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한 시
梅花 옛 등걸에 春節이 돌아오니
예 피던 가지에 피염직도 하다마는
春雪이 亂紛紛하니 필똥 말똥 하여라.
시란 있는 그대로 각자 느끼는 바대로 감상하면 그만인 게지요. 한용운의 “님은 갔읍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에서 굳이 님을 조국이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시는 뭔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법한 묘한 분위기 아닙니까? 아니나 다를까 당대부터 숱한 해석과 추측이 난무합니다. 그중 가장 그럴듯한 소설(?) 하나 소개합니다.
평양감사로 부임한 유춘색이라는 이가 기생인 매화(梅花)를 총애했는데, 나중에 춘설(春雪)이란 영계(?)와 가까이하자 이를 원망하며 지었다는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이상한 점은 유춘색이라는 사람이 과연 평양감사로 부임했었는지 하는 점입니다. 더욱이 사대부 남자에게 春色이란 이름은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듭니다. 시에 나오는 春節을 굳이 사람 이름과 꿰맞추다 보니 春色이란 궁색한 이름이 등장한 건 아닌지 하는 혐의가 짙습니다(이 시에는 3명의 이름 매화, 춘절(춘색) 그리고 춘설이 나온다고 하지요).
미스테리한 여인
아마 기생으로 梅花라는 이름이 가장 많지 않을까요. 梅窓이나 梅香, 月梅처럼 매화 梅 자가 붙은 것까지 합하면 그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을 겁니다. 매화라는 기생 이름도 세종조 이래 각 고을 마다 없는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선비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가장 사랑한 꽃이 바로 매화이기 때문이겠지요. 위 시를 지었다는 평양 기생이라는 매화는 황해도 곡산(谷山)이 고향으로 영조 때 여인입니다 (평양은 谷山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에 色鄕이라는 대처 평양에 차출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럼 매화의 진짜 러브스토리를 여기에 팍 줄여서 올려 볼까요.
황해도 내륙 谷山의 기방(妓房)에 절세 가인가 있었는데 이름이 梅花입니다. 근방은 물론 먼 곳에서도 그녀의 미색과 명성을 듣고 찾아와 권세나 재력으로 치근덕거렸으나 눈길도 주지 않지요. 그녀가 17세 되던 해에 황해도 관찰사 어윤겸(魚允謙)이 곡산 땅을 순시차 들릅니다. 당시 어윤겸의 나이는 칠십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를 본 순간 “이런 벽지에 저런 천하절색이 있는가” 하고 눈을 의심했다네요. 각설하고, 매화는 어윤겸이 비록 나이는 많지만 인품에 끌려 그에게 몸을 허락하고 소실이 되어 해주(海州) 감영으로 함께 떠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곡산에서 기별이 왔는데 노모가 병이 깊어 열흘을 넘기기 어려우니 죽기 전에 한번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급히 집에 도착한 매화는 어머니의 건강한 모습에 깜짝 놀랍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매화가 어윤겸을 따라 해주 감영에 올라간 직후 곡산에 신임사또 홍시유(洪時裕)가 부임합니다. 전부터 오매불망 매화를 만나보려고 했으나 이미 어윤겸을 따라간 후였지요. 그래도 언젠가는 한번 만나 보겠지 하고 매화의 어머니를 물심양면 극진히 보살펴 줍니다. 이에 감동한 어머니가 거짓편지를 써서 매화를 내려오게 한 것이지요. 어쨌든 어머니 강권으로 매화는 홍시유를 만납니다. 처음 만난 그에겐 건장한 젊음이 온몸에서 풍겼으며 늙은 어감사와는 전혀 다른 풍모를 보았겠지요. 이렇게 빠져든 매화는 보름 동안 꿈같은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나 떠날 수밖에 없는 몸이 아닌가. 해주 감영으로 돌아온 매화는 상사병이 깊어져 몸져누웠다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속옷바람으로 거리를 헤매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윤겸은 매화를 친정 곡산으로 돌려 보내지요.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사련은 오래가지 못하지요. 홍시유와 함께 지낸지 두달 후 어윤겸이 홍시유에게 감영으로 출두하라고 명령합니다. 홍시유는 병신옥사(丙申獄死)에 연루되어 참형을 당하고 그의 부인 이씨도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합니다. 매화는 사랑하던 홍시유를 그의 선영에 자기 손으로 묻고는 걷잡을 수 없는 허탈감에 무덤가에서 눈물로 읊조립니다. “매화 옛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필 듯도 하다만은, 봄눈이 펄펄 날리니 필동말동 하려라.” 다음날 눈덮인 무덤가에서 매화의 싸늘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데, 재가열녀(再嫁烈女)가 이를 두고 한 말이라나..
그냥가기 서운해서 한시 한자락,
一樹楂枒鐵幹梅(일수사야철간매)
매화나무 옛 등걸 쇠처럼 단단한 줄기에
犯寒年例東風回(범한년례동풍회)
추위를 떨치고 예처럼 봄바람 돌아오니
舊開花想又開着(구개화상우개착)
옛 피던 가지에 다시 피엄직도 하다만
春雪紛紛開未開(춘설분분개미개)
봄눈이 펄펄 날리니 필동말동 하여라.
청구영언에 실려있는 梅花의 시조를 신위(申緯)가 한시로 옮긴 것인데, 오히려 원시의 맛이 떨어지는 느낌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