가내이다.
저러다 날이 닥치면 슬그머니 포기하고 말겠지.
애들끼리 여행 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도 그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녀석을 보니 장난이 아닌 것 같다.
걱정이 돼서 정색하고 물었다.
\'잠은 어디서 잘 건데?\'
텐트를 칠 거란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여동생이 걱정을 크게 한다.
그 복잡한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야영은 무슨 야영이냐고...
대체나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 해운대에
어린애들끼리 가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고민 끝에 잠자리라도 안심할 곳에서 재워야 겠단 생각이 들어
호텔을 하는 부산 친구를 떠올렸다.
\'엄마 친구네 호텔 가서 잘래?\'
지나가는 투로 말을 했는데 녀석은 자랑삼아 친구들에게 모두 공지를 했댄다.
잠 자는 비용도 안 들테고 엄마 친구가 회장이라고 자랑도 할 겸...
그 엄마에 그 아들이다...쯔쯔...
하는 수없이 친구에게 전회로 부탁을 했다.
알았다며 흔쾌히 대답을 하는 친구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어느새 예정일이 되니 드디어 아이는 떠났다.
광고지 돌리는 알바로 모은 돈 5만원과 내게 6만원을 타서 비용으로 쓴다며.
그 중 3만원은 날더러 제 통장에서 찾으란다.
그러면 결국 엄만 삼만 원만 주신 셈이라며.
나름대로 자신의 노력으로 놀러 갈 비용을 마련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가 보다.
밤중에 귀가 한 남편이 애가 안 보이니 어디갔느냐 묻는 다.
얼렁뚱땅 친구집에 놀러갔다고 둘러 댔다.
녀석이 돌아오면 다시는 외박하지 못하게 해야겠단 남편의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큰일 났네...오늘 밤에도 안 올텐데...
아이가 떠나기 전
남편이 알면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니 둘만의 암호를 정하기로 했다.
통화하다 보면 들통이 날 터이니
호텔에 무사히 도착하면 친구랑 열심히 공부할테니 염려말라는 문자만 보내라고 .
밤 뉴스를 보니 이백만 인파가 해수욕장에 몰렸단다...
남편한테 속 사정은 말도 못하고
걱정스런 마음에 혼자 끙끙대며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집 전화가 울린다.
남편이 깰까 봐 부랴부랴 전화를 받았다.
아들녀석이다.
몇시인데 이 눈치코치도 없는 녀석이 아빠 계시는 줄도 모르고 전화를 해...
\'응, 뭔 일이냐...\'
잔뜩 목소리를 낯춰 속삭이듯 물었다.
\'엄마, 친구한테 미리 전화 안했어?\'
헉...뭔가 착오가 생긴 모양이다.
내가 몇 시에 도착한다는 말은 안 한 것 같다.
남편이 듣고 있을테니 뭐라 묻지도 설명도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자니
아들녀석은 \'엄마, 왜 말을 안해~.\'라며 독촉이다.
이런...지지리 눈치도 없는 녀석...
뭐라 말도 못하고 그냥 전화를 끊었다.
곧이어 다시 울리는 전화벨 소리.
\'엄마. 회장님이 안 계신가 봐\'
이를 어째...친구가 바빠서 직원들에게 미리 언질을 주지 못한 모양이네...
\'응, 알았다.
놀다 와라~\'
밑도 끝도 없이 놀다 오라고 우문현답식의 대답을 하는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신경질이 밴 말투로 \'전화 안 했냐구\'한다.
조금만 기다려봐라 엄마가 친구에게 연락해 볼께라던가
전화번호를 줄테니 전화해보라거나 해야만 할텐데
남편이 들을테니 말도 못하고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 신세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으며 또 전화가 올까봐
수화기를 슬며시 내려놓는데 무슨 전화냐고 남편이 묻는다.
당황하여 아들녀석이 놀다 온다고 전화했다고 둘러대는 내 가슴은 두근 반 세근 반이다.
다행히도 아침 일찍 나가야한다는 남편의 외출을 기다리는 사십 분간이
어찌나 길기만 한지...
얼마나 애가 타고 있을까...
그냥 찜질방에서 자라고 할것을...
아들녀석의 찌푸린 인상이 눈에 선해 걱정이 되어 죽을 지경이다.
친구들한테 폼 구기고 갈 곳 없어 아침부터 방황하고 있을까...
아니면, 나름대로 어떤 방안을 구했을까...
이제 와서 어쩌랴...
이것도 세상을 배우는 한 방법이 될테니 기다려보지 뭐.
남편이 나가고 현관문 닫히기가 무섭게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냐고 물으니 호텔 직원들이 회장인 친구에게 연락하여 방에 들어와 있단다.
짐 정리하고 나가서 아침밥 먹을 거란다.
히유~~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폰을 닫으려는데 신호음이 들린다.
아들이 보낸 문자다.
\'엄마, 친구랑 열심히 공부하다 갈테니 아무 염려 마세용~\'
어제 약속한 둘만의 암호.
통화하기 십 분 전에 보낸 문자네...
졸지에 아들과 나는 공범이 되고 말았다...
세상 속으로 처음 나선 아이에게 과연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까...
그나저나 녀석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내가 더 긴장하게 생겼으니...
이젠 너마저도 내 품에서 벗어나는가 보다...
너는 좋겠다...얼마나 신이 났을꼬...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안심이 되더라고요.그래도 어차피 폼나게 좀더 신경쓰시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저는 그냥 공부보다는 추억을 만들어라 놀아라 하고 방목하며 쑥쑥 자라는 아들만 바라봐도 배가부르답니다.공부를 못하니 ㅎㅎㅎ 욕심도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