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는 착하다
이철 글 | 학이사어린이 | 2023년 11월 10일
작가 이철: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2007년 [애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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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시골버스는 착하다
늦어도 늦은 게 아니게
뛰어오는 봄나물을
얼른 받아안는다
시골버스는 사람이 버스를 위해 있는지 버스가 사람을 위해 있는지 두말없이 보여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달려오고, 조금 늦더라도 기다린다. 그 다정한 배려를 본 이철 시인은 시골버스야말로 착하다고 말한다.
사람을 위해 달리는 착한 시골버스가 있는 시인의 세계에는 다양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혓바닥으로 새끼를 핥으며 햇살이 하는 말을 전해 주는 어미 개(「햇강아지」), ‘와! 눈이다’ 하는 소리 들으려고 졸린 눈 비벼 가며 맨발로 먼길 걸어서 온 첫눈(「보람」)과 아무도 몰래 울고 싶어 노랑꽃밭에 찾아온 노랑나비(「노랑눈물」)까지, 너도나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아무도 없는 아파트 놀이터
그네가 왔다 갔다 한다
좀 전에 누가 앉았다 간 걸까
곰 인형 안고
시소에 앉아
그네를 지켜보기로 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37쪽, ‘그네의 마음’
흔들리는 그네가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며 기다리는 아이는 그렇게 그네의 마음을 느낀다. 전학 가는 그 애를 눈 속에 담아 생각날 때마다 눈을 감기로 다짐하기도 한다(「전학 가는 그 애가 내 손을 잡던 순간」). 까미는 이제 없지만 냉장고에 붙은 ‘까미에게 주면 안 되는 음식 10가지’는 아무도 떼지 않는다(「식구」). 엄마, 아빠와 동생, 할머니와 작은이모도 동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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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구리네 가훈
이철
아버지는 지난여름
언덕길을 오르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만
그날도 달이 뜰 때까지
말똥 굴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사람들이 코를 막고 지나가도
절대 기죽지 말라고
보름달 아래
어깨를 펴고
둥글게 둥글게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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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강아지
이철
햇살이
강아지 꼬리를
쓰다듬고 있다
착하기도 하지
어미 개는
혓바닥으로
새끼를 핥으며
햇살이 하는 말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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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눈물
이철
노랑꽃밭에
노랑나비가
찾아왔다
아무도 몰래
울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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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장작
이철
타다 만 장작에 물을 끼얹자
푸우-
한숨 소리 난다
불장난하지 마!
아빠는 또 야단이지만
나는 그 소리 너무 좋아
아끼듯 조금씩 물을 뿌렸다
나 대신 누구를 비웃는 듯
물이 닿는 장작의 피부에서
피식피식
웃음소리가 났다
연거푸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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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멧돼지에게
이철
할머니는
여름방학 때마다
"올해는 멧돼지 몰래 곡마를 심었당께"
멧돼지야,
이번 한 번만
우리 할머니 얘기 못 들은 걸로 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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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슈퍼
이철
개미분식
개미세차
개미옷수선
개미열쇠
아빠와 엄마가 만나
함께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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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편하게 읽히는 동시들이네요.
그런데, '웃는 장작'에서 '나 대신 누구를 비웃는 듯'이라는 표현이 저는 좀 와 닿지 않네요.
왜 비웃었다고 했을까, 룰론 소리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비웃다는 표현이 좀 신경이 쓰이네요.
감상,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