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오타쿠 / 김석수
지난달 중순에 열흘간 일본에서 즐겁게 여행하고 돌아왔다. ㄱ 선배가 도쿄 근처에 가성비 높은 민박집을 소개한 것이 우연한 계기가 됐다. 그는 일본에서 10여 년 동안 생활한 경험이 있다.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 바로 예약하면 사흘 뒤에 싸게 갈 수 있다. 제이알(JR) 패스로 철도 여행을 하려고 예전에 표를 샀던 여행사에 연락했더니 지금은 팔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른 여행사를 안내해 주었다. 그곳에 전화했더니 주문하고 서류를 받으려면 최소한 5일 걸린다고 한다. 비행기 일정에 맞추려고 이곳저곳 수소문해 보니 철도 관광 안내소에서 살 수 있다. 미리 전화하고 갔더니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여행 준비를 끝내고 아내에게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시큰둥했다. 해외에 다녀온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또 나가냐는 표정이다. 떠나기 하루 전에 말해서 갑자기 뜬금없다고 한다. 웃으면서 ‘여행 중독’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안전하게 잘 다녀오라고 한다. 아내가 터미널까지 데려다줘서 버스로 인천 공항까지 갔다. 탑승 수속을 끝내고 점심 무렵이라 2층 식당에서 육개장 한 그릇을 비웠다. 출국 절차를 마치고 탑승구로 가려고 하니 지하로 내려가서 셔틀 전동차를 타야 했다.
비행기에 오르니 옆 좌석에 두 여자가 있다. 나중에 알았지만 둘은 자매다. 서울에 사는데 도쿄에 벚꽃 구경하러 간다고 한다. 이런저런 말 하다 비행기 표 이야기가 나왔다. 두 달 전에 예약했지만 나보다 비싸게 주고 샀다. 두 시간 반쯤 지나서 도착했다. 나리타 공항은 인천만큼 산뜻하지 않다. 오래된 느낌이다. 출국하면서 로밍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아서 심(SIM) 카드를 사려고 인터넷 서비스 가게를 찾느라고 두리번거렸다. 리무진을 타고 민박집이 있는 도쿄 근교 이바라키현 스치우라역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비가 왔다. 쓰쿠바 시내를 지나서 갔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민박집 주인이 승용차로 마중 나왔다. 집까지 차로 3분, 걸어서 15분이다.
다음 날 쯔쿠바 산 등산하고 오면서 역에 들렀다. 제이알 패스를 승차권으로 바꾸려고 안내 창구로 갔다. 한국에서 산 표를 일본에서 승차권으로 교환해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구 직원은 여기서는 바꿀 수 없으니 카시와역 관광 안내소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그는 "승차권은 사용하기 시작하는 날부터 끝까지 계속 사용해야 좋다. 만약 중간에 하루나 이틀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큼 손해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리타 공항에서도 제이알 패스를 사용하는 날짜를 지정해서 승차권으로 교환할 수 있다. 카시와는 스치우라에서 완행 기차로 30여 분 걸린다. 오전 아홉 시부터 사무실 문을 연다고 귀띔해 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곱 시쯤에 스치우라역으로 나갔다. 카시와역에 여덟 시쯤 도착해서 한 시간 역사를 구경한 다음 아홉 시에 관광 안내소에 가서 표를 바꾸려고 했다. 매표소에서 완행 표를 사서 도쿄로 가는 전철에 올랐다. 도심지로 출근하는 사람이 많이 타는 기차다. 대부분 휴대 전화를 보고 있는데 내 옆에 앉아있는 여자는 문고 책을 읽고 있다. 카시와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으려고 역에서 식당을 찾았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여는 곳을 찾기 어렵다. 밖으로 나와서 시내로 들어가니 ‘요시노야‘가 불을 켜고 손님을 받고 있다. '빠르고, 맛있고, 싸다.'라고 하는 규동(쇠고기 덮밥) 가맹점이다. 그곳에서 끼니를 때우고 시내를 돌아다니다 아홉 시 무렵에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관광 안내소에 갔더니 업무는 열 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한 시간이 남았다. 어제 스치우라 역에서 역무원이 여기가 아홉 시에 문 연다고 해서 지금 왔다고 말했으나 열 시에 다시 오라고 한다. 역 광장으로 나오니 확성기로 선거 운동 하는 사람이 있다. 지방 의회 의원에 출마한 것 같다. 그가 하는 말은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오가는 사람마다 허리를 굽혀가며 깍듯하게 인사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어디든지 정치하는 사람은 대부분 선거 전에는 유권자에게 굽실거리다가 당선되면 거들먹거린다. 출근 시간이라 그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그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니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일본말로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러냐고 한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벤치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서양 사람이 눈에 띄었다. 조금 전에 화장실에서 본 사람이다. 내가 일을 보려고 화장실 앞에서 줄지어 서서 있는데 그는 사정이 급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심하게 움직였다. 어디서 와냐고 물어보니 영국 노팅엄에서 왔단다. 그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직장이 이 근처라 일찍 도착해서 역광장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사람 구경하는 것이 취미다. 타이완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다가 이곳으로 왔다. 일본 여자와 결혼해서 도쿄 근교에서 살고 있다. 그의 아내는 화가다. 올해 78세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걸어가는 많은 사람을 보면 유령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화장실에서 급하면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일을 보지 몸을 왜 그렇게 움직였냐고 했더니 그는 기다리면서 복근 운동을 했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한국에 가본 적은 없다면서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한다. 내게 나이를 물어보더니 아직 젊으니까 여행만 다니지 말고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 나는 일 중독자가 되는 것은 싫다고 했다. 그는 "요즘 젊은이는 일하지 않고 편하게 살려고만 한다. 귀찮아서 결혼도 싫어한다. 젊은이는 대부분 다른 나라 여행 가려고 영어를 배우러 온다."라고 했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업무 시간이 돼서 관광 안내소로 다시 갔다.
여자 직원이 서툰 영어로 내게 여권을 보여달라고 한다. 개찰구를 출입할 수 있는 승차권을 주면서 잊어버리면 다시 발급받을 수 없다. 특급이나 신칸센 열차는 매표소에서 예약하고 따로 승차권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다음 날 하코네에 가려고 스치우라에서 시나가와까지 가는 특급 열차와 시나가와에서 오다와라까지 신칸센 표를 예약하고 도쿄역으로 갔다. 역 근처와 마루노우치 지역을 돌아봤다. 도쿄 역사는 서울역과 비슷하다. 일왕이 사는 황거로 가는 교코 거리 주변, 제이알(JR) 타워, 고쿄가이엔과 고쿄히가시교엔을 돌아다녔다.
저녁에 민박집에 와서 다음 날 일기 예보를 알아보고 여행지를 정했다. 날씨가 맑으면 유명 관광지로 가고 비가 오면 도쿄 도심으로 갔다. 아침 일찍 스치우라역에서 날마다 특급으로 도쿄 우에노역으로 가서 신칸센을 타고 일본 열도를 달리는 내가 ‘철도 오타쿠(덕후)’ 같다. 오타쿠는 처음에는 에니메이션, 만화, 철도, 컴퓨터, 게임 등에 심취한 독신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특정 취미 생활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나 대부분 소득을 쓰는 사람도 그렇게 불렀다. 지금은 특정 분야에 깊이 빠진 전문가를 말하기도 한다.
일본에는 ‘철도 오타쿠’가 많다. 철도 여행과 주제로 한 사진 촬영 등 취향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먹고 포장지를 모으는 오타쿠도 있다. 철도를 의인화해서 만화를 그리는 작가가 있다. ‘메구미 토모히토’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만화가이며 여행 관련 뉴스 편집자다. 철도의 특징을 캐릭터로 만화를 만든다. 철도와 관련된 해박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이면서 오타쿠라고 할 수 있다. 특정한 분야에서 오타쿠가 되려면 그 일에 깊이 빠져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일에 중독될 수 있다.
첫댓글 철도 오타쿠 멋지네요. 글 고맙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여행광이시네요. 여행한 글만 모아서 책을 내도 되겠어요. 저 같은 사람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여행 중독자, 멋집니다.
고맙습니다.
가까운 일본은 나이들면 가자고 한 번도 못 갔는데 선생님 글 읽으니 설렙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들이랑 기차 타고 일본 소도시 여행했던 게 떠오르네요. 거기서 먹은 도시락도 참 맛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도쿄 근처에 가성비 높은 민박집이 어딜까요?
베푸, 오사카, 샷포르 등지를 여러 번 여행했는데 아직 그들의 심장부 도쿄는 못 가 봤습니다.
그 민박집 소개해 주실 거죠?
네, 도쿄로 여행가면 연락 주세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대단하시네요.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혼자서 이렇게 못 다니 것 같아요.
역 광장에서 커피 마시면서 사람 구경하는 취미도 한번 따라 해 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