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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학에서 가장 큰 부문을 차지했던 장르였다. 18 - 19세기의 독일 문학에서 희곡을 뺀다면 독일문학은 허망하게 될것이다. 헤싱에서 시작된 근대희곡은 괴테, 실러, 클라이스트, 헵벨, 그릴파르쩌, 하우프트만, 주우데르만, 베데킨트, 호프만슈탈등등 당장에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만도 그들이 산문보다도 희곡이란 문학형식에 흥미를 더 가졌던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희곡의 전통은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연극이 지닌 기업적인 난관으로 쇄퇴해 가고 있는 인상을 받기는 하나, 독일 문학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연극이 국민교화의 수단으로서 여전히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브레히트 한 사람만으로도 그가 현대의 세계연극에 끼친 영향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정도로 컸었다. 그의 이른바 서사무대라는 극형식과 소외효과에 대해서는 오늘날 우리 한국에서까지도 논의되고 또한 창작희곡에서도 다각도로 이용되고 있지만, 독일의 현대희곡작가들도 예외없이 브레히트에게서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독일의 현대희곡은 이 브레히트와 쭈크마이어로써 대표되는데 쭈쿠마이어는 보다 더 전통적인 형식과 토착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이른바 민중극에 있어서 성공을 본 사람이었다.
이 두 작가는 전후에도 새로운 작품으로서 서독의 연극에 기여한 공이 크기는 하지만 역시 세대로 볼 때는 지나간 과거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전후에 비로소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새로운 평가를 받게된 희곡작가로는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와 막스. 프리쉬를 들어야 될것이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은 근래 우리 극단에 의해서 비교적 많이 상연이 되었기 때문에 연극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그 작가와 작품세계에 대해서 벌써 많은 이해와 평가가 있을 것으로 안다. 그러나 판국에서 확고한 위치를 갖게 되었다고 보겠다.
뒤렌마트는 1921년 1월 5일에 스위스의 베른 근방인 크놀핑겐에서 출생했으니까 올해 갓 쉰이된 작가이고 보면 그의 활동은 지금부터 한창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여러가지 점에서 현대 독일희곡의 쌍벽이라고 할수 있는 뒤렌마트와 막스.프리쉬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두 사람이 다 스위스인들이며 프리쉬가 보다 더 코스모폴라탄적인 작품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서로의 작품상항도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이 두 사람을 결부시킬 수 있는 요소는 그들이 같은 시대 사람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외국의 현대극작가들의 실험과 그 성과에 대해서 예민한 감각으로써 그것을 소화시키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개인적으로, 그리고 유우머를 무시하고 인간존재의 여러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막스.프리쉬와는 달리, 뒤렌마트는 소박하고 거칠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따뜻한 분위기가 더욱 우리의 마음을 끈다. 그는 우리에게는 극작가로서만 알려져 있으나 실은 미스테리의 작가로서도 명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의 이런 미스테리들도 가혹하고 냉혹한 범죄세계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이런 인간미를 잊지않고 있어서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것 같다. 그외 희곡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통적인 무대형식을 파괴하고 해학적이며 카바레이트적인 요소를 연극에 도입하여 새로 표현을 시도한 점이라고 보겠다. 그가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는 상술한바 있는 브레히트를 필두로 하여 미국의 소온턴.와일더의 연극에 감명을 받았고 그의 베케트나 딜런.토마스는 같은 시대 사람으로서 시대적인 문제에 대해서 배우는 바가 컸었다. 그의 작품의 내용을 보면 대개가 시대비판적인 것으로서 연극형식을 통하여 그 시대상을 희화적으로 다루고 있는것이 특색인데 사실은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경향은 현대연극에 있어서의 공통적인 요소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의 연극은 현대의 다른 작가들이 대부분 그런것과 같이 위기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프리쉬와는 정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즉 프리쉬에 있어서는 개체의 존재와 그 생성이 문제로서 등장하고 있지만, 뒤렌마트에 있어서는 보다 더 포괄적인 문제, 즉 사회나 집단이 그 중심 테에마가 되고 있다. 개체는 현대에 있어서는 자기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하여 이미 자기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그이 연극에는 본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고 볼수 있고, 순수한 비극적인 사건이나 완결된 인간의 운명 따위도 찾아볼 수 없는것이 특색이다. 존재한다면, 그리고 무슨 사건이 일어났다며 그것은 개체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다. 그러나 과거의 연극에 있어서와 같이 그 세계는 질서의 세계로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객관적인 것으로서만 나타나고 그 세계는 한 인간보다도 우위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세계, 그것은 곧 무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어마어마한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지만 그렇다고 굴복할 필요는 없는 수수께끼 같은 재화로서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뒤렌마트는 모든 이상주의적이고 또한 실존적인 비극에 앞서서 전체적인 세계라는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의 위대성이나 혹은 희극성, 우매, 의의 따위도 이러한 전체의 위대한 유극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세계극장으로서의 무대라고도 할수있다. 이렇게 볼 때 아방가르디스트인 뒤렌마트는 세계의 다양성을 무대 위에다 풍부하게 표현하려고 하였던 바로크의 연극의 카테고리를 기초로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희곡은 너무나도 풍성한 착상이 주어진 질서의 범위를 넘어서서 결론을 내기가 어려운 경지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연극은 현대의 무정부주의적인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듯도 하고, 낭만주의와 비엔나의 민중극을 넘어서서 바로크와 중세의 비유적인 벨트테어터의 전통으로 되돌아 간듯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 벨트테렁터는 과거의 그것에서 찾아 볼 수 있었던 창조의 질서에 대한 신앙심이나 교화를 위한 비유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대문명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하고 있어서 이 혼돈된 세계를 이 그로테스크하게 처참하고 수수께끼 같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질서있는 상연상의 규칙 따위는 현대적인 실험적 요소로서, 파괴되고 세련된 요소가 있는가 하면 한계를 넘어선 기법도 사용되고, 순간적인 아이디어에서 나온 값싼 위트 같은것도 마구 뿌려지고 있다. 뒤렘나트에 의하면 이러한 혼돈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연극은 다만 패러디적인 희극, 그로테스크한 요소를 가진 실극만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데 이런 그로테스크한 실극의 어느 순간에 가서 현실의 비극이 노정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연극은 대체로 희비극의 성격을 띄게 마련이다.
여기 "오늘의 세계문학"을 위해서 번역을 시도한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은 그의 작품중에서도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지고 상연된 작품으로서, 특히 미국에서는 "The Visit"으로서 알려져 있다. 외관상으로는 순전한 비유처럼 보이는, 그것도 마치 전후의 독일이 마아셜플랜으로 부흥하는 과정을 비유극으로서 다루고 잇는듯 보이지만, 그는 이 작품의 후기에서 말하기를 그러한 해석을 거부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중부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서 작자도 이 작중 인물과 조금도 거리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작자가 그런 일을 당해도 다른 행동을 하리라는 데는 전혀 자신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이야기 이상의 것은 논의될 필요도 없고 연출로써 첨가될 필요도 없다 ……. 나는 인간들을 묘사하고 있고, 결코 꼭둑각시를 표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한 사건을 그리려고 하는것이며 비유가 아니다. 하나의 세계를 전개하고자 하였고 결코 모랄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 연극이란 나로서 볼때는 무대의 가능성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며, 어떤 특정한 양식의 테두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중에서 귈렌시민들이 나무로 분장하고 나오는 것은 초현실적인 수법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그 숲속에서 일어나는, 좀 보기에 딱한 사람의 장면, 즉 한 년로한 남자, 년로한 여자에 대한 접근을 시적으로 무대라는 영역속에 집어넣고 견딜 수 있게 만들려는데 그 의미가 있다. 나는 극장과 배우에 대해서 내 심중에 존재하는 신뢰에서 희곡을 쓴다. 배우가 인간을 연출하는데는 많은것이 필요없다. 다만 적당한 대본이 필요할 뿐이다. 이것은 연극의 외피와 같은 것으로서 희곡작가는 그 외피를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 작가는 언어 자체에 매달려서는 안되며 언어가 부여하는 어떤것, 즉 사상이나 행동에 집착해야 한다.
언어 그 자체, 양식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딜리탠리뿐이다. 그리하여 배우의 사명은 이 작가가 제공한 언어를 가지고 새로운 노력을 해서 예술이 그속에서 자연적으로 우러나오게 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가 제시한 전경만을 올바르게 상연하면 배경은 저절로 나타나게 될것이다. 나는 전위파에도 들지 않는다. 물론 나도 예술에 대한 이론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좋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내 예술이론을 내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적으로 그것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며, 오히려 형식의지가 부족하고 약간 어리둥절한 자연아로서 행세하는 편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내 작품을 통속극의 방향으로 연출하고, 나를 일종의 의식적인 네스트로이(비엔나 민중극의 대표적 작가)로 취급하면 최대의 성공을 거둘 것이다. 내가 제시한 아이디어에 머물고 심각성을 버려야 한다. 막이 내리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변화에 주의하라. 자동차가 나오는 장면도 소박하게 상연할 것이다. 가장 좋기로는 상연용으로 필요한 부분을 조립하는 것이다. …….클레어. 짜하나시안은 정의를 표현하는 것이며 마아셜 플랜이나 계시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 노부인은 있는 그대로의 여자다. 그 세계 제1의 부로서 그 여자는 그리이스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며, 마치 운명의 여신처럼 절대적이고 잔인하다. 그 여자는 그것을 즐길 수가 있다. 그래서 유우머가 있다. 그 여자는 인간에 대해서 상품처럼 거리를 가지고 있고 자신에 대해서까지도 거리를 가지고 있다. 기묘한 우아, 악의적인 매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적인 질서의 테두리 밖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화석이 되거나 우상이 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는것, 고된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 여자는 시적인 션상이며 그 수행원도 고자들까지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재현하는데 있어서 사실주의적으로 무취미하게, 고자의 음성으로 할것이 아니라 비현실적으로 동화처럼 조용하게 유령처럼 하여야 헌다. 클레어.짜하나시안이 냉정한 태도를 취하게 되자 옛 애인인 일시가 주인공으로 바뀐다. 그는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희생이 되며 생활 속에서 모든 것이 말살되었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없고 단순한 남자다. 그러나 비로소 공포와 경악을 통해서 최고의 개성적인 것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죄를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정의를 체험하게 되고, 자기의 죽음을 통해서 위대해지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위대한 동시에 무의미하다. 주인공들과 더불어 귈렌시민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모두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이다. 그들은 악하게만 그릴 수는 없다. 그들은 처음에는 노부인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심했지만 차차 빚을 지게 된다. 그러나 일씨를 죽이려는 의도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며 그저 경솔하고 모든 것이 곧 잘되리라는 허망한 희망에서 한 짓이다. 제2막은 그렇게 상연되어야 한다. 페터씨네 창고의 장면에서 방향이 전환된다. 숙명은 그 이상 회피할 수 없다. 그때부터 귈렌 시민은 서서히 살인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끝까지 인간적인 약점에서 모든것이 잘 되리라는 희망을 걸고 있다. 전 시민이 학교교사처럼 점점 유혹에 빠져들어가는데 이 점이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빈곤은 너무나도 혹독하고, 유혹은 커서, 약한 인간들은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하여 악의에 찬 상연이 되어서는 안되며, 분노가 아니라, 비애와 유우머가 뒤섞인 인간적인 상연이 되어야 한다. 그런것이 비극으로 끝나는 이 희곡에 있어서 가장 해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동물적인 진지성이기 때문이다 ……."
등장인물
(방문자)
클레어: 짜하나시안(친가의 성은 베쉬) 억만장자(아르메니아 석유회사)
남편7
남편8: 그 여자의 남편들
남편9
집사
토비: 검을 씹는 버릇
토비
코비: 장님들
노비
(피 방문자)
일
일의 아내
일의 아들
일의 딸
시장
본당신부
교사
의사
경찰관
첫째시민
둘째시민
셋째시민
넷째시민
화가 장소: 귈렌이란 어느 소도시
첫째 여인
둘째 여인 시대: 현대
미스 루이제
(그외 인물)
역장: 제2막 후에 휴게 시간
역객주임
차장
집달리
(성가신 인물들)
신문기자1
신문기자2
아나운서
카메라맨
제 1 막
막이 오르기 전에 역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이윽고 (귈렌)이라고 적은 현판.
배경에 암시되고 있는 소도시의 이름이 분명한데 그 도시는 폐허가 되고 파괴돼 버렸다. 역사 역시 황폐하였고, 상연되는 나라에 따라 목책을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 벽에는 반쯤 찢어진 기차 시각표가 붙어 있었다. 녹쓴 전철 장치(출입금지)의 푯말이 있는문, 그리고 한가운데는 초라한 역전통 그것도 암시만 되어 있을 뿐이다. 좌측으로 자그마한 건물이 한채 있는데, 아무런 장치도 없고 슬레이트 지붕이다. 창도 없는 담벼락에는 찢어진 포스터들이 보인다.
왼쪽에는 (숙녀용) 오른쪽에는 (신사용)이라는 판자가 보인다. 이 모든 것이 따가운 가을 햇볕을 흠뻑 받고 있다. 그 소 건물 앞 쪽에는 긴 벤치가 있고 그곳에 네명의 남자가 앉아 있다. 다른 네명과 똑같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남루한 차림의 다섯번째 남자가 붉은색으로 투시화를 그리고 있는데 (환영 클라라)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행렬용이 분명하다. 굉음을 내고 퍽퍽거리며 지나가는 급행 열차의 요란한 소리.
역사 앞에 서는 역장이 경례를 붙이고 섰다. 벤치에 앉은 남자들은 머리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림으로써 스치고 지나가는 급행 열차를 뒤쫓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첫째시민: 함부르크와 나폴리간의 "구드른호"로군 그래.
둘째시민: 11시 27분에는 베니스와 스톡홀름간의 "돌진하는 롤란트호"가 올걸세.
셋째시민: 지나가는 기차나 바라보는 것이 우리한테 남아있는 유일한 재미가 되었어.
넷째시민: 5년 전만 해도 "돌진하는 롤란트호"와 "구드른호"가 이 귈렌에도 섰건만. 그뿐인가 "외교관호"와 "로렐라이호"까지도 섰었지. 이름없는 급행열차는 모조리 섰었지.
첫째시민: 암, 세계적으로 이름난 기차들이었지.
둘째시민: 이젠 완행열차도 서지 않을 지경이 되었으니, 카피겐에서 오는 두개의 열차와 칼버 시에서 오는 1시 13분차가 고작이 되어 버렸지.
셋째시민: 쑥밭이 돼 버렸어.
넷째시민: 바그너 공장도 폭삭했고.
첫째시민: 복크만도 파산했고.
둘째시민: 폴라쯔 안 데어 존네휴테도 망해 버렸고.
셋째시민: 실업자 구호 기관의 신세나 지는 인생이 되었지. 별수 있나.
넷째시민: 꿀꿀이 죽이나 얻어먹고 말일세.
첫째시민: 그게 어디 인생인가?
둘째시민: 그러다 시들어 가는거지.
셋째시민: 그러다 뻗는거지.
넷째시민: 이 소도시 전체가 그 지경이 아닌가. (종소리)
둘째시민: 억만장자 부인이 꼭 나타나야 할 때가 됐어. 칼버시에는 양로원을 세웠다고 하더군.
셋째시민: 카피겐에는 탁아소를 세웠고, 수도에단 기념 교회를 건립했다지 않아. 침트라라고 하는 자연주의파의 환장이를 시켜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던데, 돈이 있으니 안되는 일이 어디겠나. 아르메니아 석유 회사도 그 여자의 소유고, 서부 철도 회사, 북부 방송 회사와 홍콩의 환락가가 다 그여자의 소유라더군.
(기차가 지나가는 요란한 소리, 역장이 경례를 붙인다. 그 시민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머리를 돌리면서 기차를 바라본다.)
둘째시민: (외교관호)군.
셋째시민: 그래도 옛날엔 우리도 문화도시라고 했었지.
둘째시민: 전국에서 제일가는 도시중의 하나였지 뭔가.
첫째시민 : 전 유럽 안에서도 그랬었지.
넷째시민: 괴에테도 이곳에서 묵어간 일이 있었지. 황금사도정이 바로 그 집이거든.
셋째시민: 브라암스는 여기서 사중주곡을 작곡했지. (종소리)
둘째시민: 베르톨트 슈바르쯔는 화약을 발명했고 말이야.
화가: 그리고 나로 말하면 미술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왔는데, 지금 이 꼴이 뭐람? 플래카아드나 그리고 있다니! (요란한 기차소리, 막 기차에서 뛰어내린 듯한 차장이 왼쪽에 나타난다.)
차장: (길게 목청을 빼면서) 귈렌!
첫째시민 : 카피겐에서 오는 완행 열차로군 그래! (승객 한사람이 차에서 내려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들의 곁을 지나 "신사용"이라고 표지가 붙은 문으로 사라진다.)
둘째시민: 집달리 아닌가.
셋째시민: 시청을 차압하러 왔다네.
넷째시민: 우린 정치적으로도 쑥밭이 돼버렸단 말일세.
역장: (커다란 표지판을 쳐들고) 출발. (시내에서 시장, 교사, 본당 신부와 65세 가량된 남자 일이 등장한다. 모두 초라한 옷차림)
시장: 그 귀하신 손님은 1시 13분의 완행 열차로 칼버시로부터 오실 겁니다.
교사: 혼성 합창단과 청년단이 합창을 하도록 하죠.
본당신부: 방화용 종을 치도록 해야겠군요. 그건 아직 잡혀먹질 않았으니까요.
시장: 시청 광장에선 시의 악대를 연주시키고 체육 연맹은 억만장자 부인한테 경의를 표시하는 의미에서 피라밋을 만들도록 합시다. 그리고 식사는 황금사도정에서 하기로 하지요. 하지만 저녁에 대성당과 시청을 조명으로 밝히는 것은 재정상 불가능하니 유감천만이군요.
집달리: 안녕하십니까? 시장님. 정말 반갑군요.
시장: 집달관 크루쯔씨, 도대체 웬일로 여길 오셨소?
집달리: 그건 시장님이 더 잘 아실 텐데요. 전 지금 거창한 임무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한번 시 전체를 저당하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시장: 다 낡아빠진 타자기 외에는 시청 안에서 아무것도 찾아 낼 게 없을 걸 그래.
집달리: 귈렌 시의 향토 박물관을 시장님은 감쪽같이 잊고 계시군요.
시장: 벌써 3년전에 미국에 팔아먹은 걸 모르는군. 시의 금고는 빈털털이요. 누가 한푼이라도 세금을 내야 말이지.
집달리: 조사해 봐야 될 문제로군요. 나라는 번창해 가고 있는데 플라쯔 안 데어 존넨휴테를 가진 귈렌이 하필 파산지경이 이르다니 말이 됩니까?
시장: 우리 자신도 지금 경제적인 수수께끼에 직면하고 있단 말이오.
첫째시민: 모든 게 프리데리슨의 음모의 탓이지.
둘째시민: 아니 유태인의 농간일세.
셋째시민: 고리 대금업자들이 뒤에서 노리고 있는거야.
넷째시민: 국제 공산당이 조종을 하고 있다니까요. (종소리)
집달리: 찾아보면 무엇이든 나오거든요. 제 눈은 새매 같단 말씀야. 어디 시의 금고나 한번 뒤져 보기로 할까요. (퇴장)
시장: 억만장자 부인이 다녀간 후에 털리는 것보다 지금 털리는 게 훨씬 우리한텐 유리하지. (화가는 플래카아드를 끝냈다.)
일: 이건 안되겠군요. 이 글귀는 너무 친밀한 감이 드는군요. (환영 클레어 짜하나시안) 이라고 해야 되겠습니다.
첫째시민: 하지만 클라라가 아닌가요?
둘째시민: 플라라 베쉬지.
셋째시민: 이곳에서 장성했잖아.
넷째시민: 그 여자의 부친은 토건업자였어.
화가: 그러면 (환영, 클레어 짜하나시안)이라고 뒷면에다 쓰면 되겠군요. 그래야 그 억만장자 부인께서 감동을 받으시게 되면 언제라도 앞쪽을 돌려댈 수 있을 테니까요.
둘째시민: "뵈로지아너호"가 지나가는군. 쮜리히 - 함부르크간의 열찰세. (급행 열차가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간다.)
셋째시민: 늘 정각에 지나가거든. 저 열차를 보고 시간을 맞춰도 될 지경이지.
넷째시민: 아니 여지껏 시계를 가진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시장: 여러분! 억만장자 부인은 우리들의 유일한 희망이십니다.
본당신부: 하느님 말고는 그렇지요.
시장: 그렇습니다. 하느님 말고는 말입니다.
교사: 하지만 하느님이 돈을 줘야 말이지요.
시장: 일씨, 당신은 그 부인과 친한 사이였으니 만사는 당신한테 달려 있습니다.
본당신부: 당신들은 그때 갈라지셨지요. 어렴풋이 얘기만을 들었지만 ……. 혹시 당신의 신부인 나한테 고해할건 없으시오?
일: 저희들은 둘도 없는 친구였지요. 젊고 열렬했어요. 여러분, 저도 45년 전에는 미남이었습니다. 그리고 클라라는 ……. 전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 그 여자는 페터씨네 어두운 창고 속에서 늘 저를 반겨 주었고 화사하게 웃는 얼굴이었지요. 콘라쯔바일러 숲속에서 맨발로 이끼와 나뭇잎을 밟으며 걷곤 했던 일이 눈에 선합니다. 바람에 나부끼던 붉은 머리, 나긋나긋하고 어린 가지처럼 날씬한 몸매, 그 곱살한 모습은 지독하게 예쁘게 생긴 마녀와도 같았습니다. 살다 보니 헤어지게 되었지만요. 늘 그렇지만 살다 보면 그렇게 되는거지요.
시장: 그런데 황금사 도정에서의 식사 시에 할 짤막한 연설을 위해서 짜하나시안 부인에 대한 한두가지 자세한 사실을 알았으면 하는데 (그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낸다.)
교사: 옛날 학적부를 뒤져 봤습니다. 클라라 베쉬의 성격은 유감이지만, 정말 유감천만이지만 엉망이더군요. 품행도 역시 그렇고, 다만 식물 과목과 동물 과목에서 만은 양이 나와 있더군요.
시장: (적어 넣으면서) 됐어. 식물과 동물이 양이라, 그거 잘됐군.
일: 그 점이 문제라면 제가 시장님을 도와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클라라는 정의를 사랑했습니다. 확실합니다. 한번은 부랑자가 잡혀 가는 것을 보고 그 여자는 돌을 던졌지요.
시장: 정의에 대한 사랑이라, 나쁘지 않군. 언제나 효과 만점이지. 그러나 그 순경에 대한 얘기만은 숨기는게 좋겠군.
일: 그 여자는 또한 자비스러 웠읍지요.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기가 일쑤였고, 어떤 가난한 과부 댁을 위해서 감자도 훔쳐 냈으니까요.
시장: 자비심이라. 이건 내가 꼭 언급해야 될 일이군. 제일 중요한 대목이오. 그 부인의 부친이 지은 건물 같은 것을 기억하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그럼 연설이 빛이 날텐데 말이오.
모두 함께: 한 사람도 없군요. (시장은 수첩을 접는다.)
시장: 나로서는 이젠 준비가 다 된 셈인데 ……. 그 나머지 일은 일씨가 해 줘야 되겠어요.
일: 알겠어요. 짜하나시안 부인이 기백만 정도를 내놔야 되겠단 말씀이지요?
시장: 기백만이라고요! 거 참 좋은 말씀이오.
교사: 탁아소 정도로는 소용도 없어요.
시장: 친애하는 일씨, 선생은 벌써 전부터 이 귈렌에서는 가장 존경을 받는 인물이셨습니다. 본인은 봄에는 물러나겠습니다. 그래서 야당과 접촉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선생을 본인의 후임자로 천거하는데 합의를 보았습니다.
일: 아니, 시장님.
교사: 제가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 여러분,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저는 우선 클라라에게 우리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서 얘기를 할까 합니다.
본당신부: 하지만 아주 조심해서 하세요. 아주 상냥스럽게 말이오.
일: 우리는 현명하게 진행시켜야 합니다. 역에서 영접을 잘못하는 날에는 만사가 끝장이 날 것입니다. 시의 음악과 합창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시장: 암요. 일씨의 말씀이 옳아요. 이 순간이야마로 중대한 순간입니다. 이제 짜하나시안 부인은 자기의 고향에 돌아와서 감동을 받고 눈물을 머금고 옛날에 정들었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지금처럼 샤쓰바람으로 맞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검은 예복 차림에 실크햇을 써야죠. 제곁에는 제 아내를 세우고, 손녀딸들한테 흰옷을 입히고 장미꽃을 들려서 앞장을 세워야지요. 제발 모든 게 제대로 들어맞아야겠는데 ……. (종소리)
첫째시민: "돌진하는 롤란트호"군
둘째시민: 베니스와 스톡홀름간을 왕래하는 11시 27분 열차예요.
본당신부: 11시 27분이라고요! 그럼 잔치답게 꾸밀 수 있는 여유가 두시간은 있군요.
시장: 퀸씨와 하우저씨는 "환영, 클레어짜하나시안"이란 플래카아드를 높이 치켜 들도록 해요. 다른분들은 모자를 흔드는 것이 제일 좋겠소. 그렇다고 지난 해에 정부 위원들이 왔을때처럼 소리는 지르지 마시오. 그때의 인상은 영점이었소. 그래서 아직껏 아무런 보조금도 받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도가 지나치는 기쁨의 표시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고향을 다시 찾으시는 분에 대한 정성이 어리고 아주 흐느끼게 될 정도로 공감이 가야 하거든요. 억지로 짜내는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야 한단 말입니다. 어쨌던 조직이 제대로 맞아 들어가야겠는데. 소방서의 좋은 혼성 합창이 끝난 바로 다음에 곧 치기 시작해야 됩니다. 무엇보다도 주의해야 할 점은 ……. (다가오는 기차의 요란한 소리로 그의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쩔줄 모르는 경악의 빛이 감돈다. 벤치에 앉은 다섯 사람이 벌떡 일어선다.)
화가: 급행 열차다!
첫째시민: 섰는데!
둘째시민: 이 귈렌에!
셋째시민: 쫄딱 망해 버린 이곳에!
넷째시민: 이 초라하기 짝이없는 곳에!
첫째시민: 베니스와 스톡홀름 구간에서 가장 비참한 이곳에!
역장: 자연의 법칙이 폐가된 것이로군. "돌진하는 롤란트호"는 토이테나우의 커어브를 돌아서 나타나서는 쏜살같이 지나가던 퓌켄리히트의 저지대로 흐릿한 점이 되어 사라져 버리곤 했었는데. (오른쪽에서 클래어 짜하나시안이 등장. 63세. 붉은 머리, 진주 목걸이, 큼직한 금팔찌, 괴상한 차림이고 어설프다자의 일곱 번째 남편 ……. 키가 크고 후리후리하다. 검은 코밑 수염을 기르고 있다 ……. 은 완전한 낚시질 차림을 하고 있다. 이 일행을 흥분한 여객 주임이 따라오고 있는데 붉은 모자를 썼고 붉은 가방을 메고 있다.)
클래어: 여기가 귈렌인가요?
여객주임: 부인, 부인께서 비상 브레이크를 거셨지요.
클래어: 난 늘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당긴다오.
여객주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의 나라에선 위급한 상태라도 비상 브레이크를 걸지 않습니다. 기차 시각표의 정확성이 최고의 원칙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해명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클래어: 모비, 우린 귈렌에 온 것이지요. 이 서럽던 고장을 다시 보게 되었군요. 저기가 바로 내가 좋아한 콘라쯔바일러 숲인데,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에서 송어나 붕어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저 오른쪽으로 페터씨네 창고의 지붕이 보이는군요.
일: (잠에서 깨어난듯) 클라라.
교사: 짜하나시안 부인이군.
모두 함께: 짜하나시안 부인이다.
교사: 그런데 아직 혼성 합창단도 청년단도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
시장: 기계 체조 선수들도 안나오고, 소방대도 안왔는데 …….
본당신부: 복사도 아직 안 왔는데!
시장: 난 아직 옷도 제대로 입지 못했는데, 이거 큰일났군 실크햇을 줘요! 손녀딸들도 주고!
첫째시민: 클라라 베쉬 부인이시다! 클라라 베쉬 부인이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시내로 달려 들어간다.)
시장: (그 뒤에다 대고 소리친다.) 내 아내도 잊지 말게나!
여객주임: 해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직책상 철도 감독청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클레어: 당신 참 바보구료. 난 바로 이 고장을 방문하려고 온 거예요. 그래 내가 당신의 급행 열차에서 뛰어내려야 되겠단 말인가요.
여객주임: 그럼 부인이 "돌진하는 론란트호"를 세운 것은 단순히 귈렌을 방문하기 위해서 한 짓이란 말씀인가요? (그는 간신히 흥분을 억제한다.) 부인이 귈렌을 방문할 작정이셨다면 칼버 시에서 12시 40분의 완행 열차를 이용하실 수 있었어요. 원 참 세상에, 그럼 귈렌 도착은 1시 31분이 될거에요.
클레어: 로켄, 부룬휘벨, 바이젠바하, 그리고 로이테나우 등지에서 정거하는 완행 열차를 말하는 것인가요? 그래 반시간 동안이나 내가 이 근방에서 칙칙 폭폭거리고 통과하길 바라는 것인가요?
여객주임: 부인, 비싼 댓가를 지불하게 될 테니 그리 아십쇼.
클레어: 보비, 이 사람한테 1천만 내 줘요.
모두 함께: (중얼거린다.) 1천이라고. (집사는 여객 주임한테 1천 마르크를 내준다.)
여객주임: (당황해서) 아니 부인!
클레어: 그리고 철도 종업원 미망인들을 위한 자선 기관에 3천만 내줘요.
모두 함께: (중얼거린다.) 3천이라고 ……. (여객 주임은 집사한테서 3천 마르크를 받아든다.)
여객주임: (얼떨떨해서) 부인, 그런 자선 기관은 없는데요.
클레어: 없으면 하나 세우구료. (시장이 여객 주임에다 귀에다 무엇인지 속삭인다.)
여객주임: 아니 부인께서 클레어 짜하나시안 부인이시라고요? 아이쿠, 큰일이군. 용서해 주십쇼. 그렇다면 물론 문제는 달라집니다. 저희들이 그저 눈곱만치라도 낌새를 눈치챘더라면 말할 것도 없이 귈렌에서 정차를 했을 것입니다. 자, 여기 이 부인의 돈은 다시 받으시요. 부인, 4천입니다. 아이쿠, 큰일날뻔했군.
모두 함께: (중얼거린다.) 4천이라고 …….
클레어: 얼마 안되는 것이지만 받아 두구려.
모두 함께: (중얼거리듯) 받아 두라고.
여객주임: 부인께서 귈렌 시를 다 돌아보실때까지 "돌진하는 롤란트호"를 대기시키도록 할까요? 철도청도 기꺼이 허락할 것입니다. 대성당의 현관문이 구경거리라고 하더군요. 고딕식이라고 해요. 최후의 심판이 그문에 조각되어 있다더군요.
클레어: 기차를 곧 출발하도록 하시구료.
남편7: (울상이 되어서) 여보! 기자단은 어떻게 하리까. 기자단이 아직 내리지 않았는데. 기자단은 아무것도 모르고 앞쪽 식당차에서 식사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오.
클레어: 모비, 그대로 식사를 하게 내버려 둬요. 귈렌에서는 우선은 기자단이 필요치 않아요. 후에 그 사람들이 찾아 오겠지요. (그동안 둘째 시민이 시장의 상의를 가져왔다. 시장은 엄숙한 태도로 클레어 짜하나시안 부인한테로 다가선다. 화가와 넷째시민 은 (환영, 클레어
짜하나시 …….)이라고 된 플래카아드를 벤치에 앉은 채 높이 치켜든다. 화가는 미처 그것을 끝내지 못했던 것이다. )
역장: (큰 신호봉을 치켜 들면서) 발차!
여객주임: 부인께서 철도청에는 제발 항의하지 말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순한 오해였으니까요.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객 주임이 뛰어오른다.)
시장: 존경하옵고 자비로우신 부인! 이 귈렌시의 시장으로 저는 자비로우신 부인을 우리 고장으로 태어난 분으로 맞이하는 영광을 …….
(떠나가는 기차의 요란한 소리로 부동의 자세로 계속하고 있는 연설의 마지막 부분은 들리지가 않는다.)
클레어: 감사하군요. 시장님. 연설이 훌륭했어요. (그 여자는 약간 당황하고 자기한테 다가선 일쪽으로 간다.)
일: 클라라!
클레어: 알프렛!
일: 참 잘 와 주었소.
클레어: 늘 작정은 했었지요. 귈렌을 떠난 후부터 일생 동안 한번 다시 오겠다고 생각했었지요.
일: (분명치 않게) 참 잘한 일이오.
클레어: 당신도 저를 생각하고 있었나요?
일: 암, 물론이죠. 늘 생각하고 있었소. 그건 당신도 알거 아니요? 클라라.
클레어: 우리가 함께 지내던 그때는 참 좋은 때였죠.
일: (거만스럽게) 암, 그렇고 말고. (교사를 보며) 자 보세요 선생. 저 여자는 제 손아귀 속에서 사죽을 못쓰지요.
클레어: 당신이 예전에 부르던 대로 저를 한번 불러 봐주시구료.
일: 오, 나의 삵괭이.
클레어: (늙은 암코양이처럼 야웅거린다.) 그리고 또 있었지요?
일: 오, 나의 귀여운 마녀.
클레어: 전 당신을 저의 점둥이 표범이라고 불렀지요.
일: 난 여전히 당신의 표범이요.
클레어: 허튼 소리 그만두세요. 당신 뚱뚱보가 되었군요. 머리도 희고 술주정뱅이 꼴이 됐는데, 뭘 어떻다구요?
일: 그래도 당신은 옛날 그대로요. 오, 나의 귀여운 악마.
클레어: 아이구 무슨 소리지요. 나도 늙고 기름기만 늘었어요. 게다가 왼쪽 다리도 없어졌고. 자동차 사고로 이젠 급행 열차만 타고 다니는 걸요. 그렇지만 이렇게 의족이 훌륭해요. 자 어때요? (그 여자는 스커트를 들어 올리고 왼쪽 다리를 보인다) 아주 잘 움직일 수 있어요.
일: (땀을 씻어낸다) 그러리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구료. 나의 귀여운 삵괭이.
클레어: 당신한테 내 일곱 번째 남편을 소개해 드릴까요. 알프렛? 연초 재배 농장을 가졌어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요.
일: 암 그래야지.
클레어: 자, 모비, 인사를 해요. 원래 이름은 페드로지만 모비란 이름이 훨씬 더 어울려요. 몸종인 보미의 이름과도 아주 잘 어울리거든요. 하인이란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을 위해 주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남편들로 그 이름에 따라야 되는 거지요. (남편 7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검은 코밑 수염이 정말 멋이 있죠?
모비, 생각에 잠겨봐요. (남편 7은 생각에 잠긴다.) 좀 더 열심히.
남편7: 그러나 이 이상은 더 열심히 생각에 잠길 수가 없는데, 여보 정말 안되겠어.
클레어: 당신은 물론 할 수 있고말고요. 해봐요. (남편 7은 좀 더 열심히 생각에 잠긴다. 종소리) 그것 봐요. 잘 되지 않아요? 안그래요. 알프렛? 저럴 때면 저 사람은 정말 악마 같은 인상을 주거든요? 마치 브라질 사람 같아요. 하지만 그렇지가 않거든요. 저 사람은 희랍 정교도예요. 아버지는 러시아인이고요. 정교회의 신부가 주례를 서 주었어요. 정말 우스운 얘기죠. 자 이젠 귈렌을 한번 돌아보고 싶군요. (그 여자는 왼쪽에 있는 작은 건물을 보석을 물린 왼쪽 안경인- 모노클로 살펴본다.) 이 공중변소는 우리 아버님이 지었어요. 모비, 훌륭한 솜씨지요. 빈틈없이 해냈지요. 어렸을때 난 몇시간이고 지붕 위에 앉아서 밑에다 대고 침을 뱉았지요. 하지만 시내들한테만 뱉았었다우. (배경에는 혼성 합창단과 청년단원이 모여 들었다. 실크햇을 쓴 교사가 앞으로 나선다.)
교사: 부인! 귈렌 고등학교의 교장으로서, 그리고 고상한 음악의 여신의 애호자로서 감히 소박한 민요 한 곡을 부인께 바치려고 하는 바입니다. 합창에는 혼성 합창단과 청년단원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클레어: 선생님! 어디 한번 그 소박한 민요란 걸 뱉아보시구료. (교사는 음차를 꺼내서 소리를 낸다. 혼성 합창단과 청년단원은 장중하게
노래를 시작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왼쪽에서 다시 열차가 달려온다. 역장이 경례를 붙인다. 합창단은 열차의 시끄러운 소음과 싸워야만 한다. 교사는 절망적이 된다. 간신히 열차가 지나갔다.)
시장: (답답한듯) 소방소의 종은 어떻게 된거야. 종을 치기 시작해야 될것 아닌가?
클레어: 귈렌 시민 여러분! 잘 불렀어여. 특히 저 왼쪽 끝의 목젖이 불쑥 나온 금발의 베이스는 특출했어요. (혼성 합창단 사이를 뚫고 경찰관이 나타나서 클레어 짜하나시안 앞에서 차렷 자세를 취한다.)
경찰관: 경찰서장 하안케올씨다. 부인, 분부를 기다리겠습니다.
클레어: (훑어본다.) 고맙군요. 아무도 구속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아미 귈렌 시가 당신을 필요로 하게 될지 모르지요. 가끔 눈 감아주는 짓도 하나요?
경찰관: 암요. 부인, 그렇지 않고서야 귈렌에서 어떻게 살아 갈수가 있겠습니까?
클레어: 차라리 두 눈을 다 감아버리지. (경찰관은 좀 얼떨떨해서 서 있다.)
일: (웃는다.) 정말 클라라답군! 정말 나의 귀여운 마녀 다와! (그는 신이 나서 무릎을 친다. 시장은 교사의 실크햇을 자기 머리에 얹고, 그 아이들은 쌍둥이로 아이들은 일곱살로, 따놓은 머리는 금발이다.)
시장: 부인, 제 손녀딸들입죠. 테르미네와 아돌피네라고 합죠. 제 아내만이 나오질 못했습니다. (그는 땀을 씻는다. 두 소녀는 무릎을 굽혀 인사를 하고 짜하나시안에게 장미꽃을 바친다.)
클레어: 정말 귀염둥이를 둘씩이나 가지셨구료. 시장님 자 이걸 ……. (그 여자는 장미를 역장 팔에다 안겨준다. 시장이 실크햇을 슬며시 본당 신부에게 넘겨 주고, 신부는 그것을 받아쓴다.)
시장: 부인 우리의 본당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는 실크햇을 벗고 머리를 굽힌다.)
클레어: 아이구 주임 신부님 신부님도 죽어가는 인간을 위로해 주시는 일을 하시나요?
신부: (당황해서) 늘 애는 쓰고 있습니다.
클레어: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도 위로해 주시나요?
신부: (당황해서) 이 나라에선 사형 제도는 폐지되었습니다. 부인.
클레어: 아마 다시 부활시키게 되겠지요. (신부는 대경실색해서 실크햇을 시장한테 돌려주고, 시장은 그것을 다시 받아 쓴다.)
일: (웃으면서) 오, 나의 귀여운 삵괭이! 정말 마음놓고 익살을 부리시는군!
클레어: 자 이젠 시내로 들어가 봅시다. (시장이 그 여자에게 팔을 내밀려고 한다.) 시장님! 어떻게 하실 작정이신가요? 의족을 끌고는 그렇게 수십 리 길을 걸을 수는 없지 않아요.
시장: (깜짝 놀라면서) 곧 대령하지요. 공의한테 자동차가 있습니다. 32년도형의 메르세데스예요.
경찰관: (발꿈치를 붙이며 차렷 차세로) 시장님, 곧 대령하겠습니다. 그 차를 공용으로 곧 대령하겠습니다.
클레어: 필요없어요. 자동차 사고 있은 뒤로 난 늘 가마를 타고 다녀요. 로비 그리고 토비야, 그걸 이리로 가져와요. (왼쪽에서 두 명의 거대한 장한이 검을 씹으며 가마를 가지고 나온다. 한 사나이는 등에 기타아를 걸머지고 있다.) 맨해턴 태생의 갱들인데 싱싱의 국립 형무소에서 전기로 고문형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내가 청원을 해서 내가마를 메도록 석방을 시켰어요. 청을 한 번 할때마다 백만 달러가 들었어요. 그리고 저 가마는 루우브르 박물관에서 나온 것인데, 프랑스 대통령의 선물이예요. 아주 친절한 분이고 신문에서 보는 그대로예요. 로비 그리고 토비, 날 시내로 태워다 다오.
두사람: 예스 맴.
클레어: 그런데 우선 페터씨네 창고로 해서 그 다음에 콘라쯔바일러 숲으로 가 다오. 알프렛과 함께 그 옛날의 우리들의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아가 보고 싶다. 그동안에 짐과 관을 황금사도정으로 옮겨다 놓도록 해다오.
시장: (얼떨떨해서) 관이라뇨?
클레어: 관을 하나 가지고 왔어요. 혹시 필요하게 될것 같기도 해서요. 자 떠나자, 로비 그
고 토비야. (검을 씹은 두 거인은 클레어 짜아나시안을 시내로 태우고 나간다. 시장이
신호를 하자 모두 만세를 외쳐대는데 두 하인이 검은색의 훌륭한 관을 들고 들어와서 귈렌 시내로 향하자 어리둥절해서 만세 만세 소리는 희미해진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아직 저당에 들지 않은 소방서의 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시장: 이제 간신히 울리는구나! 소방서의 종이! (군중들, 관을 따라간다. 클레어 짜하나시안의 몸종들이 뒤를 따르고, 집과 수많은 가방을 귈렌 시민들이 운반한다. 경찰관은 교통 정리하고, 그 행렬을 따라가려고 하는데, 오른쪽에서 땅딸막한 두 노인이 나타난다. 그들의 목소리는 가냘픈데, 옷차림은 둘이 다 공을 들인 것이고,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두노인: 귈렌이구나. 냄새로 알겠어. 냄새가 그런데. 공중에서 그런 냄새가 난다. 귈렌의 공기에서 말이야.
경찰관: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요?
두노인: 우리는 노부인의 소유물이에요. 우리는 노부인의 소유물이에요. 부인은 우리를 코비와 노비라고 부르지요.
경찰관: 짜하나시안 부인은 황금사도정에 들게 되실 것이다.
두노인: (즐거운듯) 우리는 장님이에요. 우리는 장님이에요.
경찰관: 장님이라고? 그럼 내가 당신들을 데려다주겠소.
두노인: 고맙군요. 경관 나으리, 대단히 고맙군요.
경찰관: (의아스러운듯) 너희들은 장님이라면서 내가 경찰관인지 어떻게 알고 있지?
두노인: 목소리로 알지요. 목소리로 알지요. 경찰관은 누구나 다 똑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경찰관: (의심스럽다는듯) 자네들은 경찰과 관련된 경험이 있는 모양이군. 이 땅딸보 녀석들.
두노인: (놀라면서) 녀석들이라고요? 저분은 우리들이 사내인줄 아나 보지!
경찰관: 그럼 도대체 뭐란 말이냐, 이 망할 것들아.
두노인: 차차 아시게 될걸요! 차차 아시게 될걸요!
경찰관: (어리둥절해서) 어쨌든 줄곧 신명이 나는 듯하니 좋구나.
두노인: 카틀릿하고 햄을 얻어먹지요. 허구헌 날 허구헌 날 이리 내밀어라. 외국인은 이상한 유우머를 가졌단 말야. (그는 두 노인을 데리고 시내로 들어간다.)
두노인: 보비와 모비한테로 가야지. 로비와 토비한테도 가야지. (막을 내리지 않은채 반전. 역사와 작은 건물의 전면은 위로 올라간다. 황금사도정의 내부. 그곳에다 호텔의 간판을 위에서 내려오게 할수 있다. 그것은 황금색으로 칠을 하고 거룩한 사도상으로 그 방의 중앙에 걸려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퇴락했지만 과거의 영화를 엿볼 수 있다. 모든 것이 낡고, 먼지가 덮이고, 깨어지고 상해서 냄새를 풍기고, 곰팡이가 슬고, 담벼락은 낡았다. 여행용 트렁크를 운반하는 끝없는 행렬, 그들은 먼저 동물의 우리를 하나 들고 들어오고, 다음에는 짐을 끌어들이고 올려가고 한다. 시장과 교사가 전면 오른쪽에 앉아서 화주를 마시고 있다.)
시장: 트렁크, 트렁크 뿐이로군. 산더미 같은데. 그런데 아까 우리 속에 표범이 들은 것을 올려가던데 그래 야생의 시커먼 짐승이었소.
교사: 관을 특별실로 갖다 놓도록 했다오. 이상한 일도 다 보겠어.
시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자들은 자기 대로의 괴상 망측한 생각을 가졌거든요.
교사: 그 부인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묵을 것같이 보이던데요.
시장: 더욱 잘 됐지요. 일씨가 그 여자를 손아귀에 넣고 있으니까요. 귀여운 삵괭이, 귀여운 마녀라고 부르던데요. 수백만은 우려낼 수 있을거요. 그 여자의 건강을 위해서 한잔 듭시다. 교장 선생. 클레어 짜하나시안이 복크만을 구해 낼 수 있기를 기원해서 한잔 듭시다.
교사: 바그너 공장도 그렇게 돼야겠는데요.
시장: 플라쯔 안 데어 존넨휴테 역시 마간가지요. 그 공장이 번창하게 되면 모든 것이 번창하게 될 거예요. 시전체도 고등학교도 그리고 공공복지도 번창하게 되리란 말씀이예요. (축배를 든다.)
교사: 제가 귈렌의 학생들의 라틴어와 희랍어 연습 문제를 고쳐 준 것도 20년이 넘었습니다만, 등골이 오싹해진다는 말의 뜻은 한 시간 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시장님, 그 부인이 열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 소름이
끼칩디다. 그렇게 검은 옷을 걸치고 내려오는 노부인을 보니 말씀예요. 전 마치 로마 신화의 운명의 여신이 아니면 희랍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을 보는 듯했어요. 클레어가 아니라 클로트처럼 생각이 들어서 인간의 생명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듯한 인상이더군요. (경찰관이 들어와서 헬멧을 벗어 못에다 건다.)
시장: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구료, 경찰서장.
경찰관: 이런 고장에서 일을 하는건 즐거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이 폐허도 다시 꽃이 피게 될것 같군요. 지금 막 그 억만장자의 부인이 잡화상인 일씨와 함께 페터씨네 창고에 갔었지요. 감동적인 장면이었어요. 두 사람은 마치 교회에라도 간 듯이 경건하더군요. 그곳에 있기가 면구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콘라쯔바일러 숲으로 가길래 저는 곧 헤어져서 왔지요. 격식을 갖춘 행렬이었습니다. 가마가 앞장을 서고 일씨는 그 옆에 따르고 뒤에는 집사와 낚싯대를 든 일곱번째 남편이 따라가더군요.
교사: 사내들을 마구 뒤흔들어 놓는군요. 제2의 라이스, 그 고대 그리이스의 유명했던 매춘부 같단 말씀이예요.
경찰관: 그리고 또 두 명의 땅딸보 녀석들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그 녀석들이 무엇들인지 알 수가 없단 말씀예요.
교사: 소름이 오싹 끼치던데요. 저승에서 온 것들 같단 말씀이야.
시장: 그 사람들이 콘라쯔바일러의 숲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하군요.
경찰관: 시장님, 그야 페터씨네 창고에서와 같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은 옛날부터 자기들이 사랑의 불꽃을 ……. 뭐라고 해야 좋을까요 ……. 불태우던 곳이란 말씀예요.
교사: 활활 타올랐을 테지요. 셰익스피어 생각이 나는군요. 로미오와 줄리에트 말씀엣. 여러분 저는 감격했어요. 귈렌에 와서 처음으로 고전적인 위대성을
심감하게 되는군요.
시장: 우선 우리의 선량한 일씨를 위해 건배를 합시다. 그 사람은 우리들의
운명을 개선해 보려고 가능한 모든 수고를 다하고 있단 말씀예요. 여러분 우리의 가장 아끼는 시민을 위해서, 저의 후계자를 위해서, 자! (황금사도정의 배경은 다시 위로 올라간다. 왼쪽에서 네 시민이 등받이가 없는 단순한 나무 의자를 가지고 와서 왼쪽에 놓는다. 첫째시민 이 그 의자 위에 올라간다. AK라는 글자가 적힌 커다란 마분지판을 가슴에 달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주위에 반원형으로 서있으며, 가지를 펴서 나무처럼 꾸미고 있다.)
첫째시민 : 우리는 전나무요. 소나무요 떡갈나무지요.
둘째시민 : 우리는 짙은 갈색의 전나무요.
셋째시민: 이끼와 덩굴이며 송아이올씨다.
넷째시민: 관목밭이고, 여우가 사는 구역이지요.
첫째시민 : 떠가는 구름이며, 새의 지저귀는 소리입니다.
둘째시민 : 순수한 독일 땅의 뿌리 투성이의 숲이랍니다.
셋째시민: 느타리버섯이고 겁많은 노루지요.
넷째시민: 잔 가지들의 속삭임이며, 태고의 꿈이 올씨다.
(배경에서부터 검을 씹으면서 두 거인이 클레어 짜하나시안이 탄 가마를 들고
나온다. 그 옆에 일씨, 그 뒤 남편 7이 뒤따르고 맨 뒤에는 집사가 두 장님을
이끌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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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여기가 콘라쯔바일러 숲이군요. 로비야, 그리고 토비야 좀 멈춰다오.
두장님: 로비와 토비, 멈춰라. 보비와 모비야, 멈춰요.
(클레어 짜하나시안은 가마에서 내려서 숲을 바라본다.)
클레어: 당신과 제 이름이 새겨진 저 가슴을 보구료, 알프렛. 이젠 퇴색하고
사이가 떴군요. 나무가 자란 게로군요. 마치 우리들이 그렇듯 줄기와 가지가
굵어졌군요. (클레어짜하나시안은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간다.) 독일에서만 있는
수목들이로군요. 제 청춘 시절의 숲속을 거닐어 본 지도 벌써 오래 전의 얘기가
됐군요.나뭇잎을 헤치고 보라빛 송악을 헤치면서 뛰어다닌 것도 오랜 옛날의 일이
됐군요. 이 검만 씹는 작자들아, 가마를 가지고 좀 저쪽으로 가도록 해라. 네
녀석들의 상판대기를 보기가 늘 그렇게 유쾌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모비,
당신은 오른쪽의 여울에 가서 고기나 낚도록 하구료. (두 거인은 가마를 들고
왼쪽으로 퇴장. 남편 7은 오른쪽으로 퇴장. 클레어싸하나시안은 벤치에 앉는다.)
저 노루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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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시민이 벌떡 일어선다.)
일: 지금은 금했었지요. 45년도 훨씬 넘은
옛날의 일이예요. 우리는 이 관목밭에서, 이 떡갈나무 아래서, 그리고 이끼속에
나온 느타리 속에서 사랑을 속삭였지요. 나는 열 일곱 이었고, 당신도 이십이 채
못 되었지요. 그러자 당신은 잡화상을 가진 마틸드헨 부름하르트와 결혼을 했고,
저는 그 늙은 황금빛 쌍무늬바구니 같은 영감이 말예요 …….
일: 클라라!
클레어: 보비, 헨리 크레이를 한 대 줘요.
두장님: 헨리 크레이를 한 대 달라신다.
(집사가 배경에 나타나서 그 여자에게 여송연을 한대 넘겨주고 불을 켜댄다.)
클레어: 저는 여송연을 좋아해요. 원래 남편의 회사에서 나온 담배를
피워야겠지만 믿을수가 없거든요.
일: 난 당신을 위해서 마틸드헨 부름하르트와 결혼했던 것이오.
클레어: 그 여자가 돈이 있었던 때문이었지요.
일 : 당신은 젊고 아름다왔었소. 미래는 당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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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었소. 난 당신이 행복하기를 원했던 것이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의
행복을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소.
클레어: 이제 그 미래가 온 것이군요.
일: 만일 당신이 여기 있었더라면 당신도 나와 똑같이 망하고 말았을 것이오.
클레어: 당신이 망했단 말인가요?
일: 나는 파산해 버린 소도시 안의 파산한 잡화상에 불과하오.
클레어: 이제 저는 돈이 있어요.
일: 당신이 나한테서 떠나 버린 이후로 나는 지옥살이를 하고 있었소.
클레어: 그런데 저는 바로 그 지옥이 되어 버렸거든요.
일: 나는 날마다 내게 가난을 탓하는 내 가족 때문에 속을 태우며 지내고
있다오.
클레어: 귀여운 마틸드헨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질 않았던가요?
일: 중요한 것은 당신이 행복하다는 일이오.
클레어: 당신들의 자녀들은?
일: 꿈을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이지.
클레어: 곧 그런 생각이 들게 될 것예요. (그는 침묵을 지킨다. 두 사람은 그들의 청춘 시절의 숲을 응시하고 있다.
일: 내 생활은 가소롭기 짝이 없소. 한 번도 제대로 이 시내를 빠져 나가본 일도 없었소. 베를린으로 한번 테신으로 한 번 여행을 한 것이 고작이오.
클레어: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거예요. 저는 세상을 잘 알고 있어요.
일: 당신은 여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소?
클레어: 그 세상이 바로 제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입을 다물고, 그 여자는 담배를 피워 문다.)
일: 이제 모든 게 달라질 것으로 아는데.
클레어: 그럼요.
일: (눈치를 살피면서) 당신은 우리를 도와주겠지?
클레어: 제 청춘 시절을 보낸 이 도시를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겠어요.
일: 우리는 기백만을 필요로 한단 말이오.
클레어: 얼마 안 되는군요.
일: (감격해서) 오! 나의 삵괭이! (그는 감동하여 그 여자의 왼쪽 다리를 때렸다가 아픈 표정을 짓고 손을 뗀다.)
클레어: 아프지요. 당신은 제 의족의 경첩을 때린 거예요. (첫째 시민이 바지 주머니에서 낡은 담뱃대와 녹쓴 현관 열쇠를 꺼내서 그 열쇠로 담뱃대를 두들긴다.)
클레어: 딱따구리로 군요.
일: 그 옛날 우리가 아직 젊고 대담했던 시절과 똑같구료. 그때도 우리는
콘라쯔바일러 숲으로 이렇게 온 일이 있었지. 우리들의 사랑하던 시절의 얘기요.
전나무 위에 높이 솟아 빛나는 태양, 그것은 밝고 둥근 접시 같았었소. 멀리
구름은 떼지어 가고, 어딘지 뿌리가 무성하게 드러난 숲속에서는 어디선지 뻐꾸기
울어대고 있었지.
넷째시민: 뻐꾹! 뻐꾹!
(일씨는 첫째 시민을 만져본다.)
일: 써늘한 나무와 나뭇가지 속에 이는 바람, 마치 바다의 파도 같던 쓸쓸한
소리 그 옛날과 똑같구료.
(소나무처럼 꾸미고 섰던 세사람이 팔을 아래로 움직여서 바람이 부는 흉내를
낸다.)
일: 시간이란게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소. 나의 귀여운 마녀, 인생이 우리를
떼어놓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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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겠소.
클레어: 당신은 그랬으면 하나요?
일: 이것만이, 다만 이 사실만이 중요하오. 나는 뭐니 뭐니 해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단 말이오. (그는 그 여자의 오른 손에 입을 맞춘다.) 그 옛날과
똑같은 차고 흰 손이구료.
클레어: 잘못 생각했어요. 그것도 의수예요. 상아로 만든 거예요.
(일씨는 깜짝 놀라서 손을 놓는다.)
일: 클라라! 도대체 당신 몸은 모조리 의족이고 의수란 말요?
클라라: 거의가 다 그렇다우. 아프가니스탄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어요. 기체가 산산조각이 난 속에서 혼자만이 기어나왔어요. 승무원들도
다 죽었지만, 나만은 죽이질 못했었다우.
두장님: 죽이질 못하지요. 죽이질 못하지요.
(브라스 밴드의 음악이 시작된다. 장엄한 연주. 황금사도정 간판이 다시
내려온다. 귈렌 시민이 식탁을 들여온다. 식탁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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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이 해진 것이다. 식기와 음식 중앙에 테이블이 한개 놓여있고, 관개과
평행으로 하나는 왼쪽, 하나는 오른쪽에 놓는다. 배경에서 본당 신부 등장. 기타
귈렌 시민들도 몰려 들어온다. 그중 한 사람은 체육복을 입고 있다. 시장, 교사,
경찰관이 다시 등장. 귈렌 시민들은 박수를 친다. 시장은 클레어 짜하나시안과 일
씨가 앉아 있는 벤치가 있는 데로 온다. 나무들은 다시 시민이 되어 뒤로
물러난다.)
시장: 부인, 이 우뢰와 같은 박수는 부인에 대한 것이 올시다.
클레어: 시장님, 그것은 시의 음악에 대한 박수였어요. 훌륭한 연주군요.
그리고 아까 그 체조 연맹의 피라밋은 희한하더군요. 그 체육복에 짧은 바지를
입은 사내들은 좋아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보인단 말예요.
시장: 식탁으로 가실까요? (그는 클라라짜하나시안을 중앙에 놓인 식탁으로
안내하고 가서 자기 아내를 소개한다.) 저의 처올씨다.
(클레어짜하나시안은 모노클로 그 여자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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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우리 반에서 첫째만 하던 아넷트헨둠머무트로군 그래.
(그는 또한 부인을 소개하는데, 그 여자도 그의 아내처럼 수척하고 입맛이 쓴
표정이다.)
시장: 일씨의 부인이십니다.
클레어: 마틸드헨 부름하르트구만. 당신이 가게 문 뒤에 숨어서 알프렛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던 일이 생각나는구료. 여봐요. 당신 말랐구료. 그리고
창백하고.
(오른쪽에서 의사가 곤두박질해서 들어온다. 오십대의 딱바라진 남자로 코밑
수염을 기르고 검은 머리는 뻣뻣하고, 얼굴에는 결투자국이 남아 있고, 낡은
연미복을 입고 있다.
의사: 겨우 제 시간에 제 낡은 메르세데스 차를 몰고 달려 왔습니다.
시장: 우리의 공의이신 뉴스린 박사이십니다.
(클레어짜하나시안은 모노클로 의사를 관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